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03화 (103/175)

103화

“응?”

“뭐지……?”

어떻게 된 일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달시 세이피어.

그러나 무엇보다도 당황한 것은 바로 나였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 내 몸은 추락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매기를 소환하기 위해 회중시계에 마나를 불어 넣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페가수스 위에서 내 몸이 나타난 것이다.

나는 지금 당장 벌어진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 현상을 설명해 줄 단어가 하나 있긴 했다.

그것은 바로…….

“순간 이동……?”

“응? 순간 이동한 거야?”

아무렇지 않게 되묻는 달시 세이피어.

그녀는 떨어지던 내 몸이 갑자기 등 뒤에서 나타났음에도 전혀 놀란 기색이 없었다.

‘저게 마법사란 건가.’

마법의 세계에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눈앞에서 벌어졌어도, 그것을 마법으로 치부하게 된다면 사실 별거 아닌 일이 돼 버리는 것이다.

아무래도 달시 세이피어는 지금 일어난 일에 그다지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평온했던 달시가 뒤를 힐끔 돌아보더니, 나에게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음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로브 색깔이 달라졌네?”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입고 있는 로브는 빨간색…….”

내 모습을 훑어보던 나는 이윽고 달시의 말이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버밀리온의 로브’는 원래의 빨간색이 아닌 하얀색으로 변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지금 내게 일어난 기현상은 두 가지.

첫째는 몸이 갑자기 순간 이동을 한 것.

둘째는 로브의 색이 변한 것.

그 두 가지의 현상을 결부하면 도출되는 답은 역시 하나였다.

‘버밀리온의 로브의 능력인가.’

그러고 보니 애초에 나는 회중시계에 손이 닿기도 전에 이미 마나를 방출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출된 마나가 버밀리온의 로브에 먼저 적용된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버밀리온의 로브’의 능력이 공간 조작이란 건가……?’

아무래도 순간 이동이라면 물질계 마법 중에서도 공간 조작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였다.

그리하여 내 머릿속에서는 문득 아텔라 교수님이 떠오르고 있었다.

‘공간 조작은 아텔라 교수님의 고유 마법이잖아. 이 로브가 그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러고 보니 예전에 공간 조작 마법이 물질계 고유 마법 중에서도 매우 희귀한 것이라고 말했던 루비의 말이 기억났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얻은 물질계의 능력이 꽤나 유니크한 능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사용된 거지?’

나는 곰곰이 원인을 분석해 봤다.

일전에 아우레인의 기숙사에서 로브를 사용하려 했을 때는 딱히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로브의 능력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곧 그 차이를 깨닫게 되었다.

‘목적의식.’

그때의 나는 그저 로브에 마나를 부여하기만 했을 뿐이고, 이번에는 확실히 페가수스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목적의식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버밀리온의 로브’는 미리 원하는 장소를 설정해야만 발동되는 형식인 것으로 보였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중얼거림과 동시에 한쪽 다리를 돌려 페가수스의 등 위에 걸터앉은 채, 서서히 떨어질 준비를 했다.

그런 내 모습을 달시 세이피어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뭐 해?”

“실험.”

“실험?”

“잠깐 페가수스의 속력을 조금 줄여 줄 수 있어?”

“그래, 뭔진 모르겠지만.”

이내 달시가 고삐를 두어 번 당기자 페가수스가 속도를 줄였다.

다만, 주변의 난기류 덕분에 여전히 페가수스는 덜컹거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씨익 미소를 지으며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다.

쏴아아아아―

순식간에 내 몸은 귓가를 때리는 바람 소리와 함께 추락했다.

“뭐 해애애애?”

떨어지는 나를 내려다보는 달시의 목소리.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며 페가수스의 안장에 집중하고는 마나를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그리고,

팟!

내 몸은 어느새 또다시 달시의 뒤쪽에서 튀어나왔다.

“역시나.”

예상했던 작동 방식이 맞았다.

