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34화
5. 제국
“아리스 님에게 축복을 받은 그대의 능력이 놀랍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짧은 시간에 그 같이 발전을 하다니 믿어지지 않는군. 정말이지 축하하네.”
야안은 푸른 불꽃의 말에 감사의 인사를 드리었고, 그제야 푸른 불꽃은 그와 함께 온 엘프들 중 신관이기도 한 엘프를 야안에게 소개하였다.
“인사하시게. 마르닌의 깃털 부족의 족장이시자 하이 엘프이신 쪽빛 하늘이시네.”
야안은 그가 고귀한 신분인 것을 알았지만, 설마 하이 엘프일 줄은 생각하지 못한 터라 이내 그에게 예의를 보였다.
“전설의 현자를 추종하는 자인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런 야안의 모습에 쪽빛 하늘 또한 몸을 숙이며 예의를 보였다.
“정령의 왕과 계약을 한 위대한 현자에게 저 또한 인사드리오. 푸른 불꽃의 말을 의심한 것은 아니나 실제로 그대를 만나니 이제야 현실감이 드오.”
그의 모습에 어느새 푸른 뇌전과 함께 유피테르가 모습을 보였다.
“음, 하이 엘프이면서도 아리스의 의지를 잇는 자라. 놀랍군. 그대 같은 존재는 전설의 시대에서도 몇 되지 않았다. 나 유피테르 그대에게 존경을 표하네.”
“정령의 왕께서 그리 보아주시니 영광일 따름입니다.”
하이 엘프답게 상급 정령 마스터이기도 한 그의 몸에서 바람의 정령이 모습을 보였는데, 예전 고대의 정령을 보았을 때의 그 위압적인 힘이 은은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제대로 형체를 갖추자 그 은은한 힘이 사라지었고, 그 바람의 정령은 몸을 숙여 유피테르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유피테르는 마치 귀여운 손자의 재롱을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 바람의 정령을 바라보더니 이내 손가락을 튕겨 한줄기 뇌전을 바람의 정령에 부여했다.
그러자 바람의 정령은 큰 은혜를 입었다는 듯 다시 크게 예를 보였고,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쪽빛 하늘 또한 그와 같은 운명을 사는 바람의 정령이 유피테르에게서 축복을 받았음을 알고는 다시금 몸을 숙였다.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푸른 불꽃은 그들끼리의 한 차례 인사가 끝나자 자신의 집으로 이들을 안내하여 중재의 자리를 가졌다.
거대한 원탁의 자리에는 많은 이들이 자리를 했으나, 그 중심에는 인간으로서는 야안이, 드워프로서는 푸른 불꽃이, 엘프로는 쪽빛 하늘이 자리했다.
푸른 불꽃은 지난 라의 대륙에서는 구할 수 없었던 로템의 금속을 야안이 이곳 드워프들에게 베풀었다는 말에 놀라다 이내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때, 그대에게 기이한 인장의 힘이 자리했네.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인장의 표식이 자리한지라,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는데 그대는 거인족을 만나 보았군.”
야안은 푸른 불꽃의 말에 그제야 예전 거인들의 왕인 붉은 노을이 자신에게 인장을 내린 것을 상기했다.
거인들과 거래를 하는 드워프였다면 한눈에 알아보았을 것이지만, 아쉽게도 이곳 라의 대륙에는 거인족들이 존재하지 않았다.
야안은 지난 거인족들과 붉은 노을과의 일들을 그들에게 말하였고, 그 모든 이야기를 다 들은 푸른 불꽃과 쪽빛 하늘의 안색이 밝아졌다.
“음. 거인족의 왕이 내린 인장이라면 이야기가 쉽게 될지 모르겠군. 아마 이야기하지 않았을 것이나, 왕이 여타의 종족에게 인장을 내리는 경우는 몇 되지 않네. 오직 자신들 거인족에 큰 은혜를 베푼 자에게 내릴 뿐이지.
그대는 거인족의 왕에게 하나의 부탁을 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부탁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잘 풀린다면 그들 또한 우리의 위대한 계획에 동참할지 모르겠군.”
“모든 종족 중 그 의로운 성격과 전투력을 따지면 최고라 하여도 과언이 아닌 그들과 함께한다면 우리의 계획은 그것만으로도 반은 성공한 것이오.”
