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09화
35. 하얀 까마귀 II
야안은 판단이 들자, 짐을 나무 위에 놔둔 뒤 ‘토네’를 펼쳐 박차 올랐다.
마치 날듯이 솟아오른 야안은 일곱 명의 디다들을 짓밟으며 거리를 좁히더니 순식간에 그 수장 앞에 내려섰다.
디다들의 수장은 갑자기 나타난 야안에 경계하며 ‘로오로오’ 하고 큰 소리를 울리며 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고, 곧 그의 근처에 있는 여타 디다보다 강한 상급 유저에 달하는 저력을 지닌 스무 마리의 디다들이 야안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미 ‘토네’의 마법을 쓰는 야안을 겨우 스무 마리의 디다들로 막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현란한 움직임으로 마치 실체가 없는 듯 그들을 통과하더니 육대검식의 가장 무거운 검식인 6초식을 펼쳐 수장의 목을 쳐냈다.
단 일격에 수장을 목을 쳐 끊어버리자, 순간 디다들 사이에서 혼란이 왔고, 야안은 그런 혼란의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수장의 친위대로 보이던 스무 마리의 디다들의 목을 쳐내기 시작했다.
전장의 중심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누군가의 시선에 신경을 쓸 일이 없어졌기에 야안은 파이어 피스트와 파이어 핑거들을 함께 펼치며 자신의 무위를 마음껏 발휘했다.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 친위대로 보이던 스무 마리의 디다들의 목과 더불어 주위에 있었던 디다 서른 마리를 베어낸 야안에 의해 전장의 흐름이 점차 전투를 벌이고 있던 부족에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야안은 마법의 사용을 금하고 상급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서기 위한 힘의 묘용을 검에 담아 다시금 실전에 적용했다.
그리고 그로써 야안은 이 전장의 핵이 되었다.
죽음을 각오하며 밀어붙이는 디다들이었지만 건곤대나이로 뿌리치고, 날리고, 부수는 야안에 그들은 변변한 힘조차 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하얀 까마귀들을 따르는 부족 중 하나인 노란 빛살 부족의 족장이자 대전사인 루시우는 디다들이 손발이 맞지 않고 진열이 붕괴되는 모습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으며 지금의 호기를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그런 의문에 신경을 쓸 때가 아니었다.
그의 자랑스러운 노란 빛살 전사들 300명이 수세에서 공세를 펼치며 나아가기 시작했고, 그 또한 그들의 가장 앞에 나서 디다들을 베어내기 시작했다.
그는 급하지 않게 전력을 보존하며 나아갔는데, 그렇게 30분이 흐른 뒤에야 이 전장을 지배하는 전장의 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단 한 명이었다.
이 전장의 흐름을 바꿔버린 전장의 핵은.
그 모습은 예전 그가 하얀 까마귀 부족의 고위 대전사에게서나 볼 듯한 것이었다.
아니, 그 힘에 있어서 고위 대전사에 비해 상당히 부족했으나, 그가 보이는 신묘한 힘의 묘용은 고위 대전사만큼이나 전장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놀랍군. 보아하니 숲 밖의 존재인 것 같은데, 저자가 어떻게 이곳에 있는 것인가?’
숲 밖의 존재들과 숲 속 부족 간의 사이는 좋지 않기에 이렇게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그가 이곳에 어떻게 올 수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다.
누군가 숲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안내하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숲의 입구에서 들어온다면, 자연히 현재 분쟁 중인 몬스터들을 상대해야 하는데, 그들 사이에서 빠져나오기란 고위 대전사라 해도 어려움이 많았다.
잠시 새로 나타난 이 존재에 대해 의문을 보였지만, 현재 그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은 저자가 지금 자신들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그것이면 충분하지.’
보아하니 그가 이들의 수장을 잡은 것 같았다.
루시우는 야안을 확인함으로써 전장의 돌아가는 사정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고, 이내 병력을 나누어 디다들을 포위하는 형식으로 전술을 구사했다.
이 전술은 그 중심에 자리한 야안의 뛰어난 무위를 믿었기에 가능한 전술이었다. 야안과 그들 사이에 있던 디다들은 점차 자신들의 공간이 줄어드는 것을 느껴야 했다.
공간이 비좁아지면서, 그들의 민첩한 움직임도 묶였다. 덕분에 이들을 상대하는 부족 전사들의 사기는 드높아졌고, 움직임은 점차 활기를 띠어갔다.
행운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디서 갑자기 나타난 세 인영이 미처 그들이 잡지 못한 디다들의 측면을 치면서 그 전술은 날개를 달았다. 세 인영 중 한 인영의 손길에서 펼쳐지는 불길은 뒤로 빠져나가 치려는 디다들의 움직임을 적절히 막아주었다.
