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135화 (135/385)

야안 135화

단 한 번의 공격이었다.

그것도 몸의 반이 날아간 상태였고, 자신들은 전력을 다해 공격을 펼친 상태였다. 그러했는데, 그 모든 것을 기괴한 한 번의 공격으로 막아섰을 뿐 아니라, 큰 스승 중 한 명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과연 드래곤들과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악마다운 힘이었다.

야안은 뇌전의 정화의 힘으로도 큰 타격을 주지 못한, 저 악마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절망의 악마라 했던가? 그 칭호가 그처럼 잘 어울릴 수 없다.

‘쏴아아악-’

그런 그들의 심정을 아는지, 파란토는 그가 들고 다니던 가죽 자루를 허공에서 꺼내더니 그 안의 것을 통째로 입에 부어 넣었다.

씹지도 않은 채 물을 삼키듯 요란하게 먹어 치운 그의 기운이 달라졌다. 파란토는 비워져 버린 가죽 자루를 휙 던져 다시 허공에 감추더니 야안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젠장.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군.”

그 보이는 모습과 달리 파란토는 뇌전의 정화의 공격에 상당한 피해를 본 상태였다. 비록 겉으로 복구를 했지만. 그의 근원의 힘은 뇌전의 힘에 위협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 근원을 잃게 된다면 자신은 더 이상 부활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모든 사마를 멸하는 기운이라더니 설마 주인님께서 내린 저주마저 위협할 수 있을 줄이야.’

덕분에 그는 자신이 모은 절망의 기운을 모두 풀어야 했고, 그제야 근원을 위협하는 야안의 뇌전을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속사정을 모르는 야안과 숲의 부족들은 이 답이 나오지 않은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로뎅이 나선 것은 그때였다.

그는 오랜 세월 속의 경험을 통해 지금 전환점이 필요함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저 죽지도 않는 악마를 물리치려면 고대 대현자 테무드가 했던 방법을 자신이 써야 함을 알았다.

그것은 그가 이번 악마와의 전투에 나선 이유였다.

그는 품속에 숨겨둔 지난 부족의 준비에서 완성시킨 9개의 상급 마정석을 들인 끝에야 완성한 대현자 급의 대마법진을 꺼내 들었다.

그 마법은 당시 대현자가 악마를 상대하였던 자료들을 모아 분석해 복원한 마법이었다. 그 마법의 정체는 바로 파란토의 마기와 그 숙주인 육체와의 일체화였다.

기록과 야안의 정보, 그리고 실제 그를 만나 살핀 결과 그는 본래 형체가 없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생명체였다면 죽었을 공격에도 살아남았고, 다시 육체를 복원할 수 있었으며 공간을 타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애초 그는 살아 있는 존재가 아니었고, 그것은 하나의 념이었으며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였다.

대현자 테무드는 그 점을 꿰뚫어 보아 그가 숙주를 삼은 존재와 일체화시키는 대마법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천년이 지나 저주받은 숲의 위대한 큰 스승인 로뎅이 그 마법을 복원한 것이다.

그 위대한 마법의 이름은 ‘라타샤무르’ 로 고대 자신들의 선조인 하프 하이엘프인 라타샤가 만든 대마법진을 합쳐 놓은 것이었다.

그 마법을 완성하기 위해 총 다섯 개의 대마법진이 쓰여 졌는데, 문제는 발동하는 데 필요한 마나가 상상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족에서도 그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그뿐이다.

본래 로뎅은 자신이 이 마법을 펼치기 전, 남겨진 자들을 위해 그의 힘을 약화시키려 했으나 저 악마에게는 그 마저도 통하지 않을 듯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야안이 자신의 몫을 훌륭하게 성사시킨 것에 있다. 비록 저 악마가 내색하지 않았지만, 조금 전 야안의 그 공격은 그 악마에게 큰 피해를 준 것을 그는 알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이 마법이 실패할 확률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품속에서 꺼낸 대마법진을 일깨우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다시금 시작되는 악마와 전투를 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던 그의 몸이 점차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그들의 선조인 라타샤처럼 머리는 물론이고 피부 또한 붉은빛으로 환해졌다. 그렇게 붉어지기 시작한 그는 형체를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마지막 과정에 들어선 그의 모습은 하나의 붉은빛과 같았다.

