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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5화 (25/385)

야안 25화

야안은 아이의 정보가 끝나자 돈을 건네며, 묻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붉은 오크족과의 전투를 생각하면 준비 물품이 필요할 듯하여 어디서 물을 것인가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하게 귀중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다행이야. 시골 촌놈이 무작정 돌아다니다 큰 손해를 볼 뻔했어.’

야안은 남은 과일주스를 비운 후 가까운 옷 가게에 들렀다. 아이가 말해 준 곳이었는데, 값이 싸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아 이곳에서 호평을 받는 곳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질기고 실용성이 있는 옷 한 벌을 사 갈아입었다.

아이의 말로는 지금의 자신이 너무 외지 냄새가 나니(시골 촌뜨기 같으니) 이곳에서 괜찮은 옷으로 갈아입고 가야 거래에서 손해 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확실히 입어보니 옷의 품질이 좋아, 그는 자신의 부모님과 멜리나, 그리고 한스 부부네 옷도 한 벌씩 샀다. 기장은 대충 눈으로 잰 거지만 이미 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그만큼 재봉사의 손길보다 정확했다.

야안은 옷을 갈아입고 여러 동작을 해보면서, 이 천이 디자인만 좋은 것이 아니라 상당히 질겨 오랫동안 입을 수 있음을 알았다.

시골에서는 활동량이 많기 때문에 이런 질긴 옷감을 선호했다. 더구나 보온성이 좋아 이같이 추운 시기에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좋은 제품일 듯했다.

언제 이런 곳에 올지 모르는 일이니 이 옷감을 사두는 게 좋을 듯해 주인에게 말하여, 옷감 천을 종류별로 주문했다.

주인도 많은 천을 사 가는 손님인지라 넉넉한 양을 준비해 주었고, 야안은 값을 치른 뒤 자신이 묵고 있는 장소로 배달을 부탁했다.

그렇게 의류 상점에서 나온 야안은 아이가 알려준 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으로 가기 전까지 그는 세 곳의 시장을 지나쳤는데, 확실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현지인이 아닌 다들 외지인으로 보이는 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자신도 잘못하면 저들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하니 확실히 도시 사람이 무섭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도착한 시장은 부두와 가까운 곳으로 그가 이곳에 오면서 본 흑인과 옐로 맨들이 곳곳에 눈에 들어왔다.

이곳 현지인들도 상당수가 자리한 것이 확실히 지나친 시장과 다른 활기가 느껴졌다.

이곳은 주로 식량이나 여러 색다른 물품들을 거래하고 있었는데, 야안은 먼저 맛은 없어도 값이 싸면서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을 찾았다.

확실히 눈이 휙 돌아갈 정도로 기상천외한 식품들이 자리했는데, 그가 걸음을 멈춘 곳은 흑인 상인이 운영하는 상점이었다.

흑인 상인의 노예로 보이는 이가 상점의 앞에서 작은 호주머니에서 한 컵가량의 물에 손톱 크기 정도의 양으로 조금 뿌리자 금세 걸쭉한 무언가로 변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맛은 없는 듯 그는 코를 잡으며 길쭉한 나뭇조각으로 그것을 퍼먹었는데 그가 말하기를 능히 한 끼 식사의 영양분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찾고자 하는 건가 싶어 그에게 다가가 물으니 이것은 사실 샤트 왕국에서 빈민들을 위해 탄생한 식품으로 그 이름은 파래라고 한다.

800년 전 대륙을 넘어온 위대한 주술사 쿠에타이가 죽음의 지배자의 침공에 땅이 사막화되어 가자 그곳에서도 기를 수 있는 식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막상 만들어내어 보니 과연 영양 면에서도 나쁘지 않았고, 용량도 건조시키는 와중에 크게 줄일 수 있어 전쟁을 나서는 용병들에게 딱 맞는 식품이었다. 하지만 마치 진흙을 먹는 것 같을 정도로 상당히 맛이 없었다.

야안이 혹시나 해 그곳 주인에게 부탁해 맛을 보니 과연 상당히 끔찍한 맛이지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다.

농노 시절 맞아 죽는 것보다 굶는 것이 더 무서웠던 경험 때문에 배만 부를 수 있다면 맛 따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주인은 야안이 살려고 하는 의지를 보이자 크게 기뻐하며 가격을 낮추어 서둘러 치워버리려 했다. 유통기한은 다 되어가는데 사는 사람이 없어 걱정이던 물건이었으니 그가 서두를 법도 했다.

