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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44화 (244/385)

야안 244화

고로부라는 종족이 있다.

흙과 같은 보호 피부색에 몸이 작고 왜소하며 긴 코를 지니어 후각이 예민한 이들이었다. 이들은 대륙에서 가장 척박한 환경에서 나라를 이루는 자들이기도 했다.

척박하다는 그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곳이 어디 있을 것인가? 낮에는 어느 나라의 여름보다 더 무더웠으며, 밤에는 고인 웅덩이가 얼어 버릴 정도로 사늘하였다.

워낙 건조하여 물을 구하기도 어려워 농사를 짓기도 어려웠고, 메마른 산자락과 들판에는 맹수들이 떠돌아다녀 이들에게 죽거나 다치는 이들의 수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이다.

이곳에 자리한 생명체들은 저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아주 작은 벌레에서부터, 지적 생명체인 고로부까지 말이다.

야안은 이곳 고로부의 몇 안 되는 직업군인 광부의 아홉 번째 자식으로 태어났다.

그는 기억도 안 나는 어릴 적부터 돌이나 땔감을 모으는 일을 하였고, 조금 더 커서는 고단백질 양식인 벌레들을 모으는 일들을 하였다.

가족의 사내 중에서 가장 어린 그였기에, 그에게 돌아오는 식량은 언제나 부족했다. 그 때문인지 그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에도 다른 또래에 비해 두어 살 어려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잘 알았기에,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벌레들을 찾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그것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일까?

야안은 이기적인 고로부 중에서도 유독 이기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었다. 생명에 대한 갈구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성인의 시기인 10살이 되던 해 자신의 그런 성격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본래 둘째 형에게 돌아가야 할 광부 자리를 교묘한 간계를 보여 차지할 수 있었다.

이 나라에서 광부의 자리는 대단한 부의 상징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12명의 자식을 기르고 있다는 것을 보아도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나라에는 이곳 지역에서만 나는 홀란이라는 광물이 자리한다. 이 홀란의 광물체는 여러 약품을 정제하면 몇 년 동안 빛을 발하는 발광 형태를 띄우는데, 실제로 이 광물로 인해 고로부 종족은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기에 야안은 자신이 광부의 직업을 가지게 된 날 밤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희열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본래 체격이 좋지 못한 터라 그의 아버지를 따라 광부의 일을 하러 간 야안은 첫날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근육통에 시달려야 했다.

광부의 일은 아직 온전히 뼈가 무르지 못한 야안이 버티기는 어려운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도 열흘에 한 번씩 나오는 식량을 얻게 된 순간 야안은 그 고통조차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견습생이었고, 고작 열흘을 일했을 뿐이건만 보름치의 식량을 얻은 것이다. 그것도 성인 남성이 먹는 양이었으니 그로서는 그저 놀라울 일이다.

체구가 작은 야안이 아껴만 먹는다면 이십일을 먹을 수 있을 것이지만, 야안은 그간 먹지 못했던 것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꾸역꾸역 먹어치웠다.

그에는 자신의 식량을 원하는 식구들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경계의 마음이 자리했다.

일 년의 견습 기간이 지나 한 사람 몫을 하게 된 순간 야안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집을 나섰다.

자신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지나 야안은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간부 자리라 할 수 있는 십부장 자리가 공석에 비게 된 것이다.

이 자리는 다음 한 달간 가장 큰 성과를 내는 자에게 돌아가게 되었는데, 체격적으로 상대가 안 되는 야안이었기에 그는 꾀를 내었다.

이 자리에 욕심이 없는 이들에게서 그간 모은 식량을 거래하여 자신의 성과를 속이기로 한 것이다.

그의 거래에 응하는 이는 많았다. 부유한 광부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는 상대적으로 부유하다는 것이지 많은 재물을 번다는 것은 아니었다.

더구나 번식력이 뛰어난 고로부 종족인지라 가족들과 그 몫을 나누다 보면 언제나 부족했다.

사회의 구조상 많은 가족을 보유한다는 것은 대외적으로 성공한 것을 말하는 풍습이 있던 터라 그에 대한 반동적으로 생긴 문제이기도 했다.

결국 야안은 그간 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거래를 한 끝에 십부장의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 했던가?

그렇게 십부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지만, 그의 밑에 자리한 광부들은 그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고 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있었지만, 정당한 방법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야안은 다시금 가진 재물을 이용하여 그들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이번에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난 거래에서 상당 부분의 재산을 잃었던 탓이라 그들이 흡족할 정도의 재물을 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이 되는 만큼 광부의 일은 실상 위험요소가 많았다. 지지대를 잘못 세우면 광굴이 무너지기도 했고, 공기구멍이 원활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광산의 탁한 공기에 노출되어 정신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분진형태에 불이 튀어 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여러모로 협동심이 필요로 하는 일이 광산 일이건만, 저마다 야안의 지시에 따르지 않자 결국 탈이 나고 많았다.

‘콰콰쾅-’

야안이 이끄는 십인조가 야안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멋대로 굴을 파다 지지대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 일로 인해 두 명이 죽음을 맞이했고, 야안 또한 한쪽 팔을 잃는 사고를 맞이해야 했다.

야안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상황은 점차 좋지 않게 흘러갔다. 불구가 된 것에 대한 비탄에 빠질 시간도 그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이 사고로 인해 작업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이다. 야안이 지닌 재물이 있었다면 이에 대해 조사를 하러 온 관리자에게 뇌물을 쳐 빠져나올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고작 보름 치 정도의 식량밖에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

잘못하면 노예로 팔리어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 그는 서둘러 식량의 일부를 챙겨 아픈 몸을 이끌고 야음을 틈타 도망을 쳤다.

