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06화 (106/175)

106화

꼬마들과 헤어진 나는 곧바로 중림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왔다.

그리고 아까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향하자 곧 마을이 보였다.

마을의 풍경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중림사의 건물 디자인들이 양반집의 세련된 디자인이었다면, 마을에는 초가지붕의 집들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마치 사극에서나 볼 법한 광경이었다.

‘게임의 제작사가 국내 기업이라 그런가.’

물론 이곳은 정작 ‘아카마’에서는 등장하지 않던 지역이었지만, 그럼에도 디자인이 꽤나 매력적이었다.

다만, 중림사나 천국의 문은 다소 중국풍이었던 만큼, 단순히 한국풍이 아닌 오리엔탈적인 요소들이 혼합된 동양풍의 지역인 것으로 보였다.

“뭔가 민속촌에 온 것만 같은 느낌이네.”

나는 이내 마을의 거리로 들어섰다.

아직 한창 오후의 시간인지라 거리는 장사꾼들로 가득했다.

돼지고기를 천장에 묶어서 판매하는 가게가 보이기도 했고, 어떤 가게는 무언가를 찌고 있는지 연기가 폴폴 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바닥에 반짝거리는 장식품들을 깔아 놓고는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정겨운 분위기에 내심 향수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주변의 사람들이 속닥거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인가?’

그러나 기분 탓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노골적이었다.

분명, 이곳의 마을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하여 나는 뭔가 이상한가 싶어 스스로 모습을 점검해 보았다.

‘복장이 조금 이질적이어서 그런 건가.’

이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삼베옷 비스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반면, 나는 아카데미의 교복 위에 검은 로브를 걸친 차림.

아무래도 이들에게는 조선 시대에 온 서양 선교사 같은 느낌일 것이리라.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외지인의 모습은 조금 신기하게 느껴지겠지.

나는 마을 사람들이 나를 보고 수군대도 조금은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내 거리를 걷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다름 아닌 주막이었다.

주막의 굴뚝에서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의 마당에 놓인 테이블에는 저마다의 사람들이 국밥을 먹고 있었다.

‘국밥을 팔잖아?’

지금껏 칼루스 아카데미에서의 생활 양식은 서양풍에 가까웠다.

그리하여 국물 음식은 찾아보기도 힘든 게 당연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런 곳에서 국밥집을 발견하게 되다니.

뜨끈한 국밥 내음은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따 세이피어 가문이 대접하는 저녁도 먹어야 하는데.’

애초에 마을에서는 간식거리만 몇 개 집어먹을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국밥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들었다.

‘국밥은 못 참지.’

나는 곧장 주막 안으로 들어섰다.

적당히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내 주모로 보이는 사람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먼저 입을 열 낌새는 보이지 않고 눈치만 보고 있었기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국밥 한 그릇 주세요.”

“…5베롯.”

“5베롯이라고요?”

5베롯이면 대략 원래 세계로 따지자면 5,000원.

지금껏 워낙 많은 돈을 벌어 왔기에, 금전 감각을 상실한 나에게는 매우 적은 돈으로 느껴졌다.

나는 곧장 허리춤의 인벤토리에서 돈을 꺼내 건넸다.

그러자 주모는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더니 곧 국밥 한 그릇을 가지고 나와 내가 앉은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우와아아.”

국밥에서 따뜻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리고 한 숟갈을 떠먹자, 역시 원래 세계에서 먹었던 국밥의 맛 그대로였다.

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향의 향수에 허겁지겁 국밥을 퍼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퍽―

누군가 밥을 먹고 있는 내 등 뒤를 어깨로 치고 갔다.

그 충격에 하마터면 잡고 있던 국밥 그릇을 쏟을 뻔했다.

“뭐야?”

뒤를 휙 돌려 보자, 그곳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 남성이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몸은 살짝 다부진 체형이었고, 삼베옷을 입은 앞가슴은 풀어헤쳐서 가슴부터 배로 내려오는 털이 수북이 보였다.

