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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59화 (159/385)

야안 159화

전령을 보낸 이이게 듣기로 일어난 병력은 일만이라 하니 모두 이 정도의 수준은 아니겠지만, 이 같은 강병이라면 자신이라 해도 나흘을 버틸 것을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제국과의 전쟁에서 검은 전갈을 잡았던 놀라운 전술의 대가인 마크 자작이 이 같은 강군을 이끌고 있으니 나흘도 후하다 할 수 있다.

그는 기병에게 끌려오며 다행히 자신의 도박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거칠게 다루어지는 듯했지만, 상당수의 병사들이 살아남은 것이다.

로케는 잠시 그들을 살펴보다 곧 왜소한 체격의 마크 자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작은 체격에서 풍겨 나오는 그의 기백에 잠시 아찔한 충격을 느껴야 했다.

‘검을 다루지 못한다고 들었건만 이 같은 기백이라니.’

만약 그가 무위마저 일정 수준에 올랐다면 지난 그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 로케는 마크 자작의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였다.

“약속을 지켜주어 감사합니다.”

척 보아도 자존심이 대단할 것 같은 그가 서슴없이 무릎을 꿇자 옆에 있던 챈들러도 감탄을 보였다. 그것만으로도 그의 인품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마크 자작은 로케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아니네, 나야말로 약속을 지켜 주어 고맙네. 그대를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군. 그대의 출사를 받기 원하네. 의향이 있는가?”

로케는 마크 자작의 말에 놀라다 이내 다시금 고개를 숙였다.

“그 같은 기회를 저 같은 졸장에게 주시다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락해주시니 부끄럽지만, 마크 자작님께 출사하겠습니다.”

시원시원한 로케의 말에 마크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낭랑하게 웃음을 흘렸다.

“하하하. 아주 좋아. 시원시원하군. 뜻밖의 귀한 인재를 얻게 되어 아주 기쁘네. 자네의 출사는 이 일을 마무리 짓고 받아들이겠네.”

로케는 마크 자작의 말에 다시금 고개를 숙이고는 자신의 수하 몇을 마크 자작에게 건네어 나프롬 영지의 동선을 가르쳐 주었다.

이미 밀정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된 바가 있었지만, 그래도 평생을 이곳에서 산 병사들과 비교한다면 부족한 면이 많았다.

마크 자작은 그들을 앞세워 챈들러와 함께 병력을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그럼 어디, 이 길고 긴 악연을 정리하러 가볼까?”

저 멀리 성에서 요란하게 횃불이 켜지는 모습을 바라보던 마크 자작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이, 이게 무슨 일이냐?”

이른 아침, 밤새워 뒤척이다 겨우 눈을 감았던 나프롬 자작은 요란스러운 소리에 곧 사람을 불러 이 소리의 원인지에 대해 살피게 하였다.

그리고 이내 보고를 하러 온 하인들로부터 마크 자작의 군대가 성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하늘이 무너질 듯한 표정을 보이며 몸을 덜덜 떨어댔다.

“그가 왔다. 이날이 결국 왔구나.”

그토록 발버둥을 쳤건만. 이날이 오고 말았다. 심해와 같은 짙은 공포심에 그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어둠 속에 쳐 받힌 채 덜덜 떨어댈 뿐이다.

곧 자신의 방까지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성 내에서 요란한 비명이 뒤를 따랐고, 우악스러운 병사들이 그의 방을 침입했다. 잠긴 문을 부수어 들어선 그들은 혼이 나간 듯한 나프롬 자작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기 시작했다.

귀족으로 태어나 그 같은 대접을 처음 받은 나프롬 자작은 요란스럽게 비명을 흘리었고, 그들 중 한 명이 나프롬 자작의 배를 쳐 비명조차 제대로 흘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한 채 연회장으로 끌려간 나프롬 자작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하얗게 일어선 머리채는 엉망으로 휘날려 있었고, 잠옷 바람이었던 그의 옷은 찢겨 그 사이로 축 처진 성기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보였다.

거품을 흘리며 어디서 부딪혔는지 코피를 흘리던 그의 모습은 마치 저잣거리의 노망난 노인을 보는 듯했다.

자신을 보고 학질이 걸리듯이 덜덜 떨어대는 나프롬 자작에 마크 자작은 허탈함에 긴 한숨을 흘렸다.

