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35화
사소한 것이라도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앞으로 스승님께서 하시는 일에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았던 탓인데, 영리한 점이 있는 제인과 바로스는 탈론의 예를 받아들였다.
제인과 바로스는 그간 상당한 성과가 있어 중급 유저의 길에 완전히 자리를 잡은 뒤였고, 바로스는 하급 정령 익스퍼트에 들어섰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인재라 하지만 그 같은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은 그들의 피나는 노력이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기에 야안은 그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앞의 두 제자보다 큰 성과를 보인 이를 찾는다면 역시나 카르샤라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자신이 떠나 겨울이 되었을 무렵, 중급 현자 비기너에 올라섰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그 본래 지닌 깨달음을 기반으로 빠른 속도로 마나를 모으기 시작해 현재는 중급 현자 익스퍼트에 자리했다.
야안이 보기에 지금의 속도라면 못해도 삼 년 안에 그녀의 본래 경지인 상급 현자 비기너에 들어설 수 있을 듯 보였다.
물론 그동안 그녀가 마나만 모은 것만은 아니다.
카르샤는 이번에 이곳 헤롤지 장원의 외지 농가에 자리한 재능이 뛰어난 이를 제자로 삼았는데, 야안이 살펴보았을 때 한스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만큼 그 현자로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나이는 이제 8살에 불과했지만, 자식이 많은 농가의 막내로 태어나 자신의 것을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는지라 그 나이대의 아이로 볼 수 없을 만큼 눈치가 빨랐다.
다만 야안은 그의 이름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녀의 제자 마탄이라는 이름은 대현자 테무드와 옆에서 함께 한 자이기 때문이다.
‘일이 기묘하게 흘러가는구나?’
너무도 기이한지라 야안이 진실의 눈으로 그를 살펴보았고, 과연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는 마탄처럼 그는 자신의 첫 번째 스승이신. 마론 현자님의 그 의지를 보는 듯 그 성정이 매우 굳건했다.
야안은 일이 진정 기묘하게 흘러간다 생각하며 이 또한 아리스 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이 아닌가 싶었다.
마탄은 카르샤의 제자가 된 지 이제 1년이 좀 넘은 터라 아직 룬 언어를 다 습득하지 못했지만, 하늘 탑의 숨겨진 비기 덕분인지 못해도 3~5년을 걸릴 공부의 반을 마친 뒤였다.
또한 그 마나도 야안의 마나 집약진 덕분에 빠르게 자리를 잡고 있어 앞으로 대계를 위한 큰 유망주로 보이기도 했다.
야안은 현재 상급 유저의 기로에 자리한 제인에게 가르치면서 또한 바로스가 그간 한 정령술의 공부를 살펴 주었다.
하지만 야안은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소모할 수 없었다.
그는 바의 대륙에 자리한 거인족들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서는 라의 대륙에 자리한 제국으로 가야 한다.
멀머던 종족 덕분에 그나마 간접적으로 거래를 하는 드워프들이 제국의 드워프들이기 때문인데, 야안은 지난 푸른 망치가 그에게 내어준 약속의 증표를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했다.
제국의 드워프들이라 하여 하나의 부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십 개가 넘는 부족이 자리했고, 그들은 저마다 부족의 특색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왕을 뽑는 시기가 찾아오면 그들 부족의 족장 중 가장 인자하고 융통성이 있는 자를 뽑았다.
실상 드워프들에게 있어 정치란 관심을 두는 분야가 아니기에 저마다 그 자리에 오르는 것을 반기지 않았고, 그들 입장에서는 희생적이라 할 수 있기에 저마다 그의 노고를 인정하여 존경하고 있었다.
다음 대는 드워프가 왕 위를 이을 차례인데, 현재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른 이는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이었다.
하여 야안은 붉은 망치 부족의 족장을 만나 그들과의 교류에 도움을 얻을 계획이었다.
이곳에서 베론 제국까지의 거리는 상당히 멀었다.
말을 타고 가도 두 달은 넘게 걸릴 거리였는데, 다행히 베론 제국으로 가는 배가 있어 그 시일을 반으로 줄일 수 있을 듯했다.
