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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6화 (36/385)

야안 36화

하얀빛이 일렁이는 구슬은 야안을 중심으로 3미터가량을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야안이 그 구슬을 손에 쥐며 운기를 시작하자 어느새 구슬은 빛을 잃었고, 다시 야안이 자리한 방은 어둠에 잠겼다.

야안이 얻은 구슬의 명칭은 ‘뇌전의 정화’라는 것이었다.

[뇌전의 정화(봉인되어 있다. 사용자의 수준과 조건에 맞추어 진화한다.)

등급 : C+

오래전 고대의 대현자 테무드가 지니고 있던 물건이다. 인간의 역사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시간 이전의 것이다. 이것을 품에 지닌 자는 모든 삿된 유혹에서 벗어날 힘을 가진다.

*품에 안고 운기 시 뇌전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

*흡수된 뇌전의 기운을 통해 몸의 기혈을 쉽게 뚫을 수 있다.

*신체적 능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처음에는 단순히 쥐고 운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뇌전의 기운을 흡수할 수 있다는 설명에 야안은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그 고강한 기운을 그렇게 쉽게 몸에 쌓을 수 있다는 말이던가?

하지만 실제로 운기를 시작하면서 구슬에서 자신에게 이양된 뇌전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악의 기운을 멸하는 것이라 했던가?

과연 그러했다. 그것은 야안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강력한 기운이었음에도, 티끌 하나 없는 순수한 기운이기도 했다. 너무도 강력해 다른 불순분자들은 허락하지 않는 기운이었다. 마치 구름 한 점 없는 끝없이 높고 고고한 겨울 하늘을 보는 듯했다.

그만큼 순수하기에 강한 기운. 그것이 뇌전이었다.

뇌전이 보이는 묘용은 대단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몸속의 기운만이 아니라 그의 육체 또한 이 뇌전의 구슬을 통해 정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생각한 자신의 기운이었지만, 뇌전의 구슬을 통해 얻은 기운과 비교하자면 흑과 백을 나란히 두고 보는 만큼 확연했다.

제6감각으로 그는 그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정보 창에서는 몸의 기혈을 쉽게 뚫을 수 있다고 했으며 육체의 능력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했는데 그것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기가 순수해질수록 움직일 수 있는 기의 양이 많아진다. 혼탁한 기운은 그의 의지를 쉽게 따르지 않지만 순수한 기운은 그의 의지에 쉽게 순응하여 이를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운기를 하는 과정만으로도 기운이 지나가는 길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

운기의 길이 넓어지면서, 당연히 막혔던 기혈들도 그 강한 기의 유동으로 뚫을 수 있게 되었고 그에 태어나 첫 호흡을 하면서부터 쌓였던 불순물들을 점차적으로 태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뇌전의 구슬을 얻게 된 지 이제 20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야안은 크게 감명했다. 그 익숙하지 않은 산속 도피 중에서 크게 어렵지 않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앞서의 그런 묘용은 놀라운 것이기는 했으나, 그가 감명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가 감격하여 마음에 깊게 새겨질 정도는 아닌 것이다.

그랬다. 그가 진정 도움을 받았고 진정 뛰어난 묘용이다, 여기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때 그는 마음에 심화의 불씨를 품고 있었다. 다름 아닌 전설의 검을 쓰면서 얻게 된 번뇌였다.

아직 그의 실력으로는 봉인된 전설의 검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경지였다. 그걸 사용하려면 최소한 상급 익스퍼트, 그것도 끝자락에 올라서야만 이 검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검을 사용했으니 이 전설의 검은 야안의 정신을 갉아먹는 마검이 되었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악마가 되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라 여기지 못할 만큼 그의 의지는 위대한 것이었다. 예전 익스퍼트의 벽을 무너뜨렸던 때보다 몇 배나 짙은 번뇌의 불씨였지만, 그만큼 그도 성장했다.

그랬다. 성장했다. 그렇기에 그는 물러서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망설이지 않으며 당당히 번뇌와 맞섰다.

그러나 그 번뇌는 단시일에 잡기에는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그는 커지는 번뇌의 불씨를 잠재우는 데 큰 곤란에 처해야 했다.

