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198화
딘 후작은 주군의 그런 직설적인 말투에 익숙했고, 야안은 그런 것에 흔들릴 심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잠시, 야안을 살피던 무인은 안색을 굳히며 말을 이었다.
“시간을 버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 말에 황자는 예상하지 못한 대답을 들었다는 듯 놀란 표정을 보였다. 누구보다 그의 실력을 잘 아는 황자였기에 그런 그의 놀람은 당연한 것이었다.
“네온 경. 그대가 그런 말을 하니 놀랍군.”
황자는 이내 감정을 수습하며 처음과 다른 시선으로 야안을 바라보았다. 황가의 수호 기사는 무엇보다 그 안목을 키우는 훈련을 받는다.
이는 상대의 실력을 알아야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호 기사 중에서도 한 손에 드는 네온 경은 특히나 그 안목이 대단한 편인데, 그가 그런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야안의 실력이 딘 후작이 파악한 것보다 더 뛰어나다는 말이 된다.
딘 후작 또한 네온 경의 안목을 잘 알기에 다소 놀란 눈으로 야안을 바라보았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곧 문이 열리며 준비된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들이 들어서며 침묵이 무너져 내렸다.
우아한 품위를 지닌 집사는 황자에게 예를 보이며 와인을 따르었고, 곧 여타의 만찬의 준비가 끝이 나자 다시 문 밖으로 나섰다.
황자는 크리스탈 잔에 자리한 붉은 와인을 바라보다 이내 무겁게 말을 꺼냈다.
“그대와 같은 이가 아무 이유 없이 나타날리는 없다 보네. 하여 묻네. 그대는 어디에서 그 같은 실력을 얻었는가?”
황자 피르망에 말에 야안은 이미 준비한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저주받은 숲을 아시는지요?”
“물론이네. 제국의 오분의 일에 해당하는 거대한 숲이 아니던가? 듣기로 상당수의 부족민들이 그곳에 자리한다고 들었네.”
다행히 황자가 저주받은 숲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듯하자 야안은 말을 이었다.
“저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검을 익혔지요.”
그렇게 시작된 야안은 자신의 조상 중 한분이 왜 저주받은 숲으로 가게 되었는지와 그 저주받은 숲에 대한 오해를 황자에게 풀어주었다. 또한, 자신이 만든 성장 과정을 이야기하였는데 마치 고대 시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해 피르망은 매우 흥미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야안의 이야기를 경청하던 피르망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놀랍군. 그 숲에 그런 거대한 세계가 있을 줄이야. 또한 그 같은 괴물들이 자리한다니 그대 같은 검사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겠네.”
황자 피르망은 그렇게 말하더니 이내 조금 전 무인에게 말한 것과 유사한 질문을 야안에게 물어보았다.
“어떤가? 현재 딘 후작과 이 친구가 자리하고 있는 이곳에서 그대는 나를 베어낼 수 있겠는가?”
호쾌하고 대담한 기질을 지닌 피르망의 그 직설적인 물음이었지만 야안은 별다른 흔들림 없이 대답하였다.
“가능합니다.”
그의 대답은 불경스러운 면이 있었지만 황자 피르망은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매우 기쁜 소식을 들은 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형님들과 자웅을 겨룰 검을 드디어 얻게 된 것이겠군.”
이미 1,2 황자 측에는 13강 중 2, 3위에 자리한 검객이 자리했다. 황자 피르망의 세력은 그 점에서 이번 검술대회가 불리하게 흘러갈 것으로 판단했고, 하여 이번 가을 축제에서 그에 대항마를 찾기를 원했지만 사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한데 이렇게 폰 발론이라는 걸출한 검사를 얻게 되었으니 그가 그처럼 기쁨을 표하는 것은 당연했다.
잠시 들뜬 감정을 가라앉히던 황자 피르망은 지난 딘 후작이 그러하였든, 정치를 비롯해 제국의 여러 문제점에 대해 야안에게 토론하였다.
