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38화
한스는 예전 야안이 말했던 계획에 따라 군사훈련 시설이 완공된 뒤 그 주위로 세 개의 마을을 더 건설할 계획을 잡고 있었다. 이들은 새로 편입된 영지민 중에서 군인으로 뽑힌 이들의 친인 관계를 가진 이들을 주로 할 생각이다.
그 편이 거친 군인들을 통솔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아무래도 동료들의 가족들인 만큼 혈기 어린 군인들도 마을에 폐를 끼치는 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마크 자작의 생각에 의하면 초여름이 시작될 때쯤 카람 백작 측에서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 했기에 한스는 그에 맞추어 전쟁 물자를 차곡차곡 준비 중이었다.
이 때문에 한스가 물자 운송을 일찍 시작하기로 한 것인데, 물자를 운송해 줄 병력을 성의 수비로 돌리기 위해서이다. 아무래도 중앙에 있는 카람 백작 가의 병력은 정예라 할 수 있었으니,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여러 점에서 대비를 해두는 편이 좋았다.
마크 자작 가가 뒤통수가 가려울 정도는 성장할 발판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위치가 시골 영지에 불과했으며, 대외적으로 뛰어난 성과를 보였던 마크 자작이 몇 년 살지 못하다는 평가를 들었으니 처음 운영될 백작 가의 병력은 많지 않으리라 보았다.
그것은 이미 마크 자작이 첩자들을 풀어 확인한 사실이었다. 듣기로 이번에 나프롬 자작가를 돕기 위해 오는 병력의 규모는 이천이 안 될 것이라 한다.
또한 지휘관으로 오는 이는 카람 백작가의 새로 떠오르는 신성인 붉은 검 라테온 경이 아닌 그가 이끄는 기병인 붉은 물결의 수석 백인장인 제이가 움직일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제이는 라테온이 키우는 수련 기사 중 하나였는데, 그 실력은 상급 유저의 끝자락에 있다고 보고 있다.
아직 완전히 어느 정도의 병과가 움직일지 모르나 그간 기만책이 먹힌 듯한 판단을 내린 마크 자작은 기병과 중장병들의 수는 많지 않으리라 보았다.
마크 자작은 이번 일전을 통해 챈들러를 본격적으로 지휘관으로서 키울 생각이었다. 기사라는 거대한 힘을 사용할 줄 아는 지휘관이라면 적에게는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악몽을 선사할 것이다.
물론 그런 악몽을 선사해주려면 물자 지원이 원활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그들은 걱정이 없었다. 이미 야안이 마크 자작의 소견을 받아 전쟁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이루어질지 예상했던 덕분에 한스는 풍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엘룬 이 자료를 기반으로 이번 물자거래와 소요되는 자금들에 대한 자료를 구해다오.”
“네, 알겠습니다.”
한스의 말에 엘룬은 곧 책 5권 분량의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모아둔 자료들을 정리하는 모습으로 보일 만큼 빨랐다.
십 분도 되지 않아 모든 자료를 살펴본 엘룬은 서른 장가량을 빼내어 그 위에 펜으로 자신이 본 것들을 덧붙여 적었다.
한 시간에 걸쳐 수많은 숫자를 빼곡하게 적어 낸 엘룬은 그것을 한스에게 가져다주었다. 한스는 그가 건네준 자료들을 왼손으로 살피며 오른손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는데, 과연 수식계산에 타고난 그답게 무서운 속도로 그 중간과정을 건너뛰었다.
그렇게 이십 분도 채 되지 않아 모든 계산을 끝낸 예산 측정을 끝낸 한스는 수정된 자료들을 엘룬에게 내 주었고, 엘룬은 곧 그 사이 조금 전 한스가 준 책 5권 분량의 자료에서 새롭게 뽑아낸 자료와 함께 그것을 하나로 묶어 놓았다.
겨우 한 시간 반 사이에 물자운송에 관한 일의 20%가 완료된 것이다. 열 명의 뛰어난 행정관이 이틀을 달라붙어도 못할 일을 대수롭지 않게 해버리는 그들의 이 같은 처리 능력이 있었기에 최근 마크 영지의 관료 직에 들어선 이들은 그 일을 따라가느라 진땀을 흘려야 했다.
저녁이 채 되기 전에 그 모든 일을 끝낸 한스는 이제 행정일에 숙달된 제자를 기특하게 여겨 어깨를 두드리며 수고했다 말하며 쉬게 하였다.
