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82화 (82/385)

야안 82화

그는 그들로부터 그간의 사정들을 들었는데, 자기들 때문에 생긴 떠돌이 코볼트 무리와 오크 무리들을 만난 것 외에는 큰일은 없었다는 말에 안도했다.

또한 생각보다 안정적으로 돌아간 탓에 영지에서 2,000명의 인부를 더 요청하여 3교대로 돌리며 하루 종일 목책을 지은 터라 벌써 자신들이 넓힌 영역의 10%를 끝냈다는 말에 놀라워했다.

야안은 예상한 것보다 빠른 형태로 목책들이 지어져 가자 안도를 표하며, 다음번 물자 운송에 가져와야 할 물건들을 정리한 서류를 건네주며 다시 몬스터 토벌을 시작했다.

그렇게 몬스터 토벌 일은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하지만, 야루스 산맥에서 영역 싸움에 패해 내려와 터를 잡은 오크들로 난항을 겪게 되었다.

부족은 거대했다.

주위의 오크들을 흡수한 탓인지 하급층 오크만 5,000에 달했고, 오크 전사들 숫자만 해도 30에 달했으며 오크 족장은 호후도칸급이나 패한 족장인 만큼 그 실력이 약한 편인데 겨우 초급 익스퍼트에 발을 내민 상태였다.

하지만 함께한 회색 늑대들의 숫자가 50에 달하고, 회색 늑대를 탄 전사급 이상의 오크들의 실력은 놀라울 만큼 상승된다.

족장의 실력은 초급 익스퍼트에 약간 부족한 실력자라 해도 회색 늑대를 탑승한 경우 노련한 초급 익스퍼트의 실력을 지녔다고 봐주어야 했다.

야안은 설마 그들의 영역이 자신들이 목표로 한 영역까지 내려올 줄 몰랐기에, 피해 가려 하다 생각을 고쳐 그들을 토벌하기로 했다.

야루스 오크들이 얼마나 번식력이 뛰어나고 사나운 존재들인지, 예전 대규모의 몬스터 토벌 때의 일로 인해 잘 알았기에 하는 일이었다.

만약 이대로 10년이 흘러간다면 주위의 모든 오크를 휘하에 들일 것이고, 지금 겨우 50밖에 되지 않는 오크 전사들 또한 못해도 다섯 배 이상으로 불어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호후도칸급이라 하나 아직 애송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의 오크 족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숙한 모습들을 버리고, 노련한 호후도칸급의 족장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열 배에 달하는 병력과 스무 배의 자원의 소모가 있어야 토벌을 시도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니 무리를 해서라도 당장 토벌을 아니 할 수 없었다.

오히려 야안은 더 크게 성장하지 않을 때 그들을 발견했으니 운이 좋았다 생각했다.

야안은 목책을 지키고 있는 제2군단의 병력 반을 포함하고, 전령을 보내 대규모의 물류 운송으로 엄청난 전쟁 물자를 준비했다.

이후 각 백인대장에게 이들과의 전투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을 알려주어 대비를 하게 했다. 이후 눈이 밝고 발이 날랜 자들을 보내어 그들의 세력을 살폈고, 그렇게 준비 기간만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오크들 또한 특유의 발달된 후각 능력으로 인간들의 군대가 자신의 영역 근처에 있음을 알자 크게 반기며 그들의 전투를 준비하였다.

특히 최근 상당수의 대형 몬스터들이 사라지면서 시시한 오크 통합 따위의 일에 무료해하던 오크 전사들은 크게 흥분하였고, 지난 족장 후계 싸움에서 밀려 울분이 가득한 오크 족장 또한 이번 전투를 통해 지난 일의 울분을 날려 보낼 수 있다 생각해 크게 기뻐하였다.

동원된 오크들 수는 오크 전사 스물다섯 마리와 3,000에 달하는 하급층 오크들과 마흔 마리의 회색 늑대들이었다.

그렇게 몬스터 토벌대가 영지 영역 복구를 위해 나선 지 한 달이 지날 무렵, 그들은 오크의 영역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야안은 기감을 열어 매복된 오크들이 있는지 살폈으나, 그런 일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보다 실력이 크게 우위에 있다 생각한 탓인지 오크들은 크게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오오오.”

