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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40화 (240/385)

야안 240화

자국 내의 대귀족이 아니고서는 만나기도 어려운 실정이니, 그가 하늘 산을 만나기란 어려움이 크다.

그렇다 하여 그 지닌 재물이 많은 것도 아닌지라, 대귀족에게 공물을 바쳐 수를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이용할 수라 한다면 부르케산이 그에게 내어 준 부족에서도 다섯뿐인 대전사 2명이 그를 호위한다는 것이지만, 그 같은 실력자는 베론 제국 내의 대귀족에게도 없지 않았다.

왕국이었다면 큰 이점이 되었을 것이지만, 그 상대는 아쉽게도 베론 제국이었다.

“어렵군, 이제 방법은 붉은 산맥 부족의 하이 엘프에게 부탁하는 방법뿐일세.”

인간들은 욕심이 많고, 멀머던은 지나치게 호전적이며, 드워프와는 그 접점이 없다. 자연의 이치에 벗어나기 싫은 엘프는 폐쇄적인 면이 자리하나 그 성정이 대부분 부드러우니 그가 현재 할 수 있는 선택 중 최선이라 하겠다.

다만 하이 엘프는 그 존재가 워낙 귀한 자라 과연 이종족인 자신들을 만날 줄지가 의문이다. 태양 종족의 특성상 그들의 기운은 엘프나 드워프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인데, 이는 의외로 영향을 많이 끼친다.

간단한 예로 인간 중에서도 이유 없이 싫은 상대가 있는데, 이는 그 상대가 악인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 서로의 기운이 맞지 않으며 생기는 현상이다.

그것은 억지로 맞추려 할수록 삐걱대기 마련이라, 마토론산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는데 그의 옆을 지키던 두 호위 대전사 중 하나인 지킬 단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대칸. 제 뒤에 들어온 붉은 머리의 인간이 보이십니까?”

그 말에 마토론산은 곁눈질을 하며 그가 말한 자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네. 검사로 보이는군. 인간의 재능으로 본다면 뛰어난 실력자인 듯한데.”

아닌게 아니라 사내는 아직 이십대로 보이건만 그 실력은 자신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그 말에 지킬 단과 마주한 자리에 있던 조랸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우리의 위대한 칸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는 자입니다. 그는 그런 존재입니다.”

“칸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말 그대로입니다. 그는 칸과 같은 초인입니다.”

놀라운 일이지만 지킬 단과 조랸은 그들이 붉은 머리 사내라 지칭했던 야안의 경지를 한 번에 꿰뚫었다.

이는 그들 종족의 특성상 당연한 것이었다.

이는 드워프와 비슷한 형태로 본래 워낙 본능적인 야수와 같은 면이 강한 태양 종족은 상대의 힘을 느끼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

특히 마음의 수련을 함으로서 그 본능에 대한 직관력이 그 일정 경지를 넘어선 대전사들인 그들이었기에 야안이 그 스스로 힘을 감추고 있음에도 그의 힘을 파악한 것이다.

마토론산의 경우 아직 중급 익스퍼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을 뿐인지라 그 벽을 넘지 못했지만, 상급 익스퍼트의 끝자락에 자리한 그들은 야안의 경지를 알기에 충분했다.

마토론산은 태어나 자신의 아버지이자 칸인 부르케산 이외의 초인을 본 적이 없었기에 놀라면서도 짙은 호기심을 보였다.

“초인으로 오르면 그 육체가 재구성된다고 들었네. 그 때문에 저처럼 젊어 보이는가?”

그 말에 조랸이 고개를 저었다.

“잘은 알지 못하지만, 칸의 경우를 본다면 저 정도까지의 어린 외형을 갖추기란 어려움이 큽니다.”

“초인이라면 이 대륙에 다섯뿐인 자. 그 신분이 평범한 자는 아닐 것이네. 음~ 저자와 접선을 해 보는 것이 이득일지 모르겠군.”

