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91화
그는 그것을 이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했다. 그 때문에 야안은 스스로 신관의 능력을 지닌 것만을 마크 자작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이미 윌 백작가에서도 아는 사실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챈들러 같은 이가 왜 자신의 영지에 속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
챈들러는 그 사실들을 자신에게 아낌없이 공유하는 주인에, 격정에 몸을 떨어대었다. 자신을 그처럼 신뢰한다는 것에 크게 감격한 것이다.
고작 1년의 세월을 함께하였을 뿐인데, 그의 주군에게도 말하지 못한 것을 자신에게 밝히니 야안의 명령이라면 그는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들라고 해도 크게 반길 만큼 깊은 경의를 보였다.
나뭇가지를 쑤시며 모닥불의 불씨를 살리던 챈들러는 오한에 젖어 식은땀을 흘리는 마크 자작을 위해 품을 뒤져 주인의 주군의 몸 위에 마케의 조각을 올려놓았다.
그것이 몸의 회복을 돕는 마법 물품임을 알아서인데,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마크 자작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분을 위해서라도, 이분을 지킨다.’
사람을 죽이는 것 외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는 자신이다. 그마저도 그분에게 비하면 변변찮았다.
그렇기에 그는 야안을 도울 방법은 마크 자작을 도와 터전을 닦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할 뿐이다.
다음 날, 마크 자작은 이상하게 그날은 몸이 아주 가벼워졌음에 의문을 가졌다.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를 것 같건만, 어찌 된 일인지, 그날은 그런 고통도 많이 가셔있었다.
이 정도의 몸 상태라면 말을 몰아 움직여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들은 중간 두 번을 쉬어가며 움직였다. 포로와 획득한 100여 필의 말로 인해 이동 속도가 느렸지만, 어둠이 완전히 잠기기 전에 그들은 마크 영지 성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경비대원은 늦은 밤에 갑자기 나타난 한 무리의 기병들에 경각심을 보이다, 이내 그들이 며칠 전에 출발한 영지의 별동대임을 알고 서둘러 성문을 열었다.
그들 중에는 예전 매틀 요한 밑에서 관리직을 하던 이도 있었기에, 한눈에 마크 자작을 알아볼 수 있었다.
긴 여정으로 초췌한 모습이었지만 전보다 보이는 기백은 두 배는 무서워져 있었다. 매우 놀라 경례를 하던 그는 파발을 보내어 서둘러 성안에 소식을 전했다.
그 시각 야안은 열흘 전 론이 상행에서 성공하여 변화된 행정을 정리하고 있었다. 훈련된 전투마 270기와 종마 10기 덕분에 군사를 재정비하였고, 기존의 전투마 중 나이가 많은 말들을 따로 빼 짐말로 바꾸었다.
전투마가 많아지자, 그를 본격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훈련장 또한 만들기로 하였다. 그에 말의 사육을 전문적으로 아는 이가 필요했는데 다행히 론이 데려온 노예인 짐은 그 일에 상당히 뛰어난 경험을 지니고 있었다.
야안은 그를 살펴 그의 재능을 인정하고, 그를 노예의 신분에서 풀어 그에게 훈련장을 짓는 일을 맡겼다.
그 조치에 짐은 혹시 자신의 신변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겁을 먹었지만, 야안은 그를 진정시키고 작은 직책을 맡기며 앞으로 말의 사육을 책임지도록 했다.
마크 영지에도 말의 사육을 담당하는 곳이 있었지만, 넓은 평야에서 오랫동안 말을 키우는 것이 생활인 라문 왕국에 비하면 초라한 수준이었다.
태어나 30년을 넘게 말과 같이 생활하던 짐에게 사육은 숨 쉬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래도 사람을 시키는 일에 익숙하지는 못한지라, 제자 중 인성이 뛰어난 코른에게 그 일을 맡겼다.
과연 부드러운 인상의 코른과 같이 일을 시키자 짐은 자신의 의견들을 서슴없이 꺼내기 시작했고, 코른은 그 일에 맞춰 훈련장을 짓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을 통해 라문 왕국의 말 사육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게 되었다.
라문 왕국의 사람은 적당하라는 말을 즐기는데. 이 말은 대충 하라는 뜻이 아닌 알맞게 하라는 말이었다.