회색 늑대들의 울음소리가 산속을 메아리치며 울리기 시작했고, 인간들 또한 준비된 북소리가 울려 퍼지며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제1군단에서는 그동안 준비한 약식 목책들을 세우고 그 뒤에서 달려드는 오크들을 기다렸다. 별동대 또한 약식 목책을 세운 뒤 제1별동대를 앞세워 육합 검진을 준비하게 하고 그 뒤를 제2별동대가 삼방 검진을 준비하여 그들을 받쳤다.

후두둑, 후두둑.

제1군단의 궁병들은 가장 먼저 앞서 달려오는 오크들을 향해 쉴 새 없이 화살을 쏘았고, 오크들은 미리 준비한 나무들을 들어 올려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역시 야루스 산맥의 오크들에 비해 힘이 부족해 화살에 꿰이는 오크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여기저기서 진형이 주춤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실상 그것으로 크게 이득을 보려 한 것이 아니었고, 오크들의 돌격을 막는 게 목적이었기에 오크들의 진형이 무너지는 모습에도 야안은 약간의 이득을 취했을 뿐이라 생각할 따름이다.

그는 이내 지시를 내려 미리 걸어둔 단창들을 던지게 하였고, 이에 꾸역꾸역 자신들과 거리를 좁힌 오크들을 살상하기 시작했다.

단창병들에게 각자 두 개의 단창을 준비해 두게 하였기에, 50명씩 던지고 나아가기를 하며 오크들을 살상하기 시작했다.

앞서 달려오던 3,000의 오크들 중 500마리가 죽어나갔는데, 그 모습을 뒤에서 따라오며 바라보던 오크 족장은 길을 열어 늑대들을 탄 오크 전사들과 함께 기습적으로 공격을 가했다.

그 때문에 순조롭게 준비된 대로 흘러가던 토벌대가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약식 목책을 뛰어넘은 회색 늑대들의 모습에 놀라던 제1군단은 순간적으로 30명이 죽어나가고, 40명이 큰 부상을 입었지만,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그들을 맞아들였다.

챈들러는 야안이 공을 들여 키운 제2군단의 1백인부대를 이용해 단창들을 날리며 그들을 견제하게 하더니, 그 자신은 가장 앞에서 병사들을 쳐 죽이는 족장에게 달려나갔다.

카가가강!

검기가 실린 챈들러의 검과 오크 족장의 거대 도끼가 부딪치자 순간 그들이 타고 있던 늑대와 말이 휘청거렸다.

오크 족장은 자신의 손을 저릿하게 만드는 챈들러의 검에 즐겁다는 듯 크게 웃음을 흘렸다.

“쿠룩쿠룩. 크하하, 좋군. 너라면 쿠룩, 나의 도끼를 받을 자격이 있다, 쿠르륵.”

오크 족장의 도발이었지만 챈들러는 관심 없다는 듯 작은 표정의 변화도 없이 묵묵히 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순식간에 수십 합이 흘러갔다.

단순히 그 개인의 실력은 야안의 지도를 받은 챈들러가 우세였으나, 기동력에서 크게 밀렸다.

결국, 그가 타고 있던 전투마는 늑대의 위협에 겁을 먹기 시작했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회색 늑대는 앞발로 전투마의 목을 부러뜨렸다.

일이 그렇게 되자 챈들러는 홀로 거대 회색 늑대와 오크 족장을 같이 상대하게 되었는데, 기동력이 떨어지며 그 두 존재의 합격에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오랜 용병 생활에서 얻은 실전 감각과 이십사수검법의 묘용에 힘입어 간신히 버티고 있기는 하나, 그도 지닌 마나가 다 소모되면 꼼짝없이 그들의 합격에 당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마치 화살 같은 무언가가 자신에게 앞발을 휘두르는 회색 늑대의 미간을 뚫고 지나간 것은.

그것은 화살도 아닌 뜨거운 불과 같은 것이었는데, 화력이 대단해 그 한 번으로 가죽과 뼈를 뚫고 뇌를 녹여냈다.

결국 거대 회색 늑대는 두 눈에 진물을 흘리며 요란하게 땅의 먼지를 흩날리며 쓰러졌고, 챈들러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당황한 오크 족장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회색 늑대가 쓰러지며 일순간 중심을 잃었던 탓에 오크 족장은 그 이후 내내 챈들러에 의해 수많은 곳에 부상을 당하다, 도끼가 부서지는 것과 동시에 그의 목이 떨어졌다.

