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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31화 (131/385)

야안 131화

43. 파란토 I

상단과 따로 움직이기 시작한 지 하루가 지난 야안 일행은 정령을 통해 얻은 정보에서 이곳 근처에 상당수의 병력들이 움직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들 중 대부분이 제국의 병사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이 유저이고 중간 중간에 상급 유저가 끼어 있는 것을 본다면 특수 병과에 속한 수색대인 모양이었다.

꼼꼼한 정찰을 통해 왕국이 남긴 정찰병을 찾던 그들이었지만, 로뎅이 펼친 현혹 마법 속에 자리한 그들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현혹 마법의 약식 형태로 본래는 정령사와 마법사의 연계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야안 일행이 있는 곳은 움직이기도 힘든 나무와 가시덤불이 자리한 것처럼 보이는지라 그들도 그 근처만을 오갈 뿐이다.

본래 이 마법에 대해 아는 그들 부족에게서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지만, 야안은 바로 코앞에서 불을 피우며 음식을 먹고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하는 모습에 그저 감탄을 흘렸다.

듣기로는 이 약식 마법도 고위 현자 비기너나 되어야 펼칠 수 있는 대마법이라 하였지만, 한눈에 이 마법의 가치를 깨달은 야안은 작게 신음을 흘렸다.

‘이 마법이 전장에 이용된다면 얼마나 무서운 일이 벌어지겠는가?’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투일 것이다. 그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을 것이며 그들이 모습을 보인다 해도 이미 일을 끝내고 후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고위 현자 비기너의 경지에 들어선 자라면 함부로 움직이지 않겠지만, 이 같은 마법의 효율성을 안다면 반드시 그 같은 전술을 펼칠 게 분명했다.

‘이런 마법을 펼치는 자들과의 전쟁이라니 달갑지 않군.’

아쉬운 점이라면 중급 현자 마스터부터 이런 기이한 마법을 알아챌 수 있다는 점인데 그것도 사실 단점이라 할 수 없었다.

제국이 아니라면 중급 현자 마스터 이상은 웬만한 왕국에서도 한 손을 넘지 않았으니 약간의 신경만 쓴다면 이 마법이 걸릴 이유는 없었다.

야안은 식사를 끝낸 뒤 잠시간의 휴식 시간 속에서도 악마를 상대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틀 전에서야 현자 마스터의 경지를 수습한 그는 지금 로뎅의 도움을 받으며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풀고 있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풀게 되면서 자신이 서두르지 않기를 잘했음을 느꼈다.

봉인 일부분만을 풀려 시도했을 뿐임에도 그조차도 감당하기 힘든 기운의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자신은 이것을 다스려 뜻한 바대로 힘을 써야 하는데, 중급 현자 마스터에 상급 익스퍼트에 오른 그도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는 그제야 이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푼 로뎅의 힘과 거인들의 왕인 붉은 노을의 힘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었다.

‘초인이라. 그 말 그대로군.’

예전 붉은 노을이 말하기를 자신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물건이라 하였으니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라서야 봉인이 풀린 뇌전의 정화의 힘을 다스릴 수 있을지 지금의 야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현재 제2 전장에서 폭풍의 핵이라 불리는 이를 뽑으라면 당연 제국의 괴테 자작을 들 수 있겠다.

그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 3년 전 갑자기 전쟁에서 중급 현자 마스터로서 각성했다. 그 이후의 그의 행보는 몹시도 파격적이었다.

그의 손에 죽은 기사만 해도 다섯이 넘었고, 그 기사 중에는 중급 익스퍼트에 오른 이도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니 후작을 견제하던 스키티 왕국의 토니 공작과 세 명의 중급 현자 마스터들 중 중급 현자 마스터 두 명이 그의 손에 제거된 것이다.

중급 현자 마스터에 오른 지 겨우 3년 만에 그런 일이 벌어졌다.

불의 탑의 제자들이 공격 마법에 능한 편이라 하지만, 이미 몇십 년을 중급 현자 마스터의 경지에 머물고 있는 현자들을 사살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 덕분에 지니 후작을 견제하던 토니 공작은 최근 별다른 힘을 쓰지 못하고 한없이 밀리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왕국 연합은 한 달 만에 하루 거리를 밀리게 되었고, 다시 석 달 만에 나흘 거리를 내줘야 했다.

“믿기지 않는구나.”

제국의 군대는 악몽과도 같았다. 아니, 그보다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괴테 자작은 정말이지 이해되지 않는 미지의 생명체를 보는 것 같았다.

이틀 전 자신과 상대한 그와의 일전을 생각한다면 소름이 돋는다.

