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헤에, 꽤 많네.”
하늘에 떠 있는 30대의 마법 안드로이드.
노아는 그 장대한 광경에도 그저 양손에 든 검을 빙빙 돌릴 뿐이었다.
마법 안드로이드의 총구가 일제히 그에게 조준되어 있음에도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그래도 30대를 혼자서 맡는 건 조금 무리였으려나.”
처음 연합팀에서 그에게 저지를 요구했던 마법 안드로이드 수는 열 대.
열 대만 해도 권좌급 열 명에 해당하는 파괴력을 지녔기에 매우 힘든 임무였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이 고작 열 대만 상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현재 연합팀 상공을 점령한 마법 안드로이드는 총 50대.
거기서 히터 데이즈나의 정신계 마법으로 열 대를 순식간에 줄였으니 남은 마법 안드로이드는 40대.
“그 히터 데이즈나 녀석이 열 대를 제거했는데 내가 고작 그 수준밖에 못할 수는 없는 거잖아.”
그리하여 히터는 혼자서 30대를 맡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연합팀 쪽의 반대가 심했다.
특히 결사코 안된다고 한 것은 이자벨이었다.
“미쳤어? 그건 죽으러 가겠다는 거잖아!”
그런 이자벨에게 노아는 씨익 웃을 뿐이었다.
“제 고유 마법이라면 발목을 잡아 둘 수 있으니까 그전까지 나머지 열 대를 부탁드립니다.”
결국 노아는 ‘시간을 벌겠다’라는 핑계로 30대를 맡게 되었다.
다른 연합팀 권좌들이 나머지 열 대를 격파하는 동안 혼자서 30대를 상대로 시간을 버는 것.
“그래도 고작 시간 벌기면 만족 못하지.”
그러나 애초에 노아는 시시하게 시간을 벌 생각이 없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눈앞의 30대를 모조리 상대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윽고 노아는 힘차게 주문을 소리쳤다.
「칸티쿰 ― 글라디(cántĭcum gládii)!!」
동시에,
우웅―
우웅―
우우웅―
상공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오고 있었다.
감정이 없는 마법 안드로이드조차도 그 모습에 살짝 위축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곧 하늘을 가득 채운 무수히 많은 부유체.
그것은 다름 아닌 ‘검’이었다.
검신의 길이가 2m는 넘어 보이는 장검.
채 15cm도 안 되어 보이는 단검.
그리고 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우스꽝스러운 형태의 물체까지.
노아는 이 세상에 ‘검’이라고 여겨질 만한 모든 것들을 소환한 것이다.
검들을 경계하며 우왕좌왕하는 마법 안드로이드들의 모습에 노아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럼…….”
빙빙 돌리던 양손의 검을 바로잡는 노아.
“…시작해 볼까.”
그와 동시에 상공을 지배한 수백 개, 아니 수천 개의 검들이 마법 안드로이드들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 * *
“오랜만이군.”
“그래.”
대치하고 있는 둘.
매우 작은 둘의 키로 인해 어떻게 보면 ‘꼬맹이’들 간의 싸움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작 ‘꼬맹이’라고 평가받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무려 200년 전, 마족과 맞서 싸운 마계 대전의 영웅이었으니까.
“아직 의식은 살아 있는 것으로 보이네만.”
“대답하는 게 고작이야. 지금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매우 강력한 정신계 마법. 명령은 거스를 수 없는 것으로 보이거든.”
“그런가. 그런데 어째서 젊었을 때 모습이지.”
“그거야 나도 모르지. 그건 그쪽도 마찬가진데. 어째 백 년 전이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아니 200년 전 모습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전혀 성장하지 않은 건가.”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니.”
히로빈 그린월드는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를 향해 환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덕분에 많이 성장했다네.”
“그러게. 왠지 속에 든 건 다 늙어빠진 영감님 같긴 하네.”
살짝 비아냥거리는 듯한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의 말투.
200년 전과 다름없는 그의 모습에 히로빈 그린월드는 잠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서. 결국 자네와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는 건가.”
