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10화
그토록 바랐던 감히 자신의 신분으로는 익힐 수 없던 검을 자신들에게 가르쳐 준다 하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그런 톰의 모습을 모르는 척하던 야안은 이내 그에게 가르침을 내리기 시작했다.
낮에는 약식 탈론 수련법으로 시작하여 육체적인 단련을 하게 하였고, 밤에는 초급 심법을 익히도록 이끌었다.
검의 마스터에 오른 야안에게 있어 초급 심법을 익히게 도와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야안이 보았듯이 이들 형제는 그 근골이 뛰어난데다 워낙 검에 대한 열정이 뜨거워 보름이 채 지나지 않아 야안은 이들에게 검을 잡게 해 주었다.
특히 그 열정이나 그 근골이 뛰어난 톰의 경우는 그 진도가 상당했다. 마치 자신의 아들 아론을 연상케 할 정도였는데, 그 열정 덕분인지 그 진도는 더 빨랐다.
그 같은 좋은 제자들에 야안 또한 가르치는 데 흥이 절로 올랐다.
한 달이 지날 무렵이 되어서야 육합검식과 삼재 검식을 마스터한 톰에게 십사수검법을 익히게 하였는데, 그때쯤 자이한이 폐관수련을 마치고 방을 나섰다.
정오가 막 지날 무렵에 모습을 보인 것인데, 그는 야안을 만나기 위해 연무장을 찾다 웬 어린 두 아이가 있는 것을 보고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너희는 누구냐?”
날카롭고 다소 냉정한 얼굴 형태로 모습을 바꾼 그의 낮은 목소리는 충분히 위협적인 것이었지만, 그들 중 톰은 야안에게서 자이한에게 들은 바가 있던 터라 겁내지 않고 공손하게 대답하였다.
“지난달 스승님께서 거두어 주셨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잠시 영주성에 가셨습니다.”
“흠, 야안의 제자들이라. 과연.”
그는 검에 대해서는 잘은 몰랐지만 대신 진체의 술에 의해 인간의 육체에 대해 누구보다 인간의 육신에 잘 알았던 터라 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인재인지 알 수 있었다.
특히 자신의 말에 대답을 한 큰 녀석의 근골은 상당히 뛰어났는데, 다만 어린 시절 혹사를 한 탓인지 아직 육체적으로 불균형이 자리했다. 이것을 균형 잡기 위해서는 지독한 수련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은 작은 녀석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이번에 깨달은 진체의 술을 실험하기 좋은 재목이라 생각이 들어 그들의 머리 위로 손을 올렸다.
“야안의 제자들이라 하니 선물을 주지. 상당히 고통스러울 것이지만 입을 열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위압적인 그의 태도였지만 아이들은 스승의 친우라는 것을 알았던 터라 이내 그러겠다고 대답하였다.
야안이 내내 자이한 상당히 비범한 자라는 것을 이야기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스승을 믿었기 때문이다.
자이한의 눈이 일순간 초록빛이 은은히 자리하더니 이내 그 빛이 사라지며 곧 아이들의 머리에 올린 손 위로 초록빛이 일렁거렸다.
그 초록빛은 이내 아이들에게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그 빛이 들어서기 무섭게 톰과 행크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은 고통에 휘말려야 했다.
화로 위에 올린 수프처럼 뇌가 끓는 듯했으며, 눈이 터져나갈 것 같았다. 그 고통은 시간이 지나자 머리뿐만 아니라 몸에서도 퍼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작은 수백 개의 망치가 온몸을 난자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그 고통의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은 이내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아찔할 정도의 포근한 감정에 휘말렸다.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 자유롭기도 했는데, 그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중천에 있던 해가 지고 있었다.
또한 한 쪽에서 자신들의 스승이 그 친우와 함께 잡담을 나누고 있음을 볼 수 있었는데, 곧 그들이 의식을 차린 것을 파악한 스승은 크게 미소를 보이며 자신들에게 다가왔다.
“너희는 참으로 큰 기연을 얻게 되었구나. 감사드린다고 인사부터 올리도록 해라.”
