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98화
늦은 저녁이었다.
다른 곳과 달리 이곳은 이른 시간부터 불을 켠 곳을 찾기 어렵다.
이는 이곳이 시골 마을이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의 밤은 빨리 찾아온다. 없는 것이 많은 게 시골이었고, 하루하루가 힘든 것이 그들의 일과였다. 등잔의 기름이 아까워서라도 모두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
땅, 땅. 땅.
그런 마을에서도 저 먼 마을 입구에서 쉽게 찾을 만큼 밝은 곳이 하나 있었다.
바로 대장간이다.
오늘 낮에 쓸데없는 감상에 시간을 허비해 버려 늦은 시간까지 일해야 했던 야안은 추운 늦가을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큰 망치를 휘둘렀다.
뻘겋게 익은 검날을 세우느라 한참을 두들기던 그는, 대충 모양이 완성되었다, 생각이 들자 옆에 놓인 물통에 검을 담갔다.
치이이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수증기가 크게 이지러진다. 그는 한 손으로 그의 제멋대로 엉킨 갈기 사이에 흐른 땀을 털어냈다.
“후~ 덥군.”
땀이 눈에 들어가서인지 희뿌연 것이 눈앞에 자리했다. 야안은 손으로 수증기를 휙휙 저어대며 한 손으로 옆에 놓인 천으로 얼굴을 적신 땀을 닦아냈다.
그때였다.
야안이 희뿌연 것이 있다고 판단했던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말을 건넨 것은.
“자네, 대장장이 일은 그만두는 게 좋겠군.”
낮고 무거운 위압감이 담긴 목소리에 평소 담이 큰 야안도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다, 물통을 건드리고 말았다.
쿵, 철커덩. 차아악.
이내, 물통이 뒤집히며 요란스러운 쇳소리와 함께 뜨겁게 달구어진 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 아주 큰 요란스러운 소리 덕분에 야안은 마음이 진정되었다.
아직, 수증기 때문에 형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상당히 건장한 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야안은 조금 전 그의 말이 기억이나 투박스럽게 대답했다.
“이 근처에 다른 대장간은 없소. 잡소리 하시려거든 그만 나가주시오.”
자신도 이쪽에 관해 영 재능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벌써 10년이 넘게 해온 일을 무시당하니 기분이 좋아질 리가 없었다.
그의 투덜거림에도 수증기에 휩싸인 사내는 무언가를 질겅질겅 씹다 뱉으며 말했다.
“정말이네. 내 평생 많은 곳을 돌아다녀 보았지만, 자네같이 재능 없는 대장장이는 처음 보네. 농기구 따위라면 그럭저럭 만들 솜씨지만, 무기를 만드는 것은 포기하는 게 좋아. 그걸 들고 싸우는 자들이 불쌍할 지경이니 말일세.”
“흠, 이곳에 오는 이들은 대부분 그런 좋은 무기를 가져오지 않소.”
야안은 이곳에 당신이 온 것을 보면 당신도 꽤 형편없는 자인 것 같다, 라는 말을 이어 하려 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수증기가 옅어지면서 그의 정체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남들보다 두 배는 되는 큰 덩치를 지닌 자였다. 얼굴을 보면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그 몸은 대장장이 일로 단련된 젊은 자신도 초라해 보일 지경이다.
그는 자신이 들고 있는 거대한 무언가 위에 앉아 자신을 흥미롭게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야안은 그의 눈빛과 마주치는 순간 뱀 앞의 쥐처럼 굳어버렸다.
‘이런! 대용사께서 여기는 무슨 일로.’
자신이 투박스럽게 대한 자가 낮에 자신과 시선이 부딪힌 그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자, 야안은 숨이 턱 막혔다.
그런 그의 모습에 피로를 쫓는 허브 잎을 질겅질겅 씹어대던 그는 이내 뱉어내며 진지한 어조로 야안에게 말했다.
“자네가 가야 할 길은 대장장이 일이 아니네. 무인이 되어야 해. 왜 그 재능을 썩히고 있는지 모르겠군.”
야안은 자신의 마음을 크게 흔들어놓는 사내의 그 말에 다시 가슴이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런 야안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다시금 말을 이어 크게 불을 지핀다.
