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54화 (54/385)

야안 54화

고위 현자에서도 비기너와 익스퍼트의 경지가 큰 벽이 있는 것처럼, 중급 현자 또한 그러했다.

비기너가 살짝 발을 걸치는 정도였다면, 익스퍼트는 온전히 그 경지 안에 들어가 그 경지에서 할 수 있는 대부분의 마법을 펼칠 수 있다.

이러한 실정이니 야안이 말한 바는 아주 컸다. 그 이유는 폐쇄된 던전에서 그가 익스퍼트에 오른 지 겨우 두 달이 좀 넘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하나는 그가 만들어낸 마법 물품 때문이었다.

야안은 두 달 전 완성한 ‘파’의 주머니 덕분에 중급 현자 익스퍼트의 경지를 수습하는 시간을 상당히 줄일 수 있었다.

‘파’는 고대 마법으로 상대의 감각을 빼앗는 마법 중 가장 낮은 급의 마법으로, 현 대륙에서 쓰이는 블라인드라는 마법과 비슷하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른 뛰어난 마법이다.

블라인드는 공기 중에 떠도는 수분을 이용해 빛을 굴절시켜 시야를 가리는 것이나, 이 ‘파’의 고대 마법은 상대의 감각 중 시각을 임시로 지워내는 마법이다.

펼친 이의 마나가 고갈되지 않는 한 유지되는 장점도 있었다.

이 ‘파’라는 고대 마법은 앞서 말했듯이 하위의 마법으로, 그 위로 ‘파토’가 있으며 그 마법은 시각뿐 아니라 촉각마저 지우는 마법이다.

촉각을 지움으로써 상대가 공격을 당해 뼈가 보이고 피가 터져 흘러도 고통도 인식하지 못한 채 죽음에 이르게 되는 무서운 마법이기도 했다.

‘파토’의 위로 ‘파토론’이 있다. 인간의 모든 감각을 지우는 절대 마법으로, 실제 의식과 몸의 모든 감각이 사라져 그자를 식물인간의 상태로 만든다.

아무리 뛰어난 강자라 해도 이 마법에 걸리면 어린아이의 검에도 죽음을 맞아버리니 상대 입장에 있어서 이것은 아주 치욕스러운 죽음이기도 했다.

‘파토’부터의 마법은 ‘카’의 마법 체계처럼 고위 현자에 올라가서야 펼쳐지는 것이다. 다만 이 마법의 유일한 약점이라면 자신과 비슷한 경지의 상대가 마법을 경계할 경우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무서운 힘을 보이는 마법들은 본래 공격의 용도로 쓰려고 만든 것이 아니었다.

대현자 테무드가 자신과 제자들의 수련을 위해 만든 것으로, 언제나 열려 있어 깊이 인지하기 어려운 오감을 통제해 가두어 그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자아 성찰의 극치에 다다른 수련법으로 쓰였다.

야안 또한 그 사실을 깨닫고, 두 달 전부터 육대검식과 마법을 수련할 때면 ‘파’를 펼쳐 시각을 지웠다.

인간의 감각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시각이 지워지자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머리는 그동안 정보를 받아들이던 시각이 사라지자 다른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려 노력했는데, 그 덕분에 조금씩 자신이 느끼는 세상의 다른 면을 접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직접적으로 중급 현자 익스퍼트의 경지를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정작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앞서 말했듯이 번개 맞은 나뭇조각과 미스릴 실, 중급 마정석 한 개와 하급 마나석 다섯 개로 만든 ‘파’의 주머니였다.

이 ‘파’의 주머니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이다. 사실 그 목적이 아니고서는 그처럼 쓸데없이 거대한 비용과 시간을 잡아먹는 마법 물품은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파’의 주머니

등급 : D-

고대 마법인 ‘파’가 약하게 반영구적으로 걸려 있다. 주머니 주위로부터 시야를 가리는 마법이다. 그 외의 특이 사항은 없다.]

정보 창에서 보았듯이 이것은 보는 이의 시야를 일시적으로 가려 주머니 속의 물건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것을 투과해 빛을 발하는 뇌전의 정화를 숨기기에 적합했다.

그 때문에 야안은 주머니에 뇌전의 정화를 넣고 평소에도 지니고 다닐 수 있었는데, 덕분에 익스퍼트를 수습하는 과정을 무리할 정도로 밀어붙여도 탈이 없었다.

이 무리할 정도로 밀어붙여도 탈이 없다는 의미는 그가 시간을 잡아 전력을 다하는 수련 시간에만 도움을 준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모든 시간을 수련에 집중하여도 탈이 없다는 뜻이었다.

오랫동안 뇌전의 정화를 몸에 가까이하자, 그 묘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의 정신은 마치 운기를 하던 때처럼 항상 맑아 최상의 상태로 자리 잡았고, 복수면으로 집중력도 극대화되어 그는 두 달간 폐관 수련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파’의 마법으로 수련하기 시작했으니, 그 시너지 효과로 인해 이루 말할 수 없이 빠른 시간에 중급 현자 익스퍼트 경지를 완전히 수습하는 단계에 온 것이다.

이 같은 폭발적인 성장력은 자만을 불러오게 마련이나, 뇌전의 정화의 묘용과 2년 전 스스로 부족함을 깨달았던 바가 있어 그는 언제나 자세를 낮추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직 이른 새벽.