다행히 부패한 관리 덕분에 조사망은 허술해 도망을 칠 수 있었지만, 야안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는 아껴 먹어야 이틀 정도의 식량이 전 재산이었으니.

거기다 왜소한 체구에 불구가 되었으니 일자리를 얻기도 어려웠다.

하니 그는 이 저주 같은 인생에 크게 분노를 보일 수도 없었다. 그런 감정조차 사치인 것이다.

낮에는 더위를 피해 그늘진 곳을 찾았고, 밤에는 땅을 파 흙을 이불 삼았다. 입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될 수 있는 한 씹어 먹었다.

살 것이다. 살아남을 것이다.

고난이 생길수록 야안의 삶에 대한 욕망은 강해져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들개들의 습격을 받게 되었다.

불구의 몸에 별다른 무기도 없는 그로서는 한끼 식사가 되는 것이 당연하건만, 야안은 결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그 짙은 살기에도 막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목숨을 건 혈전 끝에 오히려 그중 한 마리를 잡아 배를 채우기도 했다.

“힘은 중요한 것이 아니야. 의지만 있다면 나는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

야안은 짙은 노린내가 나는 들개의 시체를 뜯어 먹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그 들개 고기를 말리어 식량으로 삼았고, 뼈는 갈아 무기를 만들었으며 가죽은 벗겨 담요로 만들어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잡았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야안의 삶에 대한 욕구는 더욱 절실해져 갔다. 자칫 허무하게 삶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일전에서 깨달았던 것이다.

야안은 뼈로 만든 무기를 이용해 여행자들을 죽여 부족한 것을 훔치다 악명이 생기자 이후 떠돌이 도적들 무리에 들어섰다.

그는 그것이 최선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약한 그는 이 도적들 무리에서의 생활은 노예 생활과 다름없었다. 결국 그는 술에 취해 잠 든 동료들의 멱을 따고 재물을 챙겨 도망을 쳤다.

‘분노하리라. 분노하리라. 빛의 어둠에 저항하리라.’

이후 그는 살아남는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몸에 상처가 많아질수록 그의 평판은 더욱 악렬해져갔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에게서 미움을 받고 두려움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그것을 반기곤 했다.

그럴수록 왜소한 체격에 병신이 된 그를 위협하는 것이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절대 무리를 이루지 않았다.

이는 다른 이들 또한 자신과 같다고 생각한 탓이다. 특히 약한 자신은 기회가 생기면 얼마든지 잡아먹힌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결코 무리를 이루려 하지 않았다.

어느새 세월이 지나 그는 젊음을 잃었고, 몸이 병들어가면서 그는 볼품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젊은 시절 숨겨 두었던 재물을 아껴 겨우 생을 잇고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 바닥을 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재물을 팔아 겨우 식량을 구한 그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아, 몇 개 남지 않은 이로 조금씩 뜯어 먹었다.

예전의 상처로 인해 소화기관이 망가진 탓에 속이 좋지 않았지만, 그는 억지로나마 음식을 넘기었다. 여전히 삶에 대한 욕구가 강했기 때문이다.

‘퍼억-’

둔탁한 무언가가 그의 머리를 쳤다. 순간 눈앞이 노래지다 이내 붉게 물들었다. 머리에서 내린 피가 그의 시야를 덮은 모양이다.

“하악, 하악.”

가는 숨을 몰아치던 그는 자신이 떨군 음식을 훔치고 가는 어린아이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머금었다.

그는 그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어린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너는 이제 시작이로구나.’

시간이 지나, 그의 피에 젖은 옷은 누군가에게 벗겨졌고 그의 육체는 떠돌이 들개의 배에 들어가 자취를 감추었다.

‘끼이잉. 끼잉-’

처음 야안의 머리에 앉았던 반 정령 하얀 비는 야안의 기질이 갑자기 바뀌는 것을 느끼고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렸다.

마치 야안이 다른 존재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 기묘한 울음에 야안의 관조를 곁에서 지켜주던 하늘 산은 그제야 야안의 변화를 느끼고 주위를 환전시키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였다.

‘휘이이잉-’

거대한 마나의 돌풍이 야안을 향해 휘몰아쳤다.

예전 야안이 검의 종주가 되어 초인의 길에 들어섰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대신 그렇게 야안에게 몰아친 마나는 변화무쌍했다.

야안은 그 마나의 변화무쌍함에 의식을 실었고, 그의 의식은 마나와 함께 좁고 좁은 엷은 빛을 향해 달려갔다.

‘쾅, 쾅, 쾅-’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휘저었다. 실제 그 충격의 파동은 거대해 야안 주위에 자리한 들풀들은 뿌리채로 뽑혀 날아갔고, 어느 순간 대기의 마나가 크게 진동하며 야안의 신체를 띄워냈다.

육체의 한계를 넘어선 야안의 의식은 어느 순간 대자연과 합일되었고, 그는 하늘의 태양이 되었다, 구름이 되어 세상을 관조했다.

그의 의식은 너무도 자유스럽고 편안한 그 세상 속에 흠뻑 빠져들었지만, 그런 그의 의식과 달리 그의 육체는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하아~ 세계수의 잎으로도 안 된다 말인가?”

하늘 산은 야안이 실패했음을 깨닫고 서둘러 손을 썼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야안의 칠공에서는 여전히 선홍빛의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하였다.

생명의 근원의 에너지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히 하늘 산의 그 막대한 마나와 세계수의 잎의 도움에 죽음으로 몰아치는 야안의 시기를 늦출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고작이었다.

‘그를 말려야 했건만.’

하늘 산은 야안이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벽을 넘어서려는 것을 막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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