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132화 (132/385)

야안 132화

쿵, 쿵. 쿵!

요란한 울음과 함께 수하를 만드느라 가벼워진 가죽 자루는 다시 그만한 중량을 채워갔다.

살랑거리는 꼬리와 괴기스러운 두 뿔을 지닌 그녀는 새벽이 오기 전까지 파란토를 돕다 파란토가 손가락을 튕기자 그가 만든 검은 공간에 스며들어 갔다.

곧 파란토 또한 검은 망토를 바람에 휘날리며 자신의 자취를 감추었다.

오싹.

야안은 무언가에 등골이 서늘했다.

무엇인지 이해하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초감각이 자신과 멀지 않은 곳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말해 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이제 80%가량 감이 오기 시작한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풀던 야안은 손을 놓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기운을 느낀 것은 자신만이 아닌 듯 로뎅 또한 얼굴이 굳어 있었다.

‘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로뎅은 별을 살피며, 악마가 점차 강해지는 것을 살피며 걱정하다 자신이 풀어놓은 기감에 걸린 생전 처음 느끼는 사기의 종류에 놀라움을 감추기 어려웠다.

그 사기의 정도가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기 때문이다. 아니, 이것은 더 이상 사기라고 부를 수준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것이 문헌으로만 읽었던 마기가 아닌가? 그는 생각했다.

이 마기는 초인에 들어선 자신조차 겨우 감지한 것이었기에, 현재 이곳 전장에서 자신 이외에 그 기운을 느낄 존재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야안이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풀다 말고 허공을 바라보며 안색을 굳히는 것을 보고 이 기운을 알아챘음을 알고 로뎅은 작게 감탄했다.

‘하, 대단하군. 그것을 감지했단 말인가?’

그저 감탄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아직 초인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야안이 그것을 느꼈다는 것은 어쩌면 무의식과 의식의 폭이 상당히 좁아졌음을 뜻한다.

타고난 것 정도로는 이 기운의 불길함을 느끼지 못한다.

예전 막연하게 야안이 무의식을 개척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막상 이로써 다시 확인하게 되니 그저 크게 감탄할 뿐이다. 아니, 자신의 생각 이상으로 무의식을 확장한 듯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로뎅은 고위 현자 또는 상급 익스퍼트의 마지막에 가서야 무의식 확장의 중요성과 계발의 방법을 깨닫게 되었는데 야안이 아주 오래전에 깨달았는지 모른다 생각했다.

무슨 방법으로 무의식을 계발하였는지는 모르나 로뎅은 야안이 이미 자신의 수준을 넘어섰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또한 이방인의 능력인가?’

그는 야안에 대해 알아갈수록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고대 시절 죽음의 지배자를 위해 신이 보낸 이방인다웠다.

그는 다시 생각했다.

만약 죽음의 지배자가 나타나야 한다면 야안이 살고 있는 지금 이 시기만이 희망이 있음을 말이다.

고작 스물한 살. 그 나이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능력들을 야안이 지니고 있었다.

로뎅은 그런 야안이 마치 법칙을 거스르는 죽음의 지배자와 같다 생각했다. 그렇기에 오직 그만이 죽음의 지배자와 맞설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지.’

고대 문헌에서 대현자 테무드가 죽음의 지배자를 상대하기 전 악마가 나타난 것을 상기한다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지 모른다.

물론 그전에 아리스 님이 예언이 있었지만, 그 예언이란 것이 인간의 시간으로는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말없이 고민에 빠지다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시기상조라 느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야안은 준비되지 않았다.

“그래, 그는 많은 것이 부족하지.”

그의 말처럼 예전 야안이 고대 정령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상기한다면 현재 야안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드래곤들이 이번에 깨어날지 아닐지 모르는 일이었다. 어쩌면 지난 대현자 때처럼, 아니, 이제 타 종족들이 사라진 지금 인간만으로 그들을 상대해야 할지 모른다.

문제는 전설의 현자가 드래곤의 도움 없이는 각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과거 대현자 테무드를 보아도 알 수 있다. 드래곤의 도움이 없었던 탓에 테무드는 대현자의 자리에 올랐을 뿐 그 이상의 힘을 가지지 못했다.

다행히도 운이 따라 죽음의 지배자를 봉인하는 데 성공하였던 것이지 그것이 아니었다면 천 년 전 대륙은 이미 멸망하였을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야안은 많은 것이 부족했다. 그를 제대로 이끌 만한 가르침을 내릴 스승이 그에게 없었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가.’

