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07화 (107/175)

107화

* * *

소년은 내 손목을 부여잡고는 나를 주막의 뒷문 쪽으로 이끌었다.

“범죄자가 도망간다! 잡아라!!”

정문 쪽에서는 들이닥친 자경단원들이 나를 쫓으러 달려오는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뭐지……?’

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살짝 당황스러웠다.

그저 국밥을 먹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시비를 거는 주막 안의 사람들.

이후 나를 뒤쫓는 마을의 자경단원들.

그리고 현재 내 손목을 잡고 뛰쳐나가는 회색 머리의 소년까지.

도무지 사건의 전개와 발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소년은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지 매우 능숙하게 달려 나갔다.

그러더니 이내 어떤 창고 같은 곳에 나를 밀어 넣고는 문을 조심스레 닫고 숨었다.

나와 소년의 모습이 사라지자, 곧 창고 밖에서는 자경단원의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그 새끼, 어디로 간 거야?”

“카론 그 머저리 자식이 데리고 간 거 같은데?”

“카론 그 새끼가?! 오냐오냐해 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어서 튀어나와라, 카론!!”

바깥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듣자 하니 아무래도 내 손목을 잡고 이 어두컴컴한 창고 안으로 이끈 소년의 이름은 ‘카론’인 듯싶었다.

나는 이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소년에게 말을 건넸다.

“너는 누구…….”

“쉬잇! 목소리를 낮춰 주세요.”

“으응…….”

소년의 단호한 어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이곳으로 안내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이 회색 머리의 소년은 내 편인 게 분명했으니까.

이내 소년은 바깥이 조금 잠잠해지자 입을 열었다.

“외부인이시죠?”

“응.”

“그렇다면 이곳 세오린 마을에 대해서 잘 모르시겠네요.”

“맞아. 난 오늘 처음 여기 왔을 뿐인데 왜 마을 사람들이 갑자기 저러는지…….”

“‘약자의 권력’이라는 말 들어 보셨어요?”

“약자의… 권력?”

갑자기 소년의 입에서 나온 ‘약자의 권력’이라는 말.

생전 처음 들어 본 단어였다.

그러나 소년의 다음 말은 그 ‘약자의 권력’이라는 말에 대한 설명이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 대부분은 마법이 싫어서 이곳으로 온 뒤, 정착해서 사는 이방인들이에요.”

“향토인들이 아니라고?”

“네. 향토인들로만 구성되었다면 이렇게 폐쇄적인 곳에서 몇백 년간 마을이 유지될 리가 없죠.”

대부분이 이방인이라는 말은 다들 그 지옥의 계단을 뚫고 올라왔다는 건가?

그것이 소년의 말을 듣고 나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나는 그러한 사실이 조금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 사람들이 ‘마법’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로브를 입고 있는 나를 보자마자 시비를 걸었던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왜 마법을 싫어하는 거지?’

그에 대한 의문점을 카론이 이어서 설명했다.

“요즘은 마법을 사용하는 귀족들과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평민들 사이에 계급의 격차가 없어졌잖아요. 그럼에도 암암리에 차별은 있죠? 이곳 마을 사람들은 그러한 마법사들의 기득권이 싫어서 이곳으로 오게 된 거예요.”

“차별이… 없진 않지.”

나만 해도 칼루스 아카데미에서 제페토라든가, 실라이 교감에게 대놓고 차별을 받았었다.

아무리 기존에 귀족이라고 불리던 마법사들과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는 평민들 사이에 제도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아직 인식적으로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득권이 싫어 이곳으로 오게 된 사람들이 정작 이곳에서 또 다른 기득권을 만들었어요. 바로 귀족을 깔보고 혐오하는 것이죠.”

“그게 그 ‘약자의 권력’이라는 거야?”

