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81화
54. 초인
‘콰가가강-’
하늘의 뇌전처럼 번쩍이더니 이내 강력한 뇌전의 기운이 야안을 중심으로 빛처럼 뻗어 나갔고, 곧 거대한 황폐한 공간만이 자리를 잡았다.
“정령?”
설마 정령까지 다룰 줄을 몰랐기에 자이한의 얼굴에는 놀란 기색이 완연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보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든 것을 꿰뚫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정령에게서 거대한 힘이 터져 나오며 자신의 주술이 힘으로 부서져 버린 것이다.
자이한은 서둘러 주술로 결계를 만들어 그 힘에서 자신을 보호하였다. 연속으로 다섯 개의 결계 보호막을 만들어낸 뒤에야 그 힘의 피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야안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그의 손에서 신마법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야안의 새로운 파이어 핑거는 파이어 피스트보다 더 뛰어난 관통력과 힘을 자랑했다.
자이한은 어렵게 주술들로 빗겨 막아서며 쉴 새 없이 땅에서 여러 형태의 야수들을 만들어내어 야안을 공격하게 하였다.
하나같이 강력한 힘을 지닌 야수였지만 야안이 불러낸 유피테르의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장난치는 듯 툭툭 건드리는 유피테르에 의해 야수들이 바스러지더니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뇌전이라, 저 힘을 인간이 다룰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구나.”
그는 수세에 몰린 상태에서도 당황해 하지 않으며 짧게 감탄을 보이더니 이내 그의 신형이 흔들리며 허공을 휘돌더니 넷이 되었다.
자이한의 몸이 넷으로 늘어난 것이다.
야안은 혹시나 이것이 환각을 이용한 주술인가 했지만, 그것이 아님을 이내 깨달았다. 그의 초감각이 그들 하나하나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는 그들 모두가 자이한임을 말했다.
이것이 자이한이 지난 오 년간 생사의 가로 속에서 얻게 된 새로운 주술의 힘이었다.
네 명으로 늘어난 자이한은 몸은 넷이지만 의식은 하나인 듯 그들 개개인이 펼치는 주술은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조금 전과는 그 질과 숫자가 다른 주술들이 야안을 향해 펼쳐진 것이다. 수백 개의 나뭇잎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야안을 향하는가 하면 갑자기 거대한 주먹이 대지에서 일어나 야안을 향해 내려치기도 했다.
또한 수천 마리의 벌들의 날갯짓 소리가 야안의 청각을 어지럽히기도 했고, 하늘로 올라간 거대한 바위가 운석처럼 떨어지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막아서기 위해 야안은 전력을 퍼 붇기 시작했다. 신마법으로 조합된 불의 벽으로 나뭇잎들을 태워버리고, 뇌전으로 신체를 촉구하여 배는 빠른 움직임과 힘으로 거대한 주먹을 부숴버리기도 했으며, 주술을 펼쳐 청각을 닫았다.
또한 신성 마법 중 방어마법인 타문을 일으키더니 그로서 줄어드는 물리적 방어 힘을 이용해 건곤대나위를 극성으로 펼쳐 운석처럼 떨어지는 바위를 솜털처럼 대지에 내려놓았다.
자이한은 초인이 아니고서는 막을 수 없는 자신의 극에 달한 주술들을 하나하나 막아서는 야안에 감탄을 보이며 이내 현재 그가 펼칠 수 있는 최강의 주술을 펼쳐 내었다.
이내 그들 중 하나가 주저앉았고, 다른 하나가 활처럼 야안을 향해 쏟아 나갔다. 쏟아나가는 자이한은 검게 물들어지기 시작하며 소리쳤다.
“이것과 저것은 다르지 않다.”
고대 주술 제국의 황제에게 내려오는 비기 중 하나인 그림자 인간이라는 주술이 그의 손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림자처럼 검게 물든 자이한이 야안의 검술을 복제하여 맞서기 시작한 것이다. 그 힘이나 묘용 등 모든 것이 야안과 같았는데, 나중에는 행동까지 똑같아져 검으로는 더 이상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 그림자는 나 자신이로구나.’
