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어머나 이게 누구신가? 우리 교장님이시잖아! 아직도 정정하시네요 히로빈 교장님?”
방금까지 머리 위에 있던 검은 구체를 던지던 여자가 아카데미 외부로 나온 히로빈 교장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그 모습에 히로빈 교장 옆에 있던 아텔라 교수가 눈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너도 여전하네. 다이애나. 그때보다 더 미친 거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아텔라의 독설에도 다이애나 펠트리온은 깔깔대며 웃을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히로빈 교장이 아텔라에게 넌지시 질문했다.
“자네는 저 학생들의 동급생이었지. 저 학생들의 고유 마법을 아는가?”
‘저주받은 학생들’이 히로빈 교장을 습격한 지도 7년.
그러나 히로빈 교장은 여전히 그들을 ‘학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아텔라 교수는 히로빈 교장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략적으로는 압니다만… 제로가 말했다시피 상대는 마기를 이용한 ‘글리치’ 마법이라는 걸 사용합니다. 아스틴 클라우스도 글리치 마법을 사용해 상대의 모습으로 변하는 도플갱어 마법을 사용했다니 상대의 능력은 제가 아는 고유 마법과는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그렇겠군.”
“글리치 마법이라.”
케이든 교수는 잠시 턱을 쓰다듬었다.
사실 이미 ‘글리치 마법’에 대한 정보는 강당에 있을 때 제로가 모두에게 설명했었다.
마기를 제어하는 힘으로 고유 마법을 마인화 시키는 마법.
그것이 바로 ‘글리치 마법’이라고 제로는 얘기했었다.
지금껏 밝혀진 글리치 마법은 아스틴 클라우스의 도플갱어 마법.
이미 그 도플갱어 마법에 강화계 권좌인 실베르 라인하르트가 당한 전적이 있으니, 눈앞의 상대방들도 매우 강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본래의 계열 마법에서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겁니다. 도플갱어 마법 또한 변신 계열이었으니까요. 저쪽에 다이애나 펠트리온은 원소계. 그리고 두 쌍둥이들은 각각 정신계와 소환계입니다.”
솔로몬 가문의 쌍둥이, 베르제 솔로몬과 리바이 솔로몬.
특이하게도 오빠 쪽인 리바이 솔로몬은 정신계 마법사였다.
사실 서로 다른 계열 마법사끼리 결혼하는 경우도 빈번했기에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어쨌든 솔로몬 가문은 소환 계열로 유명한 가문이었기에 쌍둥이의 오빠 쪽이 정신계 마법을 선택한 것은 신기하다 볼 수 있었다.
다만 계열 마법이 상반되는 것과는 별개로, 둘은 매우 사이가 좋았고 호흡도 좋았다.
그것은 글리치 마법을 사용할 때 더욱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오빠.”
“어서 준비해 줘, 베르제.”
이윽고 베르제의 주변에서 검노란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것을 목격한 히로빈 일행은 상대를 경계해 전투태세를 갖췄다.
곧 베르제 앞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기더니 무언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다름 아닌,
“저건……!”
영웅 피너클러스 골드버그와 아텔라 버밀리온이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히로빈 그린월드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그런데 그 모습에 더더욱 놀란 것은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였다.
“어째서… 내가?”
“상대를 복제해서 소환하는 능력인 건가.”
“아니, 다르다.”
이내 냉정함을 되찾은 히로빈 그린월드가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복제의 능력 따위가 아니었다.
“저 학생의 능력은 아무래도 망자를 소환하는 능력인 것 같군.”
“망자를 소환한다고요……?”
“그래. 저기 있는 두 사람은 다름 아닌 마계 대전의 영웅, 아텔라 버밀리온과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다.”
“예?”
아텔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망자를, 그것도 200년 전의 영웅들을 소환하는 능력은 충분히 놀랄만한 능력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200년 전의 영웅, 아텔라 버밀리온이 자신과 똑같은 외모라니.
둘의 외형은 닮은 것을 떠나서 아예 복제한 수준이었다.
심지어는 들고 있는 검조차 자신과 다를 게 없었다.