중급 현자 마스터라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같은 고위 현자를 보는 듯했다. 만약 그가 쓰는 마법의 종류나, 대기에서 일렁거리는 마나 형태가 자신보다 조잡하지 않았다면 기이한 마법으로 자신의 눈을 현혹시키는 고위 현자라 해도 믿었을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급 마법들을 배열을 바꾸고 다른 하급 마법과 몇 번 조합하는 듯하더니 이내 자신이 생각할 수 없는 형태의 강력한 공격 마법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그것은 오직 불의 탑 현자만이 보일 수 있는 것이었으니 토니 공작도 감히 따라 하지 못할 일이다. 하지만 모든 불의 탑 현자가 그 같은 무위를 보였다면 대륙에서 공격 마법을 지향하는 현자들은 모두 불의 탑 아래에 모여들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하위 마법을 다루는 면에 있어서는 그는 지니 후작보다 뛰어난 것 같았다.

그자 때문에 지니 후작이 자유로워져 강력한 대마법이 전장에 펼쳐졌고, 결국 자신들은 자작의 영지까지 내줘야 했다.

가까운 곳에 새로운 물자를 맡을 영지를 찾고 있지만, 지금 전장의 분위기를 본다면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나라에서는 점차 크게 밀리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 10%의 병력을 더 보내주었고, 새롭게 합류한 중급 현자 마스터와 초급 익스퍼트 기사 네 명 그리고 중급 익스퍼트 기사 한 명을 보내어 다시 기지를 자리 잡게 되었다.

“후~ 이제 더 이상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게 되었군.”

한숨을 흘리는 토니 공작의 말처럼 두 왕국은 이제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80%에 달하는 국가의 병력들이 이번 전쟁에 내보인 것이다. 그야말로 최소한의 방어만을 남겨두고 모든 병력이 동원된 것과 같았다.

물자 조달에 차질이 없기 위해 스키티 왕국과 체만 왕국은 최선을 다하고 있어 군대의 사기는 크게 떨어지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척후병을 보내 살펴본 제국도 새롭게 군대를 이동하고 기지를 다듬으려 하면 못해도 나흘의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 시간 안에 왕국 연합 측에서는 무언가 다른 수를 내야 했다. 이대로라면 제2전장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최근 지니 후작 다음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는 괴테 자작은 그 외적인 성과와 달리 내적으로 심히 불안함에 잠기고 있었다.

공을 세우고 있다지만, 그 당시에 자신의 몸과 마음은 마치 다른 생명체가 다스리고 있는 느낌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무어라 할까? 분명 기억에는 남는데, 그 기억이 조작된 느낌이라 할까? 아니,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느낌이라 할까?

이 불안함에 대해 지니 후작에게 말을 하자, 그는 전투 현자로서 아주 뛰어난 기질을 가지고 있다며 웃어넘길 뿐이다.

그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보낸 현자들은 특유의 기감이 열린다. 그 기감이 열리면 그 자신의 경지를 뛰어넘는 일들을 할 수 있다. 기사들처럼 일정한 영역을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로써 좀 더 자세한 방위를 잡아 효과적인 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지니 후작은 괴테 자작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결코 괴테 자작이 느끼는 것은 그런 것 따위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무어라 더 말한다 하여도 지니 후작에게서 답을 얻기란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스스로 다스리며, 그때의 기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어떤 점이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지, 어떤 면에서 몸과 마음이 자신의 뜻과 다르게 움직인다 생각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수록 기억은 좀 더 자세하게 조작되어 가는 것 같았다.

마치 확실한 심증이 있는 범죄자를 앞에 둔 채 물증이 없어 잡지 못하는 것처럼 그는 지금 자신이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에 고개를 저어야 했다.

결국 한탄을 흘리며 술에 취해 괴테 자작은 잠이 들고 말았다.

―끄그극.

잠 든 괴테 자작에게서 기이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내 모습이 바뀌었다.

하얀 분칠을 한 것 같은 얼굴에 붉은 입술, 미묘한 웃음과 콧수염을 가진 중년의 신사가 대신 나타난 것이다.

그는 허공에 손을 뻗더니 이내 녹색의 탑햇을 생성하여 자신의 머리에 쓰더니 곧 옷 또한 녹색의 고대 시절의 신사복으로 바꾸었다.

짙은 녹색 신사복으로 무장한 그의 모습은 참으로 세련되어 보이기까지 했으나, 그는 방 안에 놓인 거울을 통해 자신을 모습을 보더니 이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곧 탑햇과 망토 등 그가 걸친 모든 것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그래도 마음에 안 든 듯 다시 손가락으로 튕기며 다른 색으로 바꾸었고, 그렇게 여러 가지 색으로 바꾸던 그는 결국 검은색으로 돌아와서야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 몸에는 검은색이 가장 잘 맞는군.”

한참 동안 거울을 보며 자신의 모습에 만족함을 보이던 그는 괴테 자작이 비워버린 술병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이 멍청한 인간 때문에 내 술이 다 없어지겠군.”