“하아~ 저자가 정말 그 나프롬 자작이라 말인가?”

마크 자작은 젊은 시절 자신을 그토록 고생케 하였던, 마치 넘지 못하는 벽과 같았던 그 나프롬 자작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얼이 빠진 눈을 보고 있으면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둔 분노조차 갈 길을 잃어버릴 듯했다. 그는 깊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 상실감은 사막 저편 오아시스를 발견하여 갖은 고생 끝에 도착했으나 그것이 결국 신기루였음을 아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잠시 먹먹한 가운데 나프롬 자작이 고개를 깊게 숙이며 마크 자작에게 빌었다.

“부, 부디 목숨만은 살려주게.”

그런 그의 모습에 마크 자작이 그에게 다가가 그의 멱살을 쥐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덜덜 떨며 침을 질질 흘리는 나프롬 자작의 얼굴에 맞대어 소리쳤다.

“네가 그 나프롬 자작이 맞는가? 맞나 말이다.”

그 박력에 나프롬 자작은 오줌을 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러하네.”

그런 그의 모습에 마크 자작의 심장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일어서며 그의 눈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는 나프롬 자작을 던지다시피 팽겨치며 소리쳤다.

“아니, 너는 나프롬 자작이 아니다. 그는 이미 죽어버렸구나.”

그렇게 말을 한 그는 이내 허리에 찬 검을 빼내어 그의 심장에 단번에 꽂아 그의 숨을 거두었다.

검을 뽑아내자 요란한 피보라가 연회장을 어지럽혔지만, 마크 자작은 눈 한 번 깜짝이지 않더니 이내 몸을 돌려 소리쳤다.

“나프롬 자작과 관계있는 자들을 모두 베어라. 또한, 관료들을 모아 감옥에 쳐넣고, 숨겨진 재산을 파악하라.”

“알겠습니다.”

챈들러는 마크 자작의 눈에서 아직도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흘리며 그의 명을 받았다.

짙은 피비린내가 연회장을 가득 채웠다. 심장에서 흘러나온 피에 바닥은 요란스럽게 젖어들었지만, 몸을 돌린 마크 자작이 다시 돌아보는 일은 없었다.

나프롬 자작의 성에서 요란스러운 비명이 다시금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곳 영지의 상태는 생각한 것보다 심각했다.

그것은 성 안에 보물들만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마크 자작이 남작이던 시절 때보다 보물들의 개수가 적었다. 아니, 보물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오래된 골동품 따위가 다였다.

그를 보아 나프롬 자작이 이번 전쟁에서 쓰였던 금액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골 영지라 해도 상당한 부유한 영지였던 자작 가의 사정이 이 정도로 변모했으니 상상하기 힘든 큰 자금이 움직였을 것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것은 식량의 상태였다.

나프롬 자작 가는 면화와 같은 실크 같은 옷감을 특산품으로 만들기에 자체적으로 식량을 조달하지 못했다.

대략 영지민의 30%를 먹일 수 있는 식량만을 확보할 뿐이다.

이는 당연한 일이다. 같은 면적과 노동량에서 얻을 수 있는 금액은 4~5배 이상 차이가 났으니 자연 이쪽으로 노동력이 기울 수밖에 없었다.

그 상황에서 마크 자작이 근 5년간을 봉쇄하였으니 영지에 식량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치안이다.”

현재 마크 자작 가의 영지민의 수는 7만. 그 같은 인구가 있는 영지가 치안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불러오게 된다.

다행히 일만의 군사를 데려왔던 마크 자작은 군 식량을 풀어 급한 불을 껐다. 한편으로 치안을 어지럽히던 자들을 데려와 그들을 효수했다.

과하다 싶은 처벌이었지만, 새로운 포대에 담으려면 이 같은 종자들을 쳐 내야만 했다.

생각한 것보다 그 수가 많아 열흘도 채 되지 않아 효수한 이들의 수는 300이 넘었다. 나중에는 나름대로 힘을 쓴다는 이들이 모여 살길을 도모하기도 했지만, 스무 명도 되지 않는 병사들의 손에 무자비하게 잡혀 공개 처형되었다.

강력한 군을 위시하여 공포 정치로 처형을 하고, 한편으로 급식소를 마련하여 식량을 베푸는 마크 자작에 영지민들은 조금씩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다.