“아아. 부디 빨리 끝내 줘. 다시 쉬고 싶으니까.”
그러나 말과는 달리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는 곧바로 주문을 외웠다.
아마 머릿속에 각인된 ‘상대를 죽여라.’라는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윌 오 위스프(Will―O―Wisp)!」
그러나 주문을 외워도 별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히로빈 그린월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일이지?”
“아무래도 ‘그 녀석’, 내 소환에 응답하지 않을 모양이네.”
“하긴, 자네는 자네의 사역마를 매우 홀대했었으니 그럴 만도 하겠네. 게다가 200년이나 지나지 않았는가.”
“뭐, 그래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마계 대전 이후로 나는 더욱 성장했었거든.”
조심하라는 경고와는 달리, 또다시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는 주문을 외웠다.
「렉스 스피리툼(rex spirituum)」
쿠우우웅!
하늘에서 소환된 거대한 무언가가 지면으로 낙하했다.
그것의 외형은 상반신은 사람이었고, 하반신은 뭉게구름이 자욱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히로빈 그린월드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것은…….”
“아아, 이건 ‘정령왕’이야. 아무리 너라도 상당히 버거울걸.”
“정령왕이라니. 결국 성공했구먼. 항상 정령왕을 소환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었나.”
“그랬었지.”
피너클러스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거기에는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자신의 본래 사역마는 ‘영웅의 격’에 걸맞지 않다고 생각해, 죽기 전까지 필사적으로 ‘정령왕’을 소환하기 위해 노력했었던 피너클러스.
그러나 지금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게다가 너 그렇게 늙어 빠져 가지고 제대로 싸울 수나 있겠어?”
“자네야말로 깨어나자마자 다시 잠들어야 될 테니 미리 사과하겠네.”
“자신감은 여전하시네.”
말이 끝나자마자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와 동시에 정령왕이 히로빈 그린월드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메우스 헤로스(meus hēros)」
주문을 외우는 히로빈 그린월드.
동시에 히로빈 그린월드의 몸이 서서히 거대해졌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정령왕과 그의 거체를 막아서는 장신의 히로빈 그린월드.
방금의 꼬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건장한 성인 남성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게다가 온몸에는 눈에 보일 정도로 근육이 선명했다.
그 모습은 마치 옛 그리스의 영웅 같은 모습이었다.
“최대한 빨리 끝내 주겠네.”
히로빈 그린월드는 그것이 옛 친구에 대한 최대의 예우라 생각했다.
* * *
“끄아아아악!!”
손목이 잘린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그녀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잘린 손에 쥐여 있는 수정 구슬을 집어 들었다.
“이건, 뭐지?”
“마, 말할 것 같으냐! 그것보다 너 이 자식! 교감인 나에게 감히 이게 무슨 짓이냐?!”
그러나 나는 그녀의 말을 더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촤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이번에는 그녀의 발목을 베어 냈다.
그와 동시에 실라이 샌드윅스의 입에선 게거품이 흘러나왔다.
나는 그런 그녀의 머리채를 집어 들고는 눈을 마주했다.
“닥치고 묻는 것에 대답해. 이건 도대체 뭐지?”
“아, 아무것도…….”
짜아아악!
그녀의 변명에 나는 곧바로 뺨따귀를 갈겼다.
이미 실라이 샌드윅스는 ‘이 세계는 마법부가 지배한다.’라는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 뒤였다. 모른다고 변명한다 한들 통할 리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이 상황을 설렁설렁 넘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묻는 말에 대답해. 당신, 전혀 정신계 마법에 지배된 게 아니잖아. 맨정신인 거잖아. 그렇지? 대답하지 않겠다면.”
스으으윽.
나는 언노운을 들어서 검 끝을 그녀의 목에 들이밀었다.
“곱게 죽진 못할 거야.”
죽는다.
혹은 죽인다.
지금까지의 나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자칫 잘못하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도, 혹은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그런 상황.
이건 더 이상 소꿉놀이가 아니었다.
이건 전쟁이었다.
