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33화
순식간에 반 이상의 체력과 마나가 회복되고 머리가 맑아지자, 야안은 당황해 하는 오크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과연 전설의 검이라고 할까.
그 검의 묘용에 의해 그의 구의 발현은 더욱 견고해지고 범위도 두 배로 늘어나 있었다. 녹슨 거대한 철 방패가 그의 앞길을 막아도 방패와 함께 뒤에 자리한 오크를 베어냈으며, 멀리서 찔러오는 창은 이화접목을 통해 그 힘을 이용해 옆에 자리한 오크의 몸을 베었다.
동시에 검 끝으로 사량발천근을 이용해 내려치는 도끼를 흘리고는 이내 발로 종아리를 차 자세를 낮추게 한 뒤 검 손잡이로 미간을 쳐 뇌를 파괴했다.
귀신과도 같은 솜씨였다.
절정에 오른 자가 보이는 구의 발현의 결정체를 보여 주기라도 하듯이 야안의 움직임은 그 수많은 오크 사이에서도 그 나아가는 속도가 줄지 않았다.
동굴이 넓은 탓에 이미 100이 넘는 오크가 야안을 중심으로 포진하고 있었고, 지금도 이 동굴 속으로 오크는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입구가 좁지 않았다면 이보다 몇 배나 많은 오크가 그를 막아섰을 것이다.
그는 장기전이 될 듯해 최대한 검기의 발현은 줄이고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의 묘용에 크게 기댔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때였다.
그 정신없는 상황에서 변화가 생긴 것은. 야안의 눈앞에 작은 창이 모습을 보였다.
[건곤대나이
습득률 : 0.1%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을 마스터하면서 그 두 개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고 그 덕분에 얻게 된 고위 기술이다.
제6감각을 깨우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뛰어난 힘의 묘용이기도 하다. 아직 그대에게 너무도 과분한 힘의 묘용으로 진정한 힘의 묘용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난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적은 힘으로 상대의 힘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옮기며 자신을 보호하고 적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
*마스터하면 어떤 종류의 힘이든(마법이든, 물리적인 충격이든) 힘의 방향을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다.
*습득률이 높아질수록 한 번에 해결할 힘의 개수가 늘어난다.]
야안은 그 바쁜 격전 중에서도 이 새롭게 깨달은 묘용에 놀라 크게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뛰어난 지혜를 지닌 그였고, 또한 무의식의 상당 부분을 확장한 그였지만 이 힘의 묘용이 보일 효과가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실제로 건곤대나이의 묘용에 따라 검을 펼치면서 더욱 그러했다.
산이라도 쪼갤 듯한 기세로 야안의 뒤에서 찍어오는 배틀 액스는 야안의 어깨와 부딪치는 순간 어느새 방향이 바뀌어 옆에 방패를 들고 있는 오크를 내리쳤고, 내지르는 창은 그의 검과 부딪치면서 야안을 향해 뛰어오른 오크를 꿰뚫었다.
허리를 베어내는 오크의 대검은 어느새 다른 오크의 다리를 쓸어버리고 있었고, 그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다 야안이 펼친 검에 머리를 잃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야안의 무용에 오크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야안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야를 막고 있는 오크 둘을 베어내며 몸을 날렸다.
어느새 입구에 다시 들어오는 오크를 검기를 발휘해 반으로 쪼갠 야안은 동굴 입구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올라 사방팔방을 향해 검기를 날리기 시작했다.
검기를 연달아 날리느라 기운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지만, 전설의 검을 통해 증폭된 힘은 입구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오크들을 물러서게 하는 데 충분했다.
야안이 모습을 보이자 하급 오크들은 기다렸다는 듯 길을 트기 시작했고, 오크 전사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성스러운 장소가 인간 따위에게 더럽혀졌다 생각했기에 거친 숨소리에 살기를 담으며 야안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야안은 그들의 분노 따위에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는 낮에 보아둔 퇴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고, 곧 오크 전사 100마리와 야안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역시 오크 전사라 할까? 하급 오크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는 힘과 기술 그리고 놀라운 단결력에 야안의 움직임은 점차 제한되어 갔다.
하지만 건곤대나이를 깨닫기 이전이라면 모를까. 이제 그 걸출한 힘의 묘용을 알게 된 그는 그 거대한 힘의 압박에서도 구의 발현은 무너뜨리지 않았다.
그는 단결력에서 나오는 연합 공격에도 건곤대나이의 묘용을 힘껏 살리기 시작했는데,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오히려 그 연합 공격이 독이 되어갔다.
이해할 수 없는 검의 묘용에 힘의 통제를 잃어버리면서 자신의 공격이 아군의 등을 찌르기도, 목을 베기도 했다. 두꺼운 방패를 든 오크 전사들은 어느 순간부터는 오히려 같은 편의 공격을 막아주기도 해 이들이 어리둥절해하는 순간 그 숨이 끊기고 만다.
