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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177화 (177/385)

야안 177화

전설의 반지를 따라 그렇게 2달에 달하는 여정 끝에 그는 이곳 윤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말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철 같은 체력을 지닌 검은 야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아무리 대단한 명마라 할지라도 이 같은 일정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야안은 어머니들이 단속을 한다 해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조금씩 몰려드는 아이들의 눈앞에 물의 구를 생성하여 보여 주었다.

그 모습에 아이들은 깜짝 놀라 일부는 엉덩방아를 찍기도 했고, 몇몇은 와 하고 도망치기도 했다.

관료조차 오지 않는 이런 촌락에서 마법이라는 것은 그처럼 미지의 신비로운 힘이었다.

야안은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볼을 긁적였다.

‘이것으로 이곳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군.’

지난 경험을 비추어 본다면 현자에게 보이는 그들의 친절은 대단했다. 이곳에서도 적지 않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유난히 눈빛을 반짝이는 여자아이를 야안은 발견할 수 있었다.

제 아들인 아론과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였는데, 야안은 그 아이에게서 여타의 융 제국인과는 다른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초감각이 아니었다면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무엇인가?’

잠시 고민하는 데 여자아이가 다가와 아이다운 맑은 음색으로 야안에게 물었다.

“혹시 그것이 마법이라는 건가요?”

그렇게 묻는 아이의 옷이나 행색은 거친 편이었는데 그 얼굴은 그것을 가릴 정도로 고운 편이었다.

어린 여자 이의 그 살가운 붙임성에 야안은 다시금 빛의 구 여러 개를 만들어 주위를 크게 밝히며 대답해주었다.

여자아이는 그 신기한 묘용에 시선을 빼앗기다 이내 꼼지락거리며 인사를 드렸다.

“아리가 진리의 길을 걷는 분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야안은 그 모습에 이 아이의 부모가 여타의 촌락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촌락에서도 아이에게 이 같은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교육했다면, 평범한 자는 아닐 것으로 생각했다.

야안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고맙구나.”

그렇게 말하는 야안은 아이에게 진실의 눈을 펼쳐 보았고, 곧 왜 자신이 그 아이에게서 이색적인 기색을 느꼈는지 알게 되었다.

바로 아이는 자신처럼 주술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 주술은 외형을 변형하는 것으로 본래, 이 아이는 이곳 융 제국의 사람이 아닌 브라운 인이었다.

다만 야안이 눈치채지 못한 것은 이 아이에게 주술을 건 주술사의 경지가 이제 막 주술에 발을 둔 자신과는 차원이 달랐던 탓이다.

스스로 아리라 소개한 아이의 본래 이름은 주소화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와 함께 오 년 전 병환에 누운 아버지를 모시며 살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 또한 브라운 인이었는데, 십 년 전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이곳 윤 마을에 정착하였다.

본래 유율이라는 이름을 지닌 그녀의 어머니는 본래 부족에서도 대단한 신분이었는지 주소화의 기억에 의하면 그녀가 딸에게 내리는 가르침들은 하나하나가 범상치 않은 것들이었다.

주술은 물론이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여러 가지의 예법들과 여러 비법을 가르치었다.

그로서 야안은 직감적으로 자신이 찾는 이가 주소화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주소화에게 마케를 펼쳐 아이의 기운을 성하게 해주며 말했다.

“괜찮다면 너의 부모님을 만나 뵐 수 있겠느냐?”

주소화는 왠지 몸에 활력이 돋는 것에 신기해하다 이내 야안의 물음에 그녀는 큰 설렘을 보였다.

“물론이에요. 엄마도 기뻐하실 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혹시나 야안이 자신을 따라가지 않을까 봐 야안의 옷깃을 잡고 앞장 나아갔다.

그녀는 참새처럼 종알거리며 야안에게 궁금한 것들 물어보았는데, 그 대부분이 그 나이대의 아이가 할 수 없는 질문들이 주였다.

아무래도 엄한 어머니 밑에서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던 만큼 일찍 철이 들었기 때문인 듯 보였다.

