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82화
시간이 흘러 지난 전투로 무너져 내린 나무 너머로 강렬한 햇빛이 그를 삼키기 시작했는데, 야안은 기분 좋은 노곤함 속에서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눈을 떴다.
그의 깊은 눈에서 은은한 빛이 일렁이며 흘러나오다 이내 스르륵 다시 눈 속으로 빛은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잔해물들을 보고 난 뒤, 그제야 자신이 이룬 경지에 대한 현실감이 느껴졌다.
‘환골탈태라니.’
환골탈태라는 고대어, 그 말 그대로의 경험을 하게 된 야안은 잔잔한 여운을 느끼며 자신을 살폈다.
환골탈태는 극에 달하는 수련을 끝없이 반복하다, 그 극의를 넘어서게 되면서 일어나는 과정을 말한다. 한 마디로 인간의 몸으로서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렵기에 새롭게 진화된 몸을 가지는 현상을 말함인데, 대륙의 구존이자 초인인 그들 또한 이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그 또한 그 찬란한 문을 열게 된 것이다. 다른 초인들처럼 나이가 지극해졌을 때가 아닌 고작 이십대 중반인 나이에 올라섰으니 이는 전무후무한 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은 2대 전설의 현자이자 인간사에서 가장 뛰어난 검객인 로블랑조차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초인에 발을 디디게 된 야안은 지금 스스로 이루지 못하는 것은 없다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또한 이전 자신의 경지가 얼마나 조잡한 것인지를 알 수 있기도 했다.
선택된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산을 정복한 자만이 가지는 희열이었고, 범인들에게는 오만해 보일 수 있는 시선이기도 했다.
스스로 힘에 취해 과신하는 자만 따위가 아닌 정확한 자신의 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야안은 이 경지에 오른 뒤에야 자신이 초인에 대해 얼마나 어리석은 오류를 범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가 예전 처음 익스퍼트에 올라 새로운 검의 길을 보았듯이 초인의 길은 더 넓고 험한 신대륙을 여행하는 것과도 같았다.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야안은 스스로 상태를 정확히 알기 위해 바뀐 정보창들을 불러들였다.
[레벨 : 165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4,800
마나량 : 17,480
명성 : 1,800
힘 : 220(+20)
민첩 : 220(+20)
행운 : 150 (+20)
지혜 : 170(+20)
신력 : 13 (+20)
마나 : 854(+20)
정령력 : 176 (+20)
분배되지 않은 스탯 : 2]
우선 힘과 민첩이 각각 100이 넘는 스탯이 늘어났고, 행운이 20이 늘었나으며 지혜는 25가 늘어났다.
또한 그 마나가 348이 늘어났는데, 실제 그는 그 수치를 보듯이 마나가 끝없이 솟아오르는 듯한 기분을 가졌다.
변화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심연의 일검
등급 : A
미숙한 심연의 일검에서 진화되었다.
그대가 펼칠 수 있는 절대적인 일검이다. 현재의 그대로서는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영역이나, 주신 아리스가 이방인에게 내리는 축복으로 그대는 심연의 일검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리트담의 저서를 통해 얻은 주술의 힘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 절대적인 일 검인만큼 새로운 몸을 얻은 그대조차 쉬이 다룰 수 없는 힘이다.
* 하루 한 번이 고작이며, 두 번의 횟수를 넘겨 펼치게 되면 며칠 간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한다.
* 경지가 올라갈수록 펼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나거나 그 자신에게 가해지는 피해가 줄어든다.]
초인의 몸을 얻게 되면서 예전이라면 한 번 펼치는 것조차 크게 고생해야 했던 미숙한 심연의 일검을 큰 어려움 없이 펼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변화이다.
그것만으로도 놀랍건만 아리스가 이방인에게 내리는 축복으로 야안은 예전 리트담의 저서를 통해서나 보았던 심연의 일검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하루 한 번이 고작이고, 두 번의 횟수를 넘어서는 순간 며칠 간 절대적인 안정을 취해야 했지만, 그 놀라운 경지를 직접 펼칠 수 있는 것에 비해 그런 부작용은 없다 해도 무방했다.