그의 입이라 생각한 곳에서 무언가 중얼거리더니 이내 ‘라타샤무르’가 펼쳐졌다. 그의 고결한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다행히도 처음 로뎅의 속박마법에 걸렸듯이 그의 이 마법 또한 파란토에게 적중된 것이다. 붉은빛을 한 몸에 받은 파란토는 바뀐 상황에 몸을 떨었다. 그리고 이내 고통이란 단어를 모르는 것 같은 파란토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성공한 것이다. 로뎅이 펼친 ‘라타샤무르’로 인해 그는 육체를 가지게 되었고, 죽음을 맞이하는 생명체가 되었다.

설마, 대현자 테무드와 드래곤 이외 자신을 육체에 고정시킬 수 있는 존재가 있을 줄 몰랐던 파란토는 고통에 신음을 흘리며 분노했다.

“이 몸이 이 같은 모욕을 받다니.”

분노에 찬 그의 공격은 조금 전과 달리 세세한 정묘함이 떨어졌으나 그런 부분을 채우고도 남을 힘이 자리했다.

채찍이 된 담배 파이프를 휘젓는 그의 공격에 야안 뿐 아니라 그곳의 부족들은 수세에 몰렸지만, 조금 전과 달리 자신들의 공격에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을 확인하자 그들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숲의 위대한 큰 스승이었던 고결한 영혼을 지닌 로뎅의 죽음으로서 만들어진 희망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리라.”

야안은 그 말처럼 그들은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다. 그의 공격의 대부분을 야안이 받아내었고, 타린과 오스가 그의 시선을 빼앗으며, 마지막 남은 큰 스승인 타이카가 공격의 여지를 만들어 주었고 로지는 그가 만든 여지에 모든 기량을 다 뽑아내어 파란토에게 피해를 줬다.

그래 보아야, 여기저기 자잘한 형태의 부상밖에 입힐 수 없었지만, 조금씩이나마 악마가 지쳐가고 있음을 그들은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 반해 그들이 입는 피해는 그 악마가 입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명적인 것들이었다. 야안이 건곤대나위를 극성으로 펼치며 파란토의 공격을 빗겨치며 흘리는 등 대단한 신위를 보였으나, 사실 그 혼자로는 아무리 최선을 다 한다 해도 그 공격의 80% 정도를 막아서는 게 고작이었다.

남은 20%의 공격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맞아들여야 했다. 다행이 이들은 숲의 몬스터들을 수없이 상대한 경험자들이었고, 그로서 그 막강한 공격 속에서도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으나, 그렇다 해도 가볍게 스쳐도 뼈가 부러지고 몸이 찢겨지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중간 중간 로지로 인해 틈이 난 야안이 그들을 ‘리젠’으로 치료를 해준다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아니, 그보다 치료를 실행한 앞에서 맞서 싸우는 야안의 상태가 가장 좋지 않았다. 그들을 치료하는 것보다 그 자신의 부상을 돌보는 게 급선무였다.

그 스스로 리젠을 펼치고 그레이트 힐과 마케를 스스로 펼쳤지만, 그의 거칠고 강력한 힘을 지속적으로 상대한 탓에 그의 상태는 호전되기보다 점차 악화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야안은 스스로 크게 돌보지 않았다. 그에게는 아직 9 스탯이 남아 있었고, 이것을 이용한다면 지금의 부상 정도는 어렵지 않게 나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힘과 민첩이 늘어난다면 지금과 같은 무위를 보이기 어려울 것이지만, 몸을 다쳐 제대로 운신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절묘한 줄 달리기가 이어져 갔다.