내가 째려보자 그 산적처럼 생긴 남자는 이내 입을 열었다.

“어이쿠, 실례. 지나가던 길에 그만 부딪히고 말았네.”

머리를 긁적이는 남자.

나는 그 남자의 얼굴을 살짝 째려보다가, 이내 신경을 끄기로 했다.

남자의 태도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사과는 받았으니까.

고의는 아니겠거니 넘어갔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금 국밥을 한 숟갈 떴다.

그런데,

투욱―

어디선가 날아온 돌멩이가 내 머리를 두드렸다.

비록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돌이라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분이 매우 나빴다.

이번에도 고개를 휙 돌리자 그곳에는 또 다른 비실비실해 보이는 사내가 쪼그려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자세를 보아하니 그 비실비실한 남자가 방금 돌멩이를 던진 범인인 듯싶었다.

게다가 가만 보니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 주막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나를 흘깃흘깃 훔쳐보며 키득대고 있었다.

‘기분 탓이 아닌 거 같은데.’

그럼에도 나는 또 한 번 참았다.

그러고는 다시금 국밥을 먹는 시늉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까의 산적 같은 남자가 이번에는 내 등짝을 후려갈겼다.

퍼억―!

살짝 손맛이 느껴지는 강도.

기분 나쁜 수준을 넘어 등짝이 살짝 얼얼한 정도였다.

나는 이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자를 째려보았다.

그러자 그 산적 같은 사내는 또다시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어이쿠, 마침 파리가 날아다녀서 말이지. 거참 주모, 거 위생 상태가 이래서 장사는 하겠소?”

사내는 내가 째려보건 말건 아랑곳하지 않고 주방에 있는 주모 쪽에 큰소리를 쳐 댔다.

나는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노려볼 뿐이었다.

“미안하게 됐소이다. 그럼 드시던 거 마저…….”

퍼어어억―!

사내는 말을 잇지 못했다.

내 발이 사내의 복부를 가격했기 때문이었다.

콰당탕탕―

바닥에 쓰러진 남자.

나는 이내 그 모습을 보고 어깨를 으쓱했다.

“미안해요. 밥 먹는데 웬 돼지 새끼가 울어 대서 말이에요. 알고 보니 사람이셨네요?”

“저, 저게……!!”

곧 쓰러진 남자를 중심으로 주막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이내 내 쪽에다 대고 큰 목소리로 항의했다.

“너 이 자식, 지금 무슨 짓이야?!”

“이놈 보세요, 동네 사람들! 외지인이 마을 사람을 폭행하고 있습니다!!”

“마을에 깡패가 나타났어요! 다들 모이세요!!”

나는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한편, 살짝 어이가 없었다.

‘뭔가 잘못된 거에 휘말린 듯한 느낌이긴 한데.’

이내 주막 안으로는 동네의 건장한 남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에 살짝 당혹감을 느꼈다.

‘아니, 애초에 시비 건 건 그쪽들이잖아.’

뭔가 이상했다.

아니,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이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곳의 분위기는 뭔가 외지인을 전혀 환영하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시비를 걸어 오는데도 넘어갈 정도의 호구는 아니었다.

게다가 법으로 따지자면 이건 엄연히 정당방위였다.

‘아냐, 오히려 잘됐어.’

아까 전 세이피어 꼬마 녀석들을 상대로도 한 번 참았던 나였다.

오늘의 인내심 할당량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였다.

나는 제법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을 한 번 훑었다.

그러고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대략 열 명은 넘어 보이는 상대들.

나이는 살짝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자들이었지만, 생활 근육이 붙어 있는지 하나같이 떡대들이 있어 보였다.

‘해도 되는 거겠지?’

나는 이제 막 이곳에 온 외지인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세이피어의 영지에서 트러블에 휘말리다니.

‘뭐, 달시가 알아서 책임져 주겠지.’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저, 저 새끼 잡아!!”

내 발차기에 쓰러진 남자가 이내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러자 열댓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팔을 걷고는 우르르 나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니 마법은 못 쓰잖아.’

나는 잠시 고민했다.

