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안-160화 (160/385)

야안 160화

이곳에서도 야안은 인재를 뽑도록 했는데, 칠만의 영지민과 4000의 농노 중 대상이 되는 연령은 생각보다 많아 5000이 넘은 터라 두 달의 시간 동안 공을 들여야 했다.

하지만, 공을 들인 만큼 성과는 적지 않았다.

그들 중 무재가 있는 이들을 800을 뽑을 수 있었고, 대장장이와 목수 일에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 90명을 찾아내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 일할 이들 200명을 찾아내었다.

인원이 많은 만큼 이들 중 특출난 재능을 지닌 이는 3명이나 되었는데, 그중 현자의 재목도 있었다.

대외적으로 소작농을 하며 동생 3명과 함께 생활을 이끌어가고 있는 젤로라는 소녀 가장인데 어린 시절 가까운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해 부모를 잃은 뒤 사람들을 쉽게 믿지 못했다.

세상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찬 그녀는 자신의 뛰어난 머리와 깔끔한 자신의 외모를 이용해 여러 범죄를 저질렀다. 그녀의 범죄는 워낙 계획성이 철저하고 심리를 잘 파고든 터라 당한 사람들은 자신이 당했는지도 모르고 넘어간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자로서의 능력은 크게 편중되지 않은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이 같은 어두운 면 때문에 심리를 이용하는 능력이 상당히 계발되어 있었다.

상대를 자기 뜻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조절할 줄 알아야 했다. 대외적으로 그녀는 순진한 시골의 소작농이었고, 그것은 자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함께한 동네 사람들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에 마크 영지에서 왔다는 총관 또한 속일 수있다고 생각했다. 보잘것없는 시골 남작 영지를 십년도 채 지나지 않아 지금 같은 영지를 만든 자라 하였지만, 그녀는 자신 있었다.

오히려 똑똑하다 자부하는 자일수록 속이는 것은 쉬웠다. 그들은 자신의 머리를 과신하는 경향이 있었기에, 그 점을 이용한다면 오히려 우둔한 이보다 빠른 시간에 제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그처럼 자신 있어 하던 젤로였으나, 야안과 마주한 순간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마치 자신의 모든 것을 벌거벗기는 듯한 그 심해와 같은 눈에 그 하늘을 찌르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도대체 정체가 뭐지?’

그간 사람을 살피는 데 도를 튼 그녀였지만 야안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별 특징도 없는 시골의 부유한 이중 하나로 보이기도 했고, 달리 보면 마을의 신학자보다 그 인성이 뛰어나 보이기도 했다.

또한 그의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닌데도 마치 돌이나 나무로 깎은 조각상을 대하는 듯했다.

영악한 그녀였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탓인지 그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함에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공포가 밀려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어대는 그녀의 모습에 야안은 그녀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해를 끼칠 생각은 없단다. 가여운 것. 힘들게 살았구나.”

다정한 목소리로 자신을 위로하며 자신의 몸을 툭툭 치는 총관에 젤로는 어느새 공포심이 사라지고 긴장이 풀렸다.

그 느낌은 마치 혹독하기만 했던 긴 겨울의 추위를 이겨낸 이가 맞는 따사로운 봄날의 햇살과도 같았던 터라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은 일순간 틈을 보이더니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뚝, 뚝뚝-’

눈앞이 흐려져 눈물을 흘리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던 그녀에게 야안이 손수 눈물을 닦아주며 미소를 보이더니 곧 그녀의 곁을 지났다.

젤로는 그날 자신이 뽑힐 것임을 예상했기에 붙잡으려는 마음을 애써 눌렀다. 그녀는 말없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신의 감정을 매만지며 생각했다.

‘세상은 넓구나. 하지만 그 넓은 세상에서도 저 같은 분은 다시 만나기 어려우리라.’

그것은 직감을 넘어 확신이었다.