“어째서…….”
살짝 당황한 아텔라는 이내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본인에게 ‘아텔라 버밀리온’ 얘기를 꺼내려던 제로.
‘설마. 제로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건가.’
물론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확신이 들었다.
애초에 제로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고, 그때 당시의 제로는 자신에게 말하기를 상당히 망설였었으니까.
그렇게 히로빈 일행이 당황하는 사이 이내 리바이 솔로몬이 글리치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베르제 솔로몬 앞에 소환된 두 명의 영웅들의 머리 위로 뭉게구름처럼 번지는 거뭇한 느낌이 강한 주황색의 마나. 동시에 두 명의 영웅들의 눈빛이 검게 변했다.
모든 작업이 끝나자 베르제 솔로몬이 입을 열었다.
“후훗. 여러분들을 위해 힘들게 준비했답니다. 아무리 글리치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망자를 소환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그렇기에 유골을 구하는데 애 좀 썼습니다.”
그 말에 히로빈 그린월드가 탄식했다.
“유골을 구했다라…….”
그렇다면 눈앞에 소환된 영웅이 어째서 저 둘인지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공개적인 장례를 통해 그들이 묻혀 있는 위치가 널리 알려졌으니 아무래도 다른 영웅들보다는 저 둘의 유골이 구하기 쉬웠던 거겠지.
“참고로 이 두 영웅님들은 생전의 힘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답니다.”
이번에 말을 한 것은 리바이 솔로몬 쪽이었다.
그리고 리바이를 노려보던 케이든 교수가 조용히 히로빈 교장을 향해 말했다.
“제가 영웅 쪽을 맡겠습니다.”
“아니.”
히로빈 교장은 소환된 두 영웅들.
그중에서도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피너클러스 골드버그를 맡지.”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아텔라 버밀리온 쪽을…….”
“아니요.”
이번엔 아텔라 가스트로디아가 단호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제가 아텔라 버밀리온을 맡겠습니다. 양보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케이든 교수님.”
그 말에 케이든은 아텔라 버밀리온을 한번 확인하고 아텔라 교수의 얼굴을 살짝 훑었다. 완전히 같은 둘의 외모.
그러나 둘의 차이는 다름 아닌 눈빛이었다.
검게 물든 아텔라 버밀리온의 눈과 달리, 아텔라 가스트로디아의 눈빛에서는 깊은 각오가 느껴지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케이든 교수는 살짝 손목을 돌리며 다이애나 펠트리온을 바라보았다.
“제가 저 녀석을 맡죠.”
사실 원소계 마법은 물질계 마법에 유리하다.
따라서 이런 식으로 전투가 흘러간다면 케이든 교수는 불리한 싸움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딱히 케이든 교수는 그 점을 지적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는 불리하다 해서 질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알겠네.”
상성이 불리한 것은 케이든 교수만이 아니었다.
변신계 또한 소환계의 상성.
히로빈 그린월드도 불리한 상성의 전투를 하려는 것이었다.
다만, 히로빈 그린월드에게는 이 싸움을 피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피너클러스…….”
옛 동료, 마계 대전의 영웅 중에서도 그와 특히 친했었던 전우.
그런 그가 꼭두각시가 되어서 놀아나는 꼴을 차마 볼 수 없던 것이다.
“빨리 끝내고 지원하겠습니다.”
“그건 제가 할 얘긴데요, 케이든 교수님.”
“다들, 잘 부탁하겠네.”
그렇게 각오를 다지는 히로빈 교장 일행.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이애나가 하품을 했다.
“하아암. 그럼 엔트리는 다 정해진 건가요? 지루해서 못 기다리겠잖아요.”
“후훗. 저희는 꽤나 바쁘다고요.”
“귀찮으니까 빨리 끝내 드릴게요.”
그와 동시에 다이애나가 두 손을 번쩍 치켜올렸다.
순식간에 그녀의 손 위에 모이기 시작한 흑색의 에너지 구체.
마치, 검은 태양을 들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그것을 곧바로 히로빈 일행을 향해 던졌다.
“이걸 막으시면 칭찬해 드리죠!”
