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27화 (27/385)

야안 27화

8. 몬스터 토벌 I

시간이 되자, 왕성의 고위 관료로 보이는 이가 나타나 합격자의 이름을 불러 단상 위로 올라오게 했는데 맨 위에 오른 이름인 만큼 야안이 가장 먼저 호명되었다.

그가 올라설 때 주위는 상당히 웅성거렸는데, 아무래도 촌놈처럼 보이는 어린 사내가 장원인 탓이 컸다. 야안의 수험 배지를 확인한 관료는 그에게 준귀족 증명서가 담긴 작은 상자를 수여했다.

이런저런 행사로 그날 이곳 술집 곳곳은 시끌벅적했는데, 시험에 떨어진 이들이 대다수라 욕지거리 따위가 사방 곳곳에 울려 퍼지곤 했다.

야안은 이곳에 친분이 있는 사람이 없는지라 그런 모임을 뒤로한 채, 만들면서 생각해 두었던 ‘카’의 조각을 달 경갑주를 구하기 위해 며칠 전 검을 사러 간 무기점 거리로 향했다.

날이 저물어가는 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쇠 두드리는 소리가 더 크게 울려 퍼지곤 했다. 경갑주는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 야안은 주위를 돌아다니며 정보 창에서 보이는 자료를 근거로 가격이 적당한 경갑주를 찾아다녔다.

여섯 곳을 살핀 뒤 작은 대장간에서 물건을 찾을 수 있었는데, 가격이 다른 데보다 20%가 싼 편이었다. 알고 보니 주문한 용병이 다음 용병 일에서 불구가 되어 필요 없게 되어 애물단지로 남아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는 안 된 일이지만 덕분에 좋은 가격으로 물건을 얻은 야안은 방에 돌아와서 경갑주 안에 주머니를 만들어 간단히 카의 조각을 매달았다.

경갑주를 시험하고 간단히 단검을 연습하던 그는 아주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일주일간 제대로 된 잠도 이루지 못하다가 이제야 제대로 잠이 든 그의 모습은, 오랫동안 전장을 떠돈 전사가 다시 새로운 전장을 앞두고 긴 휴식을 취하는 듯했다. 그렇게 그는 아주 깊은 잠을 이루었다.

이른 아침부터 그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소원했던 자신의 말에게 콩과 여물로 배를 채워주며 서운함을 달래주었고, 그 옆에서 무기들을 손보았다.

사흘에 5실버라는 무시무시한 가격인지라 그는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지금 출발해야 붉은 오크가 근처에 있는 영지까지 사흘이 지난 저녁에 도착할 수 있는 탓도 있었다.

야안은 어젯밤에 부탁한 건량을 사고 부탁한 작은 가죽 주머니를 얻었다. 작은 가죽 주머니는 다름 아닌 그의 건량이 떨어진 뒤 파래를 간편히 먹기 위해 가져가는 것이었다. 접으면 부피가 작다는 편의성은 음식 섭취 시간을 크게 단축할 것이다.

성문에서는 이른 시간부터 홀로 성 밖을 나서는 야안을 기이하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제재는 하지 않았다.

그가 가는 영지는 라쿤 백작의 영지로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나라에서는 라쿤 백작의 군대를 부르지 않는다.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르는 야로스 산맥의 몬스터들의 침입을 막고 있는 중요한 요새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몬스터들의 침입이 아니라 이 야로스 산맥의 몬스터들은 그 수준이 차원이 달랐다.

이곳의 몬스터들은 종류가 그리 많지 않았다. 모두 한 종족의 몬스터에 지배되고 있기 때문에 굴복하지 않는 몬스터들은 멸종당하는 탓이다.

이곳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종족은 바로 오크였다.

야로스 산맥에 사는 오크 외에 여기저기 산맥에 떠돌고 있는 오크족들은 하급의 오크들이다. 계급으로 치면 천민인 이 오크들은 야로스 산맥의 오크에게 노동력을 주는 존재나 식량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었다.

오로지 강한 힘만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인정받는 이곳은 진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그런 습성으로 1,000년 전 전쟁 당시 오크는 죽음의 지배자의 밑에 가장 먼저 복종했다.

죽음의 지배자는 이들 오크에게 저주를 내려 그 번식력과 체력을 높이게 변이시켰는데, 강력한 힘을 얻을수록 그들의 지능은 높아졌다.

지도자의 뛰어난 지능과 본래 있던 오크의 투쟁심, 타락되어 생긴 욕심들로 그들은 강력한 전투 군단으로 변모되었다.