무작정 시키는 훈련은 오히려 말의 품질을 낮춘다. 또한, 너무 많이 먹이면 살이 찌고, 말이 쉬는 장소가 청결하지 못하면 심한 변비에 걸려 몸이 약해진다. 병에 걸리기 쉬워지는데 이리되면 근육이 감소하고 털의 윤기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적당히, 적당히.
모든 것을 과하지 않게 적당하게 말을 다그쳐야만 뛰어난 품질의 말이 나올 수 있다.
야안은 코른의 보고서를 통해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하는 것인가? 말을 다루는 방법에도 중용의 중요성이 있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군.”
그는 짧게 감탄을 표하다 다시 보고서를 읽으며 개선해야 할 부분들을 수정하였다. 하지만 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다급하게 들어선 하인에 의해 펜을 내려놓아야 했다.
마크 자작이 도착한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서둘러 다시 한번 하인들에게 마크 자작님의 침실 등을 점검하라 명하고는 관리들을 성내로 불러들였다.
며칠 안에 도착할 것이라 예상하였기에 관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관리들은 수가 많이 늘어나 20명에 달했는데 다들 앳되어 보이는 것이 이번에 제자들이 가르친 이들이었다. 아직 나이가 어려 미숙하지만, 그들이 내놓는 논의들을 보고 그 정도라면 하급 관리 일은 맡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들은 워낙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지라,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과연 아직 몇 달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몫을 해내기 시작했고 힘든 경우에는 스스로 조를 만들어 토의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번에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마크 자작의 직위를 얻게 된 영주님을 처음 보는 것이라 두렵기도, 흥분되기도 해 저마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그를 기다렸다.
그런 마음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스승이기도 한, 이제 마크 영지의 상단주가 된 론과 계발 지원 총책임직을 맡은 한스 외 3인 또한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듣기로 제국의 검은 전갈이라는 무서운 부대와 싸워 이겼다 하니 그들의 마음에는 작게나마 두려움이 자리했다.
야안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낮게 웃음을 흘리고는 저마다 마케를 걸어주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한스는 스승님이 자신에게 걸어준 마법으로 마음이 진정되는 것을 느끼자 작게 묵례를 했다.
테리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분명 마음속으로 주군으로 모시는 이는 총관님이었지만, 현실에서 자신은 마크 자작을 주군으로 모셔야 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도 야안이 영주님을 크게 반기며 인사를 하는 모습에 사라졌다.
‘저분이 모시는 분이시라면, 나 또한 모시는 것이 도리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그저 저분의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꼭 주군이라는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자신과 그분은 사제의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유대감이라도 없었다면 자신은 참지 못하고, 지난 챈들러가 그러하였듯이 야안에게 주종의 관계를 맺으려 했을 것이다.
한스는 마크 자작의 모습에 잠시 움츠러들었다.
분명 여정 때문에 초췌해진 왜소한 중년의 사내임에도 은은히 풍기는 그의 위압감에 밀린 것이다.
마크 자작은 늦은 시간임에도 모든 관리를 모아 자신의 귀환을 환영하는 야안의 어깨를 잡으며 일으켰다.
“고맙소. 저들이 그대가 뽑은 자들이군. 과연 하나같이 기량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겠구려.”
마크 자작은 진심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보고서를 통해 뛰어난 인재들을 발굴했다는 말을 들었지만, 직접 보니 그 보이는 눈빛만으로도 하나같이 범인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작 그가 감탄을 보인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비록 날이 어두워 많은 것을 보지 못했으나 근 3년 반 만에 복귀한 자신의 영지는 놀라울 정도로 발전되어 있었다.
큰 시장이 들어선 영지에서나 볼 법한 반듯한 도로가 생겼고, 황폐한 평야였던 곳에는 작은 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다.
영지 내성에는 작은 규모의 시장이 자리를 잡았고, 늦은 밤에도 대장간과 목재소에서는 망치 두들기는 소리가 끊이지를 않았다.
길은 깨끗하게 정화되어 있었으며, 오가며 인사하는 주민의 얼굴은 저마다 생기가 돌았다. 그 얼굴은 자신의 출정식 때 본 그 눈물과 울음이 범벅이던 절망에 빠진 이들의 얼굴이 아니라 희망을 본 자들의 얼굴이었다.
