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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16화 (116/385)

야안 116화

더구나 언데드로 만들어진 괴물의 수준이 호도칸에서 도칸급 사이를 오간다 하니, 그 자신은 그를 상대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가 만든 괴물을 상대하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이제야 호도칸급의 몬스터와 겨우 승리를 점칠 수 있는데, 도칸급의 몬스터는 말이 될 리가 없으며 그 존재를 만든 악마는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야안은 그 존재가 현재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고 있는 2전장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기에 힘이 회복되지 못한 그가 만들어낸 괴물이라 해도 호도칸급은 어렵지 않게 넘어서리라 예측했다.

작은 정보들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야안은 왜 아리스께서 그 존재를 막기 위해 먼저 이곳에 오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구존에 달하는 강자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자신들이 움직인다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이기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있는 나라를 지켜야 했고, 또한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죽거나 다친다면 대륙이 새롭게 판을 짜야 하기에 야안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대륙의 수많은 왕국과 제국이 현재 대륙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그들에게 도움을 얻는 것 또한 지금의 현실에서 불가능했다.

제국은 그 대륙 전쟁에서도 병력에 여유가 있지만, 그 못지않은 후계 쟁탈 건으로 내부적 싸움이 있어 그들에게도 도움을 얻기는 어려웠다.

하니 남은 것은 저 건너 융 제국에 도움을 얻는 방법이나, 다른 인종에 배타적인 편인 데다 거리가 멀어 아리스 님이 말씀하신 기간을 넘을 확률이 높았다.

그러니 결국 남은 것은 라타샤의 마을이었다.

야안이 짐작하기 어려워하는 것과 달리 왕과 큰 스승은 어느 정도 짐작하는 듯했다. 생각한 것보다 끔찍한 존재라 토로텐은 잠시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로뎅 스승이시여, 그대가 보았던 자료를 모아주셔야 하겠소.”

왕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한 그는 작게 고개를 숙이며 받아들였다.

“알겠습니다. 서둘러야겠군요. 8개월 정도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했으니.”

로뎅은 그렇게 왕의 명을 받아들였으나 바로 연회장을 나서지는 않았다. 야안의 정체와 그가 가져온 악마의 정체 등으로 일이 잠시 꼬였으나, 일단 지금 연회장에 모이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라진이 왕자로서 임명받기 위해서였으니.

라진은 그 돌아가는 사정을 옆에서 지켜본 터라 제 일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에 자신의 일을 중요시하는 것은 태풍이 부는데 걸어놓은 옷이 덜 말랐다고 불만을 토해 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토로텐은 근 30년 만에 처음 보는 자신의 손자에게 박한 대접을 한 것에 아쉬워했다.

어쩔 수 없이 서둘러 왕족에 왕자의 이름을 올리는 행사 기간을 줄여 3일간 열릴 연회를 하루로 만드는 등 간략한 형태로 바꾸었다.

이틀이 지나, 라진은 왕자로서 붉은 눈 부족에 인정을 받고 그 권한을 손에 쥐었다.

야안은 자신의 친구가 왕자로 등극한 것에 대해 축하를 해주러 그날 밤 그를 찾아갔다.

하지만 정작 라진은 막상 왕자의 신분이 되자 아직 적응이 안 되었는지 거대하고 넓은 방 한쪽에 여러 부족에서 가져온 선물들을 쌓아둔 채 자신을 찾아온 야안을 보며 어색한지 볼을 긁적일 뿐이었다.

그 본래 신분이 공작가의 자제였지만, 혼혈인 데다 변변찮은 검의 재능에 여타 하급 귀족가의 자제 취급조차 받지 못한 라진이었다.

그래서인지 귀족이라 보기에는 털털한 성격이고, 야안과도 쉽사리 친해질 수 있었다. 야안은 라진의 그 모습에 미소를 머금더니 왕자에게 보이는 예를 정중히 보이며 다가갔다.

“명예 스승 야안이 붉은 눈 라진 왕자님을 뵙습니다.”

