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2화
7. 카의 조각
여관은 대도시에 자리한 만큼 물가가 높았다. 사흘간 하루 두 끼를 포함한 숙식이 5실버에 달했다. 야안의 마을이었다면 밀 한 포대에 달하는 가격인지라 야안은 아찔한 충격을 받았다.
‘보름치 식량이……. 사람 살 곳이 못 되는군.’
덕분에 도시의 화려함에 시선을 빼앗겨 씌었던 콩깍지가 단번에 벗겨졌다. 농노 시절 때 감자 하나 아껴 먹던 습관과 시골 영지에서는 무엇 하나 버리는 것 없이 쓰는 절약 정신이 몸에 밴 그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돈을 물 쓰는 듯한 이 대도시 생활에 반감이 생겼다. 특히 자기에게 돈이나 물품을 쓰는 것이 인색한 그로서는 잠시 노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씁쓸해하던 야안은 여관에서 내주는 빵과 수프, 고기류를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인이 안내해 준 자신의 방에 짐을 풀었다.
방은 자신의 방보다 좀 작았지만 정리 정돈이 잘되어 있었고, 창이 있어 바깥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창 너머로 주위 길을 익히던 야안은 어느 정도 지리에 익숙해지자 인벤토리에서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동안 룬 세공에 실패한 것들을 모아놓은 것들이었다.
일반 나무로 만든 것은 대부분이 F급이나 F+급이었고, 10여 개 정도의 번개 맞은 천년 소나무 조각은 최소 E―에서 E급이었다.
야안은 미리 준비한 작은 주머니 몇 개를 꺼내 등급을 나누었다. 제법 양이 많았는데 F급은 열일곱 개였고, E급은 여덟 개였다.
보호의 마법이 걸린 것이라 가지고 있으면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날씨의 영향을 비켜 갈 수 있다. 특히 E급은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어 노인이나 환자에게 상당히 도움을 주는 물건이었다.
‘이 정도 물건은 과연 얼마에 팔릴까? 듣기로는 볼품없는 물건도 좋은 가격에 팔린다고 하니.’
대략 케일로부터 마법 물품 중 가장 하급도 20골드에 팔린다는 말을 들었지만, 여기에 걸린 마법이 고작 기온의 변화를 어느 정도 막아주는 게 다라서 어떻게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곧 야안은 여관 주인에게 마법 상점의 위치를 물었다. 다행히 여관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는데, 과연 가격이 비싼 물건을 거래하는 탓인지 마법 상점 건물은 웬만한 귀족 주택 못지않은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경비병들로 보이는 인원만 해도 10여 명에 달했고 하나하나가 최소 소드 중급에 달했다. 입구는 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문과 그 옆에는 2미터 정도의 작은 문이 있었다. 문도 나무문이 아닌 철로 만들어내어 차라리 벽을 부수지 문을 어떻게 할 엄두도 못 낼 것 같았다.
생각한 것보다 화려한 모습이라 별생각 없이 왔던 야안은 잠시 멈칫거리다 이내 마법 상점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문 앞에 경비를 보던 이 중 한 명이 야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물건을 사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팔러 오셨습니까?”
야안의 행색은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지만 교육을 잘 받은 듯 경비원은 야안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팔러 왔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무슨 등급이신지 아십니까?”
“등급요?”
야안은 경비병이 등급이라는 말에 자신이 생각하는 등급을 말하는 것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경비원은 의아해하는 야안의 모습에 등급을 모른다 생각하고 이내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모르신다면 감별사가 등급을 나누어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던 경비원은 작은 문을 열어주며 빨간색을 칠한 돌을 따라가시면 된다고 말했다. 친절한 경비원에게 야안은 감사하다고 말하며 빨간색 돌을 따라갔다.
건물 안에는 여러 사람이 자리했는데, 손님이 아닌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이었다.
모두가 깔끔하게 정리한 머리에, 옷 가짐을 하고 있어 그동안 여정에 의해 지저분해진 모습과 검게 탄 그의 피부를 보자면 오히려 그가 더 하인에 잘 어울릴 듯했다.
“대도시라 그런가? 하나같이 사람들 피부가 희고 곱구나.”
건물 내부의 여러 장식품들을 구경하던 야안은 곧 빨간 돌이 가리키는 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물건을 보따리에 사 든 채 줄을 서고 있었다.
호기심에 야안은 진실의 눈을 펼쳐 이들을 살피다 이 중 한 명이 현자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워했다. 비록 그 수준이 초급 현자 비기너라 하지만 현자를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던 탓이다.
그들은 저마다 햇빛을 보지 못한 듯 피부는 하얗다 못 해 창백했고, 눈 밑에는 다크서클이 길게 자리했다. 줄의 가장 앞에는 물건 하나 넣을 수 있는 구멍이 난 작은 창구가 있었는데, 가장 앞에 있던 사람은 초조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곧 물건과 함께 한 장의 종이가 같이 나왔는데 그 사람은 실망한 듯, 한숨을 길게 내뱉더니 이내 다시 물건을 창구에 넣으며 돈주머니를 받아 갔다. 투덜투덜하는 것이 상당히 불만인 듯 보였다.
점차 한 명씩 줄이 줄어 들어갔고, 앞서의 현자는 좋은 가격을 받았는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돈이 아닌 약품 처리한 종이를 받은 채 물건을 팔았다.
야안의 차례가 오자 창구에서 무미건조한 음색의 사내가 말했다.
“물건을 올려주십시오.”