그들의 무시무시한 힘이 오가는 전투로 시체로 뒤덮인 벌판의 20%가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내며 그 본래의 자취를 감추었다.

대기는 미친 듯이 울어댔으며, 점차 그 전투는 확전되어 갔다.

비단 그들의 전투만이 그 같은 모습을 보인 게 아니었다. 그에 비해 많이 못 미치나 그 옆에서 란이라는 괴물과 전투를 벌이는 알렌한드로와 2명의 정령사의 접전 또한 대단한 것이었다.

이들의 전투는 앞서 파란토와 전투를 벌이는 이들만큼이나 치열했다. 알렌한드로는 이미 왼손과 두 귀를 잃었고, 베르뎅 또한 왼발을 절게 되었다. 라콘은 왼쪽 눈이 터지고 코가 뭉개지고 오른손을 잃었다. 치료할 여유가 없어, 그들은 정령의 힘과 마나로 임시적으로 흘러나오는 피를 막은 상태였다.

물론 그들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란 또한 왼팔을 잃고 오른쪽 다리를 절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 빠른 움직임으로 번번이 자신들을 힘들게 한 만큼 기동력이 줄어들자 전보다 한결 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대등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들은 수세에 밀리는 상태였다.

파란토와 야안 일행 간의 그 미묘한 줄 달리기는 시간이 지날수록 파란토에게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사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악마 파란토에 비해, 인간의 육신을 한 그들이 지닌 힘은 그 한계선이 한참 낮았던 탓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다면, 가장 중요한 핵심인물이었던 야안의 마나는 끝없는 바다와 같이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이는 야안이 벌써 2스탯이나 마나에 투자한 덕분이었지만, 그를 상대하는 파란토의 입장에서는 야안의 존재는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의 존재와 같았다.

야안은 점차 힘들어가는 전장의 상황에서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함을 직감했다.

‘내가 저자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뿐이다.’

바로 미숙한 심혼의 일격과 그동안 모은 뇌전의 정령의 힘이었다. 비록 뇌전의 정화를 통해 펼친 뇌전에 비한다면 많이 미숙한 것이었으나, 로뎅이 죽기 전 자신에게 날린 메시지 마법의 충고에 따르면 오직 뇌전만이 이 전투를 끝낼 수 있다고 했다.

당시 죽음을 바로 앞에 둔 그 순간에도 전투의 행방을 염려하는 로뎅의 그 희생에 야안은 말문을 잃었다.

자신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아마 그러기 어려울 것이다. 위대한 자의 죽음에 감상을 보일 여유가 없음에 그는 슬퍼했다.

야안은 그의 유언과도 같은 충고를 받아들여 이 뇌전의 힘을 펼칠 한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 자신이 보았을 때, 기회는 단 한 번이다.

최소한 저 존재에게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지닌 뇌전의 정령력을 일순간에 부어야 했다.

그는 생각했다.

미숙한 심혼의 일격과 뇌전의 정령력이 함께 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고민한 결과 결론은 무리였다. 애초 자신의 심혼의 일격은 그 말대로 미숙한 자의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미숙한 심혼의 일격으로 치명타를 주고 바로 직후 뇌전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그의 모든 스탯이 희생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제 4번 밖에 남지 않은 리젠 또한 그 스스로 펼쳐야 할지 모른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현재 자신과 같이 전투를 하는 이들 중 몇 명은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일이다.

가장 앞에서 파란토와 싸우며 그의 공격 패턴과 약점을 찾아가던 야안은 그때가 물이 올랐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어스로 땅을 일으켜 파란토의 공격을 막아서며 메시지 마법을 펼쳐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동료에게 알렸다.

야안의 메시지 마법에서 그중 몇은 죽어야 할지 모르는 상황임을 알았으나 그들은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은 상태였다.