마토론산은 어느새 건물 너머로 사라진 그를 바라보며 다시금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야안은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마법 물품에 감탄을 하거나, 왜 이 같은 체제를 형성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고대 베론 제국의 대도시를 살폈다.

나이 든 엘프만이 아니라, 중간 중간 물의 종족이라 불리던 책으로만 보았던 멀머던도 볼 수 있었는데, 그들의 외형은 확실히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상당히 사나워 보였다.

이름 모르는 바다의 괴물들의 껍질을 갑옷으로 쓰고 있었는데, 이 갑옷은 예전 그가 잡았던 블랙 오우거 못지않은 뛰어난 방호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거친 풍랑과 마주하며 사는 존재라 그런지 진실의 눈으로 살펴본 그들의 성정은 매우 거칠었다.

마치 인간 중에서도 괄괄한 성정이 자리한 뱃사람을 보는 듯했는데, 그러면서도 눈치가 빠르며 지거나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해 끔찍하게 싫어했다.

특히 이들은 목숨보다 명예를 중시하는 성격이었는데, 이 때문에 귀족들이 보이는 그 특유의 오만함을 두고 보지 않아 번번이 부딪히기도 했다.

그들은 물을 다루는 솜씨나 그 지닌 무위는 대단했지만, 손재주가 없어 자체적으로는 제대로 된 무구를 얻을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정련을 하려면 불과같이 해야 하는데, 물의 성정을 지닌 그들로서는 큰 고역과도 같았다.

하기에 인간들과는 그 교류를 많이 하지 않지만, 엘프나 드워프들과의 교류는 크게 활성화된 상태였고, 그들의 중재로 인간과도 교류를 하기도 했다.

야안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멀머던을 살펴보다, 누군가 자신을 따라온다는 것을 느꼈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자신을 미행하고 있었지만, 초감각을 지닌 그였기에 그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는 조심스레 거리를 돌면서 그 미행을 하는 자와 거리를 좁혔는데, 이는 그자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였다.

곧, 야안은 감각을 날카롭게 가다듬어 그자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이내 그 특이하면서도 낯설지 않은 기운을 느끼고는 의문을 보였다.

‘이것은 분명 그 기이한 기운을 풍기던 이종족이 분명하건만.’

굳이 그 기운 탓이 아니어도 야안은 이들을 기이하다 여겼다. 그랬다. 분명 태양과 닮은 기운을 풍기는 이 이종족은 처음 느꼈을 때는 몰랐지만, 그의 초감각에서 남은 잔재에 야안은 왠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낯설지 않다.

어째서일까? 낯설지 않다 생각하게 된 것은. 아니, 어떻게 보면 익숙하다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야안은 기이하다 생각하다, 자신을 놓쳐 당황스러워하는 복면의 이종족들을 향해 다가갔다.

지킬 단과 조랸은 갑자기 자신들이 쫓던 이가 사라지자 당황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그도 그런 것이 태양의 종족인 그들은 본래 은신 능력이 뛰어난 존재였다. 특히 그 감각은 그 특유의 야수적인 육감이 살아 있어, 추적과 같은 일에 능했다.

그런 그들 중 대전사의 칭호를 받은 그들은 자신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여타의 초인들을 미행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 판단했다.

물론 자신들의 존재를 깨닫고 경계를 한다면 어려울 것이지만 그들 스스로 자신의 왕과 같은 힘을 지닌 여타의 초인을 처음 만나는 것만큼 그 움직임은 매우 조심스러웠다.

한데, 마치 그런 자신들을 눈치챈 것이라도 한 듯 자신들의 감각에서 사라져 버리니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본능을 다스리는 수련에서 깨달은바, 스스로 육감을 날카롭게 다룰 수 있는 비기를 보일 수 있었고, 이내 그들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는데 곧 그들은 무언가에 놀라 앞으로 튀어 나가듯 몸을 날렸다.

‘타다닥-’

가벼운 발놀림으로 대지를 차던 지킬 단과 조랸은 이내 몸을 뒤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들이 쫓던 인간 사내가 두 손을 어깨 옆으로 올리며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음을 발견했다.