그 말에 야안은 방금 전 나눈 물건 중 질이 가장 나쁜 F급 나뭇조각과 가장 좋은 E급 나뭇조각을 꺼내 넣었다.
“여기 올려놓았습니다.”
“잠시 기다리십시오.”
야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물건을 가져간 창구는 곧 끝날 듯한 말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야안은 초조하기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어 발을 깔짝이며 심심함을 달랬다.
말없이 심심함을 달래고 있는데 창구에서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중년의 사내가 나오더니 야안에게 정중히 인사를 했다.
“시간이 지체되어 죄송합니다. 혹시 괜찮다면 잠시 이야기를 해도 되겠는지요.”
여전히 무미건조했지만 야안은 그의 말투에서 약간 들뜬 기색을 느꼈다. 야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를 따라오시지요.”
그렇게 말하며 야안을 창구 안으로 모시던 사내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더니 이내 넓은 방 안으로 야안을 데려갔다. 넓은 방 중앙에는 커다란 소파가 자리했고, 고급스러운 장식을 한 철로 만든 탁자가 있었다.
곧 메이드 복장을 한 중년의 여인이 홍차와 다과를 놔두고 정중히 인사를 하며 사라졌다. 중년의 사내는 손을 내밀었다.
“드시죠. 저희 상점에서 자랑하는 홍차와 다과입니다. 맛이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에 야안은 달달한 향이 나는 홍차와 입에 넣는 순간 녹아버리듯 퍼지는 다과를 맛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이 좋군요.”
상당히 좋았다. 할 수 있다면 가져가 요즘 부쩍 단것을 좋아하시는 부모님께 드리고 싶을 정도였다.
중년인 또한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
“조금 전 손님께서 맡기신 물건 말입니다. 혹시 누가 제작했는지 아십니까?”
“그건 왜 물으시는지요?”
야안의 물음에 중년인은 품에서 아까 야안이 내놓은 마법 물품들을 꺼냈다. 그리고 그중 일반 나무에 룬 문자를 조각한 제품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이것은 제가 보기에 일반 나무에다 마법을 부여한 것입니다. 다른 여타 마정석이나 미스릴 같은 금속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저 룬을 부여한 것으로 마법을 인챈트 한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야안은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긍정에 중년인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살짝 상기한 태도로 번개 맞은 나무의 룬 조각 제품을 꺼냈다.
“또한 이것은 번개 맞은 고목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같은 마법이 인챈트 되어 있지만 이쪽이 더 등급이 높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앞서와 마찬가지로 마정석이나 미스릴 같은 금속을 쓰지 않았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혹시 그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야안의 말에 중년인은 손사래를 쳤다. 그리고 긴장되었던지 다시 한 모금 홍차를 마시며 마음을 정리한 그는 이내 야안을 불러낸 이유에 대해 본격적으로 말을 꺼냈다.
“네, 문제라고 하면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마법 물품은 기존 상식을 벗어난 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마법 물품이 기존 상식을 벗어난 제품이라는 말에 야안은 고대 현자 알리의 마법 물품 만드는 방법이 지금과 다른 형식임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 다르다는 것입니까?”
“본래 마법 물품은 마정석에 룬 문자를 새긴 뒤 다른 금속이나 목재들을 복합적으로 연결하는 룬 문자를 써 결합하거나 하는데 이때 이 성분 비율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마법에 따라 다르니까요. 또한 이 마법이 아니면 마정석 여러 개에 룬 문자를 새긴 뒤 수식에 맞게 미스릴을 실처럼 뽑아내어 연결하여 증폭하는데 이런 식으로 룬 문자를 새겨 마법을 인챈트 합니다. 이는 미스릴이라는 물건이 실처럼 가늘게 뽑아도 워낙 마나에 민감한 제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야안은 잠자코 그의 설명을 들었다.
“이것 말고도 마정석이 고급인 경우나 미스릴이 일정 크기 이상의 덩어리인 경우에 한해서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마법 물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급 마정석 이상이나 미스릴은 상당히 희귀해 엄청난 고가를 자랑해, 중급 현자 마스터들이나 고위 현자 정도나 제대로 쓰이는지라 일반적으로 그보다 질이 낮은 마법 상품을 만들 때 하급 마정석과 그 위에다 은을 두껍게 겹쳐 마법진을 만들어 인챈트 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러 마법 시약품이 들어갑니다. 보통 이렇게 만들어진 마법 물품은 가장 최하급은 1년 정도 마법이 지속되고, 하급은 2년, 중급은 5년에서 10년, 고급은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20년에서 100년 정도입니다.”
야안은 그제야 왜 이 중년인이 이 마법 물품을 만들어낸 이를 찾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마법진과 룬 문자를 새겨 대기의 마나와 공명시켜 반영구적으로 마법을 쓸 수 있는 자신의 마법 물품은 지금 이 시대의 마법 물품에 비해 너무도 괴이한 것임을 안 것이다.
마법 자체는 최하급임에도 그 수명 기간이 고급에 달할 만큼 길기도 했으며, 별다른 재료 없이 마법 물품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야안이 알리가 남긴 서적에서 그가 설명한 것과 같은, 아니, 조금은 다른 복합적인 과정을 거친 마법 물품을 만드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라, 최선책으로 지금의 마법 물품 형식을 빌리는 것이다.
이 방법은 고대에 돈이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 알 리가 만든 마법 물품을 만드는 연습 방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챈트 할 수 있는 마법이 몇 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둘에서 네 개의 룬 문자들 중에서였다. 또한 본래 위력의 반의반도 되지 않는 위력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