그날의 회의는 왕국의 체계와 이종족들의 화합의 방법, 또한 왕국의 터전, 이 계획에 동참이 가능할 여타 종족의 부족들에 대한 것이었다.
야안은 회의가 구체적으로 이뤄지며 자신의 막연했던 이 계획이 점차 조금씩 윤곽이 보이기 시작하자 기뻐하다 어느 순간 그는 하나의 퀘스트를 받게 되었다.
[왕국을 건립하라.
등급 : S
그대의 위대한 의지에 푸른 바위 일족과 마르닌의 깃털 일족이 함께하게 되면서 그 최소한의 기반이 다져졌다. 부디 그대는 처음의 결심을 잊지 않고 행하여, 그 비극의 날을 준비하라.
* 이종족의 부족들이 함께할 때마다 그대의 목적에 한발 다가갈 것이다.
* 이 왕국이 건립되는 날 그 보상으로 아리스의 축복이 왕국에 내려질 것이다.]
야안은 퀘스트의 등급이 S급이라는 것에 과연 자신이 행하고자 하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지 다시금 깨달았다.
드래곤의 도움을 받아 시간을 역행하면서까지 하여 완수한 지난 퀘스트의 등급이 A-급임을 상기한다면 이번 퀘스트의 난이도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로부터 3개월의 시간이 지나 200년 전 푸른 쪽빛에게 큰 은혜를 받았던 라토스 일족이 합류하였다.
인구 10만에 달하는 대부족으로 하얀 햇살 부족이라 불리는 이들은 이 위대한 계획에 참여하였다.
이들 하얀 햇살 부족의 카무 라는 대족장은 이번에 새롭게 족장의 자리에 올라선 이로 아직 완전히 입지가 자리 잡히지 않아 장로들과 함께 이곳에 와 야안을 만난 뒤에야 구 부족의 의사를 결정하였다.
이렇게 네 종족이 단합하자, 이들은 어디서 왕국을 세울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였는데, 긴 토론 끝에 라 대륙의 서동쪽 끝에 자리한 암흑의 숲이라 불리는 곳에 왕국을 세우기로 했다.
이 암흑의 숲은 몬스터 숲이라 불리기도 했는데, 웬만한 왕국 하나가 들어설 정도로 넓은 터가 자리한 곳이기도 했다.
강성한 고대 문명의 시절인 현재 이곳을 이대로 내버려 둔 이유가 여러 있으나 우선적으로 이 암흑의 숲에 사는 몬스터의 그 숫자나 질이 여타의 곳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고 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지의 기운이 약해 그 기울인 노력에 비해 식량의 수확률이 낮았다.
더구나 어둠의 종족이라 불리는 카시라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들이 이곳의 몬스터들을 지배하고 있었다.
특히나 카시 종족의 왕이자 암흑의 숲의 주인은 웬만한 초인 정도는 상대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 하니 그 피해는 생각하는 것 이상이다.
카시 종족은 그 수가 많지는 않으나, 그 성정이 매우 거칠고 그 육체에서 터져 나오는 힘은 오우거 못지않았으며, 또한 전사 계급은 익스퍼트처럼 암흑검기를 사용하는데, 그 숫자만 현재 파악된 것만 일천에 달했다.
그럼에도 이곳에 왕국을 세우기로 한 것은 이미 왕국을 세우기에는 그 필요한 땅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또한 어차피 시간이 흘러 그날이 오면 싸워야 할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지배자의 저주로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기 전 해치워야 할 종족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 당장 그들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 거인 종족이 합류하고 여타의 종족들이 연계한 뒤에야 도모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에 함께하게 된 라토스 종족은 덩치가 좋은 성인 인간들 정도의 크기가 보편적이다. 손과 발이 매우 두텁고 컸으며 힘이 좋았는데 이들은 그 때문인지 무겁고 두꺼운 무기를 즐겨 사용했다.
그들은 종족의 특성 때문인지 날 때부터 대지의 마나를 몸에 쌓을 수 있었는데, 이 대지의 마나는 단순히 마나의 형태로만이 아니라, 인간으로 치면 신력을 쌓게 해주는 이유이기도 했다.
