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90화
아니, 지금 부족의 돌아가는 상황을 본다면 자신이 다음 대의 족장으로 추대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후계이자 이제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2명의 상위 대전사를 넘어서야 했다. 문제는 그들의 세력이 부족의 삼 분의 일에 달하는 것이다.
이들과 싸워 이기지 못할 것도 없지만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계획은 이루어지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기에 야안은 미심쩍으면서도 그 내기를 수락하였다.
그렇게 두 달이 지나, 야안은 그들이 데려온 한 무인을 만나게 되었다. 상대는 자신이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쟈칼보다 거대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자신의 아버지이자 족장께서도 대단한 덩치를 가지고 있으시지만 그 앞에 비하면 빛이 바랬다.
하니 쟈칼 중에서도 유난히 왜소한 체격을 지닌 야안은 어떻겠는가? 그와 야안이 마주서자 마치 갓 태어난 어린 쟈칼과 성인을 세워 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든다. 그 모습이 상당히 유희적이라 몇몇 쟈칼은 웃음을 흘리고 했다.
주위에서 어떻게 보든 야안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 없었다. 그를 본 순간 그 자신도 본능에 충실한 쟈칼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피가 끓어올랐으니 말이다.
야안은 지난 수많은 전투를 겪으면서 덩치가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상대는 단순히 그 덩치만 큰 것이 아니다.
마나를 체계적으로 다루고 그 마나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경지에 오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기도가 그에게 자리했다.
‘그대들의 본성에 맞는 치졸한 수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좋군.’
야안의 그 마음을 마란 또한 느낀 듯했다. 그는 얼굴에 요란한 상처 자국이 붉게 변할 정도로 열기를 띄우며 미소를 머금었다.
곧 누구의 중재도 없이 그 둘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마란의 무기는 거대한 철봉이었다. 그의 덩치에 맞게 제작된 그의 철봉은 마치 숲의 나무를 뜯어 휘두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했다.
그에 비해 야안의 무기는 너무나 왜소했다.
마란의 무기가 나무라면 야안의 무기는 그 나무에 자리한 나뭇가지였다. 애초 무기에서부터 말이 되지 않는 전투였다. 그 누구도 야안이 마란의 그 거대한 휘두름에 무너질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섣부른 판단임을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대한 힘이 실린 그의 철봉은 야안의 창과 부딪히는 순간 의지를 잃고 미세하게 다른 곳으로 힘의 방향이 틀어지기도 했다. 또한 야안은 마란의 힘을 이용하여 그것을 역으로 공격하거나 밀고 당기며 그의 철봉에서 떨어지지 않는 신기를 보이기도 했다.
극에 달한 사량발천근과 이화접목이 모습을 보인 것인데, 만약 야안이 이 전투를 불과 6개월 전에 했다면 그의 거대한 힘을 감당하지 못해 휘말렸을지 모른다.
‘쾅, 쿠구궁.’
대기를 찢는 듯한 굉음이 그 둘의 무기가 부딪칠 때 들리기 시작했다. 간혹 야안이 공세를 보일 때는 마란조차 휘청거릴 정도로 거대한 힘이 그의 창에서 펼쳐졌다.
그들의 전투는 반나절이 지나고 다시 한나절이 지나 해가 저물 때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승자는 야안이었다.
그들의 힘은 백중지세였지만, 야안에게는 운기행공이라는 체계적인 마나 활용법이 있기에 가능한 승리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초 체격에서 우위에 자리한 야안이 패배하였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승리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던 대전사들은 맥을 잃은 모습으로 주저앉았고, 먹는 것도 잃은 채 그들의 전투를 바라보던 부족민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자신들의 부족에 용사가 나타난 것이다.
마란은 손아귀가 찢어진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다 이내 껄껄 웃음을 흘리더니 피를 손가락에 묻혀 자신의 이마에 십자를 그었다.
“저 마란 그대를 우두머리로 모시고 싶습니다. 부디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이마에 피로 십자를 그었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겠다는 말이다. 생명에 대한 개념이 낮은 쟈칼이지만, 이 같은 결심을 하는 이는 보기 드물었다.
