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45화
그때였다.
야안이 흘리는 피가 리트담의 저서를 꺼내기 위해 열어진 주머니에 들어선 것은.
그 피는 주머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칠각을 물들였고, 칠각은 이내 스스로 빛을 내며 주머니에서 벗어났다.
성스러운 빛을 발하는 드래곤의 마지막 뿔인 칠각은 오래전 야안을 과거로 보내었던 드래곤이 봉인을 풀어주었던 것이었다.
이 칠각은 과거에 말한 벽을 넘어서는 데 그 진가를 보이는 것으로 과연 칠각은 그 성스러운 기운을 크게 뽐내다 이내 작은 알갱이로 흩어지더니 야안을 집어삼켰다.
몸에 닿는 순간 그것은 야안의 신체 내에 흡수되었고, 곧 무너지는 야안의 신체가 다시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거칠어진 숨은 고르게 되었고, 고장 난 오장육부는 다시금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제 대자연 속에서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리려던 야안의 의식이 성스러운 힘에 억지로 잡아 이끌어져 그 형태를 이루더니 이내 육신에 들어섰다.
그 여파로 인해 두 번째 환골탈태가 시작되었다.
더 이상 강건하기 어려운 그의 육체는 다시금 허물을 벗으며 외부의 마나 유동을 쉽사리 접하는 육체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그의 육체의 두뇌 또한 영체의 의식에 맞추기 위해 그 영역을 넓혀지기 시작하면서 야안은 그간 스스로 완전히 자리 잡지 못한 진리의 길에 크게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다.
하늘 산은 눈앞에 벌어진 이 듣도 보도 못한 기사에 말문을 잃었다.
야안 그의 품속에 잠들었던 이기에 그가 기사회생하였을 뿐 아니라, 단숨에 고위 현자 익스퍼트의 경지에 들어섰으니 천 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살아오던 그의 심장도 크게 두근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 모습은 마치 고치에서의 탈태에 실패한 나비가 죽음을 맞이하려다 신묘한 이적의 힘에 다시 탈태의 과정을 지나쳐 온전한 나비가 되는 것과도 같았다.
온전한 나비가 되어 젖은 날개가 말리는 것을 연상케 하는 야안의 모습에 하늘 산은 그 경이로움을 표했다.
“아~ 아리스시여!”
야안의 위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던 반 정령 또한 ‘삐삐’ 거리며 기쁨을 표했다.
시간이 지나 어느새 낮은 밤이 되었고, 어둡던 밤은 어느새 저 멀리서 보이는 새벽의 여명을 맞이했다.
전날의 그 요란한 일을 알려주는 흔적들 중심에 여전히 야안은 관조를 멈추지 않았다.
지난 ‘리트담의 저서’에서 겪은 일은 기묘한 것이었다. 아니, 언제나 리트담의 저서에서 일어난 일들은 기묘했지만, 그중에서도 이번 일이 특히 기묘하다 생각한 것은 앞서 리트담의 저서에서 겪은 것과는 달리 그 고로부는 야안과 교차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야안은 이방인의 축복을 받게 되면서 신에 대해 신실하였고, 그로서 그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자기희생에 꺼림이 없었다.
이런 성격은 리트담의 저서에서 일들을 겪을 때 그 기본적인 성격의 성향이 드러났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하여 그는 고로부인 자신에 대해 내내 거부감을 가졌으나, 그는 어느 순간부터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그 같은 이기적인 성향 또한 나에게 자리한 것이다. 부정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스스로 악의 성향에 대해 야안 스스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럼으로써 변화가 생겼고 그 변화는 야안을 인간 오욕의 근본에 대해 한층 더 가까이 가게 되었다.
지난 검의 길로 초인에 오르며 오욕의 중용의 길을 깨달았다면, 이번에 야안이 깨달은 것은 그 중용마저 무시하는 오욕의 근본을 깨달은 것이다.
원초적인 생에 대한 갈망의 욕망은 그 씨앗을 터뜨렸고, 그것은 너무 큰 짐을 짊어지고 끝없는 희생의 길에 지쳐가는 스스로 다독여 굽어지는 등을 받혀주었다.
그것이 뜻한 바는 크다.
그저 대도의 길만을 아는 강직하기만 한 야안에게 돌아가는 방법도 있음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강직하면서도 유연하게 된 것인데 이로써 얻은 깨달음이 상위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서게 되는 실마리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리트담의 저서에서의 고로부 야안의 잔념이 너무 짙었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야안은 자신의 욕심을 이기지 못하고 무리하게 상위 현자 익스퍼트의 벽을 두드린 것이다.
애초에 자기 역량을 한참 넘어서 버린 그 도전은 결국 야안을 파멸로 이끌었다.