비록 야안이 미숙한 심연의 일검을 펼칠 수 있게 되었지만, 이는 그의 신체가 진화되고 검의 깊이가 달라지면서 생긴 현상에 불과했다.
검의 마스터에 오르기는 했지만,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라 검기를 일으켰을 때와는 달리 검강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대신 검강과 검기의 중간에 자리한 검사를 일으킬 수 있었는데, 사실 그것만으로도 지난 야안과는 그 격이 달랐다.
검기의 검의 구가 흙으로 지어진 토벽이라 한다면 검사의 검의 구는 견고한 돌로 지어진 성벽이었다.
검사는 상급 익스퍼트의 검객이 검의 구를 한끝으로 모아야 그 기운을 감당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그런 기운을 검의 구형태로 펼치는 것이니 능히 그것만으로도 홀로 13강에 달하는 강자 둘을 상대할 수 있었다.
야안의 경우 그와 더불어 마법과 주술들을 펼친다면 지금의 상태에서도 최소 넷 이상까지 그들을 몰아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
비록 현재로서는 검사 밖에 펼칠 수 없지만 그는 검강을 펼치지 못한 것에 별다른 초조함을 느끼지 못했다.
애초 지고한 검강을 초인의 경지에 오른 순간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부터 말이 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해야 검사의 경지를 넘어 검강을 펼칠 수 있을지에 대해 그는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번에 얻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깨달음의 잔재들이 고행을 통해 정리가 되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는 말이었다.
그것은 시간과 노력이 자리한다면 이룰 수 있기에 야안이 초조함을 느낄 이유는 없었다.
앞서 말한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야안이 이번 깨달음으로 초인의 길에 오르면서 가장 큰 수확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단연 이 건곤대나이라 하겠다.
[건곤대나이
습득률 : 48.4%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을 마스터하게 되면서 그 두 개의 구분이 모호해지게 되자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얻게 된 고위 기술이다. 제 육 감각을 깨우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뛰어난 힘의 묘용이기도 하다.
이제 미숙함을 벗어난 그대에게 너무도 과분한 것으로 진정한 힘의 묘용을 얻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상당한 고련의 세월이 필요로 할 것이다.
적은 힘으로 상대의 힘의 방향을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옮기며 자신을 보호하며 적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다.
* 마스터하게 되면 어떤 종류의 힘이든(마법이든, 물리적인 충격이든) 힘의 방향을 자유롭게 다스릴 수 있다.
* 습득률이 높아질수록 한 번에 해결할 힘의 개수가 늘어난다.]
붉은 실을 대성한 것과 동시에 건곤대나이의 습득률이 단번에 15.7%나 늘어난 것이다. 확실히 검의 마스터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서 검의 묘용이 깊어지자 건곤대나이 또한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야안은 사실 이 건곤대나이로 인해 지금이라도 검의 마스터의 검강을 상대할 만하다 판단했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검사로 검강을 상대한다는 의미지, 소드 마스터에 오른 지 최소 벌써 반백 년이 넘은 초인들을 맞상대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었다.
건곤대나이가 아무리 뛰어난 묘용을 지녔다 할지라도, 그것을 받쳐주는 힘이 부족 한다면 그 묘용은 저잣거리의 광대놀음과도 다름없다.
야안은 이미 검강이 어떠한 것인지를 어렴풋이 눈치를 채었기에 그 같은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그 이외에도 야안이 이 경지에 올라 생긴 변화 중 하나는 드디어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풀 수 있게 된 것에 있다.
또한 아직 봉인된 형태이기는 했지만, 전설의 검을 완전히 다룰 수 있게 된 것 또한 있었다. 상급 익스퍼트 경지에서는 맞지 않은 옷이 초인에 들어서면서 자신의 몸에 딱 맞아들이게 된 것이다.