네 시간에 걸친 그 전투는 28명의 사망자와 40명에 달하는 부상자를 남긴 채 인간들의 승리로 끝이 났다.
대승리였다.
최소 반 이상은 죽어 나갈 것으로 생각했던 전투치고는 너무나 미비한 피해만을 남긴 채 승리를 거머쥔 것이다.
야안은 마지막으로 남은 서른 마리의 디다들을 부족의 전사들에게 양보하며, 벌써 두 차례 전투를 치르느라 피곤함을 보이는 일행들에게 서둘러 다가갔다.
다행히 큰 상처 없이 전투는 끝이 났고, 야안은 피곤함이 가득한 그들에게 마케를 펼쳤다.
야안도 한나절 가까이 전투를 한 덕분에 피로가 쌓여 스스로 마케를 펼치어 신체 리듬을 활성화하여 밀려오는 피곤을 쫓았다.
‘휴~ 오랜만이군. 이처럼 격렬한 전투를 벌인 것은. 덕분에 레벨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었으니.’
벌써 여유 스탯이 두 개나 생겨났다.
악마를 상대해야 하는 지금 여유 스탯은 많을수록 퀘스트를 완수할 확률이 높아지니 스탯이 늘어나는 것은 그가 가장 반기는 상황이었다.
노란 빛살 부족의 족장 루시우는 그들 중 자신들이 모시는 하얀 까마귀 부족의 일원으로 보이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하얀 까마귀 부족의 전사로군. 그대의 일행이시오?”
대전사 루시우의 말에 포를란은 대전사에게 존경을 표하는 예법대로 왼쪽 가슴과 왼쪽 어깨를 두 번 치며 말했다.
“저는 떨어진 하얀 깃털입니다. 감히 수치스러운 저의 신분으로 숲에 온 것은 큰 죄악이나, 제가 모시고 있는 분의 신분이 귀하여 그분의 안내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흠~”
떨어진 하얀 깃털이라는 말에 루시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죄를 진 하얀 까마귀 부족의 전사를 일컫는 말인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숲의 대전사의 입장에서 다시 숲에 들어선 그를 크게 벌하는 것이 순리였다.
하지만 그의 일행으로 보이는 위대한 전사의 힘 덕분에 자신들이 승리할 수 있었고, 또한 귀한 신분을 지닌 존재를 모시고 왔다는 말에 루시우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숲의 원칙에 있어 은혜가 가장 먼저인지라 그는 포를란의 이야기를 더 듣고자 결심을 굳혔다.
“나 노란 빛살 부족의 대전사 루시우가 그대를 허락하네. 그대 하얀 깃털은 말하게.”
포를란은 대전사가 자신의 사정을 허락하자, 크게 반겼다.
그 말은 비록 하얀 까마귀 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으나, 그의 비호를 받아 숲 안에 살아도 된다는 허락이기도 한 탓이다.
그는 크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큰 예법을 보이며 현재 자신들의 사정에 대해 설명하였다.
“제가 모시는 분은 붉은 눈 부족의 왕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이미 왕족으로서의 조건을 갖추었으며, 저는 이분을 하얀 까마귀 부족까지 길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큰 존재라 루시우는 놀라워하였다.
사실을 확인하고자 그들 중 왕자라 생각되는 라진을 바라보았고, 멀지 않은 곳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라진은 야안의 마케 덕분에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모습으로 다가와 자신의 눈을 드러냈다.
짙은 진홍색 눈이었다. 타오를 듯한 붉은 머리와 함께 있어 그런지 더욱더 선명한 빛깔을 보이는 듯했다.
그제야 조금 전 전장에서 불꽃이 터지는 모습을 생각해 낸 루시우는 그가 진정 왕자라는 생각이 들자 서둘러 왕족의 예우를 보였다.
“노란 빛살의 족장 루시우가 붉은 눈 부족의 왕족을 뵙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포개는 그에 라진은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직 붉은 눈 부족의 왕께 인정을 받은 몸이 아닐세. 이런 예는 지금은 불편하니 후에 받도록 하겠네.”
라진이 그 말에 루시우는 다시 손을 모아 그의 명을 받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앞서 포를란이 말한 것처럼 그는 이미 왕족으로서의 조건을 다 갖춘 존재였다. 루시우는 그 또한 왕자의 명이라 생각하며 받아들였다.
* * *
루시우가 조금 전과 달리 존경하는 자를 대하는 예로써 자신을 받아들이자 라진이 루시우에게 물었다.