스승의 말에 그들은 곧 옆에 같이 온 자이한에게 절을 올렸고, 자이한은 그런 아이들의 인사가 싫지 않은 듯 입가를 살짝 올렸다.
제자들이 어리둥절하면서도 예를 보이자 야안은 그런 그들에게 이번에 자신들이 어떤 것을 얻었는지 가르쳐 주었다.
“본래 너희 몸의 균형은 무너져 있었다. 검사에게 있어 몸의 균형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다. 상승의 검로를 얻기 위해서는 몸의 균형이 올바르게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보통 검사들은 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상당한 시간을 보내어야 한다. 실전적인 검술을 펼치는 용병들이 상승의 경지에 오르지 못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한쪽으로 치우친 몸의 균형 탓도 있단다. 한데 이 스승의 친우가 어쩌면 십 년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몸의 균형을 잡게 해주었단다. 하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냐.”
스승의 그 말에 톰과 행크는 깜짝 놀랐다. 자신들에게 행한 일이 기이한 것인 줄은 알았지만, 설마 그처럼 대단한 것인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다시금 감사의 인사를 올리는데 자이한이 손을 저으며 자리를 피했고, 야안 또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야안은 그로부터 며칠 동안 그들의 검을 수정해주었는데, 이는 갑자기 바뀐 몸에 적응하는 것을 도우며 몸의 중심이 다시 그르치지 않게 위해서였다.
과연 자이한과 야안의 노력으로 인해 그들은 그로부터 보름의 시간이 채 되지 않아 검의 기초를 다 잡을 수 있었는데, 야안은 그제야 만족한다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래, 이 정도면 스스로 수련을 하는 데 부족함이 없겠구나.”
야안은 자신이 떠나기 전 제자들이 스스로 검을 닦을 정도로 올라선 것에 안도하였다. 이미 영주성에는 만약을 위해 10년을 계약 연장한 뒤였다.
사실 야안은 자신이 이방인이라 하지만 과연 자신이 부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 자신이 아리스 님에게서 그 계시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천년이나 더 된 고대 시대의 기록에서나 보았던 사실이었으니 신비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마크 영주성에 그 같은 서신을 보내었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자신이 드래곤의 공격에서 살아남거나 새로운 생명을 얻어 부활을 하게 된다면 이 어린 제자들을 영주성에 데리고 갈 수 있을 터이다.
톰은 스승께서 내일 떠날 것이라는 암시가 담긴 어투로 말을 하시자 가슴이 시린 듯한 감정을 숨기며 물었다.
“부디 스승님의 이름을 가르쳐 주실 수 있겠는지요.”
만약의 사태를 위해 제자들에게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던 야안은 어쩌면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 이내 말을 꺼내었다.
“베론 야안이라 한단다. 마일드 왕국의 마크 자작 가 휘하에 있는 남작의 신분이지.”
그러며 주술을 풀어 본래의 얼굴을 보여주었는데, 톰은 그에 놀라워하면서도 이내 야안의 그 자상하면서도 끝을 모르는 그 맑은 눈빛과 어울리는 얼굴이라 생각하였다.
행크 또한 놀라워하면서도 그 더 정감이 자리한 야안의 인상에 입가에 미소가 내내 떠나지 않았다.
그날 저녁은, 헤어져야 할 사제 간을 위해 자이한이 산에서 잡아 온 멧돼지로 만찬을 즐겼다.
다음 날 이른 새벽이 오기도 전에 그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며 헤어졌다. 요란하게 새벽 안개를 헤치며 멀어져가는 두 분을 보던 톰과 행크는 부디 무사히 돌아오기를 아리스 님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로부터 보름의 시간이 지나 야안과 자이한은 팔로 후작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제국의 야루스 산맥의 아홉 경계 지역 중에서도 가장 치열한 곳이건만 여타의 왕국과 달리 매우 교통이 발달 되어 있었고, 또한 상당수의 상인들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었다.
주로 거래되는 물품은 몬스터 가죽과 이곳 산맥에서나 구할 수 있는 희귀 약초들이었다.
특히나 이곳의 몬스터들 중에서도 이곳에서만 거주하는 오렌지빛을 발하는 보쿠시라는 괴조 때문에 제국에서도 알아주는 대상단이 거래를 위해 움직이곤 했다.