방을 나선 야안은 어제 우기의 영향으로 짙은 습기를 느꼈다. 봄이라 하지만 새벽이라는 점과 짙은 습기로 기온은 서늘했다.

다시금 닭 울음소리가 들려오는데, 저 멀리서 그 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기합 소리가 은은히 야안의 귓가를 스쳐 지나갔다. 야안은 그 소리의 정체를 잘 알기에 입가에 미소를 띠며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무 명에 달하는 사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이제 막 성인이 되었던 터라 아직 앳된 모습이 보였으나, 윗옷을 벗어 던진 그들의 몸을 본다면 누구도 그들을 앳되다 여기지 못할 것이다.

극한의 훈련을 겪은 이처럼 그들의 몸은 조밀한 근육으로 짜여 한 점의 불필요한 지방도 보이지 않았다. 또한, 숱한 대련을 통해 온몸이 흉터투성이인 모습만으로도 노련한 용병조차 쉽사리 얕보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일반적으로 사내들이 흉터를 보여주며 자랑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흉터가 많을수록 크게 부끄러워하였는데 이는 스스로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대련 시 집중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전 같은 대련을 목표로 삼고 있는 그들에게 이런 흉터는 사선에 나섰으면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니 부끄러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탈론 수련법을 막 끝낸 듯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는데 사늘한 날씨와 만나자 눈에 보일 정도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들은 평소의 십사수검법이 아닌 다른 형식으로 검을 펼치고 있었는데, 서로 간의 일정한 간격과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야안이 ‘파’의 주머니를 만들면서 마무리 지었던 약식 검진이었는데, 야안은 이 검진을 오방 검진이라 이름 지었다.

다섯 방향을 점 지어져 펼치는 검진이라서 만든 이름이었다.

지금 최정예로 구성된 60명의 검사 중 고르고 고른 이들 20명이 펼치는 것이라 야안이 구상한 모습보다 더 뛰어난 위용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번 상행에 동행할 이들로, 테리를 대장으로 1, 2조 조장이 그를 따르며, 하급 유저들의 끝자락에 자리한 열일곱 명의 검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오방 검진을 수련한 지 이제 두 달의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으로도 대단한 힘을 발휘할 듯했다.

하급 유저 다섯이 펼치는 오방 검진만으로도 상급 유저를 제압할 것으로 보였고, 열이면 상급 유저 셋을 제압할 것이다.

그리고 테리와 1, 2조 조장이 함께한 이 스무 명이 펼치는 오방 검진이라면, 초급이라지만 익스퍼트 검사의 움직임을 묶을 수 있다.

본래 초급 익스퍼트 검사를 상대하려면 일반적으로 스무 명에 달하는 중급 유저와 다섯 명의 상급 유저가 필요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 오방 검진이 얼마나 뛰어난지 설명이 될 것이다.

다만 아직 약식이라 자신보다 많은 적과 상대할 때 이만큼의 묘용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렇다 해도 최소 50% 전력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다수의 적과의 싸움에서 이 오방 검진이 크게 효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이 오방 검진이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한 검식이기 때문이다.

이 오방 검진의 그 동선을 제외하고 어디에서 누가 와 자리를 잡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던져놓고 간단히 본다면, 셋은 방어를 둘은 공격을 하는데, 방어를 하는 이들이 상대의 시야를 가리며 아군의 공격을 돕기에 상대의 수가 적을수록 이 검진의 효력은 크다.

하지만, 지금 오방 검진을 펼치고 있는 이 스무 명은 겨우 두 달이라는 시간을 투자한 이들치고는 매우 뛰어난 바가 있는데, 이는 테리의 영향이 컸다.

테리는 이번 상행 호위로 대원들이 뽑히자, 그들에게 복수면을 권유했다. 그가 보았을 때 주군이 가르쳐준 이 오방 검진은 매우 뛰어난 점이 있었다.

이 오방 검진을 잘 소화할 수 있다면 긴 시간의 험한 상행에서 사망할 대원의 수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비록 힘들지만 이들에게 권유를 한 것이다.

대원들은 존경하는 자신의 대장이 벌써 2년 동안 이 복수면을 행하고 있고, 그 덕분에 많은 이점을 얻었으며, 또한 이 상행에서 자신들의 생명을 걱정하는 마음을 알아 흔쾌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그들의 첫 주는 죽을 맛이었다. 평소의 훈련량에 더해 복수면으로 남는 일부 시간을 다시 훈련에 더하고, 또한 이론적인 수업과 스스로 검을 고찰하는 시간을 가지는지라, 그들의 몸도 정신도 피폐해져 갔다.

야안이 준 마법 물품이 있지만 마케의 효능이 약해 그 정도까지 무리하는 데에 효능을 기대하기 어려웠다.

야안은 그 사실은 뒤늦게 알아, 틈틈이 이들을 방문하여 마케를 걸어주고 힐을 펼쳐 주었는데 그때부터 이들은 조금씩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지금이라, 야안은 이 충실하기 그지없는 이들을 보며 작은 감동을 느꼈다. 한동안 그들의 모습을 살피다, 이내 다가가 부족한 점들을 지적하여 가르쳐주고, 돼지를 잡아 훈련에 지친 그들에게 작은 보상을 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