거인족과 대계를 함께하려 하는 큰일이 있음에도 야안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한 것은 탈론이 현재 중요한 시점에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탈론은 익스퍼트에 올라갈 단초를 잡은 듯했는데, 이것은 야안의 예상을 크게 뛰어넘은 발전이었다.
하여 야안은 탈론이 자신이 없을 때도 어긋나게 올라서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였다.
이번 여정은 다른 대륙으로 가는 것만큼 그 시일도 길 뿐만 아니라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모르기에 이번에도 야안 혼자 움직이기로 했다.
카르샤는 지난 야안의 계획을 들은 뒤, 여타의 재능이 있는 인재들을 모으기로 했는데 마탄을 가르치면서 안 것이지만, 그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데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
더구나 야안에게 가르침을 받은 고대 룬의 본래의 고유 뜻을 새긴 것을 이용해 여타의 소속되지 않은 초급 현자들을 끌어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는데, 현자는 귀하고 딱히 전투가 아니어도 쓸모가 많은 존재이기에 야안은 그녀의 뜻이 쉽사리 이룰 수 있도록 상당한 자금을 그녀에게 투자하였다.
그가 지닌 자금은 상당했다.
푸른 바위 일족은 지난 베로시안 왕국과의 거래에서 그 양을 대폭 늘리었는데, 당시 엘프 또한 이 거래에 참여했다.
거래에 참여한 마르닌의 깃털 부족은 신비에 쌓인 부족이었다. 푸른 바위 일족으로 인해 그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근 200년이 넘도록 베로시안 왕국과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르닌의 깃털 부족 특유의 공예품이나 그들의 뛰어난 마법 물품은 베론 제국에서도 구하기 힘든 상급의 것으로, 당시 오갔던 자금의 양은 베로시안 왕국의 연간 매출의 30%에 달했다.
야안은 드워프들에게 배우며 만들었던 물건의 일부를 이때 거래했는데, 대가의 경지에 오른 그답게 이 거래에서 얻은 이익은 번성한 자작 가의 일 년 예산과 맞먹었다.
야안은 그 예산의 반을 그녀에게 맡긴 것인데, 이미 중급 현자의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그녀였기에 이 자금은 어렵지 않게 유통할 수 있었다.
현자는 어느 시대에서든 우대받는 존재였고, 특히나 아직 스물도 되지 않은 나이에 현자의 칭호를 받은 그녀는 이 같은 거금을 굴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같은 천재에게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일이니.
제국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이는 야안이 코롱산맥이라 불리는 몬스터 산맥에 들어섰기 때문인데, 이곳 산맥은 예전 야루스 산맥을 상기할 만큼 매우 거칠고 위험도가 높은 곳이었다.
제국의 물품이 비싼 이유는 바로 이 코롱산맥 때문이다. 코롱산맥은 제국과 왕국들 사이를 가로질렀고, 이 때문에 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뱃길로 크게 돌아 움직여야 했다.
베론 제국의 입장에서는 물의 종족이라 불리는 멀머던 덕분에 이런 뱃길 거래는 큰 이익을 볼 수 있었지만, 멀머던 일족이 자리하지 않는 왕국 입장으로는 상당히 손해를 보아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국과의 거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손해라고 하지만 본래 얻어야 할 몫에서 손해라는 것이지, 상행에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대단히 컸기 때문이다.
일부 왕국의 대귀족이 지원하는 대상단의 경우에는 이 코롱산맥을 가로질러 가기도 했는데, 이 상행에서 적지 않은 인명이 죽어나갔다.
그럼에도 그들이 이처럼 무리한 상행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뱃길로는 빠르게는 석 달, 늦게는 네 달, 다섯 달이 걸릴 수 있는 거리를 단 한 달 만에 돌파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인적 자원이나 물적 자원을 상당히 절약할 수 있다.
실제로 대륙을 타고 흘러가는 뱃길이라 해서 안정적이지 않다. 바다에도 기괴한 해상 몬스터가 살았고, 여름과 가을에는 그 기후변화가 심해 노회한 뱃사람이라 해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야안 입장에서는 당연히 이 두 길 중 코롱 산맥을 선택하는 게 당연했다. 초인의 경지에 오른 것만으로도 그는 홀로 이 길을 지나칠 자격이 충분했다.