단순히 영지를 변화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영지민들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는 것이 그는 가장 놀라웠다.
하지만 그가 감탄하는 것조차도 영지의 작은 변화 일부였다.
그는 새삼 처음 만난 날 자신의 식견을 보이며 자신을 놀라게 했던 총관이 생각나 그저 작게 미소를 머금었다.
촌스러운 시골 사내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그리고 자신으로 하여금 탈란의 옛 고사를 기억하게 해주었던 현명한 자였다.
그런 그였다. 그는 변함이 없는 그때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의 믿음직한 모습에 그는 남은 한쪽 팔로 그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다.
“내 평생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를 꼽는다면 자네의 출사를 받아들인 것이오.”
마크 자작의 말에 야안은 미소를 머금으며 답했다.
“저 또한 자작님의 마음과 다르지 않습니다.”
강한 신뢰를 주는 마크 자작의 눈을 바라보던 야안은 그의 몸을 살피다 마케의 흔적이 남은 것을 보고 챈들러에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믿음직한 자이다.
저런 자를 수하로 두었다는 것은 여러 면에서 큰 행운이었다.
야안은 마크 자작의 몸이 불편한 것을 알기에, 약식으로 새로 고용한 관리들을 소개해 주었다.
마크 자작은 하나 남은 손으로 그들을 일일이 챙기며 인사를 나누었고, 관리들은 저마다 마크 자작의 기백에 잠시 질리며 예를 표했다.
야안은 그의 뒤에서 소개를 해주다, 그의 얼굴에 짙은 고됨을 보고는 말했다.
“몸이 좋지 않으십니다. 이만 들어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그의 말에 마크 자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표현하지 않아 그렇지 범인이었다면 이미 혼절하였을 정도로 고되었다.
야안은 모인 수하들을 물리고, 마크 자작을 모시고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마크 자작은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돌아온 성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성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그를 쓸쓸하게 만들었다.
곧 가주실에 그들은 도착하였다.
방 중앙에 자리한 탁자에는 따뜻한 차가 놓였고, 마크 자작은 야안이 따라준 차를 마시며 말했다.
“치료가 가능하겠소?”
마크 자작의 말에 야안은 이곳까지 오면서 그를 살펴본 결과를 씁쓸하게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불이 꺼졌습니다. 다행히 성수 덕분에 그 심지가 남아 있습니다만 완치는 어렵습니다.”
야안이 말한 불이란 인간이 태어나면서 가지는 선천적 기운을 의미한다. 저 멀리 주술을 펼치는 자들은 이 기운을 모으기도 하지만, 그것도 온전히 본래 자신의 선천적 기운이 자리하고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위대한 주술사라면 이 선천적 기운을 지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성자를 만나 그에게 치료받는 것보다 불가능한 일이었다.
융 제국으로부터 규탄의 대상이 된 지금 위대한 주술사의 출현은 가능치 않으니 말이다.
마크 자작은 야안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애초 완치는 기대도 하지 않았소. 그저 수명만 늘릴 수 있으면 충분하오.”
그의 말에 야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동원한 결과에 대해 답해 주었다.
“지금이라면 조심하게 움직여도 5년을 채 버티시기 어려우실 것입니다. 하지만 보름간 몸을 정양하며 치료를 한다면 짧으면 8~10년을, 길면 15년을 사실 수 있을 것입니다.”
“10년이라.”
마크 자작은 야안이 말한 15년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15년은 지금처럼 몸을 정양한 경우를 말함을 안 것이다.
10년은 아마, 자신이 복수를 위해 전장에 뛰어들었을 때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마크 자작은 야안의 서신을 받았을 때만큼이나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하하, 10년. 그것이면 넉넉하오. 아니, 차고도 넘치오.”
그 시간이라면 나프롬 자작은 물론이고, 카람 백작에게도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대의명분은 갖추어졌다.
나프롬 자작이 보낸 이들 중 상당수를 포로로 잡은 상태였고, 그들에게서 증거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증거라면 전쟁 중이라 여전히 영지 탈환까지는 가지 못하더라도, 상당히 직접적인 피해를 줄 수 있었다.