오크의 체제는 가장 상위의 오크 왕을 ‘칸’이라 부르는데 ‘칸’은 위대한 이라는 뜻이다. 오크의 왕답게 그의 무위는 홀로도 구존 몇을 상대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밑에는 여덟 명의 장군이 있는데 이들을 ‘도칸’이라 하며 여기서 도칸은 위대한 이의 바로 밑에 있다는 뜻이다. 그들 둘이면 구존을 막을 수 있고 셋이면 구존을 제압할 수 있었다.

다시 밑으로 1만의 전사를 이끄는 대부족장이 있는데 ‘호도칸’이라 하고, 위대한 이의 바로 밑에 있는 이를 따르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 그 경지는 익스퍼트 상급에 달한다.

대부족장 밑의 1,000의 전사를 이끄는 족장은 ‘호후도칸’이라 하며 위대한 이의 바로 밑에 있는 이를 따르는 자를 추종한다는 뜻이다. 그 실력은 익스퍼트 초급에서 중급에 달한다.

그 밑으로 전사라는 직위가 있는데 전사 하나하나가 중급 유저에서 상급 유저의 실력을 보이고 있다.

앞서 얘기한 바대로 전사 밑의 오크는 소수의 몇을 빼고는 그들에게 있어 식량과 일꾼에 지나지 않는다.

‘강하지 않으면 아무런 존재도 아니다. 오직 실력만으로 자신을 입증하라.’

그것이 앞서 말한 오크 왕국을 지탱하는 하나의 법칙이었다.

단순히 그뿐이라면 좋으련만 오크는 출생 후 3년 만에 성인이 되기에 그 번식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야로스 산맥의 오크들과 인간들과의 관계는 끝이 없는 뫼비우스의 띠를 걷는 듯했다. 카리엘 제국에서 전력을 다한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존재들.

그런 강력한 존재들이 거대한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거대한 힘을 지닌 카리엘 제국이 이 대륙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하는 결정적 이유이기도 했다.

야안은 라쿤 백작 영지에 다가갈수록 몬스터들을 만나는 횟수가 늘어갔는데, 아마 그 이유는 야로스 산맥의 오크들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야숙의 마지막 이틀째 되는 날에도 오크 다섯을 베어 넘긴 야안은 이것도 돈이다 싶어 가죽을 벗겨 갈 채비를 끝냈다. 벌써 그런 가죽이 열다섯 장이나 되어 그의 짐은 처음보다 양이 많아진 상태였다.

덕분에 레벨도 하나를 올릴 수 있어서 야안은 혹시나 해 스탯 하나를 아직 다른 곳에 올리지 않고 여유분으로 놔두었다. 힘과 민첩성이 같이 오르면 큰 상처를 입은 육체도 상당히 호전되는 것임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크의 잔여물로 모닥불을 피운 야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스승 마론이 남긴 책을 보며 그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자신이라면 어떻게 할지 궁리했다.

실전적인 마론 현자의 이론은 상대의 약점을 교묘하게 틀어잡는 것이 주였다. 그의 가르침으로 야안은 최대한 실전과 가까운 간접경험을 얻었다.

타오르는 모닥불 빛으로 책을 읽던 야안은 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책을 덮어 인벤토리에 몸을 넣은 그는 풀어놓은 검을 손에 쥐며 기척이 있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곧 그가 느낀 기척대로 그늘에 숨은 인영들이 야안의 눈앞에 모습을 보였다.

다행이라고 할까?

몬스터는 아니었다. 상당한 고생을 한 듯한 사내들로 저마다 비슷한 이 없이 덩치는 달랐지만 상당한 수련을 한 용병으로 보였다. 그들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녹색 피가 몸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것을 보면 트롤과 만난 듯 보였다.

그들 중 가장 키가 작고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닌 사내가 그들 중 머리를 민 험악한 사내에게 욕지거리하며 나타났다.

“젠장, 탈론 이 개자식아. 죽을 뻔했잖아. 내 다시는 네 말은 듣지 않으리라. 씨발, 좆같은 인생 하직할 뻔했네.”

그의 말에 일행 중 덩치가 가장 크고 등에 배틀 액스를 진 사내가 웃음을 지으며 그의 등을 후려쳤다.

“낄낄낄, 용감한 미켈 님께서 왜 이리 심통이 났는가?”

그에게 한 대 후려 맞은 미켈은 비명을 꽥 질렀다.