그때 나타난 것이 바로 이 뇌전의 정화이다. 폭풍우 뒤에 내린 한줄기 빛처럼 뇌전의 정화를 품에 안자 번뇌의 불씨는 그제야 성장을 멈추었다.

그리고 단 하루.

겨우 단 하루의 시간을 품에 안고 있었을 뿐인데 어느 순간 번뇌는 사라졌고, 청명한 정신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랬기에 그는 크게 감명한 것이다.

‘뇌기의 기운을 얻는 것도, 그로써 신체 능력이 향상되는 것도 다 부가적인 것이다. 진정 뛰어난 위용은 바로 이것이구나.’

그렇게 생각이 되자 이 뇌전의 구슬을 몹시 귀한 보물로 여겼으나, 뇌전의 구슬에서 빛이 일어나는 현상 때문에 몸에 쉽사리 지니고 있지를 못했다. 이 빛은 기이하여 가죽으로 덮어도, 철로 막아도 가리지 못했다.

그저 지금처럼 운기행공을 할 때에만 그 빛이 사그라질 뿐인지라 이처럼 평소에는 인벤토리에서 넣어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운기행공을 끝내고, 야안은 정보 창을 열었다.

[이름 : 야안

레벨 : 33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생명력 : 760

마나양 : 860

힘 : 23(+15)

민첩성 : 23(+15)

행운 : 21(+15)

지혜 : 20(+15)

마나 : 28(+15)

분배되지 않은 스탯 : 5]

‘역시 아직 토벌전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구나.’

분명 황금 갈기 오크 퀘스트에서 전쟁이 끝이 나면 자신이 벌인 공에 해당하는 경험치를 준다 했는데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아직도 백작의 군대는 토벌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자신이 백작이라 해도 지금의 호기를 놓치기 어려운 일이다.

대족장이 죽고 그 밑의 족장들이 반 이상 죽어나갔다. 오크들의 영역을 축소하는 데는 최소한 그의 생에서는 다시없을 기회이니 무리해서라도 그는 최대한 그들의 세력을 꺾어놔야 했다.

오크 전사가 만들어지는 데 10년, 그중에서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는 게 20년이 걸리니 그는 그 기간 자신의 대에서 군사를 더욱 정비하여 자신의 후대가 편안한 길을 가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지금 그의 레벨은 33레벨로 마을에서 나올 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레벨을 올렸다. 오크와의 전쟁에서 11레벨이 올랐고, 이후 붉은 오크들과 전투에서 2레벨이 올랐다. 그 이후 퀘스트를 성공하면서 그는 3레벨이 더 올라 지금의 레벨이 되었다.

덕분에 분배되지 않은 스탯이 5나 있었으나 그는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이 스탯을 사용하려 했다. 그건 그가 수많은 위험을 넘어서며 세상의 위험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자만하여 지난번처럼 모든 스탯을 행운에 투자했다면 자신의 숨은 벌써 두 번은 끊겼을 것이다.

무의식을 확장하는 것도 좋지만 앞날은 모르는 것이다. 스탯의 사용이 생존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잘 알기에 야안은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운이 좋아 제6감각이라는 뛰어난 묘용을 이룰 수 있었고 그로 카의 조각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다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자신의 힘 따위는 세상에 비하면 너무나 부족하다는 점을 그는 무기점에서 만난 그 사내에게서도, 또한 겪은 전장에서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랬다.

지난 3개월에 가까운 시일 동안 그는 나름의 잣대로 세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의 경솔함에 후회하기도 하고 절망하며 또한 저도 모르게 쌓여가는 자만심을 확인하여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마법 상점의 일만 해도 그렇다. 어리석은 짓이다. 비록 진실의 눈을 통해 그가 신의가 있는 인물임을 알지만 그래도 그는 현자이다. 지혜로운 존재이나 또한 지식을 갈구하는 학자였다.

그 자신도 이제 온전히 초급 현자 마스터의 반열에 들었기에 그것을 잘 안다. 경지가 높아질수록 그 지식에 대한 욕망은 더 높아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그가 계약을 꼭 지킨다는 법은 없다.

겨우 종이 한 장에 안전할 것이라니. 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던가?

이때의 자신은 중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서 자신감이 대단했기에 크게 생각지 않았다. 하지만 튀어나온 못은 두들겨 맞는 법이다.