챈들러는 비록 미숙한 실력을 지녔다 하나 호후도칸급의 오크를 자신의 손으로 해치우자 잠시 믿기지 않아 스스로 살피다, 이내 비명을 지르는 수하의 신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오크 족장의 목을 베어 근처에 놓인 장대에 꽂아 올리며 소리쳤다.

“나 챈들러가 오크 족장의 목을 베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장대를 대지에 세차게 내리꽂더니 그 희소식에 사기가 오른 병사들과 함께 회색 늑대와 오크 전사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비록 오크 족장과 싸우느라 많은 체력과 마나를 소모하였다지만, 죽어나가는 수하들로 그의 검은 점차 바빠졌다.

챈들러가 그처럼 힘겹게 싸워갈 때쯤, 야안 또한 적진의 깊숙한 곳에서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마치 흘러내리는 빗물처럼 오크들 사이에 스며든 그의 검에 오크들은 자신의 죽었다는 것도 모른 채 죽음을 맞이했고, 그렇게 야안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밀리고 있는 진형을 돕기 바빴다.

다행히 별동대 쪽은 얼마 돕지 않아 검진으로 인해 이제는 크게 승기를 잡고 있었기에, 야안은 점차 군단이 있는 곳으로 몸을 움직였다.

그곳에서 회색 늑대 따위를 베어내고 크게 밀리고 있는 진형을 돕던 야안은 챈들러가 크게 곤경에 처한 것을 보고 직접 오크 족장을 죽이려 하다, 그 상대가 챈들러의 경험을 쌓기에 아주 좋은 상대임을 알고 파이어 핑거를 펼쳐 회색 늑대만을 처리했다.

과연 그의 판단대로 회색 늑대가 죽고 나자 챈들러는 얼마 되지 않아 오크 족장을 물리칠 수 있었고, 그 또한 전장에 끼어들자 크게 사기가 오르며 점차 인간 군대 쪽으로 승기가 기울기 시작했다.

자신이 패전한 것임을 깨달은 이제 다섯밖에 남지 오크 전사들은 천도 되지 않는 하급 오크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야안은 지금의 호기를 놓치면 다음 전투에 크게 피해를 볼 수 있음을 알았기에, 이내 지친 병사들을 독려하여 그들을 뒤쫓았다.

그렇게 반나절을 추살하던 군대는 오크 마을과 하루 거리를 남기고 나서야 멈추어 섰다.

이후 야안은 정찰을 보내어 오크 마을을 조사하게 하였고, 한편으로는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조잡하게나마 가르친 치료술이 도움이 되었기에 죽었어야 할 이들은 숨이 붙어 있었고 야안은 리젠으로 그들을 살려낼 수 있었다.

이후 급한 중상자들부터 치료를 시작한 야안은 그들을 후방으로 돌려 다음 물자 운송 때 그들을 돌려보내기로 했다.

한나절을 붙들어 급한 환자들의 치료를 끝낸 야안은 그제야 전투 후 병력들의 보고를 받을 수 있었다.

야안은 그들의 보고를 받으며 생각한 것보다 큰 피해에 침음을 흘려야 했다.

그들 중 가장 큰 피해를 본 이들은 제1군단으로 이들은 사망자만 70명에 달했고, 중상자가 30명에 경상자가 200명에 달했다. 그야말로 반 이상이 피해를 본 것이다.

다행히 우려를 한 제2군단은 후미에 있고, 워낙 그들의 공격 형태가 방어를 중점으로 벌인 것이라, 제1군단의 피해의 반도 되지 않아 그나마 침음한 야안의 마음을 풀어주었다.

별동대는 처음부터 야안과 함께 싸운 터라 사망자는 다섯 명에 불과했고, 그 외의 부상도 심각해 봐야 중경상 정도라 우려할 정도는 아니었다.

야안은 손실된 마나를 채우기 위해 운기행공을 하다 뒤늦게 병사들의 다음 전투를 정비를 끝내고 자신에게 찾아온 챈들러와 함께 앞으로 진행 상황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테리 또한 정비를 마친 뒤 함께하여 야안과 챈들러 사이에서 전략들에 대한 의견을 들으며 배워나갔다.