그의 정중한 예법에 라진의 얼굴은 찌푸려졌고, 야안은 그런 친우의 모습에 웃음을 흘리며 다가갔다.

“하하하, 너무 질색하지 마시게. 그래도 친우가 고귀한 자리에 올랐는데 이런 인사 정도는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라진은 친우의 말에 쓰게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자네도 참 싱거우이. 왜 멜리나가 너의 농담을 싫어하는지 알 것 같군.”

그 말에 야안은 다시 웃음을 흘려야 했다.

라진은 친우가 오자 조금 전 받은 선물 중 봐두었던 것을 찾아 가져왔다.

그것은 한 병의 술이었는데, 하모치라는 트롤만큼이나 거대한 고릴라가 담그는 술로, 보통 30명에 달하는 하모치 부족을 처리해야 열 병 정도 분량의 술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통 귀한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라진이 받은 하모치는 그중에서도 50년을 숙성한 술인데, 그 정도로 묵은 하모치는 귀한 영초나 다름없었다. 이 하모치는 실제로 정력에 뛰어나고 신체 리듬을 활성화해 수련에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왕인 토로텐조차 1년에 몇 번 마시지 못하는 귀한 것인데, 라진은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럼없이 친구를 위해 술병의 마개를 땄다.

야안은 비록 하모치라는 술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여타의 술과 달리 냄새부터 거칠면서도 깊은 향이 자리하는 것을 보고 대단히 귀한 명주임을 실감했다.

그 색깔은 물과 같은 무색이었지만, 물보다 몇 배는 묵직하였다. 입에 들어서는 순간 혀는 그 맛에 전율했고, 뜨겁게 넘어가는 목구멍은 불에 타들어 갈 듯하다 이내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대단히 좋군. 이 술이 하모치라는 것인가?”

라진 또한 생각한 것보다 맛이 뛰어난지라 감탄하다 야안의 물음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충분히 즐기게나. 앞으로 언제 다시 이 술을 마실지 모르니 말이야.”

라진의 말에 야안은 귀한 술임을 짐작한 듯 아쉬워하며 말했다.

“상당히 귀한 것인가 보군. 이런 것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를 위해 아끼지 않고.”

“하하하, 아니네. 술이 귀해 보았자 술이지. 그래도 이제 며칠 뒤에 떠날 친우에게 나눌 술로는 그 값을 하는 듯하니 다행스러운 일이네.”

그 말에 야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값을 하고도 남네. 그래, 듣기로 내일부터 훈육과 더불어 정령술에 대해 체계적으로 가르친다 들었네.”

야안의 말에 라진은 긍정하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다시 하모치를 따라 잔을 기울였다.

“그러지 않아도 오늘 낮에 스승님들과 인사를 하였네. 훈육에 대해서는 이미 하얀 까마귀 부족에서 배운 바가 있어 어려울 것이 없었네. 아니, 어떻게 보면 집에서 배운 것보다 간략한 형태라 편하더군. 다만 정령술을 가르치러 오신 분들이 상급 정령 비기너에 속해 있으신 분인지라 긴장하여 혼이 나야 했지.”

“흠, 왕께서 자네에 대한 기대가 대단히 큰가 보군. 아직 하급 정령 익스퍼트에 막 오른 너에게 부족에서 몇 되지 않은 강자를 붙이신 것을 보면.”

야안의 말에 라진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하하, 그런가. 괜찮다면 자네도 내일 같이 정령술에 대해 배우는 게 어떤가? 지금 속도로 보면 여러 가지 궁금한 것이 많을 텐데 말이야. 내가 알려 주기에는 지식이 일천하니, 그분에게 물어 얻으시게.”

친구의 말에 잠시 고민하던 야안이 말했다.

“그래도 괜찮을지 모르겠군.”

야안의 그 대답에 라진이 볼을 긁적이며 미소를 보였다.