게다가 비록 두 번째이긴 하지만 순간 이동하는 감각을 온전히 익힌 것 같기도 했다.

이런 내 난데없는 순간 이동 쇼에 달시가 항의하기 시작했다.

“뭐야? 왜 혼자 재밌는 거 해?”

“…재밌는 거?”

지금 내 행동을 미쳤다고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재밌어 보인다고 질투하다니.

역시 달시 세이피어의 사고방식은 특이했다.

물론 상공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내리는 내 쪽이 더 이상한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그녀에게 방금 한 행동의 이유를 변명했다.

“아니, 노는 건 아니고……. 그냥 새로운 마법을 테스트해 봤어.”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나도 이제 막 처음 써 보는 마법이라서. 그나저나 굉장하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바로 위치 에너지의 초기화였다.

애초에 이 로브를 통한 순간 이동은, 추락하면서 받는 위치 에너지조차도 상쇄시켰다.

그야말로 완벽한 의미의 순간 이동인 것이다.

“그나저나 순간 이동이라기보다는…….”

나는 불현듯 게임 속 용어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점멸. 점멸에 가깝네.”

나는 점멸 쪽이 좀 더 어감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영웅의 아티팩트에 있는 능력이 여기서 끝일 리는 없을 텐데.’

‘골드버그의 회중시계’만 해도 단순히 매기를 소환하는 능력만 있는 줄 알았건만, 나중에 숨겨진 능력이 추가로 발견됐었다.

따라서 이 ‘버밀리온의 로브’도 단순히 점멸의 능력만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뭔가 더 강력한 효과가 숨겨져 있을 게 분명했다.

‘뭐, 어쨌든 이것만으로도 지금 당장은 유용하니깐.’

추가적인 능력은 나중에 알아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의 이 점멸 능력만 해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애초에 순간 이동이라는 거 자체가 상당히 활용도가 높은 마법이었다.

특히 전략적인 움직임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더더욱 완벽한 효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나저나 색이 너무 하얀데.’

너무 눈에 띄었던 붉은색보다야 낫다만, 그래도 하얀색은 너무 촌스러워 보였다.

어떻게 다시 색을 바꿀 방법이 없을까 하던 나는, 이내 로브의 색을 바꾸는 상상을 하며 마나를 주입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그러자, 놀랍게도 로브의 색은 내가 원하던 색으로 바뀌었다.

“역시 검은색이 무난하지.”

나는 새로 바뀐 로브의 디자인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나저나 색상과 디자인 변경 기능까지 달린 로브라니.

점멸 능력이 없더라도 그저 외투로서도 충분히 가치가 높은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한창 앞쪽을 내다보고 있던 달시가 살짝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패션쇼 하는 거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닌 거 같은데.”

달시의 말마따나 페가수스의 흔들림이 아까보다 더 심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의 공기도 심상치 않았다.

“근데 세오린 산 근처까지는 괜찮다고 하지 않았어?”

“여기가 그 근처거든.”

“벌써?”

이동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근처라니.

페가수스가 빠른 건지 아니면 그만큼 세오린 산이라는 곳이 아카데미에 가까운 건지는 모르겠다.

“원래 세오린 산 근처는 기류가 불안정해. 물론 혼자 다닐 때야 상관없이 그냥 뚫고 들어가긴 하는데, 네가 걱정되네. 괜찮겠어?”

“뭐, 상관없어. 떨어지면 또 점멸로 올라오면 되니까.”

달시를 안심시킨 나는 스스로의 발언에 놀라게 되었다.

이 높은 고도에서 떨어진다는 걸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사람이라니.

‘지금껏 얼마나 떨어졌으면 이게 아무렇지 않게 된 거야.’

이걸 성장했다고 말해야 하나, 그만큼 굴렀다고 해야 하나.

살짝 당혹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머릿속에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었다.

‘설마 로브의 효과로 다른 사람도 같이 점멸을 사용할 수 있으려나?’