“내일부터 론 형이 진땀 좀 빼겠는걸.”
그렇게 중얼거리던 한스는 쓴웃음을 흘리었다.
근 몇 개월간 론과 티애 사이가 심상치 않기 시작하더니, 지난 달 상행을 같다온 론이 티애에게 반지를 가져와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자신이 친누나와 같은 정을 주던 티애를 사랑하고 있음을 안지 얼마 되지 않은 한스에게는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마음을 미처 고백하지도 못한 채 차이게 된 것이다.
이 일로 인해 한스는 며칠 동안 방황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가까스로 자신의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스승님이 없는 영지를 대신 꾸려가는 자신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그를 도왔다.
결국 이 일을 받아들이던 그는 시선을 달리하여 보았다.
하기야, 고백을 하고 그녀에게 구애를 하기에는 이미 가족과 같은 유대관계가 너무 짙어 버렸으니 오히려 그 사이가 더 어색해져 버렸을 것이다.
결국 티애가 누군가와 결혼을 해야 한다면 자신이 아는 이들 중 가장 성실하고 장래가 유망한 론과 결혼을 하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하~아. 첫사랑은 성공하기 힘든 법이라더니.”
한스는 그러고 보면 첫사랑과 성공적으로 결혼을 하신 자랑스러운 스승님이 더욱 위대하다 생각했다.
잠시 스승님을 생각하던 한스의 미간에 골이 절로 파였다.
‘부디 몸 성하게 돌아오셔야 할 터인데.’
위대하신 스승님 밑에 부족함이 많은 제자는 참으로 슬픈 일이라 한스는 생각했다. 제자 덕분에 제 일이 많이 줄어든 터라 진리의 길 또한 걷고 있었지만, 확실히 현자의 공부라 스승님의 도움이 되기에는 갈 길이 너무도 멀었다.
잠시 상념에 빠진 한스는 창가로 들어선 달빛에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버리고는 스승님께서 주신 책자를 열어 수련을 시작했다.
‘벌써 5달이 지났구나.’
마리는 야안이 떠난 뒤 하루하루를 손가락으로 꼽아 세며 아들을 걱정했다.
착하고 귀여운 멜리나가 자신을 도와주었으며, 이제 뛰기 시작한 아론의 장난기 덕분에 집안에 온기가 가실 날이 없었다. 그러나 대륙이 전쟁에 휩 쌓인 지금 야안이 어디 다치지 않을까 싶어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해 몇 번이고 깨곤 했다.
그 심정은 멜리나 또한 같은지 눈가에 피로가 자리한 것을 보면 마리는 마음이 아팠다. 베론 가한은 비록 내색하지 않았으나, 최근 들어 연초를 피는 양이 많아졌다.
오랜 세월을 같이 한 마리는 남편의 그 모습에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가끔 예전 아들의 방을 들어갔다 나오는 모습을 보자면 그 마음을 알 것 같아 가슴이 저렸다.
그래도 최근 들어 어린 시절의 야안처럼 그 총명함을 들어내는 아론 덕분에 베론 가한 또한 가끔 웃음을 흘리곤 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야안을 빼다 닮은 아론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몇 달 전에 장난삼아 가르친 글자를 어렵지 않게 익히던 아론은 요즘은 아버지가 보았던 책들을 읽는 것을 즐겼다.
모르는 단어들을 할아버지인 베론 가한에게 물어보는데 한 번 가르쳐 준 것은 절대 잊지 않아 베론가한은 손자를 가르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몸도 튼튼하였고, 그 성정도 밝았다. 야안과 달리 종종 장난을 치기도 했는데, 그 해맑은 모습에 마리는 종종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어쩌면 야안 또한 어린 시절 농노로서 고생하지 않았다면 저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이다.
이제 한 아이의 어엿한 아버지가 되고 영지에서 존경받는 이가 되었지만, 마리는 아직도 야안이 어린 시절의 그 작았던 아이같이 여겨졌다.
‘참 나도 주책이지.’
마리는 스스로 그 같은 생각에 어이없어 하면서도 의지와 달리 매번 마음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아마도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던 때라 그런지 모른다. 영지 일에 바빠 집에 잘 오지 못하는 아들의 모습은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으니 말이다.
‘오늘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옥수수 스프라도 해야겠다.’