상대의 공격에는 딱히 피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구체는 그대로 히로빈 일행 머리 위를 덮쳤다.
콰과과과광!!
광야에 울려 퍼지는 커다란 폭음.
그러나 곧이어 보이는 히로빈 일행의 모습은 멀쩡했다.
“칭찬은 내 쪽이 하지. 나름 강력한 공격이군.”
케이든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 그들 앞에는 아카데미를 감쌀 정도의 거대한 자기장막이 펼쳐져 있었다.
* * *
“어딜 가는 거야.”
강당을 빠져나온 나는 그대로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의 뒤를 쫓았다.
분명 이 시점에서 숲으로 갈 이유는 없었다.
더더욱 실라이 샌드윅스는 교감의 직책을 맡고 있는 자.
히로빈 교장이 부재한 지금, 강당에 남아서 책임감을 느끼고 학생들을 안심시켜도 모자란 상황인 것이다.
“설마…….”
실라이 샌드윅스는 정식으로 칼루스 아카데미의 교감이 된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녀는 마법부에서 파견한 인물이었다.
마법부에서 감사를 목적으로 교감의 자리에 자신들의 인사를 앉힌 것이다.
그동안의 실라이 샌드윅스의 만행에도 불구하고 히로빈 교장이 그녀를 눈감아 주었던 것은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래도 아니겠지.”
어쨌든 지금 당장 마법부가 일으키는 전쟁은 블랙잭의 정신계 마법으로 인한 소행일 게 분명했다. 그리고 실라이 샌드윅스는 정신계 마법에 당하지 않은 상태.
만약 그녀가 정신계 마법에 당했다면 며칠 전 있었던 아카데미 인원 점검 겸 검사 중에 감지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실라이 교감은 맨정신이었다.
아무리 삐뚤어진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정신계 마법에 당하지 않은 사람이 지금 이 상황에서 마법부의 행위에 동참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왜 숲에 들어가냐는 거지.”
지금 그녀의 행동은 명백히 이상했다.
따라서 나는 점멸을 사용해 빠르게 그녀를 따라잡았다.
팟―!
이윽고 그녀의 뒤편에서 내 몸이 튀어나오고 나는 곧바로 그녀를 멈춰 세웠다.
“실라이 교감님?”
“뭐, 뭣?!”
내 얼굴을 확인한 실라이 교감은 순간 안절부절못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되려 나를 쏘아붙였다.
“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 제로 학생? 학생들은 모두 강당에 대기하라 했을 텐데요.”
“실라이 교감님이 수상해서 따라왔습니다. 실라이 교감님이야말로 여기서 뭐 하시는 거죠?”
“그, 그냥 숲에 위험한 게 없나 살펴보고 있는 와중이었어요.”
그녀의 말에서는 어딘가 허둥지둥하는 태도가 엿보이고 있었다.
따라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설마, 마법부의 앞잡이신 건 아니시죠.”
“네, 네?! 그게 무슨 소리시죠?!”
“현재 마법부는 정신계 마법으로 조종당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님은 정신계 마법은커녕 아무것도 걸리지 않은 상태시잖아요. 설마 맨정신으로 지금의 비상식적인 마법부를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다급히 부정하는 실라이 샌드윅스.
그런데 그녀의 눈빛이 바뀌었다.
갑자기 주머니에 있던 주먹만 한 수정구를 치켜드는 실라이 샌드윅스.
“그래 봤자 늦었어! 이 세계는 이제 마법부가 지배한다!!”
그러고 수정구에 마나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미 점멸로 반응하기에는 매우 늦은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탁―
나는 여유롭게 손가락을 한번 튕겼다.
순식간에 주변이 얼어붙는다.
아니, 시간이 멈춘다.
동시에 나는 점멸을 사용했다.
팟―!
그리고 언노운을 들어 올려 그대로 실라이 샌드윅스의 손목을 베어 냈다.
촤아아악―
지면과 실라이 샌드윅스 교감의 얼굴에 손목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튀었다.
그리고 멈춰 있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는 실라이 샌드윅스.
나는 그녀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나는 더 이상 그녀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