고작 15살밖에 되지 않은 자신이었지만 이미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났던 그 인만큼 자신의 평생에 다시 찾을 수 없는 분이라 생각했다.

곧 그분이 몇몇의 아이들과 함께 자신을 불렀고, 관료들에게 아이들을 적성에 맞게 데려가게 하고는 자신만을 남겼다.

인자한 미소를 보이는 야안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젤로의 모습에 야안이 실소를 보이며 말했다.

“일단 가볍게 식사를 하도록 하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그 얼굴이나 성격 등 같은 점이 없건만 마치 어린 시절의 아버지가 돌아오신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야안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분의 앞에서만큼은 자신은 영악한 여인이 아니라 순박한 시골 소녀가 된 것 같다고 젤로는 생각했다.

식사는 총관의 위치에 맞지 않게 소박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 소박한 음식도 소작농이던 그녀에게는 보기 힘든 귀한 음식들이었다.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한편으로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동생들이 생각나 마음 편하게 먹지 못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야안이 돌아갈 때 싸 줄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세심한 배려에 그녀는 감동하였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야안은 미소를 보이며 말을 이었다.

“너는 네 스스로 재능이 뛰어난 것을 잘 알고 있으니 말하기 편하겠구나. 하지만 그 재능을 보잘것없는데 쓰니 아쉬운 일이다.”

그 말에 젤로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역시나 이분은 알고 계시구나.’

누군가 자신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것은 자신처럼 숨겨야 할 것이 많은 이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일이다.

곧 질책이 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과 달리 야안은 그러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너의 탓이 아니다. 그런 상황을 만든 환경의 탓이 크겠지. 만약 네가 너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배경을 만들어진다면 굳이 그런 일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아느냐? 너는 현자의 재목이다.”

그 말에 젤로는 놀란 듯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자신이 설마 현자의 재목일 줄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던 야안이 말을 이었다.

“네가 원한다면 현자로 키워주도록 하겠다. 너 정도의 머리라면 현자의 공부를 하면서 관료 일도 맡길 수 있겠지. 어떠냐? 마크 영지에 출사하겠느냐?”

야안의 그 물음에 젤로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는 마크 영지에 출사하지 않겠습니다.”

의외의 결정에 야안은 의문을 보였으나 이내 그 의문을 그녀가 풀어주었다.

“하지만 총관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주체가 달라졌을 뿐이지만 결국 마크 영지에 일을 하겠다는 말과도 같은지라, 야안은 선선히 그 말을 허락했다.

“너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라. 하지만 달라질 것은 없겠구나.”

야안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휘저었고, 이내 야안과 그녀 사이에 작은 빛의 구가 모습을 보였다. 그 빛의 구는 이내 허공으로 올라가며 커지더니 마치 대낮처럼 방을 밝혔다.

생전 처음 보는 마법에 젤로의 그 큰 눈의 동공이 축소되었다. 곧 촛불의 불이 꺼지듯 마법은 사라졌고 일순간 시야는 갈 길을 잃어버리다 이내 탁자 위에 자리한 촛불로 움직였다.

“현자이셨습니까?”

그 말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이 현자가 된 배경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야안의 이야기에 자신을 질책하였다.

자신보다 더 힘든 고난 속에서도 헤쳐 나오신 야안과 조사이신 마론 현자의 이야기는 그간 제 삶이 얼마나 못난 것인지를 알았던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던 그녀에 야안은 미소를 보이며 그녀를 위로해 주었다.

“잘못된 점을 깨닫고 반성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아직 어린 만큼 돌아가는 일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지난 과오를 용서받은 것 같아 그녀는 조금 전보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야안은 우선 그녀에게 관료가 되는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영악한 그녀였지만 그것은 인간관계에 한해서였다. 글은 알았지만 많은 책을 접하지 못했다.

야안은 그녀로 하여금 관료 일을 하면서 지식을 쌓게 하여 일정 수준이 이르게 되면 현자로서의 터를 닦아주기로 했다.