그리고 그 토론의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따르는 유망한 귀족들 못지않은 견해를 보여주었다. 무위만이 아니라 그 지혜도 뛰어나다는 점은 능히 군부에서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피르망은 자신이 귀한 인재를 얻었다는 것을 다시금 기뻐하며 품속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어 야안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그대가 이번 영광의 십 인에 들어선 것을 축하하는 작은 선물이네.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군.”
야안은 작은 상자에 마법으로 봉인이 되어 파악하지 못했지만, 피르망의 말과 달리 이 안의 물건이 대단한 것임을 직감하였다.
아니, 실상 별 볼 일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황족이 하사한 물건은 영광스러운 것이었다. 하여 야안은 크게 대례를 보였고, 그 모습에 황자 피르망은 작게 주억거리며 만족한 표정을 보였다.
황자와의 만남을 마친 야안은 딘 후작가에서 내 준 작은 별장에 돌아온 뒤에야 그 작은 상자의 봉인을 풀었다.
이 마법의 봉인을 푸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중급 익스퍼트 수준의 현자가 그 봉인 마법의 기운을 읽어 반대로 펼치는 것이었고, 또 다른 것은 검기로 마법의 힘을 강제로 풀어버리는 것이었다.
초인인 야안은 이 정도의 봉인을 파쇄 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지만, 그는 또한 고위 현자이기도 하기에 대신 순식간에 봉인 마법을 역행하여 풀어버리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 이것은?”
곧 봉인이 풀리고 상자가 열리며 기이하고 놀라운 기운을 지닌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칠고 광폭한 기운이기도 했는데 야안은 이 기운을 오래전에 느낀 바가 있었다. 바로 초감각을 지니기 이전 제 육감각을 가지던 시절 마일드 왕성의 무기점에서 느낀 것이었다.
그랬다. 바로 힐튼 공작 가의 대공자에게서 받은 느낌이기도 했다.
작은 삼각형의 검은 색을 띈 그것이 모습을 들어내는 순간 곧 눈 앞에 작은 창이 깜빡거리며 그것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었다.
[드래곤의 칠각(봉인)
등급 : C+
드래곤의 일곱 개 뿔 중 마지막 뿔로 전설의 시대 자이웅이 죽음의 지배자와의 격전에서 죽은 드래곤이 남긴 잔해의 하나이다.
고대 시절에 성스러운 돌로 불리기도 했다. 이는 그를 지닌 주인을 여러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대 문명이 사라진 후, 지금은 무인의 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데, 이는 무인이 마나를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탓이다.
* 이 드래곤의 칠각의 봉인을 풀기 위해서는 드래곤만이 가능하다.
* 그 강도가 오르하르콘 만큼이나 단단한 물질이다.
* 이 드래곤의 칠각의 봉인이 풀리면 그대의 수련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드래곤과 관련된 물건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되자 야안은 잠시 말문을 잃어야 했다. 하기야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야안은 그때와 달리 초인의 경지에 오른 지금도 초감각으로 인해 이 드래곤의 칠각에서 느껴지는 그 공포는 크게 완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보다 더 향상된 경지와 초감각으로 인해 더욱 예리해지고 뚜렷해진 직감에 의해 드래곤의 그 위대한 힘을 알게 되면서 그는 잠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놀랍다. 이런 힘이라니. 이런 존재를 막아서야 한단 말인가?’
마치 예전 그 악마 파란토가 온전한 힘을 가진다면 이런 종류의 힘을 가지지 않을까 예상이 될 정도였다.
왜 위대한 존재라는 것인지 그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황자께서는 이것의 가치를 모르는 것인가.’
물론 귀하게 여긴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대륙에 알려진바 그저 이것이 기운을 순수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그 효율성이 다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 거대한 보물의 가치를 한 신하를 받아들이는 데 선물로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 그렇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귀중한 것을 얻게 되었구나.’
언제고 드래곤을 만나러 가게 된다면 그때 그에게 이에 대한 부탁을 할 수 있을 터이니 이 물건은 그때 그 빛을 발하게 되리라.
그는 기운을 순수하게 하는데 이보다 더 뛰어난 뇌전의 정화가 있기에 이 드래곤의 칠각을 인베토리에 집어넣었다.