자신은 아직도 튀어나온 못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왕국만 해도 기사가 100명에 달했고, 굳이 기사가 아니어도, 잘 조합된 강병 1,000명이면 큰 피해 없이 자신을 추살할 수 있다.

그 점을 야안은 경험을 통해 알았다.

좋은 쇠는 많이 두들기면서 얻어지듯이 야안은 고통 속에서 그렇게 차츰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야안은 로테리안의 도움으로, 마차에 생활필수품들이나 귀한 약재를 채우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로테리안과 거래하는 상인에게서 성수 한 병을 얻을 수 있었다.

성수는 대영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영지가 있는 귀족들이나 되어야 그것을 구할 여건이 되는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다.

떨어진 팔도 붙일 수 있다는 물건이었는데, 이 성수의 힘은 인간의 근원적인 기운을 채우는 것이었다.

웬만한 극독도 해독할 수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불치병이라 여겨지는 병도 성수를 통해 나았다는 기록이 있기도 했다. 또한, 몸이 노쇠한 경우 복용하면 몇 년의 수명을 늘리기도 한다.

가격은 중급 마정석과 같은 1만 골드에 달했는데, 야안은 망설임 없이 구입했다. 가짜는 아니었다. 확실히 병에 들어 있음에도 그 성수의 활기 넘치는 기운은 야안의 기감을 놀라게 했으니.

운이 좋다 생각한 야안이었지만, 큰 부를 지녔다는 소문이 떠돌자 모인 상인들에게서 중급 마정석도 하나 구할 수 있었다. 다른 중급 마정석에 비해 살짝 모자란 감은 있지만, 하급 마나석과는 비교 따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물건이었다.

가격은 다시 1만 골드 정도가 나갔고, 야안은 모인 상인들에게서 다른 등급의 마정석들도 닥치는 대로 구입했다.

그렇게 중급 마정석을 비롯해 하급과 최하급 마정석들을 구입한 야안이었지만 그럼에도 1,700골드가량이 남아 있었다.

더 이상 무언가를 구입할 수 없는 지경이라 야안은 약간의 아쉬움을 남긴 채 마차를 몰고 마크 영주 성으로 향했다.

전쟁 소식에 마크 영지는 몸살을 앓고 있었다.

예전 전쟁의 공포가 이제야 가시려는데 이번에는 그와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전쟁이 대륙에 일어난 것이다.

마크 벨로치 남작은 몇 년 남지 않은 평화조약의 시효 만료를 앞두고 나프롬 자작가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와중에 이런 전쟁 선포 소식을 듣자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껄, 아리스께서 우리 마크가를 보살피시는구나. 이런 희소식이라니.”

다른 영지는 이제야 군사 물품이나 영지병을 조달하고 있지만, 자신은 달랐다. 10년을 넘게 조련한 기마병이 100에 5년간 숙달시킨 궁병이 200이었고, 또한 아카데미에서 배운 바를 기초로 삼아 여러 진법을 펼칠 수 있는 보병이 500이었다.

1,000명이 안 되지만, 그 질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강병이다. 아버지의 원수인 나프롬 자작가의 2,000 병력을 치기 위해 준비한 병력인 만큼 남작은 성의 보물이 남아나지 않을 만큼 돈을 긁어모아 고생하며 키운 병력인 것이다.

마크 남작은 이제 두 달밖에 남지 않은 전장으로 가기 전 준비를 할 시간이 이제 겨우 한 달가량밖에 남지 않았음을 알고 급히 징병을 시작했다.

700의 정병을 제대로 써먹으려면 그 두 배에 달하는 보조 병력이 필요했다. 물류 운송이나, 식사 물품 관리, 유사시에 써먹을 수 있는 병력 등으로 그만한 병력이 필요한 것이다.

징집을 하라는 남작의 명령서가 각지의 촌장에게 내려졌고, 베론 가한 또한 명령서를 받았다.

베론 가한은 명령서를 받자마자 한숨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는 집으로 가는 내내 터덜터덜 힘없이 천리만리 길을 앞둔 자의 걸음을 보였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이딴 것을 명령이라고 내린 마크 남작을 찢어 죽이고 싶었다. 아니, 매번 권력에 눈이 먼 이 미친놈들의 눈을 파 뒤집고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혼자 한참을 분기를 토해 내던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 이…… 이걸 어떻게 말하라고.”

