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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42화 (42/385)

야안 42화

멜리나는 야안의 손을 잡고 예전 처음 서로에 대해 마음을 전하던 나뭇가지 위로 올라왔다.

“와, 별이 마을에 쏟아지는 것 같아.”

그 나무 위에서만 볼 수 있는, 청명한 겨울 하늘에 자리한 수없이 많은 별과 마을을 잇는 지평선 너머를 보고 있자면 정말 별세계에 있는 듯했다.

멜리나의 말처럼 별이 마을에 쏟아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모습은 그가 외지에서 그리워하던 모습이었다.

그들은 이 멋진 광경 아래 그간의 못다 한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다.

멜리나는 야안이 축소하고 각색한 여행 이야기를 들으며 중간 중간 긴장감에 몸을 떨기도 했고, 웃기도 했다. 야안의 이야기를 듣고 난 멜리나도 야안처럼 큰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간의 소소하고도 재미난 일들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들으며 마치 세상에 둘밖에 없다는 착각에 빠질 때쯤 더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추운 날씨에 서로의 몸을 꼭 안은 채 말없이 서로의 숨소리를 들었고, 서로의 체향을 맡았으며,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그 순간이 왔다.

멜라나도 알고 있었고, 야안도 그녀가 아는 것을 알고 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야안은 그녀가 추울까 싶어 다시 그녀에게 마케를 펼치고 난 뒤에야 잠시 망설이다 어렵게 준비한 말문을 열었다.

“사랑이라는 책은 길고도 지루했어. 아마 누구도 그 책을 들어 올릴 수 없을 거야. 그 책에는 믿기 힘든 슬픔도 들어 있었어. 그러나 나는 네가 그 책을 읽어줄 때가 너무 좋아. 음악은 사실 사랑이라는 책에서 나와.

어떤 음악은 그저 초월하며, 어떤 음악은 정말 바보 같지. 하지만 나는 네가 그 노래를 불러줄 때가 좋아. 평생을 너의 목소리로 책을 듣고, 너와 함께 춤을 추며, 너의 손짓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그래, 그러니깐 너는 나의 반지를 받아야 돼.”

야안은 그 말을 끝으로 주머니에서 준비한 보석함에서 반지를 꺼내 들었다.

잔잔한 말과 함께 야안이 청혼을 하자 멜리나는 눈물을 흘리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이 복받치는 듯 야안이 끼워 준 반지를 바라보던 그녀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바보, 멍청이. 왜 울려.”

야안은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느라 바쁜 멜리나의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그는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그녀를 와락 안았다.

“울지 마, 바보야.”

“나 바보 아냐, 잉잉.”

어린아이처럼 투정부리는 그녀의 말에 야안은 더없이 행복하다는 듯 크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래. 너는 바보가 아냐.”

“어우어…….”

다시금 투정부리는 멜리나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야안은 다시 웃음을 크게 지으며 그녀를 더 꼬옥 안았다. 마치 그녀의 모든 것과 소통하듯이 그는 긴 시간 동안 가슴에 그녀를 안았다.

그날 밤 양쪽 집안에서는 크게 그들을 축하해 주었다.

멜리나는 야안이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부모님께 자랑했고, 야안은 부모님께 청혼했노라고 말했다. 베론 가한과 마리는 이미 짐작했듯이 놀라지 않고, 얼굴에 홍조가 핀 야안을 도닥여 주었다.

그중 마리는 기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자식을 셋이나 낳았지만 그중 한 명도 결혼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 가슴에 응어리가 되어 남아 있었는데, 이제야 야안이 그 응어리를 풀어주게 되었으니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아유, 이 좋은 날에 왜 이러는지.”

눈물을 훔치며 돌아서는 어머니의 모습에 야안은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

“어머니, 고마워요. 이 모든 것이 어머니 덕분이에요.”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축복보다는 욕지거리를 듣고 자라야 했고, 아버지의 며칠 술값에 농노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다른 농노들처럼 죽기 전까지 일해야 했다. 그것이 원래 자신의 인생이었다.

아니, 실제로 그녀가 자신을 구해주지 않았다면 자신은 브란에게 얻어맞아 버려진 날 마지막 숨을 뱉었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을 데려오면서 자신의 인생이 뒤바뀌었다. 아리스의 축복이 자신에게 내려졌으며, 친절하고 멋진 부모님이 생겨났다.