야안의 사부였던 불굴의 의지를 지닌 마론 현자 덕분에 야안의 시작은 그 전설의 현자로서 최소한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또한 야안이 이방인아라는 것 덕분에 드래곤의 도움 없이도 수많은 재능을 한 몸에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축복과도 같았다.

마법에 한해서지만 뒤늦게나마 야안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음에 로뎅은 순수하게 기뻐하였다. 사실 그는 막연하게 직감하고 있었다.

이번 대전에서 자신이 죽음을 맞이할 거란 것을.

마나로 자신의 수명을 늘리고 있는 터라 평소 상급 현자 비기너급 이상의 마나를 쓰지 않았으나, 악마와의 대전에서는 남은 수명마저 마나로 전환해서 싸워야 할 것이다.

비록 문헌에서 본 것을 토대로 하였을 뿐이나 그는 이 파란토라는 악마의 무서움을 가장 적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가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않게 그를 묶어야 하는데, 자신의 마나를 반 이상 써야 할 것이고 그에게 제대로 된 일격을 가하는 데 자신의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초인이라 불리는 그조차 악마에게 가할 수 있는 피해는 고작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그나마 악마가 힘을 전부 찾지 않았음을 가정하였기에 그 같은 결과를 예상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모든 힘을 다 발휘한다 해도 악마를 묶기도 어려울 것이다. 아니, 최소한 자신과 같은 수준의 현자와 연계해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악마를 묶음으로써 그의 무기를 하나 없앤다.”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하는 악마인 만큼 제한된 공간에 묶어 버린다면 악마의 힘 중 하나를 잃게 하는 것과 같았다.

물론 그 제한된 공간에 한해서라면 악마의 움직임은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간을 타 넘겠지만, 그 정도라면 검의 구를 생성한 검사와 정령과 시선을 함께하는 정령사가 상대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기에 만약의 경우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는다 해도 로뎅은 악마를 그 자리에 묶는 것만큼은 확실히 해내야만 했다.

그는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로지에게 자신의 마법 지식의 대부분이 담긴 유물을 건넨 뒤였다.

야안에게 그 유물이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가 남긴 유물에는 그의 수련 일지도 있기에 야안이 현자로서의 길을 걷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야안을 위해 그가 부딪혀야 할 벽이나 올바른 수련 방법에 대한 조언들도 상세히 적어두었다.

이는 지금의 야안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오히려 알려주면 혼란스러울 수 있는 것들이라 이처럼 글로써 남기는 것이다.

로뎅은 잠시 기운에 흐트러짐을 보이던 야안이 이내 고개를 저으며 다시 수련을 시작하자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저처럼 이른 시기에 이 같은 경지에 오른 것은 무엇보다 저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심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근기.

예전 야안이 그의 제자 테리에게 보았던 대근기를 로뎅은 야안에게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저 모습에서 왜 젊은 시절 주위로부터 자신이 감탄과 존경을 받았는지 알게 되었다.

‘노력하는 천재란 이처럼 감동을 주는 존재로구나.’

로뎅은 이 같은 천재를 가르칠 시간이 이제 얼마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에야 그들은 제국 측 군사 기지에서 반나절 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그리고 로지와 베르뎅, 라콘이 정령을 움직인 끝에 얻은 정보를 통해 현재 악마의 숙주가 된 자라 의심되는 자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이 의심하는 자는 마법 병단의 부단주인 괴테 자작이었다.

3년 전 중급 현자 마스터로 각성하면서 부상하게 된 자인데, 그 들어선 시일에 비해 나타난 경악할 전투 능력은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불의 탑의 현자가 뛰어난 불의 공격 마법으로 유명하다지만 그가 보이는 성과는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로뎅은 물론 다른 숲의 부족들과 야안은 그가 악마의 숙주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야안은 오늘 마지막으로 갱신된 정보를 통해서 그 악마가 숙주가 잠이 들면 깨어난다는 점을 알게 되었고, 이를 일행에게 알려 밤에 그를 뒤쫓기로 했다.

