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주의 혐오 속에서 그에게 죽임을 당하는 로판 속 미저리 같은 악녀에 빙의했다. 살려고 여주인공과의 사이를 적극적으로 이어주려 했다. 애써 끌리는 마음을 외면한 채로.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나에게 집착하기 시작하는 걸까. “이 늦은 시간에 찾아오시는 건 결례라는 걸 모르십니까? 급한 일이라면 시종이나 기사를 통해…….” “결례라는 걸 아시는 분이.” 남자는 분노가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다시 한 번 자신을 버린다면 용서하지 않겠다는 듯이. “낮에 그렇게 제 심기를 흔드셨습니까?” 그가 내 앞으로 얼굴을 가까이 갖다 댔다. “당신이 누구와 어떤 시간을 보냈든, 나와 보냈던 시간이 사라지진 않아요. 만약 날 벗어나고 싶었다면 그날 밤 나한테 그러지 말았어야지.” 에버하르트가 내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드디어 그가 무너졌다. 일러스트 By 방솜(@_bangsom) 타이틀디자인 By 타마(fhxh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