모두를 지켜 내기 위해서 나는 이미 사람을 죽일 각오를 끝마친 상태였다.
“그, 그건…….”
쉽사리 대답하지 않는 실라이 샌드윅스.
그리하여 나는 언노운의 검 끝을 턱밑까지 밀어 넣었다.
이미 방출 마법이 적용되어 있는 언노운이었기에, 날카로운 마나의 끝이 실라이 샌드윅스의 목에 작은 생채기를 냈다.
“그, 그만! 말할게! 말할 테니까 제발 그만해…….”
실라이 샌드윅스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었다.
그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추한 모습이라 볼 수 있었다.
“이, 이건 포탈을 발동시키는 마도구야.”
“포탈? 설마.”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뻔했다.
실라이 샌드윅스는 이 아카데미의 숲에 마법부와 연결되는 포탈을 설치해 놓은 것이다.
그리고 포탈이 연결되었다면, 그 뒤에 벌어질 일은 예상이 갔다.
“마법 안드로이드를 준비해 놓은 건가.”
어쩐지 수상했다.
모든 병력을 연합 측에 투입했다기엔 마법 안드로이드의 개수가 알려져 있는 것보다 살짝 부족했다.
녀석들은 애초에 ‘큐브’를 보유하고 있는 연합과 ‘제이드’를 보유하고 있는 칼루스 아카데미를 동시에 공격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렇겐 안 되지.”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운 뒤, 바닥을 기고 있는 실라이 샌드윅스의 손목을 지르밟았다.
“끄아아아악!”
그러자 또다시 비명을 질러 대는 실라이 샌드윅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에도 도저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미, 미안해! 자, 잘못했다고!!”
“아니, 내가 원하는 건 사과와 변명이 아니야. 어째서 이런 짓을 벌인 거냐고. 당신의 아카데미잖아. 당신의 제자들인 거잖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신계 마법에 걸려 조종당한 것도 아닌, 맨정신으로 이 칼루스 아카데미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려는 것이.
“마법부가 세계를 지배한다라.”
분명 실라이 샌드윅스는 그렇게 말했었다.
애초에 실라이 샌드윅스는 마법부의 상층부가 ‘블랙잭’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맹목적으로 마법부를 추종하는, 광신도에 가까울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실라이 샌드윅스가 웃기 시작했다.
“푸흡. 푸흐흐흡.”
“왜 웃지? 정말 죽고 싶은 거냐?”
딱히 지난 과거의 일, 과거의 관계에 유감은 없었다.
지금 내가 실라이 샌드윅스를 순수한 분노로 대할 수 있는 이유는, 칼루스 아카데미에 위기를 가져오려 했던 행위에 있었다.
그런데 실라이 샌드윅스는 내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깔깔대며 웃었다.
“나한테 이렇게 해도 괜찮겠어?”
“…상관없다 했을 텐데. 내가 당신에게 상해를 입히는 건, 당신의 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내 눈을 똑바로 보며 조소를 짓는 실라이 샌드윅스.
“포탈은 한군데가 아니거든, 꼬마야.”
“뭐?!”
순간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누군가 반대쪽 숲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저히 사람의 속도라고 볼 수 없는 엄청난 속도.
나는 곧바로 그 위치를 향해 점멸을 사용했다.
실라이 샌드윅스의 말을 듣자마자 판단을 내린 것은 고작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다.
팟―
그리고 허공에 튀어나온 내 몸 앞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개였다.
“너는…….”
녀석의 정체는 다름 아닌 ‘에이체스’.
나는 허공에서 튀어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거대한 개의 배에 언노운을 쑤셔 넣었다.
깨갱!
그러자 달리던 개는 균형을 잃고 그대로 지면에 자빠졌다.
동시에 변신계 마법이 풀리고 곧 에이체스의 얼굴이 드러났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 또 너로군.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우우우우웅―
숲 전역에 울려 퍼지는 진동음.
“파멸의 포탈은 이미 열렸는데.”
피를 토해 내는 에이체스는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