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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33화 (133/385)

야안 133화

자박, 자박.

시체에서 흘러나온 진액과 흙이 뒤섞여 내는 이 진흙은 그 소리뿐만이 아니라 신발을 타고 넘은 느낌 또한 끔찍했다.

요란한 까마귀 울음소리 사이로 구더기 터지는 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수만 마리의 하얀 구더기들이 시체들 사이를 타고 지나갔지만, 수색대의 그 누구도 눈살 한 번 찡그리지 않았다. 이들은 기나긴 전쟁으로 면역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잔 테만은 그런 시체 사이를 수하들과 함께 움직이며 그 구역질나 는 냄새에 속을 뒤집힐 것 같았다.

‘이 냄새는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군.’

이 멍청한 후각은 이 냄새만큼은 멍청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물 젖은 수건으로 코를 막은 채 움직이며 투덜거렸다.

“죽겠군, 언제 이런 신세를 벗어날는지.”

천인장이라 하지만, 변변한 배경도 없는 자신이 하는 일은 이 같은 뒤처리가 주였다.

그래도 전장에 나가는 일이 줄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사실 이 일도 나쁘지 않았지만, 벌써 일주일이 넘게 이 일을 하고 있자 그런 마음도 사라지려 한다.

투덜거리는 상사에 책을 잡히지 않으려는 수하들은 더욱 바짝 긴장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수 없으면 그 짜증을 홀로 다 받아내야 한다.

그때였다. 백인장 하나가 저 멀리서 무언가를 발견한 것은.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인간의 형태가 분명했다.

그는 즉시 수신호를 쫓아오는 조장들에게 보내었고, 그들은 이내 후방으로 그 소식을 전했다.

그 소식은 뒤늦게나마 후미에 있었던 잔 테만의 귀에 들어섰다.

“몇 명이냐?”

소식을 전해온 조장에게 묻자, 그는 그동안의 소식들이 중첩된 것을 모아 말했다.

“일단 확인된 것은 두 명입니다.”

“중심가에 두 명? 그럼 주위에 못해도 50명 정도가 있다는 말인데.”

그는 백인장들 중 반을 그쪽으로 보낸 뒤 주위를 벗어나지 못하게 감싸게 했고, 척후병들이 올 길들을 막으며 포위를 좁히기로 했다.

잔 테만은 오랜만에 공을 세우게 되는 것 같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생각도 시간이 지나 앞이 너무나 조용하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직감적으로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그는 자신과 가까이 있는 7백인대를 보내어 수색하게 했다.

발이 빠른 자들이 많은 7백인대였기에,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일은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곧 앞서 보낸 7백인대도 소식이 끊긴 것이다.

‘이게 무슨 일인가?’

왕국의 특수부대라 할지라도 수색대를 이렇게 조용히 지워낼 수 없다. 정예병으로 이루어진 수색대인 만큼 이 고요한 어둠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야 할 것인데 그런 것조차 보이지 않는다.

‘까마귀!’

언제부턴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자신이 변경에 있어 자연히 그 울음소리가 줄어든 탓에 신경 쓰지 못한 게 실수였다.

“어느 정도의 전력이 이곳에 숨어 있다는 것인가?”

기습이라도 하는 것인가? 하지만 왜? 왜 이런 곳으로 움직였는지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이 자신의 기지와 가까운 곳이기는 하지만 주요 거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잘못하다가는 기습을 하는 쪽이 잡아먹힐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하지만 그의 의문은 거기서 끝이었다.

자신과 함께하고 있던 350에 달하는 병력들 사이에 불타오르던 횃불들이 꺼지더니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속도는 빨라, 열, 스물, 오십, 백. 눈 깜짝할 사이에 병력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무, 무슨 일이지?’

평소 담력이 크다 자신하는 그였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자신들에게 벌어지자, 그는 어둠 속에서 괴물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몸을 떨어댔다.

수가 줄어드는 만큼 병사들의 동요가 심해졌다.

스스슥.

기이한 소리가 나는지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어느새 자신의 수하들을 독려하던 1백인대장이 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경악과 공포에 휩싸인 그는 다시 왼쪽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쉽게 고개를 돌리기 어려웠다.

“으음.”

터져 나오는 신음을 애써 막으며 걸음을 물리며 왼쪽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그 믿기지 않는 광경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했다.

없었다, 아무도.

80이 넘었던 부하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것이다. 끌려간 흔적조차 없었다. 피라도 흘렸더라면, 아니, 발자국 정도의 작은 흔적만이라도 남았다면 그처럼 두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으로부터 세 걸음 앞에 있던 경호병도 사라지니 그의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그의 심장이 비 오는 날의 미친년처럼 뛰기 시작했다.

겨우 두 걸음 거리의 자신을 놔두고 수하들만 잡아갔다는 것은 왕국군이 아님을 뜻한다. 공포에 멍청해진 그도 자신들을 습격한 존재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능을 지닌 괴물체임을 눈치챘다.