아직도 아들들이 꿈속에 찾아와 울부짖는데, 그 미친 짓을 또 하라고.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눈앞이 캄캄했다. 요즘 들어 예전 젊은 시절처럼 몸에 활력이 돋았는데 지금은 기력이 쭉 빠져나가는 듯해 걷는 것도 힘들었다.

그는 멀리 가지 못하고, 나무 그늘 앞에 자리한 바위 위에 걸터앉아 거친 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숨을 고르면서 마음을 다스리려 해도 쉽사리 되지 않았다. 품속에서 담배 파이프를 꺼내 담배를 넣고 부싯돌로 불을 붙이려 했다.

딱, 딱…… 딱.

평소에는 몇 번 되지 않아 잘도 붙던 것이 아무리 해도 잘되지 않는다. 그는 몇 번 더 하다 이내 파이프를 내던졌다. 평소에 그렇게 아끼던 파이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아무렇게나 길거리에 떨어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빌어먹을, 별게 다 말썽이야, 말썽.”

그러며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이는데 허리춤에 아들 녀석이 주고 간 노리개가 보였다. 평소 그 녀석답지 않게 알록달록하게 색칠까지 해서 준 선물이었다.

‘정말 지랄 맞게 착한 녀석인데…….’

아내가 그 녀석을 데려왔을 때 자신은 딱히 마땅치 않았다. 당시 자신은 삶에 의욕이 없는 노인이었다. 죽을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게 아내의 부탁은 가당치도 않았다.

다 늙어서 아이를 데려와서 키운다고. 그것도 농노를.

하,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아내가 그처럼 강경하게 부탁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에 그는 결국 허락하고 말았다. 그녀도 나이 들어 넘치는 모성애를 주체할 수 없는 모양이다 싶었다.

여러 가지로 마음에 걸렸지만 뭐, 어떤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자신이 죽고 나면 아내는 누가 보살피지, 하는 생각에 그렇게 허락한 아이인데.

손으로 까칠까칠한 노리개를 매만지던 그는 중얼거렸다.

“말년에 무슨 복이 그렇게 많았던지.”

그래, 무슨 복이 그리 많았던가. 주신 아리스께서는 나에게 보물을 주었다. 너무도 귀한 보물을.

아내의 말처럼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낮에는 첫째 아들처럼 마당에서 검을 휘두르며 땀을 흘렸고, 저녁이면 둘째처럼 책을 읽으며 남작가의 집사가 되기를 꿈꿨다. 그러면서도 막내처럼 순해 빠져 아버지에게 무언가 도와주고 싶어 기웃거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 아이 덕분에 삶의 활력을 되찾았다.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 아이와 있는 내내 지금이 과거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되질 않아 꿈을 꾸는가 싶기도 했다.

그런 생각에 빠지려 할 때면 그 작은 손아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잡곤 했고. 그럴 때면 자신은 가슴에 무언가 가득 차오르는 감정을 어찌할 수 없어 그저 길게 담배 연기를 내뱉을 뿐이었다.

아, 나의 자랑스러운 아들. 나의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아들이여.

“오지 마라. 한 달만 더 외지에 있으려무나.”

하지만 자신의 바람과 달리 아들은 하루라도 더 일찍 자신들을 보기 위해 돌아올 것이다. 어제만 해도 아들이 올 시기가 늦어져 걱정했는데, 이제는 일찍 올까 걱정을 하게 되었다.

“빌어먹을.”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노리개를 매만졌다.

베론 가한은 야안이 시험에 붙을 것이라는 기적조차 바라지 못했다.

열일곱 살. 그건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최소 나이였다. 그런 어린 나이에 관료 시험에 붙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머리가 좋고 집에서 밀어주는 뛰어난 수재들도 기본 다섯 번은 깔고 간다니 제 아들 또한 못해도 그만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했기에 그는 아들이 군에 끌려가는 것을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기정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말하지.’

어떻게 말할까? 지금도 야안이 없음에 그토록 허전해하며 걱정하는 아내에게 어떻게 말할까.

“후……하하.”

그는 답답한 가슴을 몇 번이고 치며 울화를 다스리다 이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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