요묘한 이치가 자리한 건곤대나이조차 따라하니 야안은 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검을 이 그림자 인간의 주술로 묶고 남은 2명의 자이한 중 한 명이 유피테르를 막아섰으며, 마지막 자이한은 야안의 마법을 묶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오직 검과 검의 대결만이 남았다.
극성에 달한 붉은 실이 대기를 찢었고, 육대검식이 땅을 뒤집었으며 극성에 달한 건곤대나이가 모습을 드러내어 오묘한 검의 이치를 풀어 놓았다.
하지만, 상대의 그림자 또한 같은 식으로 힘이 일어나 붉은 실과 육대검식의 검기는 허공에서 사라졌고, 건곤대나이의 오묘한 검의 이치가 부딪히면서 끝없는 순환관계를 이루어내었다.
시간이 지나 반나절이 넘어 달마저 모습을 감출 때, 더 이상 붉은 실과 육대검식은 그들 사이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극성에 달한 건곤대나이를 펼치는 두 개의 검만이 그들 사이에 자리할 뿐이다.
거대한 산사태가 일어난 듯한 주위의 모습을 만들어낸 이들의 전투라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마지막 전투의 흐름은 한 점의 소리도 없었다.
검기가 부딪히는 소리도 사라졌고, 대지를 밟는 발자국소리도 없어졌으며 하다못해 숨 쉬는 소리마저 지워진 듯했다.
그도 그런 것이 너무도 조용한 가운데 그들 서로의 검은 검을 휘두르는 상대방을 향하지 않았다. 엉뚱한 허공만을 찌르고 베며 흘리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이제 막 검을 배운 어린아이들이 합을 맞추어 장난을 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의 건곤대나이가 펼쳐지면서 생긴 현상으로 마치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를 밀어내는 모습과도 같았다.
그림자의 주술을 돕고 있는 앉아 자리를 잡은 자이한은 주술을 유지하는 것이 상당히 힘든 듯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야안의 얼굴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입가에는 미소가 자리했고 반개한 그의 눈은 2개의 건곤대나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검의 묘용에 정신없이 빠져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아주 극미하지만 조금씩 그의 건곤대나위가 진화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새벽의 미명이 지날 때쯤에서야 야안의 검이 느려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검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이내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는데, 그제야 세 명의 자이한이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저 멀리서 그림자를 돕던 자이한은 안도의 한숨을 흘리더니 요란하게 뒤로 쓰러졌다.
* * *
야안의 상태를 지켜보던 유피테르는 이내 미소를 짓더니 쓰러진 자이한의 몸 위로 뇌전의 결계를 펼치며 사라졌다. 그가 이번 전투로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아는 눈빛이었다.
가부좌를 튼 야안의 몸이 크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허공으로 몸이 치솟아 올랐다.
그것은 마법이나 정령의 힘이 아닌, 오직 내기의 힘이 부풀어져 일어서는 형상이었다. 지금의 경지에 오르기 위해 수많은 깨달음을 얻었던 야안이었지만, 그 같은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런 기이한 모습처럼 야안이 이번 전투에서 얻은 깨달음은 실로 거대했다.
‘나는 누구인가?’
그 하나의 물음에 답을 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바로 검의 길에서 말하는 자아를 살피는 관이 중심을 잡게 된 것인데, 그로서 몸속에 자리한 기운의 흐름은 물론이거니와 스스로 감정과 욕구를 통제 아래에 내려놓게 되었다.
이는 오욕인 재물 욕, 식욕, 색욕, 명예욕, 수면욕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깨달았음을 말한다.
또한 이번 깨달음으로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에 대해서도 자제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이 일곱 가지 감정을 제대로 알고 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의 머리와 가슴이 시키는 것을 중용하는 법을 깨닫게 된 것이다.
