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영웅으로… 변신하는 고유 마법이라고요?”
나는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200년 전 영웅이기에 가능한 고유 마법일 수도 있겠지만, 조금 터무니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자신이 생각하는 영웅으로 변신하는 것이지. 그 아티팩트의 능력은 당사자의 고유 마법을 따라 사용하는 효과인가?”
“예…….”
“고작 마력을 주입했을 뿐인데 그런 효과를 가질 수 있다니. 놀랍군.”
오히려 히로빈 그린월드 쪽이 조금 신기하다는 어투였다.
다만 내 머릿속은 잠시 딴생각으로 가득했다.
‘내가 생각하는 영웅이라.’
살짝 감이 잡히질 않았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영웅은 ‘이순신 장군님’ 혹은 ‘세종대왕님’ 같은 분이었으니까.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그 아티팩트는 아마 한 번 사용하면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할 것이야.”
“왜…죠?”
“그야 그 사탕은 내 신체의 일부가 변한 거거든. 내 몸 밖으로 나갔으니 한번 사용하면 더 이상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없겠지.”
그의 말을 들은 나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첫째는 당연히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니.’였다.
그야 지금껏 얻은 영웅의 아티팩트 중에 일회용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설마 이 사탕이 정말 200년 동안 빨던 사탕인 건가.’였다.
항상 강단에 서서 사탕을 빨고 있던 히로빈 교장의 모습.
아무리 봐도 이 사탕의 정체는 지금껏 그가 빨아 오던 사탕인 것으로 생각되었다.
‘역시, 사용 방법은 사탕을 입에 넣는 거겠지……?’
그러한 생각에 조금 찝찝해졌다.
그런 내 표정을 읽었는지 히로빈 그린월드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 말게. 내 신체는 계속해서 원래의 상태로 복구되거든. 그러니 항상 빨던 사탕이지만 언제나 새것 같은 거지.”
“…….”
히로빈 교장이 늙지 않고 초등학생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그런 이유였나.
그것보다 계속해서 재생하니 새것과 다름없다는 말은 내게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 부분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사탕이 더럽고 말고는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중요한 것은 이제 하나를 제외한 모든 ‘영웅의 아티팩트’를 수집했다는 것이었다.
‘남은 영웅의 아티팩트는 또 어디서 찾아야 하나. 응? 그러고 보니 히로빈 교장이 엘가시아 가문에 대해서 뭔가를 아는 것 같았는데.’
분명 ‘아카마’에서도 제이드가 엘가시아 가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것은 히로빈 교장이었다. 애초에 시골에 있던 제이드를 이곳 칼루스 아카데미로 데려온 것도 히로빈 교장이었고.
아마 히로빈 교장이 더 이상 숨기지 않을 거라 생각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기로 했다.
“제이드가 엘가시아 가문, 아니 엘가시아의 자식인 거 알고 계셨죠.”
“그래.”
“왜 저번에는 숨기신 건가요.”
“그 녀석이 평범하게 자랐으면 했으니까.”
히로빈 그린월드는 또다시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했다.
잊고 있던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아주 오래전. 한 노인이 내게 찾아왔었지. 딱 봐도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이던 백발의 노인이. 그 노인은 내게 본인이 엘가시아 님의 자식을 데리고 있으니 본인의 사후 그들을 부탁한다고 말했었어.”
‘오래전에 찾아온 노인이라면…….’
나는 어쩐지 히로빈 그린월드가 말한 노인의 정체를 알 것만 같았다.
“그때의 난 깜짝 놀랐었지. 애초에 엘가시아 님은 우리에게 자식이 있다는 말도,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었으니까. 알고 보니 그 노인은 우리와 함께 마계 대전 때 싸웠던 병사였더군. 이름이…….”
“한스. 한스입니다.”
“그래, 자네가 알고 있구만. 그렇다면 엘가시아 님의 자식이 사실은 씨앗이었단 것도 알고 있겠군.”