“내 장담하지. 자네가 무의 길을 걷는다면 20년 안에 지금의 나와 자웅을 겨룰 수 있을 것이야.”
야안은 그 믿기지 않는 말에 다시금 허브 잎을 꺼내 씹어대는 대용사에게 되물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제가 늦지 않았습니까?”
그 말에 그는 다시금 허브 잎을 뱉으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봐, 빠르고 늦는 것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모두 이 가슴에 있는 것이네.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늦지 않은 것이야.”
그의 말에 야안은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저의 가슴은 뜨겁습니다.”
“그래, 그거면 된 거지. 받으시게.”
그는 일어서며 꼬리로 자신이 깔고 앉은 것을 들어 야안에게 건넸다. 야안은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가볍게 들어 올린 것이라 큰 생각 없이 받아 들려다, 이내 상당한 무게에 뒤로 한 걸음을 물려야 했다.
“그것으로 그대에게 맞는 무기를 만들게. 그 일이 대장장이로서의 마지막 일이었으면 좋겠군.”
야안은 대영웅의 말에 이 안에 든 것이 금속임을 알았다. 이 정도의 무게라면 어린 시절 종종 바라왔던 자신이 원하는 무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얼떨떨해하는 야안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짓더니 대장간을 나서려 했고, 야안은 그 모습에 다급히 물었다.
“왜 저한테 호의를 베푸시는 것입니까?”
야안의 궁금증에 대영웅은 크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하, 글쎄, 굳이 말하자면 외로워서라 할까? 부디 강해지게. 강해지고, 또 강해져서 나를 찾아와 주게. 그것이 내가 호의를 베푼 이유네.”
야안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대영웅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야안은 손님들에게 맡은 물건들을 돌려주고, 더 이상 대장장이 일은 하지 않겠다고 공표했다.
그렇게 공표한 그날 이후 그의 대장간 화로는 밤낮없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불이 지펴졌다. 밤낮없이 망치질했는데, 마을 주민은 그런 야안에게 무어라 불만을 토해 놓으러 왔다 귀신같은 야안의 모습에 질려 발을 돌려야 했다.
한 달하고도 열흘이 더 흐른 뒤에야 야안의 대장간에서 망치질 소리가 끊어졌다.
야안은 자신이 만들어낸 검은빛이 은은히 자리한 긴 철봉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무게만 50킬로그램에 달한 거대한 철봉이었다.
태생적으로 힘이 강한 야안만이 제대로 휘두를 무기이다.
그는 어린 시절 균형 감각을 키우기 위해 배운 봉술이 생각나 봉을 무기로 삼기로 했는데, 실상 만들어놓고 휘둘러보니 손에 착착 감겨들었다.
그 무게 덕분에 내려칠 때의 속도는 상당했고, 회전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압감을 보이게 했다.
그는 시험 삼아, 자신의 집 앞에 놓인 나무에다 봉을 내려쳤고, 어른 허벅지만 한 나무는 힘없이 부서져 쓰러져 버렸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았다. 검이었다면, 자신의 힘으로도 이 나무에 생채기만 냈을 뿐인데 이 철봉은 쉽사리 나무를 부러뜨렸다.
마을 주민은 야안의 그런 괴기한 짓거리에 저마다 수군거렸고, 그 소란스러움에 야안이 나왔음을 알게 된 친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야안에게 다가와 물었다.
“자네, 왜 그러는가? 이건 자네답지 않네.”
친우의 걱정 어린 말에 야안은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를 보이며 친우에게 말했다.
“나는 이만 이 마을을 떠날 것이네. 대장간은 그대가 가지게. 나는 이제 나의 길을 가야겠네.”
야안의 친구는 마치 이제야 자신의 길을 찾았다는 야안의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다 생각했다.
그는 성큼성큼 벌써 저만큼 멀어진 야안을 보며 뒤늦게 소리쳤다.
“부디 무사히 돌아오시게. 그때까지 자네의 대장간을 지키고 있겠네.”
상당히 먼 거리였기에 들리지 않은 듯 한 번 뒤돌아보는 일 없이 나아갔는데, 그런 야안을 보던 친우는 그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야안이 자신의 말을 들었고, 반드시 고향에 돌아올 것임을 안다는 듯이.