하지만 워낙 오크들의 수도 많았고 그 집결도가 높았다. 서로가 서로를 죽여서 당황하기에는 그들의 파괴 본능과 살심은 너무도 컸다.
그런 위기 속에 야안에게는 큰 행운이라 할 만한 일이 일어났다.
쿠르르릉.
지진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몸을 살짝 흔들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서 있지 못할 정도의 거대한 지진이었다. 동굴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겨우 나와 주술 간의 힘의 파장 때문에 일어났다고는 믿기 힘들다. 아마 그 빛의 구슬 때문이겠지.’
그 구슬이 동굴을 만들어내고 유지했을 것이다. 하니 이제 구슬이 사라진 동굴이 그처럼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지진의 여파로 위쪽 부근에서 나무가 쓰러지며 작지 않은 규모의 산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야안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한 지진이 일어난 땅을 그대로 밟으며 가기에는 무리가 있는지라, 몸을 가볍게 하여 날듯이 뛰어오른 그는 지진의 여파에 쓰러진 하급 오크들을 밟으며 퇴로를 향해 나아갔다.
야안이 자신들의 포위망을 풀고 유유히 도망치려 하자, 오크 전사들이 쫓으려 했지만, 땅바닥에 널린 하급 오크들에 의해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쿠룩, 쿠룩. 쓰레기 같은 것들.”
“쿠르르, 산사태. 다리에 힘을 주고 움직여라, 쿠룩.”
휘파람으로 회색 갈기 늑대들에게 야안을 추격하라 명한 오크 전사들은 하급 오크를 다독이며 가장 급한 산사태로부터 피하기를 명령했다.
야안은 100마리가 넘는 회색 갈기 늑대들이 자신을 쫓고 있음을 알자 낮에 만들어놓은 트랩이 있는 곳으로 유인했다.
“키잉! 킹!”
올가미에 걸린 듯 구슬픈 늑대 울음소리가 들리기도 했고, 매달아 놓은 나무에 맞아 몸이 터져 나가는 늑대도 있었다.
야안은 그 혼란의 틈을 놓치지 않고 남은 단검을 날려 둘의 목숨을 끊은 뒤 다시 검기를 펼쳐 옆에 자리한 나무를 쓰러뜨렸다.
나무가 오래되어 워낙 크고 굵어 야안으로서도 상당한 힘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덕분에 나무에 깔린 늑대가 넘어지면서 생긴 먼지바람에 늑대들의 시야와 후각이 크게 방해를 받아 잠시간 추적 능력이 상실되었다.
실낱같은 여유를 벌게 되자 그는 근처의 나무 위로 순식간에 올라 모습을 감추었는데, 회색 갈기 늑대 또한 오크만큼은 아니나 오감이 약해지는지라 결국 야안을 놓치고 말았다.
야안은 10미터가 넘는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서, 한참을 서성거리는 늑대들이 물러가는 것을 보고 난 뒤에야 한숨을 터뜨렸다.
“휴우, 죽는 줄 알았군.”
운이 좋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건곤대나이라는 힘의 묘용을 깨닫지 못했다면, 자신은 지금도 싸우고 있을 것이다.
운이 나쁘면 죽었을 것이고, 좋다고 해도 팔 하나는 잃을 만큼 큰 부상에 숨을 허덕이며 그들의 추적을 받고 있을 것이다.
야안은 아직 습득률이 낮은 건곤대나이 탓에 몸에 상처들이 상당했는데, 힐링을 펼쳐 상처 곳곳을 아물게 하고 인벤토리를 열어 지혈제와 붕대를 꺼내 힐링으로도 처리하지 못한 상처를 막았다.
야안은 어느 정도 몸이 수습되자 그 하얀 구슬에 대해서 궁금증이 일어났지만, 그보다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하루빨리 그들의 영역을 벗어나기로 했다.
“만약 주술사라도 하나 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군.”
워낙 괴이한 주술을 펼치는 오크 주술사인지라 어쩌면 추적에 관련된 마법을 자신에게 펼쳤을지 모른다.
야안은 그 점이 내심 다행이라 생각하며 워터 볼을 생성해 파래를 먹을 수 있게 만들어 빠르게 섭취하고 나무 위를 뛰어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뒤에야 전쟁에서 패한 오크들이 모습을 보였다. 그들 속에 붉은 오크 전사들의 모습을 본 야안은 그들의 행적을 살피며 잠시 고민하다, 지도를 꺼내 전장의 여파와 먼 곳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잠시 이리저리 오크들의 영역을 피해 다니며 여러 방위로 지도를 살피던 그는 다음 경유지를 유란 자작의 영지로 정했다.
유란 자작의 영지가 백작가의 영지에 그나마 가까운 곳이라 선택한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