현재 하얀 햇살 부족 전사의 수는 십 분의 일인 1만에 달했고, 이들 중 대전사의 힘을 발휘하는 이가 스물에 달했다.
대전사는 인간으로 치면 기사와 같이 체외에 기운을 자유로이 펼치는 경지를 말하는 것으로 본래 신력을 지닌 만큼 그들 중 가장 약한 이도 중급 익스퍼트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었다.
평소에는 웃는 것을 즐기고, 생명의 소중함을 아는 이들이지만, 일단 피를 보고 전투에 나서게 되면 과연 자신이 보았던 같은 종족인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잔인하고 날카로운 일면의 모습을 보인다.
그들의 대족장인 카무는 이들 대전사 중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강자로 야안이 보았을 때 자신의 시대의 13강 중 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실력자였다.
라토스의 평균 수명이 200년이었고, 카무의 나이가 아직 100살을 넘지 않은 것을 상기한다면 어쩌면 제국의 라토스 종족의 지배자 바로무이 같이 초인의 벽을 넘어설 확률이 높았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대족장이라는 큰 직책을 그에게 양보하는 미덕은 없었을 것이다. 본래라면 가장 강하고 나이가 많은 라토스인 베곤이 족장을 물려받는 게 맞았다.
야안은 이제 드워프로부터 얻을 수 있는 부족한 부분을 대부분 얻은 상태였다. 더 이상 외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단계를 스스로 정립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잘 닦는다면 이제 훌륭한 대가로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터였다.
그는 이번 겨울 동안 종족을 통합할 수 있는 기반과 그에 대한 계획들을 나누었고, 또한 자신의 제자 탈론과 이들 라토스 대전사를 지도하였다.
초인의 경지에 올라섰을 뿐 아니라 지난 리트담의 저서에서 쟈칼 종족의 생을 기억하는 야안은 그들과 유사한 점이 많은 라토스들이 지닌 특징을 잘 이끌 수 있었다.
더구나 상급 현자 비기너의 경지에 오른 야안이었으니, 좀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훈련 방식을 만들어내었는데, 실제로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 성과를 보여 저마다 놀람을 보였다.
탈론은 이제 상급 유저로서 완숙의 경지에 올라서 있었는데, 그의 폭발적인 성장력을 본다면 이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익스퍼트에 들어설 수 있을 듯했다.
그 말은 이제 막 성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17살에 인간의 몸으로 갈 수 있는 절정의 경지에 부딪힌다는 말이다.
지금 야안이 그를 위해 만들어준 심법의 효율을 80%에 달하도록 운용하는 것을 본다면 어쩌면 그보다 시기가 줄어들지도 모른다.
대전사이자 족장인 카무는 야안을 스승으로 모시며 배웠는데, 야안은 초인의 경지에 넘어설 길을 제시한 터라 현재 잠깐의 잠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훈련에 받치고 있었다.
그렇게 한편으로 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야안이었지만, 그 또한 하이 엘프인 푸른 쪽빛에게서 정령술에 대해 배우고 있었다.
과연 정령술을 마스터한 이라 할까?
그 지닌 무위도 놀랍지만, 산의 정상에서 야안의 문제점들을 어렵지 않게 상세히 풀어 가르침을 내린 덕분에 야안은 지난 기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는 야안의 뇌전의 정령 호흡법을 살펴 그에 맞추어 야안에게 더 효율적인 방식을 제시했고, 이 덕분에 야안은 중급 정령 익스퍼트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물론 이것만이 아닌 유피테르가 스스로 권능을 내린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 * *
시간이 흘러 영지를 떠난 지 1년하고도 반년이 더 지난 뒤에야 야안은 헤롤지 장원으로 돌아왔다. 저택은 수리를 마쳤는지 그 외관이 상당히 깨끗했다. 그들은 예상한 시일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 도착한 탓인지 야안이 돌아온 것에 대해 대단히 기뻐했다.
특히나,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던 제인은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야안은 그 모습에 멋쩍은 모습을 보이며 그녀를 위로해주고는 이번에 들인 탈론은 그들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탈론은 자신보다는 그 경지도 나이도 적은 제인과 바로스에게 깍듯하게 사형과 사저의 대접을 해주었는데, 이는 탈론이 어릴 적부터 용병일을 하면서 그 풍조를 들은 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