마을을 떠난 야안은 거친 야인의 삶을 살았다. 산짐승을 잡아먹거나, 길에 난 풀들을 뜯어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시간이 날 때면 봉을 휘두르며 수련해 나갔고, 오가는 무인들과 대련하기도 했다.
그들 중 실력이 있는 이들은 야안의 그 크고 거대한 철봉에도 별다른 위압감 없이 상대했는데, 야안은 그렇게 다치고 패하면서 조금씩 무인의 세계로 들어섰다.
그는 떠돌이 무인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겪었다.
산을 넘어서면서 강도들과 싸워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고, 길을 잃어 조난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용사가 말했듯이 야안의 가슴은 언제나 뜨거웠기에 그 고난에서도 착실하게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5년이 지나자, 수많은 강자가 야안을 찾아왔고, 10년이 지나자 그를 따르는 세력이 생겼다.
다시 10년이 지나자 야안은 더 이상 상대할 만한 자를 찾기 어려웠다.
그는 더 이상 호쾌하게 싸울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는데, 그때 20년 전 자신을 이 길로 나서게 한 대용사를 기억하게 되었고, 그제야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곧장 대용사를 찾으려 했으나, 이미 그는 5년 전 노환으로 죽은 뒤였다.
야안은 그 사실을 깨닫고 크게 아쉬워했는데 그 집안의 아들 중 하나가 야안을 알아보았다.
“아버지께서 그대가 온다면 이곳으로 가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마지막 죽는 날까지 있었던 위치가 담긴 지도를 건넸고, 야안은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 이내 아쉬움을 접으며 지도가 표시된 곳으로 향했다.
그가 마지막에 있었던 곳은 상당히 험하고 깊은 산 속이었다. 무의 절정에 오른 야안으로서도 힘겨운 곳이었다.
그는 그렇게 세 개의 산을 넘고 두 개의 골짜기를 지난 뒤에야 그 지도가 가리키는 곳에 도착했다.
달빛조차 제대로 들어오기 어려운 높은 절벽이 앞을 막고 있는 곳이었는데, 짙은 어둠 때문에 그는 주위를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근처의 나무를 주워 모닥불을 붙였고, 곧 모닥불 주위는 조금씩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야안은 벌써 5년이 흘렀음에도 대용사가 이곳에 살았던 흔적들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그 흔적에서 야안은 크게 감동받았다. 그는 큰 명예와 부를 가졌음에도 마지막까지 일개의 무인으로 남기 원한 것이다.
그는 이에 크게 감명받아 긴 묵념의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것이 섣부른 판단이라는 것은 해가 뜨기 시작하면서 그는 알게 되었다. 어둠이 점차 걷히며 거대한 절벽이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을 본 순간 야안은 소름이 돋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대지에 꽂혀 있던 자신의 봉을 뽑아내어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는 크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아! 이럴 수가.”
야안은 믿기 어려웠다.
그 거대한 절벽에 새겨진 이 놀라운 흔적들을 어떻게 믿을 것인가? 대영웅께서 마지막으로 보인 일은 대단했다.
그는 야안이 열 명이 있어도 감히 넘보지 못할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오직 야안이 이룩한 경지에 오른 자만이 볼 수 있는 신세계였다.
그는 짙은 환희에 젖어들었고, 어느 순간 눈앞이 하얗게 일그러져 갔다.
야안은 정보 창이 자신에게 충고한 바대로 이후 새로운 시선으로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는 고고한 하늘 위에 올라 객관적으로 자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로써 그는 아주 작은 근육의 움직임이나, 기의 세세한 흐름,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작은 버릇들까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숙련된 대장장이가 미숙한 대장장이의 망치 소리만으로도 그 실력을 판단하듯 그는 자신을 아주 매몰차게 판단해 나갔다.
고고한 이상을 눈으로 본 뒤 자신을 살피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그가 평생을 이룩한 노력이 아무렇지 않게 내팽개쳐지는 것과도 같으니, 강한 인내심을 지닌 야안도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매몰찬 시간이 지나게 되면서 야안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었다.
야안은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경지를 하나하나를 구체적으로 펼쳐 보이다, 어느 순간 무의식과 의식이 나누어지기 시작했고 야안은 거대한 빛이 자신을 감싸는 것을 느끼다 이내 반개한 눈이 크게 감았다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