“네, 맞아요. 명백히 평민들은 귀족에 비해 약자라고 볼 수 있잖아요? 그러나 이곳에선 달라요. 평등이 자리 잡은 세상에서는 오히려 그 ‘약자’라는 사실이 권력을 쥐고 있어요. 예를 들어 그런 거예요. 귀족이 평민을 공격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야… 난리 나겠지?”

안 그래도 귀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다.

귀족이 평민을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노발대발하며 들고 일어날 것이다.

“맞아요. 귀족이 평민을 공격하면 죽을죄가 되는 것이죠. 그에 반해 저들은 평민이 귀족을 공격하는 것은 당연시하고 있어요.”

“왜? 귀족이나 평민이나 폭행은 똑같은 죄인 거잖아.”

“그야 바깥세상에서는 귀족들이 기득권을 잔뜩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이곳에서는 반대로 멸시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리하여 외부인이 들어오면 저렇게 시비를 걸어 대는 거예요. 어차피 이곳에서는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기에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하니까요.”

“그건 평등이 아니잖아.”

“그렇죠.”

카론은 본인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그런 카론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 마을 사람들의 행동 원리와 마을을 내려가는 것을 꺼리던 중림사의 세이피어 가문 측의 반응이 이해가 갔다.

‘이런 사정이 있었네.’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의 감정의 골은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약자라고 반드시 선하리라는 법은 없어요. 저들은 이곳에 사회를 만들고 나서 기존 사회의 기득권과 똑같은 악습을 답습하고 있는 거죠. 게다가 사실상 제도적으로는 귀족과 평민 사이의 평등이 찾아온 지는 꽤 오래됐잖아요?”

“바깥의 경우는 그렇지.”

“저들은 사실상 본인이 당하지도 않았던 과거의 차별까지 죄 없는 귀족들에게 덧씌워 해소하고 있는 거예요.”

나는 카론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데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이곳은 세이피어 가문의 영지잖아. 그럼 저 사람들이 세이피어 가문도 싫어하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그건 또 아니라고?”

애초에 이곳은 이방인의 출입이 그리 잦지 않은 곳. 그렇다면 이곳에 저들이 혐오할 귀족이라고는 세이피어 가문밖에 없었다.

카론은 내 의문을 눈치채고는 이내 설명했다.

“물론 불만은 있겠죠. 그러나 아무리 저들이라도 이 땅의 주인인 세이피어 가문을 대놓고 무시하지는 못해요. 다만…….”

“다만?”

카론은 잠시 침을 삼켰다.

그의 표정은 아까보다도 사뭇 진지해 보였다.

“세이피어 가문은 가문을 이어받을 직계와 이어받지 못하는 방계로 나뉘거든요. 그리하여 저 사람들의 주된 목표는 가문에서도 밀려난 방계 사람들이에요. 방계 사람들이 마을에 보이기라도 하면 그 쪽에게 했던 것처럼, 아니 그 이상의 시비를 거는 거죠.”

“아무리 방계라 해도 세이피어 가문은 무술의 가문 아니었어? 고작 마을 사람들한테 당할 리가…….”

말을 이으려던 나는 아까의 대화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약자의 권력.’

애초에 저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세이피어 가문의 방계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댈 것이다.

그러다 방계 사람이 반격이라도 한다면 ‘귀족이 평민에게 폭력을 가한다!’라며 죽을죄라도 지은 것처럼 덮어씌우겠지.

어차피 이 폐쇄적인 공간에선, 인원수가 많은 저들의 목소리가 클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저들이 휘두르는 것은 정의가 되는 것이고, 그것에 방계 사람이 대항하는 것은 폭력이 돼 버리는 것이다.

‘웃긴단 말이지.’

권력을 잡고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행사하는 이곳 마을 사람들이나, 그것을 곧이곧대로 당해 주는 세이피어 가문 사람들이나.

물론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곳 사회의 문제였지만, 그럼에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어쨌든 나도 이곳에 휘말린 피해자였으니까.

그리하여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창고의 문을 밀었다.

“어디 가세요?!”