사실 이 같은 음식이 이처럼 번성한 도회지에서 팔리기 어려운 일이다. 밖을 나가 조금만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해도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곳이었으니 굶는 이 없는 이곳에 그 같은 식품을 사 가는 이는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이다.

주인은 한 상자나 되는, 밀로 따지면 한 포대나 되는 것을 5골드에 줄 테니 모두 사 가라고 설득했다.

말이 한 포대지, 조금 전 늘어나는 양을 보아, 능히 천 포대에 달하는 식량인 것이다. 그런 무시무시한 양을 야안에게 팔아넘기기 위해,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이니 어쩌니 하면서, 말을 하는 그의 모습에 야안은 이자가 왜 이렇게 서두르는지에 궁금증이 생겼다.

이내 진실의 눈을 펼쳐 그를 살핀 결과 유통기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그런 것임을 알고 쓰게 웃었다.

‘눈 감으면 코 베어 가는 곳이라 하더니.’

그는 눈앞의 주인이 괘씸해 짐짓 튕겨 1골드하고 5실버를 깎은 뒤에 물품을 구매했다. 야안으로서는 손해 볼 게 없었다. 인벤토리에 넣어두면 썩지도 않고 잘 보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상인은 속여 팔아 이득을 보자 기분이 좋았으니 서로가 만족하는 거래인 것이다.

야안은 수계 마법 중 기본 마법인 워터 볼을 익혀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 그 외에 지혈대나 해열제 약초를 그곳에서 샀다.

힐링 마법을 배웠으나 아직 그 수준이 낮아 상처를 일시적으로 약화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수십 번을 펼쳐야 딱지가 앉을 정도이니 그로서는 지혈대는 필수였다.

또한 환경의 변화로 병에 걸리면 가장 필요한 것이 해열제였다.

의술을 어느 정도 아시는 아버지에게 배운바, 환자가 병에 걸렸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체온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라 했다.

환자의 체온이 내려가면 따뜻하게 해주어야 하고, 머리가 불덩이처럼 뜨거우면 해열제를 통해 체온을 내려야 한다 했다.

일반적으로는 병보다는 체온이 올라가 그로 인해 죽는 경우가 많으니 해열제의 중요성에 대해 여러 번 설명했다.

상인도 미안했던지 가격을 잘 쳐주어 좋은 거래를 끝낼 수 있었다. 야안이 거래를 끝내면서 이곳의 무기점 중 괜찮은 곳을 추천해 달라고 하자 그제야 야안의 허리춤에 찬 검을 발견했다.

‘흥, 그래 봤자 촌놈이 제대로 검을 쓸 줄이야 알겠어.’

그렇게 야안을 무시하던 상인은 그래도 미안한 점이 있어 예전 이곳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상인의 호위들이 주로 가던 상점을 기억해 내 추천했다. 그에 작게 감사의 인사를 보인 야안은 상인이 알려준 무기점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곳은 이곳 시장이 아니라 뒤에 작은 산이 자리한 산지 부근의 시장이었는데, 아이가 말한 또 다른 믿을 만한 두 곳 시장 중 한 곳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가장 큰 무기점이 상인이 알려준 곳이었는데, 규모가 대단하여 마법 상점만큼은 아니지만 귀족가의 별채를 보는 것 같은 규모였다.

들어서니 하인으로 보이는 이가 무기 진열대를 청소하고 있을 뿐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청소하는 하인도 손님의 몰골이 꾸몄다고는 하지만 자세히 보면 시골 촌놈으로 보이는지라 그저 형식적으로나마 건성으로 인사를 할 뿐 이내 무시한 채 자기 일을 했다.

야안 또한 크게 상관치 않고 진열된 무기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물건들이 뛰어나 보였는데, 야안이 손에 대면 상태창이 떠 그 무기들에 대한 설명들이 보여 비교하기가 쉬웠다.

야안은 그중에서 소지하기 쉬운 단검들과 함께 예전에 스승님이 했던 충고를 따라 견고한 가죽으로 엮은 밧줄을 구입하기로 했다.