확실히 그녀의 등장은 영지전으로 인해 크게 확장된 마크 영지를 다스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그녀 이외 특출난 재능을 지닌 2명은 14, 15세의 사내로 본과 마탄이라는 이로 근골이 대단히 뛰어났다.

테리와도 비교할 만한 했는데, 본은 원래 상인의 아들로 어린 시절 부유하게 자란 덕분에 그 덩치가 성인과 비슷했다. 머리도 뛰어난 편이었는데, 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범상치 않은 재질을 가졌음을 알고 많은 돈을 들여 여러 방면으로 조기교육을 했다.

실력을 지닌 용병을 고용하여 어린 시절부터 검을 가르친 덕분에 벌써 하급 유저 수준에 들어선 상태였다.

만약 본의 마나 심법이 제대로 된 것이었다면 하급 유저의 끝자락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사람을 다스리는 법이나 여러 공부를 시킨 덕분에 1년 정도를 가르치면 바로 관료 일을 할 머리도 있었다.

젤로처럼 본 또한 스스로 재능을 잘 아는지라 야안에게 뽑히자 당연하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인이신 아버지가 알아본바 그의 사람을 보는 눈은 이미 대가의 수준을 넘어섰다 했다.

확실히 아버지가 보여주신 자료에 의하면 그가 뽑은 이는 자신도 몰랐던 재능을 깨닫고 몇 년 지나지 않아 두각을 나타내었다.

본은 아직 어린 나이답지 않게 아버지의 영향에 의해 야망이 큰 편이었다. 원래는 나라에서 실행하는 관료시험에 붙어 이후 대영지에 출사를 할 생각이었지만, 마크 영지의 지금의 기세를 본다면 이곳의 관료로 출사하는 것이 훗날을 생각한다면 더 좋은 일이었다.

야안은 진실의 눈을 통해 그런 본의 생각을 읽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재능을 지닌 만큼 그 같은 야망은 그의 자기계발에 도움을 줄 것이다.

야망이 있지만 좋은 교육을 받아 자제력이 뛰어난 편이라 그로서 피해를 볼 일은 없어 보였다.

그에 반면 마탄은 본과 대조되는 삶을 살았다. 테리와 같은 농노 출신이었는데, 농노치고는 그 덩치가 큰 편이었다.

타고난 근골 덕분인데 그 때문에 마탄은 성인이 아님에도 농노들을 이끄는 일을 맡기도 했다. 마음이 넓고 덕이 있어 천부적으로 사람을 잘 다루는 편이었는데, 야안이 보기에 잘 키우면 뛰어난 덕장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힘든 농노들 대신 일을 해 준 덕분에 마탄의 몸은 잘 발달해 있었다. 비록 식사량이 부족해 마른 편이었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다.

본처럼 어린 시절부터 교육을 받아 재능을 꽃피우지는 못했지만 대신 고된 역경을 이겨내어 인내심이 대단했다.

끈기가 있다는 말이다. 또한, 기억력이 뛰어난 편이라 한 번 가르치면 잘 알아듣는 편이었고, 눈치가 빨라 말하지 않아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움직였다.

지금이야 본이 앞서나가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마탄이 어깨를 나란히 할 것이다.

‘슬슬 챈들러도 제자를 두는 편이 좋겠지.’

익스퍼트에 올라 아직 그 겉모습이 삼십 대 후반으로 보이나 그의 나이 오십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을 본다면 지금 제자를 두어도 늦은 시기였다. 야안은 그에게 본을 맡기었다. 아무래도 귀족의 출신이던 그라면 본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그 또한 이미 여러 방면에서 공부를 한 본을 대하기가 편할 것이다.

본 또한 기사의 제자로 들어섰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용병 생활로 거칠어지기는 했지만, 은연중에 남은 귀족의 품위가 그에게 있는지라 그는 스승의 그 품위에 반해 버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