“내가 듣기로 디다족은 폭설이 일어난 시기에 그 영역만을 조심하면 괜찮은 몬스터라 들었네. 그대 부족 전사들의 무장을 본다면 이들과 전투를 벌이기 위해서 많은 것을 준비했음을 알 수 있네. 도대체 무슨 일 때문인가?”
라진의 그 물음에 루시우는 기밀인 듯 자신의 측근 외 다른 전사들을 물리더니, 잠시 야안을 보다 이내 살짝 끄덕이며 답하였다.
“하얀 까마귀 부족의 대족장이신 알베스 님께서 지난 의회에 결정된 초대형 몬스터 중 하나인 푸른 사냥꾼을 처리하시는 과정에서 중독되고 말았습니다. 독의 종류는 푸른 사냥꾼의 비기였던 영혼의 삭이라는 독이었는지라, 부족의 스승들께서도 그 독을 치료하시지 못하셨지요. 전사라면 필사요, 대전사라 해도 1년을 버티기 힘든 지독한 극독이지만, 붉은 눈 왕께서 내린 영초에 알베스 님께서는 3년을 버티실 수 있었습니다.”
루시우는 말을 이었다.
“그분의 경지가 고위 대전사가 아니셨다면 그 3년을 버티는 것은 어려움이 컸을 것이지요. 그러다 까마귀 부족의 큰 스승께서 고대의 문헌을 비추어 그 독을 약화시키는 비법을 찾아내셨습니다. 이 비법에는 이들 디다들의 수장이 가꾸는 보랏빛이 이는 눈의 꽃이 필요합니다. 저희 부족은 알베스 님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는지라, 그것을 찾는 데 나서기로 하였고 운이 닿아 그들의 수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러면서 조금 전 측근이 캐어 온 보랏빛 눈의 꽃을 보여주었다.
과연 그 안에 담긴 영기가 근처에 자리한 여타의 눈의 꽃과는 비교할 수 없어 보였다.
말없이 뒤에서 그들의 사정을 듣던 야안은 도움을 청해야 할 하얀 까마귀 부족의 족장이 영혼의 삭이라는 극독에 중독되었다는 말에, 대현자의 서에서 본 하나의 비법을 생각해 냈다.
그 비법은 설사 영혼을 중독시키는 극독조차 효과를 보는 것으로 어떤 독이라도 그 비법 앞에서는 힘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만약 자신이 생각하는 그 비법을 그 큰 스승이라는 자가 생각했다면, 그는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그 비법을 펼치기에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하나는 루시우가 구하는 보기 힘든 영초들이며, 또 하나는 지금은 잊힌 고대의 마법 중 강력한 해독 마법인 ‘코우만’이라는 마법이었다.
이 ‘코우만’이라는 마법은 중급 현자 마스터에 달하는 마법인데, 그 체계가 지금의 마법 수식이나 룬어로는 최소 고위 현자 비기너는 되어야 펼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마정석의 힘을 빌리어 어떻게 가능하다 해도 마지막 하나 때문에 이 비법이 실패할 확률이 높다.
바로 세계수의 가지였다.
그가 알기에 세계수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대현자 테무드가 세계수의 힘을 바탕으로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하였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대륙에 있던 다섯 그루의 세계수는 그 자취를 감추었다.
하니 현재 야안이 가지고 있는 현자의 지팡이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높았다. 현자의 지팡이는 세계수의 가지를 재료로 전설의 시대에 존재하던 하이엘프의 정기를 받아들인 것인 만큼 세계수의 가지 중에서도 특별한 힘을 지닌 가지라 할 수 있다.
야안은 그 큰 스승이라는 자가 이 세계수 가지 대신 자신의 생명력의 반을 포기함으로써 대신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하지만 야안이 예상하건대 그것이 성공할 확률은 5%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 한 인간이 세계수의 힘을 대신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가 야안이 생각한 것 이상의 경지인 고위 현자 비기너에 달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해도 10%를 넘기기도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하얀 까마귀 부족의 대족장이 지금의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을 말함이니, 야안은 잠시 고민하다 루시우에게 말을 꺼냈다.
“저는 하얀 까마귀 부족의 큰 스승께서 생각하시는 비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비법에는 하나가 부족할 것이며, 저에게 그 부족한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없는 한 치료를 성공할 확률은 10%도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쉬다, 자신을 이해하기 힘든 눈으로 바라보는 라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부족의 큰 스승께서는 고대의 비법 중 하나를 펼칠 생각이 분명해. 자신의 생명을 걸고 그 비법에 성공하실 생각이시지. 하지만 그가 펼치는 비법은 변형된 형태일 뿐, 제대로 된 것이 아니야. 하지만 나라면 그 비법에 성공할 수 있지.”