마법을 쓸 수 있다면야 스무 명이고 백 명이고 전혀 상관없었지만,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서 이 많은 인원수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릎을 꿇고 비는 것은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방향이니까.

“그래, 어디 해 보자고.”

맨주먹으로는 이 많은 인원을 상대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빠르게 주변을 살핀 나는, 곧 주방의 입구에 놓인 대걸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가 대걸레 자루를 손에 쥐었다.

제법 묵직했으나, 그동안 근육통 제거 마법을 받아 오면서 수없이 단련한 몸이라 그런지 딱히 문제는 없었다.

나는 곧 달려오는 사내들을 향해 대걸레 봉을 민첩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딱―!

따닥―!

딱―!

경쾌한 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대가리로 내리꽂히는 대걸레 자루.

그와 함께 사내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아악!”

“으아악!!”

“뭐, 뭐야, 저 자식!!”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나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이내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을 구르는 사내들을 향해 한껏 소리쳤다.

“어이, 그러게 적당히들 하지 그랬어. 마법을 사용 못 한다고 다가 아니거든.”

역시 배움은 실용적일 때 비로소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나는 지난 몇 달간의 검술 수업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주방 쪽에서 주모가 큰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할 거면 나가서 해요!!”

나는 그런 그녀에게 괜찮다는 듯 손을 저었다.

“괜찮아요. 혹시라도 피해를 입으시면 변상은 제가 할게요.”

수중에 돈은 꽤 있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달시가 바로 이곳의 영주였다.

나로서는 전혀 꿀릴 이유가 없었다.

이어서 나는 고개를 돌려, 겁먹었는지 더 이상 다가오지 않는 사내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깽값도 충분히 지불해 드릴게.”

말을 마친 나는 사내들을 향해 힘껏 도약했다.

그리고 그 건달 같은 녀석들을 하나둘씩 쓰러트리기 시작했다.

정강이.

복부.

정수리.

등짝.

나는 능수능란하게 대걸레의 봉을 휘두르며 상대들을 유린했다.

“이, 이 자식, 너무 강하잖아?!”

“쫄지 마, 멍청이들아! 아직도 우리가 수가 더 많아!!”

녀석들은 당황했는지 자기들끼리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나는 녀석들이 나에게 시비를 건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왜 다짜고짜 나한테 이러는 거지?’

나는 그저 국밥을 먹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밖에 별다른 행위를 했나 싶었지만, 딱히 잘못한 부분은 없었다.

그저 일방적으로 걸어 온 시비에 받아쳤을 뿐이었다.

“어쨌든, 시비를 건 이상 그냥 넘어가리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한차례 정비하고 있던 나는,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고 녀석들을 향해 대걸레의 봉 끝을 치켜세웠다.

슬쩍 상황을 살펴보자, 이미 대부분은 내 봉에 맞고 쓰러지거나 기절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때,

“자경단이 왔다!!”

누군가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자경단……? 경찰인가?’

자경단은 이 마을의 치안 조직인 것으로 보였다.

그와 함께 정문 쪽에서는 저마다 나무로 만들어진 몽둥이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다만, 나는 그다지 꿀릴 게 없었다.

애초에 이건 정당방위.

딱히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법 쪽으로 따져 봐도 분명 상대 쪽의 과실이었다.

다만, 자경단의 생각은 다른 듯 보였다.

“저 범죄자를 잡아라!!”

‘범죄자?!’

단지 국밥을 먹으러 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이 마을의 범죄자가 돼 버린 것이다.

이러다가 지명 수배라도 받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그리하여 나는 자경단원들에게 해명을 하려 들었다.

“아니, 제가 범죄자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먼저…….”

그러나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뒤쪽에서 누군가가 내 손목을 세게 쥐었기 때문이었다.

“이쪽이에요! 도망치세요!”

“응……?”

내 손목을 쥔 것은 또래로 보이는 회색 머리의 소년이었다.

그리고 나는 손목을 잡힌 채, 얼떨결에 소년이 이끄는 방향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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