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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4화 (24/385)

야안 24화

3년 전.

카리엘 제국은 지독한 고질병을 앓고 있었다. 나라가 부강할수록 반대급부로 커져가는 고질병.

바로 다음 황위가 누구에게 가는 것인가에 대한 문제였다.

카리엘 제국의 황제. 이 칭호가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그 나라의 지배자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융 제국이 현자의 나라라고 한다면, 카리엘 제국은 검의 문화가 극히 발전되어 있는 기사의 나라이며 강군이 포진된 제국이었다.

두 명의 검의 마스터가 있을 뿐 아니라 구존 중 상위 정령사 한 명, 상위 마법사 한 명이 있어 어느 때보다 카리엘 제국의 위세는 거대했다.

그들의 영역은 아홉 왕국 연합을 합친 것보다 더 컸으며, 기름진 땅에서 나는 식량은 차고 넘쳤고, 상업 또한 잘 발달되어 있어 그 재력도 뛰어났다.

이것만을 보아도 카리엘 제국이 대륙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제국이 어떤 정책을 정하냐에 따라 대륙의 행보가 바뀌며 인식이 뒤바뀌었다.

이런 카리엘 제국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은 확대해석하면 이 대륙의 지배자가 된다는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다음 대 황위를 놓고 벌이는 계승권 싸움은 치열했다.

현재 카리엘 제국의 황제 크라데스의 슬하에는 각각 다른 어머니를 둔 세 명의 황자가 있다.

이들 황자는 각자 뛰어난 검의 재능을 지니고 있어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랐으며, 마치 지배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이처럼 군중을 이끄는 강렬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 누구도 인성이 부족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할 문제도 없었으며, 끝없는 자기 발전을 하는 성실함이 있었다. 정치를 보는 견해는 달랐지만, 노련한 정치인들 못지않은 관록이 자리했다. 하나하나가 준비된 지존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이처럼 뛰어난 존재들이 귀족으로 태어났다면 오히려 크게 반길 일이지만, 문제는 이들의 신분이 카리엘 제국의 황자들이라는 것이었다.

황권은 절대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 능력이 뛰어난 이 중 이 권력을 손에 넣고 싶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그랬기에 이 일은 축복이면서 저주와 같은 불행스러운 일이었다.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중 한 존재가 우뚝 자리를 잡는다면 귀족들도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을 것이건만 문제는 이 세 황자의 재능이나 영향력이 비슷하다는 것에 있었다.

당연히 신하들도 그에 따라 세 개의 세력으로 나뉘었다. 비록 지금은 황제 크라데스의 강력한 지배 아래 눈에 보이는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가 지금의 실태였다.

세 황자들은 이 상황을 넘어설 큰 공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영민한 그들로서는 제국에서 더 이상 세력을 형성하는 것에는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금의 현실에서 우뚝 설 수 있는 큰 성과가 필요했다.

그런 성과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터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살인이 합법화될 뿐 아니라 오히려 많은 살인을 하면 공을 세우는 것이고, 많은 것을 약탈하면 그것이 성과로 인정을 받게 되는 곳, 가장 빠르면서도 확실한 공을 세울 수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전쟁터이다.

이런 전쟁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대의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 이 대의라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민심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었다. 아무리 전쟁터에서 높은 성과를 이루어 대공을 이룬다 해도 대의가 분명하지 못하면 오히려 아니한 것만도 못한 결과가 된다.

오랫동안 이 대의를 찾던 그들은 카리엘 제국과 야루스 산맥을 공유하고 있는 탈리아 왕국에서 이를 찾을 수 있었다.

정보 집단에서 탈리아 왕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지라 이에 첩보 활동을 한 결과 야루스 산맥에서 신의 금속이라고도 부르는 미스릴 광산을 발견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같은 무게의 금보다 1,000배가량의 가치를 지닌다는 미스릴이었기에 그것이 가져올 파장은 거대했다.

세 황자 세력은 이것이 전쟁을 일으킬 가치를 지녔음을 알았다. 위치는 카리엘 제국의 영향력을 아슬아슬하게 벗어난 탈리아 왕국이었다. 아직 이 광산의 정확한 위치, 명분 등이 확실하지 않았지만 이런 일은 천천히 시간을 들이면 되는 일이다.

각 황자 세력들은 이곳의 위치를 각자의 정보망을 통해 알아내기 시작했고,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잡은 것은 야루스 산맥의 국경선에 위치한 군부들이었다.

먼저 하위 관료들을 구워삶아 사소한 다툼을 여러 번 일으키면서 감정을 고조했고, 한편으로는 공작을 하여 큰 시빗거리를 만들었다. 결국 이 두 군부가 부딪쳤는데, 탈리아 쪽의 군부를 모두 사살한 뒤 정보를 조작하여 자신들도 큰 피해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탈리아 왕국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격의 일이었다.

현재 야루스 산맥의 국경선은 그들의 입장에서 매우 조심스러운 곳이다. 얻는 것이 거대한 만큼 나라 예산의 반에 해당하는 자금을 들여 극도의 긴장감을 가지고 일을 하는 곳이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었다.

비록 카리엘 제국이 최근 자신들에게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아졌지만 그런 일은 매년 있어왔던 일이었다. 오히려 이에 대한 대책이 달라지면 위험할까 싶어 섣불리 아무런 대항도 하지 못했는데, 그 결과가 이러했다.

탈리아 왕성의 회의장.