로지의 정령이라면 먼 곳에서도 그 악마의 뒤를 쫓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로지가 뒤쫓지 못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베르뎅과 라콘은 그가 나타날 것으로 의심되는 시체 더미에서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야안은 파란토라는 이 악마도 그렇지만, 제국의 기지에 다가갈수록 보게 되는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시행되는 학살의 흔적들에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마치 길가의 잡초를 아무렇게나 짓밟는 듯한지라 이곳에서는 생명의 존엄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악마라 하지만, 이 모습을 본다면 인간도 그에게 무어라 할 수 없는 입장이로군.’

참혹하다는 말로는 자신이 본 광경을 다 표현할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그 같은 참사를 보았음에도, 이방인이라는 점 때문에 아리스에게서 정신적 보호를 받아 구역질이 날 것 같은 거부감은 들지 않은 점이다.

그는 그렇게 다시 작게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젓더니 이제 봉인 해제 성공을 앞둔 뇌전의 정화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기운을 일깨웠다.

내면을 다지는 검객으로서의 기운을 일깨웠고, 현자로서 외적으로 기운을 풀기 시작했으며, 얼마 되지 않으나 그가 지닌 기운 중 가장 강력한 기운인 정령력을 표출하였다.

그 모든 것을 일깨운 그는 자신의 두 손안에 쥐어진 뇌전의 정화에 로뎅이 알려준 방법대로 봉인의 일부를 갈라놓기 시작했고, 곧 이내 뇌전의 정화에서 강력한 힘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구구궁.

그 힘에 대기가 일렁거렸다.

뇌전의 정화에서 터져 나온 환한 빛은 만약 로뎅이 펼친 약식 마법진이 아니었다면, 그들이 있는 산속의 한 자락을 삼켰을 것이다.

야안의 신체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 기운을 감히 감당할 수 없어서였다.

으드득.

그는 이를 꽉 물었다. 이미 여기까지는 수차례 다가온 관문이었다. 자신은 이것을 넘어서야 했다.

그리고 야안은 느꼈다.

이번에는 성공할 수 있을 것임을.

그런 그의 느낌처럼 기운이 최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는 자신을 괴롭혔던 관문을 넘어설 수 있었다.

우우웅!

요란한 울음을 흘리던 뇌전의 정화는 더 이상 그 같은 기운도 그 환한 빛도 사라져 있었다. 아니, 봉인을 풀기 전보다 그 존재감이 낮아져 있었다.

하얀빛도 약화된 상태였고, 느껴지는 기운도 전보다 못했다.

하지만 뇌전의 정화를 쥐고 있는 야안은 알 수 있었다. 그가 뇌전의 정화를 통해 펼칠 힘은 미숙한 심혼의 일격에 비해 크게 모자라지 않음을 말이다.

아니, 그 기운의 성질을 생각한다면, 현재 자신이 악마에게 가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일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현재로서는 단 한 번밖에 펼치지 못한다고는 하나 육체적인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 전투 시 그가 방심한 틈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부디 이것이 그 악마와의 전투에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군.’

뇌전의 정화가 봉인에서 풀려나면서 겪은 변화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쥐고 운기를 하자 지금보다 더욱 정련된 뇌전의 기운을 모을 수 있었다.

그로서 그의 뇌전 신공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데, 그 숙련도는 두 배에 달했고 그 기운이 더욱더 순수해짐으로써 야안이 뇌전의 기운을 다스리는 것이 전보다 한결 쉬워졌다.

야안이 드디어 뇌전의 정화의 봉인의 일부를 풀어내자 숲의 일족들은 그에게 축하해 주었다.

그 시기가 절묘했다. 이제 그들은 이제 악마를 치는 데 필요한 준비가 모두 끝이 났다.

잔 테만.

그는 제국 남작가의 일곱 번째 아들로 살 방도를 찾다 군에 입대하였다.

다행히도 검에 대한 재주가 뛰어난지라 그는 몇 년 되지 않아 백부장에 오를 수 있었고, 전쟁이 난 이후 제2전장에 들어서 공을 세운 뒤 천인장에 오르게 되었다.

천인장도 다 같은 천인장은 아니다. 변경백의 천인장과, 1황자의 세력 아래 있는 천인장의 권위는 비교할 수 없다.

군에 입대한 지 9년 만에 그는 자신의 힘만으로 가문의 위치를 넘어선 것이다.

상급 유저의 끝을 넘어 익스퍼트를 바라보고 있는 그는 그 통찰력을 인정받아 수색대의 책임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의 인생에 거칠 것이 없다 생각했다. 그날, 그 악몽이 자신에게 벌어지기 전까지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