자신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기도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오히려 절망에 빠진다면 자신으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몸을 차지할 시간이 길어지게 된다. 아직도 봉인을 풀기 위해 모인 힘이 40% 정도밖에 되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면 시간을 앞당기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살이라도 하면 큰일이니.”

아무래도 지난번에 너무 노골적으로 움직였던 모양이다. 그는 자제해야겠다 생각을 하더니 자신의 허리를 툭툭 쳤고, 어느새 그는 이틀 전 요란했던 전장의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었다.

“늙어 이게 뭐하는 짓인지. 주인님께서는 왜 젊은 놈들 놔두고 매번 나를 깨우시는 거지.”

어제만 해도 주인님이 자신을 아끼신다고 찬사했으나 변덕스러운 그답게 오늘 그는 내내 투덜거리며 뱀의 형태로 만들어진 담뱃대를 물었다.

확실히 절망에 빠져 죽은 이들이라 그런지 다른 때보다 얻을 수 있는 힘이 상당했다. 그는 이리저리 자루를 끌고 다니다, 이내 후하고 연기를 내뿜었다.

“역시 혼자서는 어렵겠는걸.”

지난 전장에서 죽은 이들의 수가 상당했고, 그 기운도 대단한지라 그는 저 혼자서는 하기 힘들다 생각했다.

“어디 오랜만에 만들어볼까?”

재를 털어 넣는 자루에 손을 집어넣은 그는 짙은 회색의 진흙 형태를 꺼내었다. 그 안에 느껴지는 힘이 대단해 괴조의 울음처럼 대기가 일렁일 정도였다.

일반 사람들이라면 그 기운에 접촉한 순간 죽었을 것이고, 상급 유저에 오른 이도 내상을 입어야 할 것이다.

오직 익스퍼트 이상에 달하는 이만이 그 기운에 대응을 할 수 있을 터였다.

단순히 기운의 여파만으로도 그 정도인데, 그것을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거라면 얼마나 큰 힘의 여파가 있을 것인가?

하지만 악마는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듯이 담배를 입에 문 채 조몰락거리기 시작했고, 곧 그 정체 모를 짙은 회색은 정교한 인형의 형태로 바뀌었다.

죽음의 지배자를 따르던 검은 엘프들을 모태로 만든 것으로, 그 인형은 매우 아름다웠다.

악마, 파란토는 그 자신이 만든 인형에 매우 만족한 듯했다.

“오랜만에 만드는 것으로 걱정했건만, 역시 나의 솜씨는 변함이 없군. 천 년 만의 작품이니만큼 제대로 대접해야겠지?”

그는 담뱃대를 허공에 뜨게 한 뒤, 잡고 있는 인형에 긴 연기를 흘리기 시작했고, 곧 인형이 흐물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그렇게 흐물거리는 인형을 허공에 던지더니 잔기침을 흘리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이런, 너무 무리를 한 것인가? 뭐~ 나중에 따로 손보지 않아도 되니 좋기는 하지만.”

인형은 쉴 새 없이 흐물거리며 빠르게 성장했다. 그렇게 손바닥만 했던 인형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여타의 인간 정도의 크기로 성장했다.

인형이었을 때도 아름다웠으나 실제 생명력을 가지게 되자 인형일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다.

얼굴은 제국에서도 짝을 찾기 어려울 만큼 요염했고, 풍성한 흑발은 신비로움을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

몸매는 어떠한가? 정말이지 비현실적인 몸매라 할 수 있다. 마치 융 제국의 특산품 중 하나인 크게 굴곡이 진 항아리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다만 긴 꼬리와 우아하기까지 한 큰 뿔이 머리에 있는 것이 이질적이어 거부감을 들 수 있는 게 인간들한테는 다행이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미모에 현혹된 사내들이 그녀를 진정으로 적으로 삼기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길게 한숨을 흘리며 첫 숨을 들이마시더니 몸을 굽혀 파란토에게 예를 보였다.

“란이 주인님을 뵙습니다.”

스스로 란이라 소개하는 여인에게 파란토는 담배 연기를 다시 자욱하게 흘렸고, 연기는 그녀의 나신을 휘감더니 묵빛이 일렁이는 재질을 알 수 없는 갑주와 검을 선사했다. 자신의 미학에 맞추는 듯 연기는 한참을 그녀의 몸을 감싸다 사라졌다.

연기가 사라지자 그녀의 육체의 곡선을 살리는 기이하게 변형된 갑주와 그녀의 키만큼이나 긴 검이 등에 매달려 있었는데, 그 검과 갑주가 잘 어울려 나신이었을 때보다 더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일을 시켰다.

“좋아, 좋아. 내 일을 도와라.”

“명 받들겠습니다.”

고개를 깊게 숙이며 예를 표하던 그녀는 길고 섬세한 손가락을 크게 휘저으며 파란토가 한 것처럼 기운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그 속도는 파란토에 비해 반도 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 정도라면 이 기운이 대기에 다 흩어지기 전까지 다 모을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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