‘바로 지척에 있었건만.’

인간 사내는 자신들과 불과 겨우 다섯 걸음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말이 다섯 걸음이지, 검을 든 자에게는 한 걸음과도 같았고, 저 같은 초인에게 있어서는 심장 위에 검을 올린 것이나 다름없다.

적이었다면 자신들의 목숨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이다.

이들 중 그나마 이성적인 사고가 능한 조랸이 먼저 야안에게 사과했다.

“저는 태양의 종족. 조랸이라 합니다. 심기를 거스른 것에 대해 사죄를 드리오니 부디 양해해 주시겠는지요?”

크게 절을 하는 듯 몸을 접으며 사죄를 표하는 조랸의 모습에 지킬 단 또한 그와 같은 사과를 표했고, 야안은 그들의 예가 예전 자신의 시대에서의 융 제국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하다 생각하며 이내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예를 거두어 주시지요. 태양의 종족이라 하셨습니까? 저는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저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가까이 온 것이니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양의 종족은 그 종족 특색 상 강자지존의 색이 짙은 종족이라, 최소한 팔 하나는 내놓을 각오를 하고 있던 조랸은 야안의 그 같은 말에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일어섰다.

그러며 지킬 단을 바라보았고, 그도 감사의 인사를 표하더니 이내 야안을 미행한 이유에 대해 말을 꺼냈다.

“앞서 소개한 바처럼 저희는 라 대륙에서 온 태양의 종족으로 현 라 대륙의 정세에 저희 종족이 큰 위기에 처한지라, 베론 제국의 도움을 얻고자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베론 제국의 황제를 만나자고 하는 일은 그 넓고 거친 바다를 넘는 것보다 더 힘든지라 오랜 시간동안 고민을 하던 중, 베론 야안 님과 같은 초인을 보게 되어 혹시 도움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이처럼 찾게 되었습니다.”

그 말에, 이미 한 차례 보고서를 읽으며 대륙의 정세에 대해 어느 정도 익히 바 있던 야안은 그의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단숨에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겠습니다. 이것이 아리스 님이 말씀하시는 인연인 것인지 모르겠군요. 사실 저 또한 지금 베론 제국의 황제이신 하늘 산님을 만나고자 가는 중이니 동행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야안의 그 말에 지킬 단과 조랸은 대단히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가휘지의 예로 받들겠습니다.”

가휘지라는 말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짐작한 바로 본다면 대단히 귀한 존칭인 듯해 야안은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저 또한 라 대륙에 가야 할 일이 있으니 귀 공들께서는 그때 도움을 주신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야안의 그 같은 모습은 지금까지 그들이 겪은 인간들에게서 볼 수 없던 모습이라 이들은 쉽사리 믿기 어려워했다.

“도칸이신 마토론산 님께 모시어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지금 괜찮으시겠습니까?”

그 말에, 야안은 잠시 당황한 눈빛을 보이다 이내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야안의 그 말에 조랸과 지킬 단은 짧게 웃음을 흘리며 감사의 인사를 표하더니 앞서 갔고, 야안은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야안은 이 어딘가 순박한 느낌마저 드는 이종족의 무인이 마지막에 꺼낸 단어에 신경이 쓰였다.

바로 도칸이란 단어인데. 이 도칸이란 단어는 이 고대 시대에는 사용하지 않는 단어였다. 자신들의 시대에서는 몬스터의 강함 정도를 측정하는 단어였지만, 현 고대시대에는 이 도칸이라는 계급이 쓰이지 않는다.

아니, 쓰여 지지 못했다. 이유는 도칸은 오크의 계급을 나타내는 것 중 두 번째의 자리의 것인데, 이 고대 시대에는 이 오크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보이지 않았으니 쓰일 리가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도칸이란 단어를 그들에게 듣게 되었으니 야안으로서는 당연히 신경이 쓰였다.

거친 천으로 몸을 뒤덮은 스스로 태양의 종족이라 소개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야안의 눈에 파문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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