저자. 악몽과도 같은 존재인 저 악마를 해치우기 위해서라면 이미 혼이라도 팔 각오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야안의 뜻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임을 그들은 알았던 것이다. 이 기회를 놓친다면 위대한 큰 스승이신 로뎅님의 희생은 의미가 사라진다. 아니, 그것이 아니어도 저 악마가 자신들을 베어버리고 결국 힘을 되찾는다면 대륙은 큰 절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공격을 가하던 로지가 방어에 치세했고, 시야와 그의 기감을 방해하던 타린과 오스는 야안이 자리한 곳의 일부에 다가갔다.

타이카 또한 야안이 만든 어스 마법에 모든 기량을 발휘하여 야안이 물러서면서 생긴 구멍을 메웠다.

하지만, 이미 상당히 지친 그들로서는 야안 만큼의 기량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단 몇 초의 시간 만에 그들의 방어는 뚫리기 시작했다.

로지가 만든 두터운 만년설이 녹아내리며 그의 오른손이 녹아내리기 시작했고, 공격을 막아서던 타린과 오스는 검을 잃어야 했다. 타이카 또한 파란토가 순수한 기운만으로 자신의 마법을 역류시키자,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무릎을 꿇어야 했다.

검을 잃게 되어 버린 타린과 오스는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아니, 사실 검을 잃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의 마나는 고갈 된 상태였기에 더 이상 파란토를 상대할 힘은 그들에게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괴롭히던 이들을 처리할 기회를 그대로 둘 파란토가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을 펼쳐 거대한 어둠의 공간을 형성해 그들을 잡아먹으려 했고, 오스와 함께 뒤로 물러서던 타린은 그것을 눈치채고 재빨리 오스를 힘껏 던졌다.

‘수우웅-’

타린이 사라졌다. 그랬다. 파란토가 만든 어둠의 공간에 의해 타린이 지워진 것이다. 단발마의 비명도 없었다.

너무도 허망하게 그 존재가 지워져 버린 것이다.

요란하게 대지를 뒤구르던 오스는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았고, 그 믿어지지 않는 일에 분노를 토해내며 파란토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이 개자식아.”

위대한 큰 스승이 눈앞에서 죽었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하던 그였지만, 형제이자 라이벌이었던 친우의 죽음에 그의 강철 같은 정신세계가 무너져 못했다.

그의 손에는 녹슨 검 한 자루가 자리했고, 그는 겨우 한 번의 검기를 펼칠 마나 밖에 남지 않았지만, 그는 그 한 번의 검기에 모든 것을 걸었다.

파란토의 공격에 왼팔이 하나 잃게 되고 눈 하나를 잃게 되었으나 그는 그 다가가는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

단 한 번, 저 빌어먹을 면상을 지닌 악마에게 일격을 가해야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현실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에 젖어버린 녹슨 검이 그의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폭사해 버린 것이다. 덕분에 그 또한 검의 파편에 치명타를 입으며 뒤로 물러서야 했다.

그때였다. 기묘한 우연이 일어난 것은.

대기를 휘날리는 검의 파편 따위에 강력한 육체를 지닌 파란토가 다칠 리 없기에 무시하던 파란토에게 기적과도 같은 우연이 일어난 것은 말이다.

검의 파편 중 하나가 파란토의 눈에 부딪히게 되었고, 육체와 일체화되어 버린 탓에 인간의 습성이 생긴 그의 한 쪽 시야가 잠시 어둠에 잠겼다.

미숙한 심혼의 일격을 가하기 위해 틈을 노리며 일격을 준비하던 야안은 초감각의 뜻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푹-’

파란토의 날카로운 기감 아래에서도 그 일격을 가하는 야안을 느끼지 못했다. 단순히 기세가 없다는 정도가 아니었다.

아주 잠시였지만 야안 그 존재 자체가 사라졌다는 느낌을 파란토는 가지게 되었다. 볼 수 있을 뿐 느낄 수 없는 일격인 것이다.