야안은 뇌전의 정화와 전설의 검을 꺼내기 위해 인벤토리를 열다 그제야 자신이 알몸이라는 것을 자각하였다.
‘그거참.’
짧게 자신을 질책하던 야안은 다행히 인벤토리에 자리한 공간의 주머니에 여벌의 옷이 있는 터라 곧 이를 꺼내 입었다.
몸이 새롭게 구성됐다 하지만, 본래의 체격과 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몸의 근육들이 섬세해지고 질겨지면서 약간은 마른 듯했다.
덕분에 옷맵시가 잘 살아나, 좋은 천으로 지은 그의 옷이 더 돋보여졌다.
옷을 입은 야안은 뇌전의 정화를 꺼내 들었다. 뇌전의 정화를 말없이 손에 쥔 채 바라보던 야안의 입가가 슬쩍 올라갔다.
“그렇군. 확실히 지금이라면.”
그의 짐작처럼 지금이라면 뇌전의 정화의 봉인을 풀 수 있을 듯했다. 물론 예전 붉은 노을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라 말한 만큼 완전히는 풀 수 없을 것이지만, 최소 반 이상의 봉인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확신이 섰다.
붉은 노을이 그를 위해 손을 써 주고, 야안의 기운이 뇌전의 성질을 지녀 그 정도로 힘을 되찾게 할 수 있었던 것이지, 그도 아니었으면 그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긴 시간이 지난 뒤에나 가능할 터였다.
곧 두 손에 쥐어진 뇌전의 정화는 이내 천천히 야안의 손을 통해 봉인이 해제되기 시작했다. 은은한 뇌전의 기운이 일어서기 무섭게 모습을 바꾸더니 이내 유피테르가 다루던 뇌전만큼이나 강렬한 기운이 일어났다.
만약 야안이 유피테르와 계약을 하여 뇌전에 상당한 면역력이 있지 않았다면 초인이자 뇌전의 힘을 다루는 그조차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을 터였다.
그 힘에 산새들이 지저귀며 저 멀리 사라졌고, 그 충격에 저 멀리서 정신을 잃었던 자이한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것은.”
처음 보는 형태의 결계가 자신을 보호하고 있음을 깨달은 자이한은 그 결계조차 이번의 힘에 위태롭다는 것을 알았던 터라 서둘러 보호의 주술을 펼쳤다.
곧, 둥글고 붉은 기막이 뇌전으로부터 그를 보호해주었는데 자이한은 만약을 위해 그 안에 기막을 하나 더 펼쳤다.
그제야 여유가 생긴 그는 그 뇌전의 힘을 뿌리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리고 그는 절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주술의 대가인 그는 야안이 어떤 경지에 올라선 것인지 단번에 깨달았던 것이다.
“믿을 수 없구나. 저 나이에 위대한 경지에 오르다니.”
변방 부족의 주술사인 그는 초인을 위대한 자라 불렀다.
자이한은 야안이 위대한 경지에 올라, 그로서 새로운 힘을 취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고 만약을 위해 자신의 기척을 흘리지 않았다.
곧 천지를 찢어 놓을 듯한 뇌전의 기운이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이내 야안은 저릿한 손을 펼쳐 보였다.
손안에는 뇌전의 정화가 이전보다 더 밝은 빛을 내며 그의 손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시치미를 떼는 듯 조금 전의 그 사납던 뇌전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야안은 알 수 있었다.
이 봉인의 해제로 뇌전의 정화가 보일 수 있는 힘이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를 말이다. 사마의 존재라면 설사 초인의 경지에 오른 자라 해도 제대로 적중하면 일격에 목숨을 취할 것이며 구존이라 해도 사지의 하나는 내주어야 할 것이다.
‘대단한 힘을 얻게 되었군.’
야안은 그렇게 생각을 하다 이내 누군가의 기척을 느끼며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