곧 정찰 나간 이들이 돌아와 그들로부터 현재 오크들의 병력 규모를 알아낸 야안은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지금 자신의 병력이 크게 우세함을 살릴 수 있게 야간 전투를 시행하기로 했다.

그는 궁병들에게 불화살을 준비하여 시야를 밝히도록 하였고, 병사들에게도 횃불을 준비시켰다.

야간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인간들 입장에서도 큰 위험 부담을 안고 가는 것이나 오크들만큼은 아니었다.

오크들은 밤이 되면 오감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니 이 야간 전투는 생각한 대로 풀어갈 수 있다면 별다른 피해 없이 그들을 추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달도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스산한 나무들 사이로 한겨울의 사나운 소리가 울려 퍼졌고, 야안은 조금 전 오크족의 목책을 태우기 위해 또 다른 전략을 구사했다.

간단하게 만든 수레 안에 기름을 묻힌 나무를 넣어 말이 끌게 하여 그것으로 혼란과 함께 목책을 태우려는 것이다.

오크들은 전사들의 지시로 경계를 서다 저 멀리서 요란한 말굽 소리와 덜컹거리는 소리에 비상 북을 울렸고, 이내 여기저기서 수면을 취하던 오크들이 요란스럽게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마차들이 일을 끝내고 돌아간 뒤였고, 저 하늘에서 불화살들이 쉼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긴 꼬리를 지닌 유성을 보는 듯한 불화살들의 모습에 오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이내 목책과 부딪힌 기름 묻은 나무들에 화살들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곧 목책을 원료로 삼아 커다란 불이 일어났고, 그 불은 거센 겨울바람에 주위 목책뿐만 아니라 주위의 나무들에도 들러붙어 그야말로 주변 일대는 불지옥을 보는 듯했다.

오크들은 어둠 속에서 갑자기 눈을 피곤하게 하는 불이 솟자 우왕좌왕했고, 이내 불은 그들이 머물던 판잣집에도 붙었다.

매캐한 연기에 오크들은 눈, 코, 입에서 이물질을 흘리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우왕좌왕하다 몸에 불이 붙기도 했다.

오크 전사들은 인간들의 화공에 비겁하다 생각해 크게 성을 내며 하급 오크들을 다스리려 했으나, 연기와 살을 녹일 듯한 뜨거움에 쉽사리 그 뜻을 이루기 어려웠다.

그때를 기회로 삼아 야안은 불붙은 목책 주위로 미리 준비한 약식 목책들을 세워 그들의 도주로를 막았고, 단창을 걸어 그 기세를 더욱 꺾어놓기로 했다.

곧 오크 전사들이 회색 늑대와 함께 불에 탄 목책들을 부수며 도주 통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오크들은 살길이 열리자 오크 전사들을 따르기 시작했다.

겨우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곳을 벗어난 그들이었으나, 이미 준비된 단창들에 그들은 속절없이 몸이 꿰이며 죽어나갔고, 다시 화살이 내리기 시작했다.

오크 전사들은 주위의 오크들을 방패로 삼아 나아갔으나, 약식 목책들을 겹쳐 만든 것에 움직임을 방해받았을 때 이내 테리와 제1별동대가 오크 전사들을 맡기 시작했다.

오크 마을을 불태우던 불이 산의 다른 나무에 옮겨붙기 시작했는데 야안은 미리 준비한 흙을 끼얹어 불길을 막도록 지시를 내렸다.

시간이 흘러 제1별동대에 발이 묶였던 오크 전사들은 하나둘씩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자신들을 지도하던 이들이 죽자 오크들은 더욱 혼란에 빠졌는데 곳곳이 전소되어 살길을 찾은 오크들은 그곳을 나서자마자 인간들이 막은 약식 목책을 만나게 되었고 그것을 채 넘지 못한 채 창에 목이 꿰어 죽음을 맞이했다.

결국 하나둘씩 질식사로 오크들이 죽어나갔고, 더 이상은 의미가 없다 판단한 야안은 물을 적신 수건으로 코와 입을 가린 부대들을 내보내어 준비된 흙과 물로 불을 끄기 시작했다.

하지만 워낙 거대한 불길이라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새벽이 지나 해가 떠오른 뒤에야 불길이 잡혔고, 그제야 가려진 검은 연기 너머 전소된 오크 마을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적지 않은 전장을 누볐던 챈들러는 물론이었고, 야안 또한 그 참혹한 모습에 말문을 잃어야 했다.