갑작스러운 내 돌발 행동에 카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저들이랑 싸우기라도 하려고요? 아무리 당신이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귀족은 귀족이에요! 저들은 분명 당신에게 죽을죄를 뒤집어씌울 거라고요!!”

나는 그런 카론의 얼굴을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사정을 알았으면 됐어. 난 전혀 꿀릴 게 없으니까. 그야…….”

창고의 문을 밀자,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윽고 내가 밖으로 나오자, 그것을 눈치챈 자경단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나, 평민이거든.”

내 말에 카론은 어안이 벙벙해져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여깄다!!”

“뭐? 거깄다고?!”

“귀족 녀석을 찾았어?!”

이윽고 자경단원들이 창고 입구를 빼곡히 포위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손에는 저마다 몽둥이와 농기구들이 들려 있었다.

나는 그런 그들을 보며 히죽 미소를 짓고는 두 손을 들고는 항복의 시늉을 취했다.

“항복! 항복입니다! 그러니 그 날붙이들은 부디 내려놔 주시겠어요?”

“무슨 소리냐, 이 찢어 죽일 놈!”

“감히 세오린 마을 사람을 건드려? 아무리 귀족이라 할지라도 이곳에선 무사하지 못할 거다! 법으로 다스릴 거라고!!”

법으로 다스린다라.

그러나 나는 녀석들의 호통에도 전혀 주눅 든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여유롭게 품 안에 손을 넣고는, 그곳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저 녀석, 무기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빨리 제압해라!”

“저 녀석을 막아!!”

아무래도 자경단원들은 내가 무기라도 소지한 줄 아는 모양이었다.

아쉽게도 내가 품 안에서 꺼낸 것은 무기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저들에게는 무기일 수도 있겠다.

촤악―

내가 품속에서 꺼내어 그들 앞에 내민 것은 다름 아닌…….

“학생증. 이건 제 학생증입니다. 무기가 아닙니다.”

“자, 잠깐……!”

나를 향해 날붙이들을 들이대고 있던 마을 사람들은, 내가 자신 있게 내민 학생증을 보고는 순간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야 내 학생증에는 ‘제로’라는 ‘이름’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성’이 없다는 것은 다름 아닌 ‘평민’이라는 가장 큰 증거였으니까.

“저는 귀족이 아니라, 평민이랍니다.”

“펴, 평민이었어?”

“저 자식… 평민이라는데……?”

“어떻게 된 거야……?”

웅성웅성하는 소리.

아무래도 이방인들의 집단이라고는 하지만, 최근 평민 마법사들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보고 싶은 거만 봐서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지.’

나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신들, 귀족이 싫은 거죠?”

“그, 그건…….”

“저도 바깥 세계에서는 귀족들에게 무시당했던, 여러분들과 똑같은 평민이랍니다.”

물론 세상이 좋아진 건 맞았기에, 무시라고 해 봤자 제페토 패거리와 실라이 샌드윅스가 전부였다.

그럼에도 어쨌든, 차별당했던 것은 맞았으니까 자격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을 사람들은 내 말에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싶었다.

그야 지금 나를 공격하는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를 명백히 위배하는 행동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그들.

그러다 한 사내가 이내 내 말에 반박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아무리 평민이라 해도 어쨌든 마법사잖아? 게다가 그렇게 귀족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면 귀족이나 다를 바 없지!”

다만, 사내의 말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리는 듯했다.

그리하여 나는 마을 사람들이 노선을 확실하게 정하게끔, 사내의 말에 반박을 시작했다.

“그래서요?”

“뭐라고?!”

“평민은 귀족 같은 옷을 입을 자격도 없다는 건가요? 마법을 사용할 자격조차 없냐는 말이에요.”

“…….”

내 말에 사내와 마을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아하! 당신들…….”

쐐기를 박아 넣는 한마디.

“…‘평민 혐오자’였군요?”

“…….”

내 말에 반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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