지난 1년의 시간 동안 그가 얻은 것은 대가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운 것만이 아니다.
그간 무위 또한 늘어난 것이다. 노여움을 검에 담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금 진주 덕분에 상위 현자 익스퍼트의 벽을 넘어설 실마리를 찾기도 했다.
물론 실마리를 찾았다는 것이지 그가 언제 이 상위 현자 익스퍼트의 벽을 넘어설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이는 두 가지 길에서 초인에 들어설 수 있음을 이야기하니 말이다.
또한 그의 주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해 불의 술을 자유로이 다루고 진체의 술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써 그는 이년 전 자신이 과연 넘어설 수 있을지 경의를 보였던 레필 공작을 뛰어넘는 무위를 손에 넣었다.
비록 가상의 대련이었지만, 다섯 번 전투를 하면 3번은 이기고 2번은 비겼으니 넘어섰다는 말은 가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금빛 진주와 고대 주술 제국이 남긴 황가의 주술로 인해 그의 행운 스탯은 상당히 늘어났지만, 아직 리트담의 저서에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자신에게 숱한 도움을 주었던 리트담의 저서였으니, 어쩌면 이번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막연히 생각할 따름이다.
‘쿠구구궁, 사아악-’
오우거의 다섯 배에 달하는 부피를 자랑하는 코롱산맥의 아홉 지배자 중 하나인 카케온이 요란스럽게 무너져 내린다.
두 개의 뱀의 머리 중 하나는 이미 난자되어 그 형체를 알 수 없었고, 하나 남은 머리 또한 바위도 단숨에 녹일 불을 뿜다 거대한 먼지를 일으키며 대지에 뒹굴었다.
입가에 남은 불의 여파에 대지가 용암처럼 녹아 내렸는데, 야안은 그 흉축한 거대한 머리를 지나 뒤로 넘어진 카케온의 배를 갈랐다.
상급 익스퍼트의 검기로도 그 상처를 주기 어렵다는 카케온의 갑주였지만, 야안이 일으킨 뇌전이 감도는 검강 앞에서는 실크와도 같았다.
힘없이 갑주가 갈라지자 짙은 적갈색의 피가 대지를 적셨다. 그 피에는 독기가 가득했지만, 이미 백독이 무해한 야안에게 영향을 주기는 어려웠다.
‘이렇게 두다가는 이곳은 못해도 몇백 년 동안 죽음의 땅으로 자리 잡겠구나.’
그렇게 생각이 들자 야안은 바람의 주술을 펼쳐 피를 한 곳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과연 거대한 거구에서 흘러나온 피는 작은 호수를 이루었다.
야안은 그렇게 모은 거대한 피의 구를 마법을 펼쳐 높게 띄운 뒤, 파이어 팜을 펼쳐 이를 태워버렸다.
펼쳐진 파이어 팜에는 뇌기가 은은히 자리한지라, 독기가 허공에 비산할 틈도 없이 사그라졌다.
이제 남은 것은 갑주와 성인 몸집만한 장기들이 자리했는데, 야안은 그중 심장에 해당하는 부분을 헤집어 그 속에서 붉은 마나석을 꺼내었다.
마나석에는 은은히 독기가 자리했지만, 불의 술을 펼쳐 이내 독기마저 지워버린 야안은 생각보다 품질이 뛰어나자 절로 미소를 그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군.”
코롱 산맥의 아홉 지배자 중 하나인 카케온을 처리하는 과정은 야안이라 해도 힘들었다. 카케온을 따르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상당한 탓인데, 그중에는 오우거와 같은 거대 몬스터도 다수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틀을 밤잠을 자지 못한 채 몬스터를 베고 태워 그들의 세력을 말살해야 했는데, 만약 스탯과 신성 마법이 없었다면 어려움이 컸을 것이다.
여타의 초인이라면 홀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 자신을 따르는 세력과 힘을 합해야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