야안은 한 손을 들어 불의 벽을 생성하더니, 쌓여 있는 디다의 시체를 향해 마법을 펼쳤다.
콰앙. 화르르.
불의 벽 특유의 거대한 불의 장막은 사나운 불길을 보이며 30에 가까운 디다들의 시체들을 순식간에 불태워 버렸다.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의 음영을 뒤로한 야안의 모습을 바라보던 라진은 그가 다시 손을 펼쳐 부상자들과 자신들에게 손을 뻗자, 대기가 일렁이더니 이내 자신들의 상처가 아물기 시작함에 놀람을 보였다.
그것은 현자들이 애용하는 힐 마법이었다.
라진은 예전 공작가에 종속된 현자가 이 마법을 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도 이처럼 빠르게 힐을 사용하지 못했다.
자신 하나만이 아닌, 그 짧은 시간에 이곳에 있는 이들을 치료하였으니 못해도 중급 현자에 들어섰다고 봐야 했다.
아니, 실상 고대 룬어와 수식 덕분에 현재의 고위 현자 비기너 정도 수준의 속도로 마법을 펼친 것이었지만, 이곳에 그것을 알아볼 만한 자는 없었다.
라진은 야안이 숨겨둔 비밀을 생전 알지 못한 부족의 종속을 위해 밝힌다는 생각이 들자 그처럼 이해되지 않는 힘을 한 몸에 지닌 것에 대한 의문이 사라졌다.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의 생에 둘도 없는 친우라 생각했다.
여정을 같이하면서는 그를 스승으로 모셨으며, 오늘 그가 펼친 검을 확인하면서는 자랑스럽고 경이적인 능력을 지닌 친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한 부족을 위해 자신의 비밀을 밝히는 모습에서 평생을 두고 존경할 만한 자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야안은 자신을 경계하거나 놀라워하는 것보다 자신을 크게 신뢰하는 눈빛을 보이는 라진에게 미소를 보이며 작게 끄덕였다.
그리고 그는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혔다.
“나는 전설의 추종자. 나의 스승님이신 마론 현자께서는 평생을 걸려 모으신 전설의 유품들을 남겨주셨네. 지금의 내가 이 같은 힘을 지닌 건 아리스 님의 가호와 그분의 희생 덕분에 가능한 것이지.”
야안은 그렇게 말하며, 루시우의 측근 중 상처를 입어 힘들어하는 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리젠.”
낮은 음색의 그 한마디에 부상에 힘겨워하던 그의 머릿속이 맑아지며 극한 쾌감이 느껴지다 어느새 고통스러움은 가시며 다친 부위가 옅어졌다.
단 한 번의 그의 손길에 한 달 보름은 요양해야 할 것이, 열흘 정도 몸을 조심할 경상으로 바뀐 것이다.
“큰 은혜를 입은 나는 아리스 님의 뜻을 받들면서 미숙하나마 신관으로서의 길도 걷게 되었지. 나는, 나같이 부족함이 많은 자가 이 같은 진귀한 힘을 얻게 된 것에 이유가 있다 생각하네.”
야안은 자신을 경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루시우에게 부상자들을 데려오라 부탁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머나먼 이국의 땅에 오게 된 것은 하나의 이유이네. 한 존재를 처단하는 데 도움을 받기 위해서지. 이는 아리스 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며, 존경하는 마론 스승님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서이기도 하네.”
담담히 고백을 마친 야안은 생전 처음 겪는 신관의 신성 마법에 격정에 떠는 사내에게 마케를 걸어주었다.
라진은 야안의 말을 들을수록 입가의 미소가 깊어지다, 그의 고백이 끝이 나자 그는 담담하게 말을 꺼냈다.
“나는, 나의 친구이자 스승이며, 또한 아리스 님의 종인 야안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네. 정말 고맙게 생각하네. 그대가 나의 친구라는 사실이 말일세.”
라진의 결심에 야안은 크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나 또한 감사하다네. 그대가 나의 친구라는 것에.”
야안은 그간 친우에게 비밀을 가진다는 것이 불편하였는데, 오늘 이처럼 털어놓자 크게 체한 것이 넘어간 듯 편안함을 느꼈다.
로즈는 둘의 그 우정 어린 모습을 보며 미소를 머금었고, 포를란은 자신이 신관으로부터 목숨을 구함을 알고 다시금 그와 아리스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신관의 존재는 저주받은 숲에서 살아가는 부족민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이었다. 아리스 님의 뜻을 받들어 행동하는 그들의 희생은 숭고한 것이었고, 부족의 족장은 그들을 돕는 것이 제 부족의 명예를 드높인다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