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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의 무속성 마법사-159화 (159/175)

159화

“어쩌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군. 고작 동족에 대한 그리움으로 세계를, 인간을 멸망시키려 하는 것이니.”

엘가시아의 말마따나, 나는 어이가 없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전쟁을 일으킨 거였다니.

정말 그런 이유로 세계를 멸망시키려 하는 거라니.

엘가시아는 살며시 눈을 감고 커피를 한 모금 머금더니 말을 이었다.

“너는 이해 못하겠지만, 나는 그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간다.”

“예……?”

잘못 들었나 싶어 반문했다.

그러나 엘가시아는 표정 변화 없이 커피를 홀짝일 뿐이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 이유이지 않습니까.”

“우린 인간과 어울렸지만 인간이 아니다. 게다가 닉스는 마족의 피가 더 진한 녀석이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그 말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그가 마족에 가깝다 해도, 애초에 닉스는 인간들 사이에서 자라고 인간 친구를 사귀었던 것 아닙니까? 지금 그가 하는 행위는 이해할 수도, 이해받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말을 마치고 난 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생각해 보니 내가 방금 한 ‘인간 친구를 사귀었다’는 말은 사실 그다지 의미 없는 말이었다.

애초에 블랙잭 자체가 닉스의 아카데미 시절 친구들로 이루어진 조직이었으니까.

“비유하자면 이런 거다. 인간은 토끼, 마족은 호랑이. 그리고 나와 내 자식들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또는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있는 이상한 존재. 대자연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별로 이상할 일이 아니지. 호랑이가 토끼를 먹으려 하는 것도. 그리고 토끼 무리에서 자란 호랑이가 다시 호랑이 무리로 돌아가려는 것도.”

“그래서 당신도 마찬가지라는 건가요.”

나는 더 이상 납득할 수 없어서 엘가시아를 쏘아붙였다.

그러자 엘가시아는 미소를 지었다.

“아니. 나는 감정을 배제한, 그저 현 상황에 대한 논리적인 분석을 하는 거다. 딱히 녀석을 옹호하는 것도, 네 녀석을 설득하려는 것도 아니다. 실상이 그렇다는 거니 딱히 내게 분노할 이유는 없다.”

그랬다.

사실 생각해 보면 엘가시아는 처음부터 인간의 편이었다.

애초에 그녀가 돕지 않았더라면 200년 전 마계 대전은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고, 그녀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마계와 인간계를 분리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괜찮다. 네 녀석의 반응도 당연한 것이지. 애초에 너는 ‘인간’이지 않은가. 인간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고, 인간으로서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알겠습니다. 닉스의 행동 원리는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블랙잭 인원들은 어떠한 이유로 마계를 부활시키려는 겁니까?”

“그것 또한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 애초에 아무 이유 없이 이 세계의 멸망을 원하는 자도 있을 테니까.”

아무 이유가 없다라.

물론 아무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정말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불우한 환경, 사회에 대한 환멸.

세상이 멸망하는 것을 원하는 데는 저마다의 이유가 수면 아래 숨어 있을 것이다.

“그래요. 어차피 이유는 딱히 중요하지 않은 거겠죠. 이유가 뭐가 됐든 간에 블랙잭에 가담하고 마계를 부활시키려는 자들의 목적이 순수할 리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겠지. 마계가 부활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고 있겠지.”

“예. 책에서 얼핏 봤습니다. 마족은 인간을 가축처럼 다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 게다가 마족은 인간을 먹는다. 그게 너희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겠지.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위치한 포식자에서 자연계에 존재하는 수많은 동물들처럼 한낱 피식자가 되는 것일 테니까.”

먹힌다라.

우리가 돼지를, 소를, 닭을 먹는 것처럼. 그들 또한 인간을 먹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인간을 잔인하게 대하고 유희 거리로 삼는다 해도 딱히 지금의 ‘인간’과 다를 바는 없었다.