야안은 그녀의 질문에 그녀의 수준에 맞게 서슴없이 대답해 주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와’ 하며 감탄을 보이었다.

그들 가족이 외지에서 왔기 때문인지 그녀의 집은 마을에서도 먼 곳에 자리했는데, 덕분에 그녀는 반도 채 가지 못한 채 질문거리가 떨어진 듯 더 이상 야안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한참을 말없이 앞장서 가던 그녀는 잠시 멈추어 서더니 이내 다시 성큼성큼 걸어가며 혼자 말하듯이 물었다.

“현자님께서는 그렇게, 그렇게 세상에 대한 많은 답을 알고 계시니까. 그러니깐……. 사람의 병 정도는 어렵지 않게 고치시겠죠?”

눈물을 흘리는 듯 아이는 조금 전 재잘거리던 모습과 달리 띄엄띄엄 말을 꺼내었는데, 이미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야안은 이 어린아이의 마음이 와 닿는지라 잠시 말문을 잇지 못했다.

말을 하지 않는 야안이 불안한 건지 성큼성큼 걸어가던 주소화의 걸음이 느려지더니 이내 멈추었다.

그리고 눈에 눈물을 글렁인 채 뒤돌아보며 야안에게 말했다.

“우리 아빠 좀 도와주세요.”

그 아이의 말에 야안은 다가와 눈가를 닦아주었다. 그리고 밝은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이 아저씨는 현자라 너의 아빠를 도와 줄 방법이 있을 것이니 말이야.”

진심이 닿아서일까? 주소화는 마음 한구석이 스르륵 풀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다 이내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야안은 꺼이꺼이 거리며 울음을 터뜨리는 그녀에게 다가가 토닥여주었다. 붉은 노을 저 너머로 아이의 울음은 그칠 줄 몰랐다.

도착한 주소화의 집은 상당히 허름했다.

집 구조는 이곳 융 제국의 양식과 다른 나무기둥을 본 삼아 흙벽으로 지어진 집이었는데, 아궁이에 불을 때면 온돌 밑에 자리한 숨구멍을 통해 방 구석구석이 난방이 되는 구조를 지녀 뛰어난 보온성을 가지고 있었다.

야안은 그 기이한 구조에 어쩌면 소수 부족의 집 구조일 것으로 판단했다. 이런 집 구조는 아랫목이 뜨끈하기에 몸이 좋지 않은 환자에게는 좋아 보였다. 일정 이상의 온도로 신체리듬이 안정되면서 마케와 같은 효과를 보이는 것이다.

물론 그 같은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지 마케처럼 신진대사가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나 왔어.”

주소화의 소리에 낡은 나무문에서 비음이 울리며 한 여인이 모습을 보였다.

주소화의 어머니인 유율은 주술 때문인지 전형적인 시골 여인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는데, 야안은 그 정명한 눈빛에서 그녀가 비범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유율은 주소화를 품에 안으며 야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 평범해 보이는 외모와 달리 그 맑고 깊은 눈에 잠시 말문을 잃어야 했다.

주소화는 엄마가 경직된 모습으로 야안을 바라보는 것을 보고는 그녀의 옷의 일부를 잡고 흔들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엄마. 우리 마을에 현자님이 오셨어. 내 눈앞에서 커다란 물 덩어리도 보여주시고 허공에 빛 덩어리들이 막 하늘에 이렇게 휘날렸어.”

조금은 두서없는 딸아이의 말에 유율은 조금 전보다 더 움츠리었는데, 잘게 떨리는 모습까지 보인지라 야안은 그녀가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알았다.

야안은 그녀에게 이미지 마법을 펼쳐 그녀의 경계를 떨치려 했지만, 워낙 그녀의 경계심이 강한지라 뜻대로 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편한 기색을 보이었는데, 야안은 그 같은 경계심이 기이하다 여겨 진실의 눈을 펼쳐 그녀를 살펴보았는데, 과연 진실의 눈에서 얻은 정보들에서 그녀가 왜 자신이 현자라는 사실에 경계를 보이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사는 부족은 이곳의 널린 소부족 중 하나로 오랜 옛날 그러니까, 융 제국이 생기기 이전 고대 시절 작은 왕국을 이끌던 씨족이었다.