비록 자신들의 적이었고, 인간이 아닌 오크 따위에 불과하지만, 골수가 뒤섞인 채 타오르고 핏물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은 그 모습은 구역질이 나기 충분했다.

야안은 헛구역질을 하는 병사들을 독려하여 오크들의 시체를 땅에 파묻어 치우게 한 뒤, 주위에 척후병들을 보내어 모여든 몬스터들이 있는지 확인하게 하였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이 주위의 모든 몬스터들의 두려움이 대상이 된 오크 부족을 해치운 그들의 영역에 침범하려는 대범한 몬스터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멀리서 그 전투를 지켜보던 몬스터들은 하나둘씩 자신의 영역을 뒤로하였고, 그 덕분에 토벌대가 처리해야 할 몬스터들의 세력은 크게 줄어들었다.

야안은 고약하게 화염 속에 녹아버린 오크들을 땅에 묻게 한 뒤 병사들로 하여금 약식 목책을 만들어 자신들이 넓힌 영역을 둘러싸게 했다.

이후 테리에게 별동대를 이끌어 주위에 남은 몬스터들을 소탕하라 명했고, 챈들러에게는 자신들이 빼앗은 오크 대부족의 영역에 약식 목책 세우는 일을 총괄하게 했다.

야안은 척후병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지도에 길을 더해 주위 지리를 추가하여 자신들이 확보한 땅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였다.

그 결과, 지금 자신이 확보한 땅은 애초 목표였던 것보다 20% 정도가 더 넓음을 알았는데, 이는 그만큼 마지막 오크 대부족의 영역이 넓었음을 뜻한다.

야안은 이 중 지키기 어려운 부분들은 과감히 포기하였다. 60% 이상이 산지라 욕심을 내어보았자 옥수수나 감자 따위를 수확하거나 목재, 석재를 얻는 것 이외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지키기 힘든 부분을 떼어놓고 보니, 그가 확보한 땅은 목표로 잡았던 것에 90%에 달하였다.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흙의 질 또한 좋아 화전을 하기에도 적합했다. 야안은 목책이 다 지어진 뒤에는 화전의 영역을 넓히기로 하고, 후에 이곳의 터를 닦아 마을을 만들기로 했다.

야안은 척후병들로부터 계속 오크의 영역 지리에 대한 보고를 받으며, 주위 지형들을 자세히 그려나갔다. 그러다, 전 오크 영역에 질 좋은 대리석 산이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 규모는 여타의 대리석 산에 비해 작은 규모였지만, 척후병이 가져온 조각을 보았을 때 그 질은 제법 뛰어나 보였다.

대리석은 단단하고 빛깔이 좋아 귀족들의 건물 내에 쓰이거나 많은 조각품 등에 쓰이는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전문가가 있어야 알겠지만 보통 스무 개 종류의 대리석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야겠군.’

비록 규모는 작을지 모르지만, 대리석 산이다. 이것은 앞으로 와인 이외에도 마크 영지의 또 다른 특산물이 될 것이다. 또한,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는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잠시 고민하다, 론에게 서신을 보내어 전문가를 찾아보라 하기로 했다. 현재 도회지 쪽에서 대상인 밑에서 일을 배우는 론이라면 방법을 강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계약 조건도 후하게 쳐주기로 했다. 일종의 관리직을 맡길 생각인데, 그 심성이나 사람 다루는 솜씨에 따라 관리직의 직위를 조절할 생각이었다.

야안은 그곳으로 시찰을 나가 대리석 산의 규모와 그곳에 마을을 형성할 대지를 살펴보았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제법 넓은 벌판이 자리했고, 시냇물도 흐르고 있어 사람이 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이곳에 상당 규모의 마을을 건설하여 지원자에 한해 일을 줄 생각이었는데, 야안은 이곳과 영지의 거리가 먼 것을 생각하며, 중간 중간 작은 마을을 몇 개 더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운송 또한 간편해질 것이고 인적이 많은 만큼 빠르게 이곳을 영지에 편입할 수 있을 것이다.

오랫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만큼 초기에는 고생을 할지 모르나, 이후 벌목이나 약초 채집으로도 마을을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대리석의 운송을 위해 마을마다 영지까지 이어지는 작은 도로를 건설할 생각이라 이동에도 큰 불편이 없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