이제 띄엄띄엄 유치가 난 손자 또한 야안과 식성이 비슷한지라 매번 옥수수 스프를 찾곤 했다.
잠시 후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쿠엑, 쿠우욱-’
오크가 녹색 피를 흘리며 쓰러져 내렸다. 이른 아침에 습격을 한 오크 무리 중 마지막 오크였다.
아주 하급의 오크인 듯 말도 하지 못한 채 오크 특유의 괴음을 요란히 울리며 조용한 아침을 일깨웠다. 검에 묻은 오크의 잔재물을 털어내던 제코는 능숙한 솜씨로 오크 가죽을 벗겨 내기 시작했다.
발목에서부터 시작하여 스슥 거리며 거침없이 벗겨내는 제코의 검 다루는 솜씨만을 보아도 그간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랬다.
제코는 열흘 전 정령의 터를 완성하고 물의 정령과 계약을 하게 되면서 그 영향으로 중급 유저의 끝자락에 들어선 것이다.
계기만 있다면 언제든지 상급 유저로 올라설 수 있게 되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워낙 근면 성실한 이라 야안이 지적한 부족한 부분들을 대부분 메꾼 상태였다.
제코가 자신을 주인님이라 부르며 모시지만, 야안 입장에서는 그를 제자처럼 받아들이기에 그 같은 발전하는 모습은 여간 기분 좋은 것이 아니었다.
물의 정령과 계약을 하던 당시 야안 또한 그 옆에 있었는데, 기이하게도 제코와 계약한 물의 정령은 그가 문헌에서 보았던 것보다 그 느껴지는 정령의 기운이 상당했다.
또한 그 물의 정령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평소에도 야안을 잘 따르던 제코였지만, 그 계약 이후에는 자신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야안을 받들었다.
아무래도 뇌전의 정령이 정령의 왕이었던 탓에 그 영향을 받은 듯했다.
물의 정령을 다루게 되면서 제코 또한 물의 정령의 힘을 보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대기에서 수분을 모아 물을 생성할 수 있었으며, 또는 자신의 무게 정도의 물을 다룰 수 있었다.
계약을 한 지 이제 열흘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후에 그가 보일 힘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야안은 어쩌면 이번 영지에서 벌일 개관 수로 건설에 그가 상당히 활약할지 모른다 생각했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힘들고 2년이 지나 하급 정령 비기너를 벗어나 하급 정령 익스퍼트에 오르게 된다면 그 일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제코와 달리 야안의 정령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
야안이 짐작하기에 아무래도 지난 파란토에게 마지막 일격을 가할 때 그의 의지가 움직였던 탓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도, 워낙 뇌전의 정령의 호흡이 대단한지라 보름 안에는 그 결과가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사실 야안으로서 이제 조급해야 할 상황은 없었기에 예상한 날짜보다 늦었다 하여 크게 마음을 쓰고 있지 않았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해야 하는 법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그들은 마크 영지와 말로 오일 거리에 있는 야루스 산맥에서 파생된 이름 없는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었다.
약 십오일 간의 항해 끝에 마크 영지와 가까운 항구 도시에 내린 야안과 제코는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지난 이틀간 산행을 하며 다음 카니안 영지로 가고 있었다.
날씨가 점차 따뜻해져 가고 있어 혹시 추위에 강한 야쿤들이 힘들어하지 않을까 걱정했었지만, 이 검은 야쿤은 더위에도 강한 듯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준마만큼이나 빠르면서도 그 지구력은 노새를 뛰어넘는 검은 야쿤 덕분에 영지에 도착할 시간이 하루 정도 더 줄일 수 있어 보였다.
어느새 오크들의 가죽을 다 벗긴 제코는 물의 정령의 힘을 일으켜 가죽에 붙은 오물을 씻어 버리고는 오크의 잔재물을 모아 불을 피웠다.
마른 장작처럼 불이 활활 타오르는 그 위에 솥을 걸어 베르뎅에게서 배운 음식을 만든 그는 야안에게 음식을 가져다준 뒤에야 식사를 하였다.
건량과 허브, 그리고 팜이라는 식물의 전분을 풀어 만든 그것은 그 맛도 좋지만, 아침으로 먹기에 부담이 없었다.
“맛이 좋구나.”