어떤 마족은 인간에게 목줄을 채울 것이고, 또 어떤 마족은 엘가시아처럼 인간에게 우호적인 존재도 있겠지.

결국 따지고 보면 그들이 군림하는 것은, 지금의 인간 위에 ‘새로운 인간’이라는 존재가 덧씌워질 뿐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런. 엘가시아 님의 말을 듣다 보니 점점 마족이라는 존재를 이해해 버릴 것만 같네요.”

“그건 관둬라. 애초에 나는 반인반마이기에 이런 말을 할 수도 있는 거지만. 네 입장에선 마족에게 분노해야 정상인 것이다. 포식자의 처지를 이해하려 하는 피식자라니. 우스꽝스러울 뿐이지.”

여기서 깊게 파고들면 너무 철학적인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아직 동물의 입장을 역지사지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보다 엘가시아에게 아직 궁금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엘가시아 님. 아직 제 처음 질문에 대한 답을 듣지 못한 것 같은데요. 저에게 처음부터 진실을 알려 주지 않은 이유가 대체 뭡니까?”

그것이 가장 궁금했다.

애초에 왜 엘가시아는 지금껏 조용히 있었던 것인가.

내 질문에 엘가시아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사실 나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으려 했다. 애초에 닉스는 나의 존재와 본인의 출신. 그리고 마계에 관한 얘기를 듣고 변심했었으니까.”

“저를 못 믿으셨던 건가요.”

“자식에게 배신당했다. 그럼 누구도 믿지 못하는 것에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 물론 신뢰의 영역을 벗어나 더 이상 이 세계의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더 이상 이 세계의 일에 관여하지 않겠다라.

그러나 그 부분은 딱히 엘가시에에게 따질 수 없는 영역의 일이었다.

애초에 이 세계를 위해 한 번 희생한 사람에게 또다시 세계의 일에 관여하라니.

‘물에 빠진 사람 구해 주니 보따리 내놓으란다.’라는 격언의 상황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리 알려 줬더라도 달라질 만한 것이 있었을까.’

닉스라는 사람의 존재와 그가 행하는 일을 미리 알고 있었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전쟁은 갑작스레 일어난 것이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성공적으로 모든 아티팩트를 모아 이렇게 엘가시아와 대면할 수 있었으니까.

해봤자 언노운의 정체를 일찍 알아차리고 좀 더 빠르게 ‘엘가시아의 검’을 수집할 수 있었겠지.

“미리 말해 주셨더라면 일종의 스포일러가 되는 건가요.”

“스포일러라. 그럴 수도 있겠군. 애초에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언노운은 사실 많이 피로해 보였다.

수백 년을 살아온 그녀의 입장에서는 지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이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 대화가 끝나면 나는 소멸한다. 다만, ‘엘가시아의 검’은 이전처럼 효과를 발휘할 것이야.”

“결국 가시는 건가요.”

어쩔 수 없었다.

애초에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더 이상 엘가시아가 아니었다.

남은 것은 엘가시아의 사념뿐.

이미 그녀의 육신은 200년 전 소멸한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아직도 부질없으신가요.”

200년 전의 그녀가 소멸 전에 했던 말, ‘부질없다.’

그러나 200년 뒤 지금. 그녀의 답변은 달랐다.

“아니. 나름 괜찮은 인생이었어.”

환하게 미소 짓는 엘가시아.

이제껏 무뚝뚝해 보이던 그녀의 얼굴이 지금은 마치 소녀와도 같았다.

“당신의 삶에 한스라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네요.”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마지막 순간에 그 녀석이 없다는 것이겠군.”

“혹시 모르죠. 어쩌면 신이 있고, 죽음 뒤의 세계가 있다면 그와도 다시 만날 수 있을걸요.”

“그래. 그럴지도.”

엘가시아는 또다시 환한 웃음을 지었다.

비로소 영원한 휴식을 얻게 되었다는 느낌.

그녀의 순수한 미소를 보니 잠시나마 그녀를 탓하려던 마음들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엘가시아 님.”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그러자 엘가시아는 앉은 채로 기지개를 쭈욱 켰다.