밧줄은 나차라는 물소의 가죽을 엮어 만든, 길이가 20미터에 이르는 얇고 튼튼한 가죽 밧줄이었다. 다음으로 단검들을 찾기 위해 여기저기 살피던 그는 최종적으로 두 가지 단검 세트를 두고 고민했다.

둘 다 다섯 개로 이루어진 단검이었는데 편하게 발목에 걸쳐도 불편함이 없는 실용성이 뛰어난 무구들이었다.

잠시 자리에 앉아 쥐어보고 살짝 던져보며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던 야안은 누군가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 단검을 든 모습 그대로 몸이 굳었다.

숨이 막히는 공포심이 야안을 지배했다. 긴장감에 모든 털을 곤두섰고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 기운은 거대하고 흉측한 포식자의 기운이었다. 마치 신화시대에서나 보일 법한 마수가 세상에 등장하는 듯했다. 야안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파괴하는 괴물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아 숨조차 죽였다.

그 기운 앞에서 야안은 뱀 앞의 쥐였고 죽음 앞에 선 병든 이였다. 그 무엇도 그 법칙에 벗어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기운이 그것이었다.

아는 만큼 보는 법이라고 중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선 야안이기에 기운을 살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야안이 느끼는 공포심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여하튼 실제로 하인은 그 놀라운 기운과 가까이하고 있음에도 야안만큼 경계하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 기운의 사내는 30대를 갓 넘어선 듯한 이로 석양처럼 붉게 물든 머리가 인상적인 자였다. 화려하면서 실용적인 옷차림을 한 그의 가슴에는 붉은 장미가 수놓아져 있었는데, 바로 이 왕국의 실세라 할 수 있는 힐튼 공작가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야안이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예를 표하지 않은 것에 크게 상관치 않았다. 아니, 그한테는 촌놈 행색인 야안은 길가의 벌레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저 오만한 미소를 보이며 크게 어려워하는 하인에게 손을 휘저었다.

곧 하인은 주인을 부르기 위해 어딘가로 뛰어나갔고, 이내 주인이 허둥지둥 모습을 보였다. 주인은 붉은 장포를 입은 왜소한 체격이었는데, 그는 귀족에게 보이는 최고의 예법을 자연스럽게 펼치는 것이 평소 귀족과 거래가 있는 듯했다.

“대공자님께서 직접 이곳에 방문하시다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주인의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서둘러 가게 금고를 열어 보관된 물건을 꺼냈다. 그 물건은 화려한 장식은 없는 수수한 형식의 검 한 자루였지만, 검집에 있음에도 느껴지는 검의 예기로 볼 때 보통 귀한 물건이 아닌 듯했다.

마일드 왕국의 검이라 불리는 힐튼 공작가에서도 다음 대의 가주를 차지할 힐튼 라이온은 천성적인 무인답게 검소한 자였다. 또한 대귀족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행보를 조심하는 자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도 20만 골드라는 거금을 들여 도착했다는 얘기가 들리는 순간 몸소 모습을 보일 만큼 검의 정체는 뛰어난 것이었다.

그 검은 휘야가라고 하기도 하고 본명은 위대한 망치인 비운의 드워프 족장이 살아생전 만든 칠검 중 하나였다.

1,000년 전 대륙의 생사를 건 전쟁의 여파로 이제 드워프는 잊힌 존재가 되고 말았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저 멀리 융 제국의 말리야 산맥에서 그들의 모습이 발견된다고 하는데 사실 그것은 믿기 어려운 소문들이었다.

여하튼 이 휘야가의 칠검은 그가 남긴 마지막 유작으로 이 중 네 개의 검이 전쟁의 여파로 사라졌고, 이제 세 개의 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한데 그중에서 한 개의 검이 모습을 보였으니 천생 검객인 그가 이렇게 모습을 보인 것은 당연지사이다.

검집에서 검을 꺼내자 무슨 금속인지 모르지만 짙은 검은빛에 주위의 빛마저 집어삼킬 듯한 검 한 자루가 모습을 보였다. 보관이 잘되었는지 아니면 이 검의 묘용 때문인지 몰라도 1,0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은 검임에도 어디 하나 흠잡을 것이 없었다.

“좋군. 좋아.”

짧게 감탄사를 마친 그는 가격을 마저 치르고 검을 허리에 찼다. 곧 그를 따라 두 명의 기사 차림의 사내가 움직였는데, 그들이 그 유명한 붉은장미기사단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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