야안의 짧은 한 마디에 제코는 입가가 귀에 걸렸다. 그런 그를 보며 야안은 작게 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베르뎅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역시 정령술을 배우느라 베르뎅과 가까이 하느라 그 영향을 많이 받은 모양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부지런히 움직인 끝에 해가 막 저물때쯤, 카니안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일드 왕국은 야쿤을 수입하지 않은 탓에 대부분의 사람은 야안과 제코가 탄 야쿤을 신기해하면서도 어려워했다. 특히 검은 야쿤의 인상은 매우 험악하여 처음 보는 이들은 변종 몬스터가 아닌가 생각하였을 정도이다.
덕분에 성문 입구에서 제지를 당해야 했지만 야안이 보여준 준 남작의 신분패에 그들은 어려움 없이 영지로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검은 야쿤을 타고 들어서는 그들의 모습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겉모습과 달리 이제 야안에게 길들어 사람 손에도 순하기만 한 야쿤이었던 덕분에 그런 주위의 반응에도 야쿤들은 별달리 반응하지 않았다.
제코는 그간 정이 든 검은 야쿤이 그런 취급을 받자 속이 상한 듯 윤기가 잘잘 흐르는 야쿤의 갈기를 긁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보는 눈이 없구나. 이처럼 멋진 너에게 그런 오해를 하다니 말이야.”
그런 그의 말에 야안은 웃음을 흘리며 그 또한 야쿤의 갈기를 쓰다듬어 주었다. 야쿤 덕분에 여관을 찾는 일이 힘들었지만, 귀족이라는 신분 덕분에 질 좋은 여관을 잡을 수 있었다.
잔뜩 겁을 먹은 여관의 종업원에게 야쿤들을 맡기었는데, 여관 안에 들어간 내내 종업원의 ‘흐엑’ 하며 겁에 질려 하는 소리를 들은 야안은 절로 고개를 저어야 했다.
‘정말이지 야쿤으로 된 부대가 있으면 전장에서의 그 활약은 대단하겠군.’
지난 반응을 본다면 확실히 야안의 이 생각은 과함이 아니었다. 곧 여관의 주인에게 방 2개를 배정받은 그는 짐을 푼 뒤 몸을 간단히 씻고 내려와 식사를 하였다.
음식은 제코가 만든 것보다 맛이 없었지만, 여관에서 담군 위스키는 일품이었다. 제코는 물의 정령의 영향 덕분인지 술에 강했는데, 덕분에 그전에 잘 몰랐던 술 특유의 맛을 알게 되었다.
그 탓에 주인으로 모시는 야안이 술을 시키자 그는 크게 반기는 눈치였다. 여관의 그저 그러했던 음식이라 실망했던 그는 술의 안주라 생각하고 먹자 생각한 것보다 잘 어울려 본래 이곳이 음식보다는 술을 담그는 것으로 유명했음을 짐작하였다.
이제 나이가 들면서 귀족 특유의 분위기가 감도느라 야안이 귀족임을 짐작한 여관 주인은 여간 야안에게 신경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여관에서 가장 좋은 방과 가장 좋은 술을 내놓았지만, 귀족의 눈과 혀에 미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이 젊은 귀족은 별다른 트집을 잡지 않았다. 다행이다 생각하며 안도하던 차 그가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요즘, 나프롬 자작 가 분위기가 어떠한지 혹시 알고 있는가?”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잠시 놀라던 여관 주인은 이내 귀족이 건네준 2실버에 감사해하며 지난 상인들과 이곳을 들리는 경비병들에게서 들은 바를 말해주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듣기에는 나프롬 자작 가 쪽이 요즘 좋지 않다고 합니다. 원래 이곳 카니안 영지와 거래하는 물량도 작년에는 뚝 끊겼다 하더군요. 원래 상당히 사이가 좋지 않은 마크 남작…… 아, 아니지요. 마크 자작 가 쪽에서 손을 쓴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덕분에 본래 나프롬 자작 가에 오랫동안 유통을 하였던 상인들도 뚝 끊겼지요. 듣기로 영주의 폭정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합니다. 아무래도 마크 자작 가와의 일전을 준비하느라 그런 것이겠지만 영지 내에서는 영주의 폭정에 견디다 못해 도망친 영지민의 수가 제법 됩니다.
저번 달에만 해도 카니안 영지로 온 이주한 이들이 몇 가구 될 정도이니. 재미나게도 정작 나프롬 자작 가에서 도망친 영지민 중 사이가 좋지 않은 마크 자작 가 쪽으로 상당수가 이주했다 하더군요.”