비록 자신이 이겼다 하지만 이것은 마나의 분배를 통해 얻은 승리였다. 만약 다시 전투를 하라 한다면 다시 이길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그도 그것을 알 것인데 왜 자신의 수하가 되기를 원하는지 그것이 의문이라 묻자 마란이 답했다.
“자코의 나라에서 저는 실로 대단한 무인을 만났습니다. 제가 철봉을 무기로 쓰는 것도 그의 영향을 받아서인데, 당시 그가 휘두르는 철봉은 저를 겨우 열 초식에 꺾었습니다. 실로 믿기지 않는 일이지요.
저는 이후 무기를 지금의 철봉으로 바꾸어 십 년의 고련 끝에 그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저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지난번보다 발전이 있었던 덕분에 백 초식까지는 버틸 수 있었지만 저는 직감했습니다.
그것이 저의 한계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게 승복하던 차 저는 오늘 야안 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야안 님께서는 전사에 오르신 지 몇 년 되지 않는다 들었습니다. 하면 앞으로 그자만큼이나 대단한 무인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부디 보고 싶습니다. 우리 쟈칼에도 그 같은 위대한 무인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야안은 그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받아들였다.
“내가 그 같은 위대한 무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노력하겠네. 이제 그대의 꿈은 나의 꿈이기도 하네.”
그 말에 마란은 함박웃음을 흘리며 절을 올렸고, 야안은 생소한 쟈칼 종족의 의식을 말없이 받아 들였다.
그렇게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족장이 죽음을 맞이했다.
이후, 애초 약속한 대로 야안이 다음 대의 족장으로 오르게 되었는데, 그 어느 누구도 반대하는 자는 없었다.
쟈칼의 용사 마란이 그의 수하를 자칭하는데 그 누가 반대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족장에 오른 야안은 대대적으로 부족을 변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현재 야안의 부족은 목축업을 하기에 좋은 지리라 크게 식용 동물들을 모으게 하여 그들을 길러 식량을 마련하였는데, 덕분에 약탈하는 횟수가 반으로 줄게 되었다.
야안은 제휘하의 모든 군인을 규율의 선에 맞추어 탐욕을 멀리하게 하고, 이성적인 사고를 기르도록 노력했다.
또한 사소한 약속이라도 지키도록 노력하고, 비합리적인 관습을 폐지하도록 했는데 그 같은 야안의 노력 덕분인지 부족은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다.
누구나 큰 영광을 누리고 있는 군대에 들어오고 싶어 했기에, 모두가 탐욕을 절제하고 이성적이게 움직이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새로 태어난 쟈칼들은 그 나이 때 특유의 흡수력으로 야안의 기대를 충족시켰다. 부족 전체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그런 훈련을 받도록 지원을 하였기에 그 성과는 더욱 좋았다.
전사가 되지 못한 쟈칼들은 예전처럼 최하급의 대우가 아닌 그들 중 생산 능력이 뛰어난 자에게 작은 스승이라는 직위를 만들어 내 주었다.
이 작은 스승의 직위는 대전사 못지않은 권한을 내어 준 터라 쟈칼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서로의 일에 최고가 되기를 원했다.
그렇게 칠 년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야안의 부족의 인구수는 2배로 증가했고, 전사 또한 기존의 7만을 넘어 10만에 달했다.
강력한 규율이 자리한 체계적인 훈련으로 인해 전투에 나서면 매번 승리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피해도 미비했는데, 야안은 기존의 방패와 창의 전투 이외에도 원거리를 격할 수 있는 단창을 만들어 단창 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이 단창부대는 오랫동안 자코 나라에 머물렀던 마란에 의해 만들어진 부대였는데, 그 힘이 좋은 쟈칼 종족에게 있어 화살 못지않은 비거리를 만들었다.