아직 해도 채 뜨지 않은 시점이지만 이미 실세라 불리는 이들이 회의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같이 고뇌가 깊은 얼굴들이다.

침중한 표정인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던 탈리아의 왕은 이른 새벽 자신의 잠을 깨운 이 비보에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한탄을 털어놓았다.

“아, 제국이 눈치를 챈 것인가? 혹시나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크게 한탄을 하는데,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 중 이제 일흔의 백발 장군 호야 후작이 그에게 충언을 올렸다.

“이 미스릴 광산이 거대한 가치가 있다고 하지만 제국에서 이처럼 노골적으로 탐할 정도는 아닙니다, 전하.”

그 말에 왕이 궁금증을 보이자 그는 말을 이었다.

“제국은 지금 세 명의 황자들로 인해 황위를 놓고 크게 다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힘이 비슷하여 그 어느 누구도 크게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시점입니다. 지금 제국이 원하는 것은 이 미스릴 광산이 아니라 황위 싸움에서 크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전쟁터입니다. 우리가 이 미스릴 광산을 그들에게 내어주어도 그들은 또 다른 억지와 같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는 아무 이득도 없이 미스릴 광산뿐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빼앗길 뿐인지라, 결국 그들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어야 합니다.”

호야 후작의 말에 회의장이 크게 술렁거렸다.

제국과의 전쟁.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작지 않았다. 바로 멸살. 국가가 존속 위기에 처하는 것을 말한다. 잘하면 공국이었고, 못하면 식민지로서의 삶이었다.

그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백전노장인 호야 후작이 그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왕도 그것을 알기에 그의 말에 크게 노하지 않은 채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누구보다 충성스러운 그대가 대책 없이 이런 말을 꺼냈을 리 없다. 그대의 고견을 듣고 싶구나.”

왕의 허락에 호야 후작이 이곳 왕성에 오면서 생각한 계획을 꺼내놓았다.

“탈리아 왕국은 지금 미스릴 광산 하나와 철광산이 열일곱 곳, 금광산이 다섯 곳, 은광산 여덟 곳입니다. 그야말로 광물 수출에 의지하고 있지요. 우리는 이 중 다섯 곳의 철광산과 두 개의 금광산, 그리고 이번에 개발하고 있는 미스릴 광산을 포기함으로써 이번 전쟁을 왕국 연합의 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국의 군사력에는 미치지 못하기에 그들이 쉽사리 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명분이 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선례를 만들어 제국의 횡포를 막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번 선례로 인해 제국이 왕국 연합을 쉽사리 보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공입니다.”

그의 의견을 듣던 왕은 비록 왕국의 큰 자원이 사라지는 것을 아쉽게 생각했지만 만약 이 전쟁의 끝에 그런 식으로 일이 마무리된다면 오히려 큰 이득이라 생각했다.

물론 반대하는 신하들도 없지 않았지만 그들도 달리 내놓을 의견은 없었다. 한동안 이리저리 그 의견을 논의하던 그들은 호야 후작의 의견이 그나마 가장 현실적이라 생각이 들었다.

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 이내 명했다.

“그럼 호야 후작의 의견을 받아들이겠노라. 사신단을 만들어 왕국 연합에 이 의견을 보내고, 정확한 전략은 왕국 연합에서 몇 개의 국가가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니 그때 다시 자리를 만들겠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 탈리아 왕국에서 보낸 사신단들이 왕국 연합의 각 국가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야안은 마법 상점에 갔다 온 다음 날 여관 주인에게 물어 시험장을 찾았다. 시험 접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른 시간부터 긴 줄이 있었는데 대충 보아도 200명은 넘어 보였다. 이런 긴 줄이 새삼스러운 것이 아닌 듯 같은 줄에 서 있는 이들의 잡담을 들어보니 매년 이래왔고, 점심부터는 이보다 몇 배나 더 긴 줄이 생긴다고 한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야안은 접수를 할 수 있었다. 접수를 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어중이떠중이를 내쫓기 위해 접수비 5실버를 받았는데, 이미 수중에 130골드가 있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어제의 과감한 물품 투자와 달리 얻는 것이 없다는 생각에 속이 쓰렸을 뿐이다.

접수를 끝낸 야안은 가까운 주점에 들어가 간단하게 요기를 하며 정리를 하고 있는 주점의 어린 일꾼에게 물었다.

“이봐, 이곳에서 가장 물품 거래가 활발한 곳이 어디이지?”

어린 일꾼이라 해도 도회지 출신인지 빠릿빠릿하게 생긴 아이는 피부가 희고 머리나 옷이 깨끗이 정리되어 있어 야안에 비해 부티 나 보였다. 아이는 아침부터 바쁜데 자신을 부르는 시골 촌뜨기에 짜증이 일어났지만 그가 손에 쥔 10브론즈를 보고 미소를 머금었다.

“아, 시장을 찾고 계시나 보군요. 저한테 물으신 것은 정말 잘하신 선택이세요. 제가 이곳 출신이라 작은 뒷골목까지 모르는 곳이 없거든요. 이곳의 시장은 총 스물한 개나 되는데 그중에서 두 곳을 빼고는 모두 외지인들의 등골을 빼먹는 곳들이지요.”

그렇게 말하면서 10브론즈에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는 시장 두 곳과 거래 시 간단한 주의 사항들을 재빠르게 알려주었다. 혹시나 야안의 마음이 바뀔까 싶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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