“예. 게슈탈트 님의 꿈속에서 봤었습니다.”
내 말에 히로빈은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말을 계속해서 이었다.
“그래서 그 두 씨앗은 어느 작은 마을에서 계속 보관되어 있었고, 7년을 간격으로 두 아이가 태어났어. 그게 바로 ‘닉스’와 ‘제이드’다.”
“네?”
나는 갑작스레 등장한 인물의 이름에 당황스러웠다.
‘닉스……? 설마 제이드에게 형이 있었던 거야?!’
물론 게슈탈트의 꿈에서도 씨앗이 여러 개인 것은 확인했었다.
다만, 여러 개가 뭉쳐서 제이드가 태어났겠거니 생각하고 넘겼던 부분이었다.
“닉스에 대해서 모르나 보군.”
“예. 처음 듣는 이름입니다만…….”
“그 녀석이 바로 ‘저주받은 학생’들을 이끈 녀석이다.”
“예에?!”
‘뭐라…고?’
지금까지 들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닉스’는 처음 듣는 이름이 아니었다.
예전에 ‘저주받은 학생들’에 관한 내용을 들으면서 얼핏 스쳐 지나가던 이름이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 그가 제이드의 형이고 ‘저주받은 학생들’이며 블랙잭이라니.
“아니, 잠시만요. 그렇다는 얘기는 설마… 블랙잭 녀석들은 큐브만 모아도 마계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다는 겁니까?”
다른 것보다 그게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애초에 마계의 봉인을 해제하는 조건은 큐브와 엘가시아의 핏줄이었고, 제이드의 형도 마찬가지로 같은 엘가시아의 핏줄이었으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내가 큐브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협회에 보관을 부탁했던 거였고.”
“그런…….”
“그래도 닉스는 본인 스스로를 희생하지 않을 게야. 원래도 본인을 끔찍이 아끼던 아이였거든. 아마 지금처럼 제이드를 노려 오겠지.”
“그렇군요.”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녀석들의 목적이 큐브에서 그친다면, 내 입장이 조금 곤란해지던 참이었다.
어쨌든 ‘예언의 아이’를 떠나서 나는 고작 아카데미 학생의 신분일 뿐인데 협회까지 찾아가서 큐브를 지킬 수는 없던 것이다.
“아무튼 그렇다면 블랙잭, ‘저주받은 학생들’은 닉스를 포함해서 여덟 명이라는 거겠군요.”
“그렇지.”
“설마 녀석이 ‘블랙잭’이라는 단체의 수장인 건가요.”
“그건 확실하지 않네. 다만, 마경이 조사한 바로는 닉스와 지크 버밀리온이 7년 전 있었던 일의 핵심 인물이었던 것은 맞아.”
닉스, 그리고 지크 버밀리온.
왠지 모르게 ‘엘가시아’ 가문의 핏줄인 닉스에게 뭔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 ‘엘가시아’는 마족의 혼혈.
녀석이 노리는 뭔가가 있다면 아마도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겠지.
“노인은 이렇게 말했었네. 엘가시아는 본인의 자식들이 평범하게 자라길 원한다고. 그래서 딱히 불편함 없이 자라도록 그저 아카데미의 학생으로서 후원해 주려 했건만.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어.”
뭔가 죄책감을 느끼는 듯한 표정의 히로빈 그린월드.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잘못이 아닌걸요. 애초에 이상한 건 그 ‘블랙잭’ 녀석들인 거지.”
또다시 많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그 ‘닉스’라는 녀석을 눈앞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은… 결국 발발하겠죠.”
“그래. 결국 전쟁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겠지.”
히로빈 그린월드가 슬쩍 나를 눈으로 흘겼다.
그것은 아무래도 ‘예언의 아이’라면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인 것으로 보였다.
다만 나는 그 기대를 만족해 줄 수 없었다.
애초에 나는 그저 이름뿐인 ‘예언의 아이’일 뿐, 내게는 각각이 ‘권좌급’의 파괴력을 가진 마법 안드로이드들을 막아 낼 힘이 없었다.