그 말에 야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으며 생각에 빠졌다. 그 같은 상황이라면 일부로 나프롬 자작이 유도한 일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마크 자작이 온 뒤 엄격한 경계로 첩자들이 제대로 된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되자 그 영지민 사이로 첩자들을 풀어놓았을 수 있다 생각했다.
‘한스라면 잘 처리했겠지.’
방법은 많았다. 그들을 나누지 않고 따로 그들을 모아 마을을 만들어 감시하는 방법도 있었고, 사람을 풀어 역간계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안목과 생각은 한스에게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누가 첩자인지 안다면 그 방법이 더욱 효력을 보일 것이다.
‘돌아가서 해야 할 일 중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것이군.’
야안은 잠시 이에 대해 생각하다 비워버린 위스키를 다시 시키며 물었다.
“혹시 요즘 마크 영지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그 말에 여관 주인은 무언가 말하려다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온 상인을 반기며 말했다.
“저 친구가 이번에 마크 영지에 생긴 시장에 작은 상점을 열었다 하더군요. 세금이 낮은 덕분에 다른 동료 업자들과 함께 돈을 모아 열 수 있다 하는데 요즘 그 상점 덕분에 제법 많은 돈을 모으고 있다 합니다.”
그렇게 말하던 그는 이내 상인에게 다가가 말했고, 그는 야안이 귀족임을 눈치채고 곧 머리를 숙이고 다가왔다.
“폴이라 합니다. 작게나마 마크 영지에서 상점을 열고 있지요.”
“그런가? 최근 반년 사이 마크 영지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알 수 있겠는가?”
그러는 야안의 말에 폴은 다시금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 귀족이 왜 마크 영지에 관심을 두는지 궁금했지만, 신분이 달랐기에 그런 의문은 이내 지워버렸다.
“물론입니다. 제가 마크 영지에서 상점을 열었기 때문이 아니라 요즘 마크 영지는 분위기가 아주 좋습니다. 치안도 좋고 새로 도로를 닦은 덕분에 유통도 아주 편해졌지요.
그뿐만 아니라 반년 사이 시장이 2배로 늘어났습니다. 마크 영지에서 이득을 본 상인들 덕분에 입소문이 난 덕분이지요. 또한, 듣기로 마크 영지에서 관개수로를 만든다는 소문 덕분에 자재 관련 상인들도 오가고 있습니다. 최근 중소 규모의 상인 중 마크 상단을 이끄는 론 상인이 상당히 두각을 보이고 있는데, 영지에서 밀어주는 상인인 이유도 있지만, 그분의 성정이나 인품이 뛰어나서라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현재 마크 가에 대한 소소한 정보들을 늘어놓은 상인이었다. 야안은 그 상대가 소상인이라 많은 상질의 정보를 알 수 없었지만 대체로 그가 말해 준 정보들을 바탕으로 현재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든든하군.’
아무래도 제자에게 보낸 엘룬이 확실히 한스와 궁합이 잘 맞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짧은 시간에 그처럼 많은 일을 처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제코 또한 영리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덕분에, 야안 만큼은 아니지만, 주인님이 몸을 담고 있는 영지가 지금 상당히 발전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야안과의 여행을 통해 여러 도시를 오갔던 제코였지만, 그 짧은 정보만으로도 아직 규모는 작으나 잠재력이 있는 영지에 자신이 일하게 된다 생각하자 절로 흥이 났다.
야안은 상인에게 수고비로 5실버를 건네주고 간단한 건량과 식수들을 주인에게 준비해 달라 말했다.
이른 새벽에 움직일 생각이기에 그런 부탁을 한 것이다.
여관에서 내준 방의 공간이 넉넉한 덕분에 간단한 수련은 무리가 없었다. 이제 상급 유저로서의 길을 막 발을 담으려 하는 제코의 수련을 도와주던 야안은 이후 자신의 방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현재 야안은 지난 힘과 민첩을 올린 뒤에 바뀐 육체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였다. 그 덕분인지 몰라도 야안의 검은 전보다 더욱 매서운 맛이 있었다.
비록 상급 익스퍼트에 올라 그 기세를 갈무리하게 되었다지만, 그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그 검에 자리한 거력은 예전보다 더욱 무거운 것이다.
덕분에 붉은 실과 육대검식 또한 그 습득률이 크게 상승했는데, 지난 파란토와의 결전 덕도 있었지만 마나를 비롯해 육체적으로 상승한 것이 다시 발전을 이루게 되었다.