“세계의 안위는 너에게 맡기마. 나는 이제부터 좀 쉬겠다.”

엘가시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서서히 그녀의 몸이 사라져 갔다.

동시에 내 몸도 사라지고 있었다.

아마 이 영역 자체가 소멸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애초부터 말이다…….”

사라지기 전, 마지막으로 엘가시아는 내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너라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 말을 끝으로 엘가시아의 모습과 함께 공간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우우웅―!

눈을 감았다 뜨자 보이는 것은 원래 있었던 기숙사의 복도였다.

그리고 더 이상 엘가시아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나라면 괜찮을 거라니.”

그것이 처음부터 내게 진실을 말하지 않은 엘가시아의 본심이었을까.

엘가시아의 마지막 말은 내 가슴 속 깊이 단단히 새겨졌다.

* * *

며칠 뒤.

연합 본부 회의실.

그곳에는 이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질계 권좌이자 협회장, 아이작 버밀리온.

정신계 권좌, 히터 데이즈나.

소환계 권좌이자 협회 부회장, 이자벨.

강화계 권좌이자 마경 차장, 실베르 라인하르트.

원소계 권좌이자 마경 청장, 올리비아 페리윙클.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아아암.”

그곳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인류 최강, 노아까지.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 만으로도 이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을 정도의 거대 전력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이다.

“…적당히 해.”

이자벨이 회의 중에 하품을 하는 노아의 옆구리를 콕 찔렀다.

일주일 전과는 다르게 다소 거리감이 없어진 모습이었다.

반면에 히터 데이즈나는 여전했다.

“흐흐흐.”

그저 이자벨의 얼굴을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크흠.”

그런 그들 사이에서 헛기침을 한번 하는 아이작 버밀리온.

그것은 곧 회의를 시작한다는 알림과도 같았다.

“그래서, 정신계의 권좌. 마법 안드로이드에 자네의 마법이 적용되는 건가.”

“뭐, 어느 정도는 가능한 거 같기도. 다만 소모되는 마나가 극심해서 여러 대는 무리.”

상대가 협회장이었으나, 히터 데이즈나는 반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러한 태도에 토를 달지 않았다.

애초에 여기 있는 모두가 히터 데이즈나를 조금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었으나, 어쨌든 이 전쟁에서 중요한 전력이기에 알게 모르게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 히터에게 올리비아 페리윙클이 온화한 미소와 함께 다시 질문했다.

“그래서 그 한계가 어떻게 되는 거죠?”

“음……. 하루에 열 대 정도?”

“열 대라. 확실히 마법 안드로이드 녀석들에게는 정신계 마법이 매우 효과적이군요.”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감탄했다.

사실 그도 나름 마경의 차장과 권좌의 입장이었으나 이곳에서는 막내였기에 모두에게 깍듯이 대했다.

게다가 실베르가 대놓고 감탄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현재 계속되는 전투에서 마법 안드로이드 한 대당 투입되는 전력은 권좌 두 명.

물론 권좌급 전력이면 혼자서도 마법 안드로이드를 처치할 수 있었지만,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서는 꼭 2인 1조가 요구되었다.

그런데 단번에 열 대를 무장 해제 시킬 수 있다니.

“하루에 열 대인 것이지. 그렇다면 앞으로 다수 마법 안드로이드가 투입되는 현장에는 자네를 파견하면 되겠군.”

“예, 뭐 그러죠.”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히터였다.

그 뒤로도 회의는 계속되었다.

대부분이 작전과 병력 운용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회의는 머지않아 급작스레 종료되었다.

갑자기 회의실 안으로 들어온 연합의 작전과장.

그가 다급하게 소리쳤기 때문이었다.

“50대! 현재 마법 안드로이드 50대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50대라니…….”

그 터무니없는 숫자에 아이작 버밀리온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반문했다.

지금까지와는 수준이 다른, 총력전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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