곧 그 생각이 정답이라도 되는 듯 그의 뒤로 스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그와 함께 공포에 질렸던 스물에 달하는 병사들이 모습을 감췄다.

1,000이었던 병력은 이제 겨우 100 정도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아니, 이들은 숨을 쉬고 있어나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었다. 희망을 잃은 절망에 빠진 자들이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이였으며, 도살을 기다리는 가축과도 같았다.

끌끌끌.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어둠 속이 갈라지더니 머리에 뿔이 나고 꼬리가 있는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과 하얀 분칠을 한 것만 아니라면 중후한 멋이 있을 듯한 사내가 모습을 보였다.

그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칭찬했다.

“잘했다, 덕분에 싱싱한 특식을 먹어보게 되는구나.”

그렇게 말한 사내는 절망에 빠진 수색대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고,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가지고 있던 창을 찌르는 병사에게 손을 뻗더니 그대로 그를 잡아먹었다.

그 광경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손을 뻗는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의 입이 요란스럽게 움직여 댔으니. 병사와 그의 키가 비슷하였음에도 그런 물리적인 법칙 따위는 그에게 고려의 대상이 아닌 듯했다.

까드득. 까득.

그는 아주 귀한 요리를 먹는 듯 눈을 감으며 맛을 음미했다. 목울대가 꿀꺽하며 넘어가자 그는 박수를 치며 웃음을 보였다.

“좋아, 좋아. 음~ 아주 농익었군.”

사내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그는 무언가에 묶인 듯 벌벌 떠는 병사에게 손을 대었고, 그렇게 그는 이 고요한 달빛 아래 만찬을 즐겼다.

처음 진득하게 맛을 보던 그의 손길이 급해졌다. 점차 짙어지는 절망의 맛에 흠뻑 빠져버린 것이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잔 테만의 눈에 일순간 생기가 사라졌다. 지난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스테이크를 자신이 먹었듯이 그 자신도 이자의 식량이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거대한 접시 위에 놓인 스테이크처럼 자신의 차례만을 기다리고 있던 그는 자신의 후미에서 날아온 태양과 같은 빛이 사내를 강타하는 것을 보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이후 아무도 없다 생각한 그의 뒤로 중년의 중후한 음성이 들렸다.

“좋아, 적중했군. 휴~”

한숨을 흘리며 잔 테만을 지나치는 이는 대륙의 사람과는 거리가 먼 존재였다.

짙은 검은 머리에 약간은 녹갈색의 피부를 지닌 자였는데 잔 테만은 그들이 예전에 이야기로 들었던 저주받은 숲의 부족임을 알 수 있었다.

키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존재인 그는 참마도보다 더 큰 칼을 가볍게 든 채 앞을 나아갔다. 그 뒤로 그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신보다 키가 작고 탄탄한 체구의 사내가 뒤를 이었다.

그들의 등장에 이어 그 괴물들 뒤로 공간이 일렁이더니 숲의 부족원 네 명이 나타났다. 그들 중 하나는 현자인 듯 빛의 구 10여 개를 펼쳐 주위를 밝혔다.

그리고 잔 테만은 볼 수 있었다. 사라진 수색대의 모습들을 말이다. 끔찍했다. 그들은 거대한 야수에게 뜯어 먹힌 듯 멀쩡한 신체를 지닌 자를 찾을 수 없었다. 핏물조차 다 빨아 먹힌 듯 마치 잘 말린 고기 조각처럼 주위에 널려 있었다.

그 모습에 덜덜 떠는 가운데, 누군가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수하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서시오.”

젊은 사내의 음성이었다. 힘 있는 사내의 음성에는 은은한 분노가 느껴졌다. 잔 테만은 그의 손이 자신의 어깨에 닿는 순간, 공포에 지친 육체가 조금씩 회복됨을 느꼈다.

그것을 느낀 것은 자신만이 아닌 듯, 이제 40명 정도밖에 남지 않은 수하들 또한 움직여지지 않던 다리에 감각이 들어서더니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깊은 절망에 빠진 그들의 육체가 그렇게 쉽게 움직여질 리 없었다. 그것을 눈치챈 듯 다시 기이한 힘이 일렁이더니 상당 부분의 피로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그제야 잔 테만은 수하들을 이끌고 뒤로 물러섰다.

살기 위한 본능 때문일까, 그들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 빨랐다. 중간 중간 몇몇이 시체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지만, 오뚝이처럼 재빨리 일어나 물러서는 일행들을 따랐다.

로뎅은 야안의 그 행동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로 자신들은 그들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다.

‘마법을 성공하기 위해서라 하지만, 그처럼 죄 없는 목숨들을 잃게 해야 했으니.’

천에 가까운 인명의 피해 덕분에 움직임을 제한하는 대마법을 적중할 수 있었다. 지난번에 푸란 따위에게 펼친 마법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마법이었다.

당시 그 대마법에 고위 현자 비기너에 달하는 정도의 마나만을 썼다면, 이번 마법은 그의 마나의 반 이상이 담긴 마법이기 때문이다.