하지만 죽음의 지배자와의 전쟁에서 왕국은 무너져 내렸고, 몇 개의 대부족으로 갈라지고 말았는데 그중에서 살아남은 부족이 이 유씨 부족이었다.

유씨 부족의 주술은 주술 중에서도 정통파를 자랑하는 주술이었다.

시작은 느리지만, 정심한 터라 심마에 빠질 확률이 낮았고, 그 때문에 높은 경지에 오를 확률이 높은 편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면 고차원의 주술을 펼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주술은 천 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 빠지고 말았다.

그 탓에 그들은 위대한 주술사를 꿈꾸는 것은 둘째 치고, 대주술을 펼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그 때문에 이들 유씨 부족은 대대로 이것을 보완하는 것을 꿈꾸었는데, 그 꿈은 삼십년 전 두 명의 이방인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

노손지간으로 보이는 자들이었는데, 노인은 나이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자글자글한 주름에 백발에 가슴까지 내려오는 하얀 수염을 하고 있었고, 병색이 완연한지라 금방이라도 숨이 끊기들 했다.

하지만 그 모습과 달리 목소리가 천둥을 치는 듯 쩌렁쩌렁했는데, 당시 6살배기였던 유율은 그 모습에 놀라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자신이 두 달 뒤에 죽음을 맞이할 것임을 알기에 자신의 고손자를 이 부족에 맡기러 왔다 하는데, 그는 그 보답으로 그들이 원하는 주술의 핵심을 되찾아 주겠다고 장담하였다.

유율의 할아버지이자 족장이었던 유쥴은 단번에 그가 범상치 않은 이라는 것을 알았던지라, 서슴없이 그들을 자신의 부족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과연 노인은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자 앉은 자세로 명상을 하다 숨이 끊겼는데, 당시 큰 은인의 죽음에 유씨 부족은 침울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같이 한 고조 할아버지의 죽음에도 아이의 행동은 예전과 변함이 없었다. 그는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그의 할아버지가 남기신 명상을 하더니 낮에는 마을 사람들의 일을 도왔고, 해가 지면 가장 늦게까지 주술을 닦았다.

유쥴 또한 주술사인지라 이 아이의 재능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욕심이 동한 그는 아이의 나이를 생각해 자신의 손주 중 나이가 맞는 유율을 그에 짝으로 붙여주며 그를 자신의 후계로 삼았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으로 남았을지는 그는 당시에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이가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은 터라 예전 우연히 그의 고조할아버지의 성이 주씨임을 알았던 유쥴는 크게 되라는 의미로 고대어인 클 태를 붙여 주태라는 가명을 내 주었다.

그렇게 후계로 삼게 된 주태는 그때부터 마을의 소소한 일거리에서 벗어나 유씨 부족의 주술 또한 배우기 시작했는데, 과연 주태는 유쥴이 후계로 삼았을 만큼 주술에 있어 짝을 찾기 어려운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스물이 채 되지 않아 유쥴의 경지를 뛰어넘어서더니 서른이 되었을 때, 위대한 주술사의 바로 밑의 경지인 대주술사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것은 몇 되지 않은 대부족의 나이 지긋한 족장이나 오를 수 있는 경지였다.

고작 서른밖에 되지 않은 이가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몇십 년, 아니 몇백 년 만에 위대한 주술사가 모습을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때가 온다면 브라운 인이라 하며 융 제국인들에게 천한 대우를 받는 일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흩어진 소수 부족은 위대한 주술사에 오른 주태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특히 정통파로 오른 대주술사는 세력이 크면 클수록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특성을 지녔으니, 융 제국의 침략을 막아서는 것을 넘어 예전 자신의 땅을 되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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