이틀 전에 식량과 더불어 여러 생활 필요품들을 이끌고 나프롬 영지에 도착한 야안은 영지의 사정을 살폈다.

목화밭을 비롯해 나프롬 영지의 여러 사업을 살피던 야안은 거금을 들여 예전의 인부들을 뽑아 다시금 일을 시작하게 했다.

대지의 숨결로 처음 접하는 목화에 대해서도 야안은 어느 정도 이 식물에 대해 알 수 있었다.

‘비료가 이 목화밭에도 쓰일 수 있겠구나.’

대지의 숨결로 범용적인 비료보다 그 식물에 특성에 맞는 비료로 개발할 수 있었던 야안이었다. 이번에도 이 목화만을 위한 전용 비료를 만들 수 있을 듯하여 데려온 관료들과 함께 이 비료를 만들기 위해 조사를 시작했다.

또한 이곳 영지의 가장 비싼 특산품인 비단에 대해서는 기존의 이 일을 맡고 있던 이들 중 믿을만한 이에게 작은 직책을 내려 중용하였다.

그 외에도 적지 않은 자금을 풀어 기반을 새로 짓도록 했는데, 올해는 늦어 그 생산량이 적지만 내년부터는 본래의 규모의 생산량을 보일 수 있을 듯했다.

시장이 사라져 일자리가 필요한 영지민들에게 나프롬 영지와 마크 영지를 잇는 도로 개간 공사를 실시하여 일자리를 마련했는데, 예전 마크 영지의 들어서던 난민들처럼 돈보다는 식량과 생활필수품들을 넉넉하게 안겨 주었다.

당장 살 길이 막막했던 그들로서는 그 같은 처사는 오히려 크게 반기는 일이다.

그렇게 여름이 채 지나지 않아 이제 마크 영지가 된 나프롬 영지는 조금씩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복구에 필요한 자금의 지출이 상당했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개량된 비료로 곡식은 이 두 영지를 무리 없이 책임질 수 있을 정도였고, 그것이 아니어도 올해 와인을 비롯해 무역을 통해 얻은 이득만으로도 그 비워진 자금을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야안은 이곳 시장을 다시 활성화하기로 했다. 우선적으로 이곳 영지와 마크 영지 시장의 무역을 시작하기로 했는데, 이 영지 또한 마크 영지와 같은 혜택을 부여해 상인들이 빠르게 시장을 형성하도록 계획을 짰다.

이후, 마크 영지와 이곳 영지를 합하는 과정을 축소할 계획을 세웠다. 두 영지 사이에 마을을 만들고 목책을 올린 뒤, 그 사이를 잇는 성벽을 건축하려는 것이다.

올해 마크 자작이 몬스터 토벌을 할 곳을 바꾸어 이곳을 주력한다면 어렵지 않게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 두 영지가 합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백작 가의 90%에 달하는 영지크기를 자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30만에 달하는 백작 가의 인구에 비하자면 이제 60% 정도에 불과한데다, 그 자금력 등 여러 면에서 아직 부족한 면이 많았다. 하지만 앞으로 이대로 몇 년간 성장한다면 마크 영지가 준 대영지를 이루게 될 것임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이번에 영지에서 관료로 뽑힌 이들의 일부와 그간의 업무를 통해 노련미를 보이는 관료들을 이곳의 관료로 임명했다.

일은 힘든 면이 있지만, 성과금이라는 것을 만든 터라 그만큼 보상을 해주기로 했다. 감옥에 있는 관료 중에도 성정이 괜찮은 이들을 뽑아 부족한 면을 채웠는데, 생각한 것보다 부정부패가 많아 야안은 그들 중 죄악이 적은 이들의 일부를 뽑아 이카스티스를 펼쳐야 했다.

덕분에 부패한 관료들이 예전과 달리 성실한 모습을 보여 처음에는 인상을 찌푸리던 영지민들은 예전과 다른 모습에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새롭게 짜 올리는 영지였기에 본보기라는 것이 있어야 한지라 죄악이 극악한 자는 재산을 거두고 효수하였고, 그 죄질을 보아 반성의 기미가 있는 이들은 일정 기간을 노역을 시킨 뒤 이후 다시 복직을 시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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