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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09화 (209/385)

야안 209화

야안은 그런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나무의 높은 가지에 걸터앉아 바라보고 있었다.

전의 모습과 달리 야안의 행색은 매우 깔끔했다. 어지럽게 자란 머리는 단정히 정리되어 있었고, 길게 자란 수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다 해도 본래의 모습이 아닌 예전 자이한이 형성해 준 투박한 사십대 중년의 모습으로 자리했지만, 그 눈빛이 너무나 맑고 깊어 그를 자세히 본 사람이라면 저도 모르게 호감을 가질 것이다.

시냇가에 작은 고추를 달랑거리며 물장구를 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에 제 아들을 생각하던 야안은 씁쓸한 미소를 보였다.

야안은 어김없이 자신을 뒤흔드는 상념을 지우려는 듯 작게 고개를 젓더니 한숨을 흘리며 중얼 거렸다.

“벌써 여섯 번째 달이군. 다행이다. 그전에 완성할 수 있었으니.”

그의 그 조용한 말과 달리 그 의미는 상당하다.

나흘 전 그는 드디어 온전한 검강을 검에 담게 되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검으로 초인에 오른 자가 검강을 형성하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다 할지라도 최소 7년의 세월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여러 조건이 충족한 경우에 그렇다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배는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었다.

한데 야안은 초인에 오른 지 이제 1년하고 두 달이 막 지난 지금에 검강을 형성하게 되었으니 전대미문이라 하겠다.

야안은 검강을 형성한 뒤부터 검을 잡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수련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육체로의 수련이 아닌 심상의 수련이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마치 할 일 없는 한량같이 이곳 영지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이나 우거진 나무나 꽃들을 바라보았는데, 이는 자신의 마음에 선 검을 지워내기 위해서이다.

검강은 애초 세상에 자리한 가장 강맹한 기운이다.

하기에 그 부작용도 적지 않았는데 현재 야안은 그 모든 것을 멸할 듯한 강기에 마음이 어지러워진 상태였다.

만약 야안이 긴 시간을 두고 체계적이며 스승이나 이 자리를 지났던 고인에게서 충고를 살피어 조심스럽게 길을 걸었다면 이 같은 심마에 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없었기에 금빛 진주에 힘입어 그 기간을 상당히 단축하였고, 그로 인한 부작용은 적지 않았다.

만약 야안에게 마음의 심마를 잡아주는 뇌전의 정화가 아니었다면 그는 상당히 고된 시간을 보내야 했을지 모른다.

그런 연유로 야안은 검을 손에서 떨어뜨렸고, 이내 세상에서 숨겨진 진리를 살피며 심상 수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직 자이한은 폐관 수련이 끝이 나지 않은 상태였는데, 야안은 초감각과 기운을 일으켜 그를 살핀 결과 그의 호흡은 어느 때보다 길고 깊어 정상임을 알 수 있어 걱정을 털었다.

‘그의 상태를 보아하니 조만간 폐관수련을 끝낼 듯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아이의 우는 목소리가 들렸다. 도대체 무언가 싶어 그곳으로 가보니 농노로 보이는 아홉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가 쓰러진 아이를 안으며 울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 연유를 모르기에 진실의 눈을 펼쳐 그 이유를 알아보니 이들은 본래 형제간으로 쓰러진 아이는 그 우는 아이의 형이었다.

이들 형제는 본래 이 영지의 소속이 아닌 이곳에 흘러 들어오는 상인의 농노들로 그 주인의 성정이 워낙 포악해 기회를 노려 성공적으로 도망을 칠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망을 치기 이전 주인에게 워낙 많이 맞아 골병이 들었던 그 형은 도망을 치느라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휴식을 취하지도 못한 탓에 결국 중태에 빠졌고, 동생은 어쩔 줄 몰라 그저 그렇게 쓰러진 형을 안은 채 울음을 흘릴 뿐이다.