잠깐의 복수면으로 피로를 풀던 그는 운기를 끝내며 그날 하루 종일 수련에 몰두했다. 영지로 돌아가면 이처럼 마음 놓고 수련을 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제 대륙의 13강의 강자 중에서 그 수위가 앞의 다섯을 넘지 않을 정도로 강해진 야안이었다.
검이나 마법을 개인적으로 따로 보았을 때 13강에 들기에 아직 부족함이 있으나, 그 둘을 이용하고 또한 초감각을 지니며 정령의 힘마저 가진 야안은 충분히 이 넓은 대륙에서 고르고 고른 13강에 들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여정을 통해 그 같은 신위를 가질 수 있었던 야안이었지만,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스스로 더욱 몰아붙이고 있었다. 불안한 것이다.
그 불안의 원인은 간단했다. 전설의 반지가 알려주는 퀘스트가 점차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님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결코 퀘스트를 완수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음의 퀘스는 이 악마 파란토를 죽이는 것 이상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니 그가 그처럼 단련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수련에 힘을 쓰던 야안은 다시 운기를 하며 지난 숲의 부족과 함께 고민한 문제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숲의 부족과 야안이 헤어지기 전날까지 고민했던 문제 그것은 바로 지난 파란토가 말해 준 야루스 산맥에 관한 것이었다.
전설의 드래곤이 관련된 이야기였고, 그럼으로써 전설의 현자와 중요한 관계가 자리한 이야기였다. 당연히 그 이야기를 들은 야안과 그에 대해 설명을 들은 숲의 부족 사람들이 고민할 이야기였다.
악마의 말을 믿을 수 는 없지만, 파란토가 말한 것은 최소한 거짓은 아닌 듯했다.
‘야루스 산맥의 본래의 이름이라.’
그것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이었다.
그에 대해 고민할수록 그 이름에 대한 유래를 알지 못했다. 기이한 일이다. 그처럼 모든 인간이 사용하는 이름이라면 그 유래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라도 있을 것인데 야안이 아는 바로는 그런 것은 없었다.
야안은 어쩌면 그 이름 야루스에 저주가 담겨져 있어 그런 것일 수 있다 생각했다. 그렇다면 본래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 될지 모른다.
세상을 유지하는 법칙조차 상충하여 지워버리는 죽음의 지배자였으니 말이다.
숲의 부족 사람들과 서로 간의 의견을 나누던 그들은 가장 원초적인 이야기인 왜 그 산맥을 야루스라 부르게 된 것이냐였다.
오크들은 자신이 사는 곳을 야루스라고 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들의 영역을 야루스 산맥이라는 말로 통일하지만, 오크들은 저마다 자신이 자리한 산이 이름을 가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곤 했다.
이제 유사 인종이 사라지고 하나밖에 남지 않은 인종인 오직 인간만이 그 넓은 산맥을 야루스라 부른다.
거대한 대륙이었으니 그 산맥을 달리 부르는 이름을 가지고 있을 법도 한데, 야안이 알기에는 모든 왕국과 제국, 또한 저 바다 건너의 대륙의 이들도 그곳을 야루스라 불렀다.
“무슨 이유일까?”
궁금한 것은 그뿐만이 아니다.
파란토는 당시 드래곤을 복수가 아닌 일정 한 명의 드래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의 그가 한 말은 이랬다.
‘그 드래곤은 아직 봉인에서 풀려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거지?’
그 말을 여러 각도로 살펴본 야안은 어쩌면 고대 시절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하는 드래곤들은 알려진 것과 달리 그들 중 한 드래곤이 깨어났다는 가정을 가질 수 있었다.
그 가정이 맞다 한다면 다시 다른 가정으로 이어진다. 그 악마나 또한 모종의 알지 못하는 힘이 그 드래곤을 봉인한 것이다.
사실 죽음의 지배자가 모습을 보였는데 아리스님의 명을 받아 대륙을 수호하는 드래곤이 나타나지 않은 것은 사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다. 고대의 정령에게서 전설의 현자와 죽음의 지배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긴 의문이었다.
죽음의 지배자의 그 힘이 미약한 상태였으니, 한 명의 드래곤만으로도 전설의 현자의 자취 일부를 이었던 대현자 테무드에게 그와 맞설 정도의 힘을 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