아텔라 버밀리온의 예언은 ‘예언의 아이’가 마계의 부활을 막아 낼 것이라 했을 뿐이었다.
애초에 내 역할은 거기까지인 것이다.
‘그래도… 가능성은 있으려나.’
현재 전쟁이 벌어지려는 이 세계에서 아군이 될 만한 숨겨진 두 명의 가장 큰 전력.
나는 그 두 전력을 알고 있었으니까.
“방법은 있을 겁니다.”
“그래?”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히로빈 그린월드의 표정.
다만, 이 전쟁을 막아 내는 것은 ‘예언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자네를 응원하네.”
히로빈 그린월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이내 책상 위의 서류를 다시금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과중한 업무가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럼, 일단은 노아를 찾아가는 게 먼저다.’
나는 곧바로 아카데미의 서쪽 숲으로 향했다.
* * *
“또 무슨 일이냐.”
결계를 뚫고 들어가자 알 수 없는 고기의 꼬치를 굽고 있는 노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식사 시간이라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무래도 차려진 양을 보아하니 저녁 식사가 맞는 것 같았다.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부탁? 나한테?”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노아.
그러나 나는 그에게 희망을 걸고 있었다.
딱히 지금껏 그를 높게 평가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는 ‘케이든’이 인정한 사람이었으니까.
“당신, 인류 최강이 맞는 거겠죠.”
“누가 그래?”
“케이든 교수님이요.”
“…케이든이?”
노아의 말투로 보아하니 역시 케이든과 노아는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둘이 아는 사이인가요.”
“조금? 기억나긴 하네. 아카데미 시절 만년 2등이었던 녀석이었지 아마.”
“만년 2등이라고요……? 케이든 교수님이?”
노아의 말에 문득 케이든과 처음 만났던 장면이 떠올랐다.
아우레인 기숙사의 뒷면을 학창 시절 영구 자석으로 만들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던 케이든. 그 케이든이 만년 2등이었다니.
“…그렇다는 것은 역시나 당신이 1등이었겠군요.”
“뭐, 그렇지. 그래 봤자 다 옛날이야기다.”
“그럼 지금은 ‘인류 최강’이 아니라는 얘긴가요.”
또다시 나온 ‘인류 최강’이라는 말에 노아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굽고 있던 고기를 꺼내 한입 베어 물며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글쎄. 인류 최강까지는 모르겠네. 어쨌든 그 누구에게도 질 자신이 없는 것은 맞지.”
“그 상대가 권좌라면요?”
“마찬가지다.”
말하는 도중 어느새 큼직한 고기 꼬치 하나를 해치운 노아는 또 다른 꼬치를 집어 들어 먹기 시작했다.
그런 아무렇지 않은 태도에 비해 노아의 말엔 무게가 있었다.
‘권좌한테도 질 자신이 없다니……. 이 사람,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사실 나는 실질적으로 노아의 실력을 본 적 없었기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그저 내가 노아의 실력을 가늠할만한 것은 처음 만났을 때 내 점멸에 반응했다는 것 정도.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점멸에 반응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래도 어쨌든 노아의 실력이 전부 검증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노아에게 희망을 걸기로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뭔데 여기까지 찾아온 거냐.”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 도움?”
노아는 별 관심 없다는 듯 흘려들었다.
그러고는 손에 든 빈 꼬치를 위협적으로 휘휘 저었다.
“도움을 받을 생각이면 가라. 나는 이제 평생 이곳에서 안빈낙도를 즐기며 뼈를 묻을 거니까.”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리 전쟁이라도 상관없… 응? 뭐라 했냐?”
“전쟁이라 했습니다. 지금 밖은 이미 전시 상황입니다.”
“전쟁이… 일어났다고?”
시큰둥한 반응이던 노아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예,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 불합리한, 비대칭의 전쟁을 어쩌면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
그것은 바로 ‘인류 최강’ 노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