야안은 그 사정이 매우 딱하다 여기어 그들에게 다가갔다.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에 어린아이는 우는 와중에도 놀라 경계를 보였고, 야안은 그런 아이의 모습이 크게 안타까운 터라 작게 한숨을 흘리며 이미지 마법을 그 아이에게 펼쳤다.

첫 인상을 곱게 보는 이미지 마법이 제대로 걸리자 아이는 두려우면서도 또한 친숙함을 느끼어 별 다른 저항을 보이지 않았고, 야안은 우선적으로 그 아이에게 마케를 연달아 펼쳐 마음을 진정시켰다.

“형이 아픈 모양이구나. 다행히 이 아저씨가 살펴볼 수는 있겠다.”

“저, 저는 돈이 없어요.”

어리숙한 어투로 말하는 아이에 야안은 구슬픈 눈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돈을 받자고 하는 일이 아니란다.”

야안의 그 말에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넙죽 몸을 숙이며 말했다.

“형, 형을 구해 주신다면 저를 말처럼 부리어도 좋아요.”

그 말에 야안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젓더니 아이의 거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는 그 손길에 ‘어……? 어.’ 하며 놀라고 긴장을 하였는데, 이는 예전 야안이 그의 어머니 마리에게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던 탓이다.

형 이외에 어른으로부터 그 같은 감정을 받기란 어려웠을 터라 그런 것인데 야안은 그런 아이의 심정이 와 닿는 터라 작게 한숨을 털어야 했다.

다행히 아이의 형은 영양실조에 쓰러진 것일 뿐 병 자체는 크게 깊지는 않았다. 야안은 리젠을 펼쳐 속까지 들어서려던 골병을 고치고 마케로 기력을 채웠으며 힐로 자잘한 부상들을 고쳤다.

곧 아이의 형의 탁한 숨이 맑아지고 깊어졌는데, 아이는 야안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생긴 그 기적 같은 일에 놀라 딸꾹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에 야안은 다시금 아이에게 마케를 펼치고 기운을 흘려 막힌 기도를 열어 주었다.

“우선 좀 먹어야겠구나. 우선 집에 가도록 하자.”

그러며 아이와 아이의 형을 안은 야안은 축지술을 펼쳐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예전에 본 말처럼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그에 놀라 경이로운 시선으로 야안을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은 인간이 아닌 신과 같은 존재를 보는 눈빛이었다.

장원에 도착한 야안은 물의 구로 간단히 아이들을 씻기고 자신의 옷을 꺼내어 입혔는데, 그 꼴이 우스꽝스러웠지만 그래도 그렇게 모습을 바꾸고 나니 상당히 영준한 모습이 자리했다.

그제야 야안은 이 형제가 검에 상당히 재능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나 그 형의 검에 대한 재능은 테리 못지않을 정도였다.

‘이 또한 인연인 것일까?’

야안은 자신이 준 건량을 오물오물 거리며 형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그 동생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에 빠졌다.

이 아이들에게 측은지심이 든 지금 자신을 괴롭히던 심마는 어느새 모습을 감추어 있었다. 그 말은 그 자신이 애써 심상의 수련을 하는 것보다 이처럼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도움된다는 말이다.

물론 그런 점이 아니라 해도 아이를 돕기로 할 것이지만, 왠지 이 시기에 이 같은 오지에서 만난 아이들이 남 같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심마를 치유하기 위해 돌아다니지 않았다면 그 외지에서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만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는 인연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이의 형이 정신을 차렸다.

물을 찾는 터라 다가가 물을 건네니 마치 어린 새 마냥 잘도 물을 넘겼다. 조금씩 정신이 차려진 듯한 형은 이내 건량을 오물거리며 기뻐하는 동생을 발견하고는 놀라 물었다.

“아! 네 모습이. 여기가 어디지.”

테리처럼 머리도 명석해 이내 주위를 살피던 형은 이내 야안을 발견하고 흠칫 놀랬는데, 야안은 그런 그에게 이미지 마법을 펼쳐 주었다.

그에 조금은 누그러진 경계심을 보이던 그는 잠시 자신을 살피더니 이내 야안에게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혹시 현자이십니까?”