만약 악마가 공간 사이로 그 마법을 피했다면, 시작부터 어긋난 단추를 끼우는 것으로 앞으로의 전개는 어떻게 될지 유추할 수 없었다.

좌측에 자리한 알레한드로와 불의 정령을 불러낸 베르뎅이 사내의 옆에 서 있는 란에게 공격을 가했다.

파동조차 들리지 않는 절정에 이른 상급 익스퍼트의 붉은 실과 지난 해적의 배를 침몰시킨 거대한 화염의 거인이 그녀를 강타했으나, 어느새 쥐어진 란의 대검은 한차례 크게 회전하는 것만으로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기습과도 같은 공격이라 란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나야 했다. 하나, 뒤로 물리는 그녀의 작은 발이 대지에 닿기 무섭게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이 들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 어느새, 란은 마치 거대한 육식 괴물 같은 형태로 변한 검으로 베르뎅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초급 익스퍼트에 오른 기사라도 잡지 못할 움직이었다.

하지만, 정령의 시선으로 주위를 살피는 베르뎅이 그저 빠르기만 한 공격 따위에 당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어느새 자신의 정령과 함께하여 자신에게 내려치는 괴물의 힘과 함께 주르륵 뒤로 물러섰다.

그의 몸 주위로 거대한 화기가 일렁이는지라, 주위에 산재한 시체들이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타들어 갔다.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졌다.

구더기와 함께 시체들이 타들어 갔고, 그 속에서 화염의 거인이 된 베르뎅이 거대한 불의 손을 그녀를 뭉개버릴 듯 내리쳤고, 곧 그녀가 자리한 곳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일어났다.

쿠웅!

그러나 란의 꼬리가 크게 한 번 대지를 치자 그녀를 중심으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더니 요란스럽게 주위를 태워가던 불길이 요란한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졌다.

불길을 지우려 생긴 잠깐의 틈을 놓치지 않은 알레한드로가 검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약간의 시간을 두고 펼친 그것은 단 하나의 검기였다.

마치 살랑이는 봄바람처럼 란을 향해 날아가던 검기는 란과 한 걸음 남긴 상태에서 수십 개로 갈라지더니 소나기처럼 그녀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쿠궁! 투두두둥!

갈라진 검기 하나하나에는 능히 수백 년 묵은 거목도 넘어질 힘이 담겨 있었지만, 파란토가 그녀에게 선물한 갑옷을 넘지 못했다.

재질을 알 수 없는 그 묵빛의 갑옷은 그녀의 늘씬한 몸의 윤곽선이 보일 정도로 얇은 것이었으나 그녀에게 일말의 충격도 주지 않은 채 모든 충격을 흡수했다.

“빌어먹을. 저 갑주만큼은 푸란의 가죽 이상이군.”

알레한드로의 욕지거리를 뒤로 어느새 그녀의 뒤에 나타난 라쿤의 한 손에는 윤곽으로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소용돌이 형태를 한 망치가 들려 있었고, 그는 이내 자신이 형성한 바람의 망치를 그녀를 향해 내려쳤다.

그러나 이 전투와 어울리지 않는 얌전한 인형 같은 그녀는 자신의 뒤를 향해 내려치는 거대한 바람의 망치를 파리 쫓듯이 손을 저으며 간단히 막더니 침을 질질 흘리는, 이제 검이라고도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무기를 그에게 휘둘렀다.

이내 묵빛이 일렁이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형체가 검에서 튀어나와 라쿤을 집어삼키려 했고, 다행히 라쿤은 바람의 정령사답게 강렬한 바람을 내뿜더니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마치 보이지 않는 실에 매달린 것처럼 사기는 괴기한 울음을 터뜨리며 끈질기게 라쿤을 쫓아갔다.

화르르.

다행히도 사형의 위기를 본 베르뎅이 거대한 불의 창을 날려 그 괴형체를 꿰뚫어 그를 위험에서 도와주었다.

라쿤은 하마터면 큰 위기에 처할 뻔했지만, 그는 잠시의 감상에 빠질 여유도 없었다.

한편에서 알레한드로는 상급 유저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란의 공격을 간신히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베르뎅이 그를 돕기 위해 갓 태어난 아기 손만 한 크기의 압축된 불의 손길로 그녀를 쉴 새 없이 내려쳤지만, 매번 그녀의 꼬리를 넘어설 수 없었다.

현란한 채찍은 강철도 단번에 녹일 그의 화염의 손길을 막고 있는 터라, 라쿤은 이내 그의 불길을 강화하기 위해 공기를 불러들였다.

푸후우!

그의 불길에서 마치 거인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이 일어나더니 좀 전보다 배는 빠르고 강력한 공격들이 그녀를 내려치기 시작했다.

과연 전력을 다한 두 명의 정령사들의 공격에 란의 긴 검은 머리가 타들어 갔고, 그녀의 꼬리가 그을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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