이 로브 본연의 효과가 ‘공간 조작’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생각해 보니 같은 공간 조작 마법을 사용하는 아텔라 교수님은 수많은 아우레인 학생을 데리고도 위저드 협곡에서 아카데미로 순간 이동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게 기억이 났다.

그렇다면 나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럼… 해 볼까?”

“응? 뭐가?”

“혹시 세오린 산이 어느 방향이야?”

“저쪽.”

내 말에 달시는 손가락으로 북동쪽을 가리켰다.

아쉽게도 세오린 산의 모습은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 방향에 지평선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정도면 가시거리가 대략 10km 정도 되려나…….’

10km도 충분히 먼 거리였다.

나는 이내 눈을 감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버밀리온의 로브에 조심스레 마나를 불어넣었다.

“뭐 하는 거야?”

흔들리는 페가수스 위에서 갑자기 난데없이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 나를 보며 달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이미 마법은 발동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계속해서 소용돌이치는 백색 마나는 이내 나를 감싸고, 달시를 감싸더니, 페가수스까지 전부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팟―!

순식간에 내가 점지해 둔 장소로 페가수스를 포함한 모두가 동시에 순간 이동을 하게 되었다.

“뭐야?!”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의 달시 세이피어.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어때?”

“우와아아! 이런 것도 가능한 거야?”

달시는 신기하다는 듯 연신 리액션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 만족할 내가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미소를 지은 후에 다시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한 차례 더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또다시 로브를 휘감는 백색 마나.

그런데 이번에는 아쉽게도 실패한 모양이었다.

계속해서 마나를 주입해도 위치의 변화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뭐야, 쿨타임이 있는 건가?’

게다가 마나 소모량도 꽤 많은지, 조금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아무래도 단체 순간 이동에는 그 질량만큼이나 많은 마나가 소모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결국 목적은 달성했네.”

이미 우리는 난기류를 뚫고 안정된 구역으로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거의 다 왔다!”

결국 ‘버밀리온의 로브’로 먼 거리를 순식간에 껑충 뛰어넘었기에, 순식간에 난기류를 뚫고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달시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윗부분이 안개에 가려진 산이 보이고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리며 그 뿌옇게 가려진 산을 살펴보았다.

원근법을 감안하더라도 세오린 산의 크기는 제법 커 보였다.

“저게 세오린 산이야?”

“응. 이제 다 도착했어.”

말을 마치자마자 달시가 고삐를 휘둘렀다.

그러자 페가수스는 점차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방향이 산 한가운데가 아닌, 산의 초입 부분이었다.

“응? 산으로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마을 사람들이 영물을 싫어하거든. 그래서 페가수스는 입구까지만 갈 수 있어.”

“영물을 싫어한다고?”

그러고 보니 이 지역은 마법도 사용하지 못한다 했지.

마법도 영물도, 마물도 없는 곳이라.

‘그렇다면 사실상 원래의 세계와 다를 바 없는 거 아닌가?’

그런 의문을 뒤로한 채 어느덧 페가수스는 산의 입구 쪽에 착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순간 몸의 변화를 느끼게 되었다.

“어라……?”

뭔가 무거운 것이 몸을 누르는 듯한 감각.

내가 당황한 듯 보이자, 어느새 떠나려는 페가수스를 배웅하고 있던 달시가 배시시 미소를 지었다.

“조금 이상한 감각이지?”

“으응.”

“그게 세오린 산의 마나 억제야.”

달시의 말마따나 몸에 있는 마나가 짓눌리는 듯한 불쾌한 감각이 느껴지고 있었다.

마치, 높은 산에 올라가면 공기가 희박하다고 느끼는 감각과 같았다.

“곧 적응하면 괜찮아질 거야. 아무튼, 도착이야.”

그리하여 우리는 세오린 산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왠지 불길한 느낌이 맴돌았다.

“저건… 뭐야……?”

눈앞에 있는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계단.

“당연히 산으로 올라가는 계단이지.”

나는 곧 벌어질 미래가 예상되어 입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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