야안은 아이의 그 물음에 미소를 보이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열두어 살 되는 아이의 판단은 매우 훌륭했다.

아무래도 상인의 밑에서 곁눈질로 보고 배운 세상 덕분에 그런 것일 테지만 농노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아이는 상당히 명석한 점이 있었다.

현자라는 말에 그제야 그 아이의 동생은 이해가 된다는 듯 작게 감탄사를 보내었고, 그 형 또한 제 생각이 사실로 판정되자 이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제국이 검을 숭상한다하지만, 현자의 존재는 제국에서도 귀하다. 또한 현명하기에 존경받는 자였으며, 세상의 진리를 향해 걷기에 마땅히 존경해야 할 존재였다.

아이의 형은 현자라는 존재가 그 자신이 본 적이 없는 기사만큼이나 대단한 존재임을 알기에 서둘러 예를 보였다.

“저는 톰이라 하고 이 아이는 행크라 합니다. 진리를 걷는 이를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스스로 톰이라 소개하는 아이의 그 영특함에 야안은 작게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그는 한쪽 작은 화로에서 끓이고 있는 옥수수 수프를 떠 와 아이에게 건네었다.

“그래, 그보다 일단 허기부터 달래는 것이 좋겠다. 한동안은 이런 음식으로 기력을 회복해야 할 것이야.”

미소를 보이며 음식을 건네는 야안에 톰은 얼떨결에 수프를 받아 들였다. 그런 톰의 모습에 야안은 작게 미소를 보이더니 이내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장하다. 그래, 아주 열심히 살았구나.”

그 다정한 말에 톰은 또르륵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행크는 침이 잔뜩 묻은 건량을 씹어대다 형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자 이내 놀라 물었다.

“형, 형. 왜 그래. 아파?”

“아, 아니. 왜 이러지. 갑자기.”

톰은 주체할 수 없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야안은 그런 아이의 모습에 다시금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케를 펼쳐 주었다.

아직 기력이 약한 그에게 이 같은 감정의 변화는 무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곧 야안의 그런 조치에 톰은 조금씩 눈물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는 감정의 홍수가 잠잠해지자 눈물기 가득한 얼굴로 글썽거리는 동생을 달래며 야안에게 크게 대례 하였다.

“보잘것없는 존재인 저희를 위해 이처럼 신경을 써 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부디 저희를 거두어 줄 수 없겠는지요.”

험한 세상을 살았던 톰이었지만, 이 눈앞의 중년의 사내를 믿고 싶었다. 아니, 이미 톰은 그를 믿기 시작했고 의지하고 싶었으며 그의 뒤를 따르고 싶었다.

태어나 세 번이나 주인을 바꾸며 사람에게 불신하던 자신이 이 같은 마음을 가질 줄은 그 자신도 믿어지지 않았다.

행크는 형이 그처럼 말을 하자 이내 눈물을 감추며 빙그레 웃음을 흘리더니 그 옆에 저도 대례를 보였다.

“부디 거두어 주세요.”

야안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 깊은 곳이 울렁거렸다. 아직 어리고 어린 이 아이들이 그 같은 태도를 보이어야 한다는 세상이 서글펐다.

그는 작게 고개를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그래, 알겠으니 일단 쉬어라.”

자신들을 받아 준다는 말인지라 톰과 행크는 감사의 말을 연실 흘렸고, 야안은 그런 아이들의 등을 도닥여 주었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뒤에야 아이들은 기력을 되찾았다.

이는 야안이 그들에게 준 향상된 보호의 조각 물품의 영향이 큰데, 야안은 아이들이 기력을 찾자 그들에게 검을 가르쳤다.

톰은 어린 시절부터 많이 맞았지만, 워낙 강골이라 야안이 치료를 한 뒤부터 여타의 평민 아이들보다 혈색이 좋아 보였다.

행크도 톰보다 부족하다는 것이지 테리에게 크게 떨어진 골격은 아니어서 검을 익히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톰은 야안이 자신들에게 검을 가르쳐 준다는 말에 얼굴에 홍조가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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