아버지의 그 근엄함 속에서 보이는 애정은 그가 몸서리칠 만큼 감동적이었고, 어머니의 한없이 자애로운 마음은 그가 눈이 다 부실 정도였다.

부모님을 모시면서 매일 기적이었고 감동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이분들 덕분에 자신에게 또다시 행운이 찾아왔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것이다. 철모를 어린 시절 옆집에서 인사를 나누던 동네 아이들이 커 청혼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그녀는 나의 아내가 되고, 머지않아 부모님은 손자, 손녀를 만나겠지.’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그녀가 좋았다. 그 나이 때의 다른 소녀들과 달리 허영심도 없었고, 어린 시절 내내 아팠던 탓에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을 잘 알았다.

그같이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녀는 누구보다 훌륭한 아내가 될 것이고, 어머니가 될 것이다.

야안은 그런 생각이 들자 미소를 머금다 그녀도 자신처럼 오늘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작게 웃음을 흘렸다.

확실히 그날은 잠이 오지 않았다.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한 번이라도 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고, 그녀의 미소를 보고 싶었다. 하늘의 태양처럼 밝은 금빛의 머리카락도 매만지고 싶었으며 그녀의 온기도 느껴보고 싶었다.

잠시 몸을 뒤척이던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일어났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땀이라도 흘리든지 해야지.’

야안은 탁자에 놓인 자신의 검을 쥐고 혹시나 부모님이 깨어날까 싶어 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짙은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마을 저장고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수련장에 도착한 것이다.

마나를 주입해 동굴에 모습을 드러낸 야안은 그간 여행에서 겪은 수많은 실전을 떠올리며 검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십사수검법을 한차례 끝까지 풀어내던 야안은 지난 오크와의 전쟁에서 보았던 황금 갈기 오크를 가상의 적으로 삼아 검을 펼쳤다.

뛰어난 눈과 현자 초급 마스터에 버금가는 그의 머리는 완벽하지 않지만, 황금 갈기 오크의 신위를 어느 정도 복원할 수 있었다. 과연 이라고 할까?

아직 자신과 비슷하거나 상위의 존재와 한 번도 검을 나누지 못했던 야안은 건곤대나이의 힘의 묘용에 힘입어 겨우 방어만을 하다가 이내 구의 발현이 무너지면서 목이 잘리고 말았다.

너무도 자세하게 복원한 탓에 야안은 섬뜩함을 느낀 나머지 자리에 무너지듯이 주저앉았다.

‘대단한 자들이었구나.’

자신과 같은 중급 익스퍼트의 경지였던 백작의 일검과 이검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합격술이라지만 이런 존재를 상대로 고작 둘이서 그만큼의 시간을 끌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너무 실력이 차이가 나니 수련이 되지 않았다.

‘그들을 수련의 대상으로 삼아야겠다.’

야안은 그중에서 실력이 좀 떨어지는 이검을 가상으로 복원해 검을 휘둘렀다. 과연 경험에서는 야안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건곤대나이라는 걸출한 힘의 묘용이 일어나면서 그와의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그래도 역시 조금 약세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야안은 복원하는 과정에서 수정을 통해 그와 같지는 않지만 좀 더 뛰어난 능력을 부가했기에 실상 야안과 이검의 실력이 크게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야안의 검 실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수련법은 예전 혼자 가상의 자신을 내세워 수련하는 것에 비하면 훨씬 도움이 되었다.

한참을 격전을 벌이던 이 가상의 전투는 야안이 이검의 팔을 하나 자르고 가슴이 찔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식은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던 야안은 뇌전의 정화를 꺼내 운기를 했다. 잠시 후 소모된 마나를 채운 야안은 조금 전 가상의 전투에서 확연히 달라진 것을 느꼈던 터라 자신의 상태를 점검했다.

[이름 : 야안

레벨 : 40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생명력 : 760

마나양 : 860

힘 : 23(+15)

민첩성 : 23(+15)

행운 : 21(+15)

지혜 : 20(+15)

마나 : 28(+15)

분배되지 않은 스탯 : 12]

[아이템 C+급(운에 일정 스탯 이상을 올린 그만이 찾아낼 수 있는 검법.)

이십사수검법(삼단검식과 팔방검식이 어우러지면서 그 숨겨진 이능에 눈을 뜬 이가 만든 검법. 대륙의 이름난 명가의 검법과 어깨를 나눌 만하다.)