만약 파란토의 한쪽 눈이 감겨지지 않았다면 야안의 그 일격이 그처럼 완벽하게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야안의 검은 파란토의 왼팔과 오른쪽 다리를 떨어뜨리고 내장을 뒤집어 놓았다. 그 스스로 펼쳤음에도 놀라운 결과였지만 야안은 감탄할 수 없었다.

파란토가 느끼는 고통만큼이나 끔찍한 고통이 그를 향해 몰아쳤기 때문이다. 상급 익스퍼트에 오른 덕분에 그때의 70%정도의 피해가 전신을 강타했다.

“으으음.”

저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신음 속에서 야안은 재빨리 남은 리젠 모두를 스스로 펼치고 힘과 민첩에 남은 스탯을 모두 부여했다.

각각에 한 번에 3의 스탯이 부여되자 뒤틀리는 야안의 신체가 무섭게 잡혀갔다. 그 과정은 조금 전 고통만큼이나 끔찍한 것이었지만, 신체가 제 뜻대로 움직여지자 야안은 그 고통을 무시한 채 준비한 뇌전을 파란토에게 내 뿜었다.

‘파지직-’

잠자고 있는 뇌전의 정령이 자신의 뜻을 따라주었던 것일까?

일직선으로 뿜어져 나가는 뇌전에는 그가 모은 정령력 이상의 기운이 자리했다. 뇌전의 정화에 비해 10%도 되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야안이 하고자 했던 일을 달성하기에 충분했다.

뇌전은 파란토의 심장을 관통하며 지워냈고, 그의 검에 크게 상처를 입은 내장 또한 뇌전의 여파에 타버려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게 되었다.

파란토는 자신의 근원의 힘이 야안의 뇌전에 의해 지워져 가자 공포에 떨었다. 아니, 절망에 빠졌다.

죽어도 죽지 않는 존재이기에 소멸 따위는 그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부활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경우는 달랐다.

진정한 의미의 죽음인 것이다. 절망의 악마라 불리던 파란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자신의 소멸에 끝없이 절망하며 죽음을 맞이했다.

‘쿠웅-’

요란하게 땅 먼지를 일으키며 넘어서던 파란토의 모습이 바뀌어져갔다. 지난번 정찰을 통해 로지가 보여준 괴테 자작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몸속에 악마가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듯 그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였다.

야안은 잠시 괴테 자작을 바라보다, 이내 요란하게 전투를 벌이고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렌한드로의 검은 깨져 있었고, 그들이 입고 있던 푸란의 갑주는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는 미숙한 심혼의 일격의 여파에 제 뜻을 따르기 어려워하는 신체를 억지로 이끌고 자신이 떨어뜨린 전설의 검을 쥐며 그들의 전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알렌한드로와 베르뎅, 라콘은 파란토가 죽었음을 몰랐다.

그들은 란을 상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더 이상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그럴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처부위는 베르뎅의 불꽃에 의해 요란하게 지져 있어 흉측한 상태였다. 이는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마나와 정령력을 그런 일에 소모하는 것도 사치였다.

만약 란의 왼손과 그녀의 오른 발에 큰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면 그들은 지금의 방어도 불가능할 것이다.

베르뎅이 눈이 되어주고, 라콘이 알렌한드로의 움직임을 도와주었고, 알렌한드로는 모든 기운을 검에만 집중하였다.

더 이상 검기를 날리는 것은 무리였다. 그저 생성된 검기가 끊어지지 않게 몰아치는 란의 공격을 빗겨 흘리는 것을 그는 목표로 하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 한다.’

저쪽 너머의 일행들은 자신들 이상의 전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숲의 위대한 큰 스승이신 로뎅님과 이방인이자 전설을 잇는 후계이신 야안이 그곳에 있었다지만, 이 괴물을 만들어낸 악마의 능력이라면 그 전투는 보지 않아도 제 생각을 뛰어넘는 치열함이 있을 것이다. 아니, 중간 중간 멀리 떨어진 자신에게까지 후폭풍이 불어오는 것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 듯했다.