“끄어억, 노이. 미친놈아, 섬세한 내 육체를.”

그러며 작은 주먹으로 웃음을 짓는 그에게 주먹을 날리는데 사내는 귀찮다는 듯 한 손으로 태연히 그의 공격을 막았다.

그들의 모습에 상당히 뛰어난 외모에 쌍둥이로 보이는 두 명의 사내 중 왼쪽 눈 주위에 큰 상처를 입은 이가 두 손으로 그에게 손짓했다.

그들의 손짓을 보던 미켈은 한숨을 푹 내쉬며 야안에게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불의 주인에게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군.”

미켈은 그제야 야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실례했습니다. 우리는 맥스 대용병단의 1용병단입니다. 라쿤 백작가에서 이번에 또다시 몬스터 토벌을 한다 하여 가는 길이지요. 괜찮다면 같이 불을 쬐어도 되겠습니까?”

야안은 조금 전 가벼운 모습과 달리 예의를 표하는 미켈이 상급 유저에 달하는 자임을 알 수 있었다. 혹시나 해 진실의 눈을 펼쳐보니 그가 지금 이 멤버의 리더임을 알 수 있었다.

성격도 쾌활하며 눈치가 빨라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는 하지만 정이 많아 손해를 보는 성격이었다.

‘용병치고는 좋은 사람들이군.’

용병 일이라는 것이 돈을 받고 호위를 하는 일이 주라지만 그 좋은 뜻과는 달리 언제나 죽음을 가까이하는지라 성격이 괴이한 자들이 많았다. 실제로 용병 일을 5년 이상 하는 이들은 저마다 크고 작은 정신병을 안고 살아야 했다.

한데 그런 와중에 적은 멤버들이라지만 그들의 리더라는 자가 수하들과 격의 없이 지내는 것을 보며 굳이 진실의 눈으로 보지 않아도 이들이 좋은 자들임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전에 어리고 보잘것없는 행색인 자신에게 말을 놓지 않는 것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입니다. 요깃거리가 있는데 괜찮다면 같이 드시겠습니까?”

그 말에 험악한 인상을 한 채 미켈의 말에 끙끙대던 탈론이 기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걸걸한 목소리로 환영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소.”

야안의 말에 쌍둥이 중 흉터가 없는 이가 미켈을 보며 손짓을 했다. 그 모습에 미켈이 곤란한 듯한 모습을 보이다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야안에게 부탁했다.

“미안하게도 호의를 받아들이겠소이다, 어제저녁부터 굶었던지라.”

부끄러운 듯 말하는 그에게 야안은 알겠다는 듯 짐 꾸러미에서 건량을 꺼내 반 정도를 그에게 넘겼다.

“일단 이걸로 허기를 좀 달래십시오. 아직 음식이 덜 익은 것 같아서. 그리고 제가 어리니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그러며 나뭇가지로 오크를 잡을 때 같이 잡았던 노란 토끼가 든 진흙 덩어리를 툭툭 쳤다.

일반 토끼가 아닌 노란 토끼는 맹수과라 그 크기도 몇 배나 되는데 상당히 몸놀림이 빨라 잡기가 힘들었다. 맛은 다른 토끼보다 질긴 편이지만 이처럼 진흙으로 덮어 고온에서 토끼를 구우면 살이 연해져 맛이 좋았다.

미안한 표정으로 야안이 건넨 건량을 받은 미켈은 동료들에게 나눠주며 일행들을 소개했다.

“고맙네. 나는 미켈이라 하고 지금 이들의 단장을 맡고 있네. 이 녀석의 이름은 탈론으로 그 외모와 달리 적이 아닌 자에게는 상당히 순박한 녀석이지. 이 녀석은 부단장인 노이라 하고 힘이 좋아 내가 일꾼으로 다니고 있지. 낄낄, 농담이네. 아, 그리고 우리 귀염둥이들. 하이일과 하이이 형제일세. 보면 알겠지만 쌍둥이지. 여기 눈에 상처가 난 녀석이 형이고 아닌 녀석이 동생이지.”

그의 말에 하이이가 미켈에게 항의하듯이 손짓을 했지만, 미켈은 그의 발언을 무시했다. 그는 분하다는 듯 야안에게 손을 저으며 건네받은 육포를 거칠게 씹어댔다.

“말을 못 하시는군요.”

야안의 말에 미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렇다네.”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 씁쓸해하는 그의 모습에 하이일, 하이이 형제들은 그에게 수화를 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미켈은 짧은 미소를 보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