습득률 : 100%

오랜 시간 이 검법에 공을 들인 그대는 전장의 경험과 스스로 수련을 통해 마스터할 수 있었다. 능히 그대는 명가의 검객과 수위를 다툴 수 있을 것이다.

*일순간 팔방에서 펼쳐진 적들의 공격에 대응할 수 있다.

*초식에 자유로워졌다. 초식을 새롭게 조합하면 강한 공격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건곤대나이

습득률 : 0.21%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을 마스터하면서 그 두 개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고 그로 얻게 된 고위 기술이다. 제6감각을 깨우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뛰어난 힘의 묘용이기도 하다. 아직 숙련된 자에 불과한 그대에게 너무도 과분한 것으로 진정한 힘의 묘용을 얻기 위해서는 상당한 고난의 세월이 필요할 것이다.

적은 힘으로 상대의 힘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옮기며 자신을 보호하고 적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

*마스터하면 어떤 종류의 힘이든(마법이든, 물리적인 충격이든) 힘의 방향을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다.

*습득률이 높아질수록 한 번에 해결할 힘의 개수가 늘어난다.]

혹시나 하여 열어본 정보 창에서 그는 달라진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7년간 그토록 연마했던 이십사수검법을 드디어 마스터하게 된 것이다.

과연 명가의 반열에 들 만한 검법이라 할까? 마스터하면서 초식에 자유로워졌다는 점에 야안은 크게 기뻐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때문이다.

초식의 연계는 중요하다. 초식이 연계되면 예측 불가능한 변식으로 상대의 시선을 빼앗을 수 있다. 그로 시간을 버는 것과 동시에 상대의 초식이 꼬이게 되고 이로써 자신은 한 호흡의 여유를 찾아 상대의 빈틈을 노릴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이 또한 상대는 멀고 자신은 가깝게 하라는 말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상대는 준비되지 않았는데 자신은 이미 준비되어 상대가 막을 자세도 취하기 전에 검을 휘두르는 것이니 상당한 이점을 취하는 것이다.

검법의 습득률이 높아질수록 그 연계 방법도 늘어나는데, 그래도 그 연계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제한이 풀렸으니 이제 이검만이 아닌 일검과도 자웅을 겨룰 만할 것이다.

그뿐인가?

마스터하면서 얻게 된 점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연습하고 궁리해야겠지만, 자신의 초식들을 조합하면 강한 일격을 할 수 있게 되니 이것은 야안의 숨겨진 검이라 할 수 있었다.

잠시 이십사수검법을 마스터한 것에 기뻐하던 야안은 건곤대나이의 습득률이 극악하기 그지없는 것에 혀를 찼다.

이는 확실히 아직 입지 말아야 할 옷을 입은 듯한, 고차원의 힘의 묘용 때문이라 오직 지금과 같은 식의 수련을 하다 보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금 더 많은 전투 경험들이 필요하겠구나.’

고언에 강해지고 싶으면 실전을 겪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했는데 야안은 자신의 경험을 정리하면서 과연 그렇다고 생각했다.

현재 그의 레벨은 7레벨이 올라가 40레벨이 되어 있었는데 이는 몬스터 토벌전에서 공을 인정받아 올라간 경험치 덕분이었다.

이틀 전에 마크 영지로 오면서 정산되어 온 경험치로 야안은 그제야 토벌전이 끝이 났음을 알았다.

아무래도, 큰 전쟁이 앞둔 상태라 어쩔 수 없이 토벌전을 끝낸 모양이었다.

‘백작이 운이 나쁘구나.’

야안은 당시의 라쿤 백작의 심정을 이해할 것 같았다.

비통할 것이다. 겨우 대족장을 물리치고 이제 영지의 힘을 모아야 할 때인데 나라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으니 그로서도 어쩔 수 없이 출정을 나가야 할 것이다.

대족장을 물리치지 못했으면 모를까? 그를 물리친 지금 왕이 부르는데 나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남아 있는 군사들을 수습해 가야 하는 만큼 전쟁에서 그의 발언권은 크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잠시 이런저런 생각 끝에 자신과 인연이 있었던 자들인 케일 일행과 자신의 친구들인 하이일, 하이이 형제가 무사하기를 기원하던 야안은 마나를 거두어 동굴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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