‘쾅, 쾅쾅-’

한 번의 부딪힘이 있을 때마다 온몸의 뼈가 부러질 것 같은 충격이 일어난다. 반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애검은 이제 길면 20번을 짧으면 10번을 막는 게 고작일 것이다.

‘아, 이대로 끝인가?’

검기를 아슬아슬 세운 애검에 균열이 일어났다.

다섯, 넷, 셋……. 그는 더 이상 숫자를 세지 못했다. 란의 공격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자신들과 끝없는 혈전을 보였던 그 괴물이 무너지고 있는 것을 말이다.

‘촤아아악-’

허물어지는 괴물은 머리부터 가슴까지 갈라진 균열이 일어나더니 요란하게 회색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마치 피처럼 뿜어내는 연기의 양이 많아질수록 그녀의 그 곱던 피부도 쭈굴쭈굴해지며 몸이 축소되기 시작했고, 그와 더불어 그녀가 쥐고 휘두른 검과 갑옷 또한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결국에 이르러 그 괴물은 허공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 강하고 지독했던 괴물의 최후치고는 너무나 허망했다.

괴물이 사라진 그 자리에 야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더 이상 검을 들 힘조차 없는 듯 그의 검은 대지에 박혀 있었고, 그의 눈은 잠시 자신들의 안위를 살피다 깊게 감겼다.

‘털썩-’

송장처럼 넘어지는 그를 알렌한드로가 잡아챘다. 그는 그를 잡아채자 마자, 코에다 손을 올리고 맥을 잡아 몸을 살폈다.

다행히도 숨을 쉬고 있었지만, 그의 몸속은 어떻게 이런 몸으로 그 같은 일검을 날렸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요란하게 꼬여 있었다.

무섭게 단련된 그의 육체였기에, 그나마 버틴 것이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절명하였을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익힌 심법의 영향인지, 그의 몸속의 뇌전의 기운이 더 이상 상태를 악화되지 않도록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하고 있었다.

알렌한드로는 이 정도라면, 사제의 능력을 지닌 그가 정신을 차린다면 스스로 회복의 단계에 올 수 있음을 짐작했다.

그는 회복을 돕기 위해 품에서 성수를 꺼내어 야안의 입가에 조심스럽게 부어주었고, 곧 야안의 몸속에 들어선 성수의 기운은 야안의 내상을 돌보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아~ 끝이 났구나.”

그제야 저 멀리 새벽의 미명 너머로 악마가 죽었음을 알았던 베르뎅은 처연하게 웃음을 흘렸다. 드디어 이 지옥을 벗어난 것이다.

“이봐 한 잔 할 텐가? 이 날을 위해 준비한 술이 있지.”

고개를 돌리니, 이제 한 쪽 왼손 밖에 남지 않은 사형이 어느새 주향을 흘리며 자신에게 술병을 권하고 있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는 베르뎅이었지만, 오늘은 그 자신도 흠뻑 취하고 싶었다.

“물론이지요.”

사형이 건넨 술을 벌컥벌컥 마신 베르뎅은 알렌한드로에게 술을 넘기었고, 그 또한 술을 몇 먹음 마시다 다시 라콘에게 넘겨주었다.

확실히 이날을 위해 준비한 술 답게 그 맛은 매우 좋았다. 아니,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저잣거리의 싸구려 퍽이라도 명주 못지않은 풍미를 느꼈을지 모른다.

그들 자신들 또한 조금 전에 마신 성수가 효과를 본 덕분인지 상처 부위의 고통이 매우 줄어들었다. 약간이나마 몸의 기운이 돌아왔다.

라콘은 몸에 힘이 약간이라도 생기자 그제야 현실감이 났다.

‘그래, 정말 끝이 났구나.’

오늘은 정말이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저 멀리서 다행히도 살아남으신 스승님이 자신들에게 오시는 것을 보며 이제 반밖에 남지 않은 술을 벌컥벌컥 삼켰다.

저 멀리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이 폐허가 된 전장을 그을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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