그로부터 나흘의 시간이 지나 드디어 기다리던 검술대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황자 피르망의 주체 아래 시작된 검술대회인 만큼 여타의 검술대회에서는 볼 수 없는 수많은 강자가 서서히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제국의 상위 검술관에서 온 관장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용맹함으로 이름을 떨친 용병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술대회에 선발된 이들은 모두 128명이었다.
토너먼트 식으로 시작되었기에 그들 중 실력이 부족한 19명은 참가하지 못했다. 최소의 기준이 익스퍼트 초급이었기에 이들의 대전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말로는 부족함이 있을 정도로 화려했다.
그 역사가 오래된 검술관의 검은 매우 정교했고, 전장을 전진한 용병의 검에는 뜨거운 투기가 자리했으며, 귀족들의 검은 화려했다.
그들 중 반이 떨어져 나갔을 때, 대부분 실력자는 익스퍼트 초급을 넘어선 상태였다.
몇 명의 익스퍼트 초급의 검사들이 오를 수 있었던 것은 토너먼트의 운이 닿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실제로 떨어진 검사들 중 중급 익스퍼트의 실력자들도 없지 않았다.
중급 익스퍼트의 검사부터는 검기를 날리는 등 그 거리의 제한이 풀리고 검기의 위력 또한 향상되었기에 대전의 접전은 더욱 치열해 졌다.
그만큼 부상자들 또한 많았지만 거대한 대회인 만큼 귀한 성수들이 즐비했고, 또한 황자 휘하의 중급 현자 마스터 3명이 참석하여 그들을 살폈기에 죽어나가는 이들은 없었다.
이들 중 가장 부각 된 이는 2명이었다.
제국에서도 한 손에 드는 칼 용병단의 다음 대의 후계자인 잭슨과 제국의 역사와 함께했다고도 말하는 오랜 전통을 지닌 레드 검술관의 라인이었다.
잭슨과 라인 이 두 사람의 경지는 놀랍게도 상급 익스퍼트에 들어서 있었다.
라인은 올해 80을 넘긴 노 검사로 한때 험한 북부 지방의 야루스 산맥 근처에서 상당한 명성을 날린 이였다. 상급 익스퍼트에 오른 만큼 그 나이와 달리 정정했기에 삼황자 측에서 그에게 많은 조건을 걸어 모셔온 이였다.
본래 야안처럼 영광의 십 인에 들어오려 했으나 그가 원치 않았다. 그의 말로는 최근 십년 간 실전을 겪지 않았기에 그 감각을 찾기 위해서라 하는데 대전에서 그의 검을 본 누구도 그의 검이 쇠퇴했다 말하지 못할 것이다.
잭슨의 경우 이제 막 오십대를 넘어선 자였는데 그의 놀라운 검처럼 사실 그는 칼 용병단에서 가장 강한 자이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 칼은 사실 양부로 그의 재능을 어린 시절에 알아본 뒤 부모에게서 많은 돈을 주고 그를 샀는데, 잭슨은 어린 시절부터 야망이 컸기에 스스럼없이 칼을 아버지로 또는 스승으로 삼았다.
그런 살가운 잭슨의 태도에 칼 또한 그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상당한 재산과 노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그의 그 천부적인 재능이 꽃피어 오십이 되던 해 그는 상급 익스퍼트라는 놀라운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겨우 몇 년 정도의 그 경지를 다지었을 뿐이지만 용병인 만큼 워낙 감각이 날카롭고 그 재능이 뛰어나 능히 상급 익스퍼트로서도 부족함이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결국 결승에 두 사람이 부딪히게 되었다.
잭슨의 검법은 예전 칼이 고대 시절의 한 유적에서 얻은 것으로 대단히 뛰어난 검법이었다. 능히 상급 익스퍼트의 검사가 평생을 바쳐 닦아도 될 검법인 것이다.
검도 유행이 있는데 현재는 가볍고, 화려한 변화 속에 날카로움이 있는 것을 즐긴다면, 고대 시절의 검은 무겁고 단순함을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