야안은 부족의 일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주위의 소수 부족을 통합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단순히 힘으로가 아닌 교화의 단계를 펼친 터라, 그들 대부분의 소수 부족들은 처음에는 미심쩍은 모습을 하면서도 시간이 지나자 결국 야안의 부족에 복속되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강력한 힘을 지닌 부족의 전사들을 앞세우지 않고 조건 없이 부족한 식량을 챙겨주거나 타 대부족으로부터 보호해 주니 아무리 본능에 강한 쟈칼 이라 해도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야안의 부족의 세는 점차 늘어나 4년이 채 지나지 않아 쟈칼 나라의 가장 큰 대부족을 형성하게 되었다.
다시 오 년이 지나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키워 식량의 문제를 해결하고, 광산을 개발하고 면직물을 제작하여 추위를 막고 부족한 금속들을 보충했다.
그로 인해 약탈을 해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야안은 군대를 더욱 엄격한 규율 속에서 정예화시키도록 노력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들의 그 같은 변화에 주위에 자리한 대부족들이 연합하여 노릴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먹을 것은 물론 모든 물품이 풍부하니 탐욕이 많은 쟈칼들이 야안의 부족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재 야안의 부족 전사들의 수는 25만에 달했다. 다른 종족이었다면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이 같은 인구의 증가를 보일 수 없겠지만, 그 번식력이 왕성한 쟈칼 부족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25만에 달하는 전사들은 여타 다른 부족의 전사들과 그 질이 달랐다. 이미 숱한 훈련 속에서 단련된 최정예들이었기에, 능히 세 배에 달하는 쟈칼 전사들을 상대할 수 있는 능력이 자리했다.
아니, 무리한다면 다섯 배에 달하는 쟈칼 전사들 또한 상대할 저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부족의 군대에 가장 큰 변화를 말하자면 부족의 족장인 야안이라 할 수 있다.
야안의 무위는 놀라웠다.
이제 마란조차 야안에게 오십 초를 버티지 못했는데, 이는 마란이 나이가 든 것도 있지만 그보다 삼년 전 야안의 무위가 크게 진일보하면서 생긴 일이었다.
야안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힘을 선보였는데, 그것의 힘은 실로 대단해 마란의 두꺼운 철봉조차 균열이 일어났을 정도였다.
바위 따위가 아닌 정련된 금속으로 만든 두꺼운 철봉을 균열시킨다는 것은 지난 그가 본 자코의 무인조차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당시 마란은 뜨거운 눈물을 보였다.
자신과 했던 무리하다 싶은 약속을 결국 야안이 지켜 낸 것이다.
이후 마란이 야안을 생각하는 마음은 타 종족의 어떤 충정보다 더 짙어졌다. 야안 또한 그런 마란의 마음을 아는 터라 크게 기꺼워하며 그를 상위 대전사를 통솔하는 직위를 만들어 내 주었다.
그렇게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피할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야안의 부족이었다. 그는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대부족 중 가장 힘이 약한 부족을 재빨리 제압하여 쉽사리 그들끼리 힘을 합치지 못하게 하였다.
일이 그렇게 되자 단창을 화살같이 날리는 단창부대의 진군과, 십만이 넘는 방패 병들이 지진을 일으키며 나아가는 야안의 군대를 막을 수 있는 부족은 존재하지 않았다.
전쟁이 시작된 지 채 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야안은 흩어진 쟈칼의 부족들은 하나로 합치게 되었는데, 그로서 쟈칼의 나라는 오랫동안의 내전을 끝을 내게 되었다.
야안은 위대한 왕이라는 뜻이 담긴 차인이라는 칭호로 불리었다. 이 칭호는 그간 쟈칼로 인해 곤란을 겪었던 미케로 종족의 대학자가 지어준 것이기도 했다.
분쟁이 사라지었음에도 야안은 군대의 규모를 축소할지언정 규율을 더욱 엄격하게 하여 최정예의 군대를 유지하였는데, 이는 야안이 자신의 종족 쟈칼의 종족의 본능을 억제하기 위한 차선책으로 그들의 본보기로 기억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