이후 전쟁이 끝이 나면 나프롬 자작의 영지를 탈환하고, 그간 모은 병력을 이용하여 카람 백작에게 전쟁을 선포할 것이다.
명예 만인장의 직위 덕분에 1만의 병력을 가진 자신이라면, 대귀족의 반열에 든 카람 백작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야안은 환하게 웃는 그에게 짙은 공허함과 분노를 느꼈다.
“만족하신다니 다행입니다.”
야안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렵게 구한 성수 한 병을 꺼내어 놓았다.
“이것을 드시면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마크 자작은 그가 내놓는 성수에 작게 감탄을 흘렸다. 성수는 돈이 있어도 쉽게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이것을 구하기 위해 상당히 공을 들였어야 했을 것이다.
“감사하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일어섰고, 이내 성수를 들이켠 후 침대에 누웠다.
“며칠 동안은 고통스러울지 모릅니다.”
마크 자작은 괜찮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시게.”
야안은 담담한 그의 대답을 들으며 그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리젠.”
마크 자작은 머릿속에서 시작된 청명한 무언가에 놀라다 이내 그것이 자신의 망가진 장기를 비롯해 사지로 퍼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법 덕분에 간신히 그저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그의 장기에 변화가 생겨났다. 죽은 세포가 살아나기 시작하였는데, 곧 무리한 세포 증식 탓에 그는 괴기한 고통에 잠겨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야안은 다시금, 리젠을 외치며 기운을 부여했고 그것은 그 괴기한 고통을 배로 증폭시켰다. 야안은 그렇게 반나절의 시간을 리젠을 부여하여 성수의 기운이 헛되게 쓰이지 않게 노력했다.
성수는 자연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것은 죽은 나무의 수액에서 만들어지기도 하고, 부서진 돌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또는 오래된 집이나 동굴에서도 성수가 발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발견된 성수는 농도가 너무 짙어 극독과도 같다.
그렇기에 증류수로 농도를 희석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1 대 786이다. 그 이상은 성수로서의 가치가 없으며 그 이하는 오히려 몸에 해롭다.
재밌는 것은 고대 시절 있었다는 성경의 글자 수도 786자라는 점이다.
이를 우연이라고 치는 사람도 있지만, 성스러운 물이라는 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치부하기란 사실 어려움이 많다.
성수는 본래 10% 정도만 치료에 쓰이고 그 외 90%는 몸 밖으로 분출된다. 그럼에도 성수가 보이는 능력은 놀라운 것이었다.
한데 이 성수가 신관과 만나면 그 효과는 놀랍다.
신관의 능력에 따라 다르나 그 흩어지는 부분을 다시 치료에 쓰이게 할 수 있다.
아직 초급 신관 정도밖에 되지 않는 야안조차도 흩어지는 기운의 30%를 모아 치료할 수 있다.
리젠이 대단한 것이긴 하나 숨이 넘어가는 이의 숨을 붙이고, 불치병을 고치는 성수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 점을 잘 알기에 야안은 리젠을 성수의 보조로 삼아 그 기운을 인도하여 치료하였다.
여름이라 이르게 튼 새벽의 미명이 가주실 안으로 모습을 들이더니 이내 마지막으로 리젠의 기운을 펼치는 야안을 비추었다.
야안은 명성을 얻게 된 이후 처음으로 열네 번의 리젠을 다 쏟아 내었는데 단순히 리젠을 펼친 것이 아니라 효과적인 형태를 위한 구체적인 바람을 통하여 펼쳤기에 그는 심적으로 지쳐 있었다.
치료 과정에서 마크 자작이 토해 낸 이물질들을 치운 야안은 고통에 지쳐 잠이 든 마크 자작을 위해 마케 마법을 펼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료를 마친 그는 만족함을 보였다. 자신의 예상보다 그 결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작지만 불씨를 지폈다. 이로써 치료의 방향은 정해졌군.’
그 과정에서 마크 자작은 며칠 동안 최소 오늘만큼의 고통을 견뎌내야 할 것이다.
야안은 상당한 고통이었을 것이 분명함에도 신음 한 번 흘리지 않은 마크 자작의 모습을 보다 방을 나섰다.
어느새 어두운 커튼 사이로 빛이 갈라져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