이 보쿠시라는 괴조는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황금 덩어리라 해도 좋을 정도로 상당히 귀한 존재였다.
그 뼈는 마나를 흡수하기 쉬운 구조였고 가죽은 뛰어난 마항력이 자리했으며 그 장기들이나 눈은 질 높은 마법 물질을 만드는 데 큰도움이 되는 재료였다.
하지만 워낙 몸이 날래고 힘이 좋고 영리하여 쉽사리 잡을 수가 없는 몬스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보쿠시라는 괴조 한 마리를 잡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대용병단의 일 년 수입과 맞먹는 정도라 이를 노리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팔로 후작 가에서는 일 년에 세 번 있는 몬스터 토벌에 자신들이 처치한 몫의 40%를 주었는데, 이 때문에 제국의 이름 있는 대용병단에서도 토벌전에 적극적이었다.
제국의 팔로 후작 가가 맡고 있어야 할 만큼 이곳 경계의 오크 수장은 대단히 무서운 자이다.
바로 오크들의 왕인 ‘칸’을 보필하는 여덟 명의 장군 중 하나인 도칸인데, 검은 도끼라는 이름을 지닌 이 오크는 특히나 그들 중에서도 세 번째 서열에 있는 자이다.
세 번째라 하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 서열의 도칸은 오크의 왕 ‘칸’을 항상 보필하고 있었으니, 실상 대외적으로 모습을 보인 오크 중 가장 강력한 오크라 할 수 있겠다.
이 검은 도끼는 여타의 도칸 보다 반 배는 더 무서운 힘을 지니고 있었고, 그가 타고 다니는 붉은 늑대는 그 홀로도 호도칸 급의 힘을 보였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지혜도 뛰어나 웬만한 장군 못지않은 전략과 전술을 펼쳤으니, 제국에서도 골칫거리인 존재였다.
하니 그런 존재를 벌써 30년째 상대하고 있는 팔로 후작 또한 비범한 자라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팔로 후작은 대륙의 아홉 초인 다음으로 유명한 자이기도 했다.
바로 푸른 바람이라는 이름을 지닌 정령사로도 유명한 그는 13강의 첫 번째 자리를 맡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기야 그런 존재가 아니라면 이 검은 도끼를 상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애초 도칸의 직위에 자리한 오크는 최소 상위 경지에서도 끝자리 오른 이들을 둘 이상 상대할 수 있었고, 셋은 모여야 승리를 점해볼 수 있었다.
한데 그런 도칸 중에서도 대외적으로 가장 강한 자이니 푸른 바람이 아니라면 상대하기란 어려움이 크다.
물론 제국의 초인들 중 한 명이 나선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이미 오크들의 주술사 중 대주술사가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고, 그들이 이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이 온다는 판단을 내리면 그간 잠잠했던 괴물 중의 괴물인 오크들의 왕 ‘칸’이 모습을 보일 확률이 높았다.
단순히 ‘칸’ 만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키운 호위대 또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 수준이 최소가 중급 경지 수준일 것이 분명한 수백의 호위 전사들이 모습을 보인다면 이때부터는 제국이 휘청거릴 정도로 큰 전란에 빠져야 하니 말이다.
오크들의 왕인 ‘칸’만 할지라도 홀로 2명의 초인을 상대할 정도였고, 도칸 급 오크 두 마리면 초인을 상대할 수 있다.
그러니 제국이 휘청거린다는 말은 결코 과한 판단이 아니다.
이런 흐름이 자리 잡힌지라 푸른 바람이라는 칭호를 얻은 팔로 후작은 검은 도끼를 상대로 100여 번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활기가 넘치는 시장을 구경하던 야안과 자이한은 번화가에서 크게 멀지 않은 곳에서 여관을 잡았다.
그들이 자리 잡은 여관은 본래 대 용병단이 빌린 곳이었는데, 이번 토벌에서 상당수가 죽어 빈방이 많아져 방을 잡을 수 있었다.
이번 몬스터 토벌은 지난 토벌에 비해 그 피해가 20% 정도 늘어났었지만, 대신 그 이익은 배 이상이 늘어난 토벌이라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