편견 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니 이미 그것만으로도 인간을 초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지금의 상태가 기이하다는 것을 야안은 자각하지 못했다. 마치 양수에 자리한 아기처럼 그는 어느 날 이른 아침 버릇처럼 행하는 운기행공과도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거대한 소리와 함께 머리 정수리 끝이 열리었고, 그는 아찔한 하얀 빛을 맞이했다.
야안의 몸을 중심으로 마나가 거대한 회오리처럼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에 여름의 푸르른 초목들은 시들어가기 시작했고, 갖가지 작은 동물들은 산을 벗어나기 시작했으며, 기름진 대지는 퍼석한 먼지로 변해갔다.
이를 알고 있었던지 유피테르가 펼친 결계로 인해 자이한은 그 마나의 회오리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 거대한 장관은 그 이유를 안다면 당연한 현상이다.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법칙인 가벼운 것은 무거운 것으로 이동하는 법칙이 적용되면서 생기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야안의 깨달음에 맞춰져 그가 지닌 마나가 압축되며 농축되자 주위의 마나가 공명하며 몰려든 것으로 볼 수 있다.
마나가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태까지 가서야 마나는 야안의 몸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고 퍼석 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이내 야안의 머리카락이 빠지고, 뱀의 허물처럼 피부가 떨어져 나가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야안이 지니고 있는 뇌전의 기운이 몸 밖으로 일어나며 주위의 모든 것을 태워버렸는데,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물론 그의 손에 쥐어진 준 명검조차 파괴되어 본래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그 힘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가까이 자리한 바위조차 모래와 같은 입자가 되어 바람에 휘날렸다.
만약 자이한의 전투를 대비해서 인벤토리에 공간의 주머니와 같은 마법 물품을 넣어두지 않았다면 그것마저 사라져 버릴 뻔했다.
이빨마저 검게 타 버리더니 이내 떨어져 내렸고 뼈가 요란하게 뒤틀리며 현재 그가 지닌 기운에 맞는 몸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빠드득, 빠득-’
마치 주술처럼 뼈가 분해되고 다시 합쳐지다 커지기도 했는데, 주술의 대가인 자이한이 보았다면 그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는 알 것이다. 현재 자신의 주술로도 불가해의 영역임을.
야안의 뼈는 다른 이들과의 뼈와 그 질이 달랐다. 아니, 진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더욱 유연해지고 강해져 강한 충격을 견딜 수 있게 되고 웬만한 명검으로도 뼈를 가를 수 없게 되었다.
그야말로 도검불침의 영역에 오른 것이다.
곧 모든 뼈가 조립되어 새로운 형태를 맞추더니 이내 괴기한 야안의 몰골 위로 살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중간에 검은 딱지가 생기는 과정 따위는 무시한 채 살이 생기던 그는 강철마저 씹을 듯한 이빨이 새로 났고, 짙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일어나더니 이내 허리까지 내려왔다.
새로운 몸을 얻게 되면서 그간 생긴 상처들이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피부는 막 태어난 아기처럼 그 빛깔이 곱고 투명했다.
이목구비는 좀 더 정교해졌는데, 오랫동안 야안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얼핏 다른 이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지 모른다.
실제로 예전 야안의 모습은 좋게 보면 호감을 줄 수 있는 모습이었지만, 나쁘게 본다면 시골의 촌스러운 순진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를 본다면 누구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명성 있는 대 귀족 가의 곱게 자란 공자의 모습을 보는 듯했으니 말이다.
더구나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기운이 그에게서 은연히 흘러나왔으니 거들먹거리는 귀족들조차 저절로 고개를 숙일 것이다.
‘투둑-’
마치 작고 가벼운 물체가 땅에 떨어지듯 허공에서 가부좌를 틀던 야안은 그렇게 자신이 만든 황폐한 대지 아래로 내려섰다.
그는 깨달음의 여운이 남은 터라 섣불리 눈을 뜨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