“사실 이미 허락을 받았네. 자네가 있으면 좀 편하겠군. 듬직한 그대가 있으니 스승님과의 자리도 불편하지 않겠어.”

라진의 농에 담긴 배려에 야안 또한 미소를 지었다.

“고맙네.”

“고맙기는 무슨.”

라진은 잠시 멋쩍어하다, 곧 지난 여정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꽃피웠고, 야안 또한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지라 그 이야기에 동참했다.

밤이 깊어졌지만, 그들이 있던 방 안을 비추는 마법 등은 쉽사리 꺼지질 않았다.

3일이 더 지난 뒤에야 야안은 큰 스승 로뎅의 부름을 받았다.

벌써 붉은 눈 부족의 왕을 3대째 모시고 있는 로뎅의 권력은 무소불위라 할 만한 것이었지만, 정작 그 자신은 그런 권력과 물욕에 관심이 없는 듯 그가 사는 주택은 이곳의 부호들 정도의 크기였다.

하지만,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끝에 다다른 이답게 그의 집은 책으로 가득했고, 주택 전체가 연구실이었다.

일반인들이 다루기 힘든 물건들이 많기에, 이제 막 진리의 길에 들어선 작은 스승들이 하인들이 할 일을 대신해야 했다.

하지만 작은 스승 중 누구도 불만을 가지는 이가 없었다. 진리를 찾는 이에게 이곳은 보물이 산처럼 쌓인 곳이었고, 옆에서 그의 실험을 돕는 것만으로도 진리에 한발 다가가기 때문이다.

로뎅 또한 이들이 앞으로 부족을 이끌어가야 할 스승들임을 알기에 제자로서 그들을 대해주었다.

야안은 한 번에 그처럼 많은 현자를 만날지 몰라 잠시 당혹스러워하였다. 그 수가 스무 명이 넘었는데, 대부분 초급 현자 익스퍼트에 도달한 존재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라진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이가 다가와 야안을 모셨다.

“지금 큰 스승께서 오수 중이십니다. 곧 깨어나실 테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며 직접 차를 따라주고 간단한 다과를 내주는데, 야안은 확실히 이곳의 스승들은 숲 밖의 현자들과 인식이 다름을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현자들은 자존심이 강해 이런 일들을 하는 것을 상당히 꺼리는데 이들에게서 전혀 그런 모습을 보지 못한 것이다.

야안은 그가 내준, 이곳 붉은 눈 부족에서 애용하는 로카시라는 차를 마시며 이틀간 라진과 함께 배운 정령술을 회상하였다.

라진을 가르치러 온 자는 붉은 눈 부족의 사람이 아닌 회색 바람이라는 부족 출신으로 그 타고난 재능에 비해 부족의 규모가 작아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는데, 우연히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붉은 눈 부족의 한 스승이 그를 추천하여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그는 여타의 붉은 눈 부족민들보다 충성도가 높았다. 또한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뛰어나 70이라는 나이에 자신의 재능 이상의 성과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상급 정령 비기너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스스로 위론이라 소개한 그는 노력과 열정으로 높은 경지에 오른 만큼 가르치는 일에 있어서 여타의 다른 상급 정령사들보다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0여 가지의 질문을 통해 라진과 야안의 경지를 꿰뚫은 그는 그들의 수준에 맞는 가르침을 내리기 시작했다.

라진은 홀로 익힌 정령술 때문에 잘못된 버릇이 많고, 기초적인 지식이 부족하여 이를 중점으로 익히게 하였다. 재능이 뛰어나 여러 단계를 뛰어넘은 것이 나중에 독으로 돌아올 것을 파악해서이다.

야안의 경우는 그가 명예 스승의 직위를 받은 존재라는 점을 알아 그에게 맞는 책들을 읽게 하고 중간 중간 질문과 응답의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또한, 정령의 터를 잡는 데 유의해야 할 점들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첫날 야안이 하얀 까마귀 족장에게서 하얀 정령석을 받은 것을 알고, 다음 날 특급 정령석을 이용해 재능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가 말하는 방법은 현실성은 다소 없으나 오래전에 정립한 이론이었는데 그는 야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생각해 그 방법을 추천하였다.

그가 말하는 이 이론은 특급 정령석의 장점 중 하나인 자신과 맞는 새로운 형태의 정령을 만들 수 있음을 이용한 것이었다.

정령과 자신의 속성이 잘 맞아야 발전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볼 때 자신에게 최적화된 새로운 정령을 탄생하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야안의 정령에 대한 재능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간단한 형태이면서도 지금의 야안에게는 어려운 방법을 행해야 했다.

바로 자신이 모으는 정령의 기운의 일부를 이 정령석에 부여하는 것인데, 문제는 이 정령의 기운이라는 것을 외부에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잘 기지도 못하는 이에게 억지로 뛰게 하는 것과도 같았다.

하지만 위론은 야안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생각했다. 이는 야안이 다른 이들과 달리 검기를 펼칠 줄 알 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기운을 수식으로 푸는 현자라는 점에서 기운을 몸 안팎으로 자유롭게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그가 모으는 정령의 기운을 유도하는 것을 돕는다면 이 이론이 실제로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그 후 야안은 시간이 날 때마다, 이 정령의 기운을 유도하여 정령석으로 부여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초감각이 빛을 발했다.

3일째 되던 오늘, 단 한 번이었지만 정령의 기운을 자신의 통제에 둔 것이다. 야안의 정령의 기운을 유도하던 위론은 야안이 한 일에 경악했다.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생각했지, 실제로 성공하려면 적지 않은 기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공하였다 해도 대단하다 생각했는데, 겨우 알려준 지 이틀 만에 성공하였으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위론은 잠시 야안이 벌인 일에 대해 역시 이방인의 재능은 불가사의하다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고대 대현자 테무드의 말씀이 맞았음을 말이다.

만약 고대 시절에 이방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고대 문명이 그처럼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말을 야안이 입증하고 있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정령의 기운을 통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의 야안의 속도라면 이 3일 안에 정령석에 정령의 기운을 부여할 정도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후 그는 그것에서 손을 떼어 그의 뛰어난 암기와 이해를 바탕으로 그가 손수 저술한 정령에 대한 내용을 모두 숙지하게 하였다.

물론 지금 자신이 이처럼 가르치며 그를 이끌어준다 해도 라진의 재능을 따라서기란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었다.

비록 며칠 가르치지 않았지만, 그는 타고난 정령사였고 진정 고대 엘프가 살아 돌아온 듯한 성장을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러려면 그의 뛰어난 교육 방법이 없고는 어려움이 많다.

그가 설명하는 대부분은 그가 실제로 겪은 일들을 정리한 것이라, 책 속의 막연한 지식과 달랐다. 이해력이 높은 야안의 경우는 그의 설명을 듣는 즉시 그것을 습득하였기에 위론은 번번이 자신의 예상을 뛰어넘는 습득률을 지닌 야안에 감탄해야 했다.

야안은 그가 대수롭지 않게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도 귀를 기울였는데, 고찰하다 보면 얻는 것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가 추천한 책들에는 평소 자신이 궁금해한 것들이 상세히 저술되어 있었다.

덕분에 야안은 빠른 속도로 정령의 터를 잡아가게 되었는데,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 터를 완전히 닦을 수 있을 듯했다.

위론은 그런 야안을 대견히 여기며, 자신의 생의 열세 번째 제자로서 그를 인정했다.

야안 또한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체계적으로 배운 것은 처음이었기에 그를 또 다른 스승으로 받아들였다.

스승과 제자로서의 연을 맺게 되자, 위론은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나야 하는 제자에게 조금이라도 많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였고 야안 또한 스승의 그런 마음을 알아 다른 수련을 접고 정령술에 집중하였다.

‘정말, 스승님은 위대하시구나.’

지난날을 회상하다 오늘 낮에 그의 가르침을 참오하던 야안은 누군가의 인기척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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