그의 의식은 거대한 대자연에 삼켜 졌고, 육체는 통제되지 않는 마나의 흐름에 폭주상태가 되어 죽음으로 치우쳐간 것이다.
‘운이 좋았다. 정말이지.’
큰 은혜를 입었다. 드래곤이 자신에게 베푼 은혜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이제 남은 두 개의 목숨 중 하나를 잃어야 했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이 하나의 여분의 목숨은 매우 중요했다.
자신이 다시 시간을 넘어 본래의 세계로 가기 위해서 하나의 목숨을 지워야 했으니. 남은 여분의 목숨은 하나였다.
죽음의 지배자라는 그 말도 되지 않는 존재를 상대하는 데 있어 이 여분의 목숨은 그를 지탱하는 희망과도 같았다.
최악의 경우를 막아주는 안전장치인 것이다.
“후우우우.”
길고 긴 한숨을 내뱉던 야안은 천천히 내면의 세계에서 벗어났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의 몸을 간질였고,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그의 머리를 흩뜨리고 갔다.
눈을 뜨니 자신이 벌인 일의 여파가 여기저기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었다.
“참~ 요란하게도 일을 벌였군.”
그래도 두 번째 환골탈태라 그런지 지난번만큼 강렬한 불길은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다. 옷자락 여기저기가 녹아내린 것이 고작인 것을 보면.
자신이 벗은 허물의 흔적을 바라보던 야안의 입가에는 어느새 큰 호선이 그어졌다.
“나는 강해졌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에는 확고한 확신이 자리했다.
그랬다. 야안은 이번을 계기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번 그가 걸은 한 걸음은 그 자신도 쉽사리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큰 보폭이었다.
단순히 상위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선 것만이 아니라, 오욕의 근원에 깨달으면서 검 또한 한층 깊어지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확실히 알기 위해 뇌전검법의 상태창을 불러들였다.
[뇌전검법
등급 : A-
초인의 발을 디딘 이가 로블랑의 검에서 깨달은 묘리를 통해 만들어낸 검법이다. 능히 검의 마스터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검법이라 할 수 있다. 그처럼 놀라운 검법이나 다만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는지라 그 등급을 한 단계 낮추었다.
후일 그 미숙한 부분을 깨달아 채울 수 있다면 등급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습득률 : 37.8%
* 이 검법을 완성하면 새로운 검의 영역에 발을 디딜 수 있다.
* 이 검법은 운기의 효과도 있는 터라 뇌전신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마나의 양을 배 이상 늘려준다.
* 사용되는 뇌전의 기운을 반으로 줄여 줄 수 있다.
* 습득률이 높아질수록 의념의 습득률 또한 상승할 수 있다.]
이 뇌전검법은 칠정의 의념을 담는 것으로, 칠정과 연관이 자리한 오욕의 근본을 깨달음으로서 상당한 진전이 있게 되었다.
이 전 뇌전검법의 습득률이 23%에 불과했을 뿐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15%의 습득률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이로써 야안은 2초식인 노여움을 마스터하며, 다음 초식인 애(슬픔)에 입문하게 되었다. 거센 폭풍과도 같은 검이 노여움이었다면 애는 한겨울에 남아 있는 잔설과도 같았다.
단순히 눈을 속이는 환검을 넘어 검이 지나친 자리는 실제 기운의 여파가 잠재되어 이를 모르고 접촉하게 된 상대는 영문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설사 그것을 안다 할지라도 이를 지워내는 데는 야안이 검식을 펼친 이상의 힘이 필요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두려운 힘이건만 야안의 건곤대나이는 이제 59%의 습득률을 이루게 되면서 이 검식을 응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무서움은 몇 배는 더 하였다.
야안은 자신의 주먹을 쥐었다 펼치며 이 외의 스스로 상태를 알기 위해 정보창을 펼쳤다.
[레벨 : 472
직업 : 전설의 추종자
칭호 : 최초의 이방인, 용사, 제왕지기(대장인 : 미착용)
생명력 : 8,500
마나량 : 43,740
명성 : 4,300
힘 : 400(+25)
민첩 : 380(+25)
행운 : 320(+25)
지혜 : 400(+25)
신력 : 18 (+25)
마나 : 2,162(+25)
정령력 : 380 (+25)
분배되지 않은 스탯 : 56]
과연 고위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선 여파는 놀라웠다. 지혜는 120에 가깝게 올라섰고, 마나 또 한 큰 진보가 있었다.
또한 한 번의 탈태환골을 걸치며 육체 또한 크게 한층 성장을 하게 되었고, 대외적인 마나에 그 소통의 길이 커지게 되면서 정령술 또한 진보하게 되었다.
정령력이 매우 늘어나면서 유피테르의 기억의 봉인 또한 일부가 풀리게 된 것인데 이로써 유피테르가 부리는 뇌전은 범위와 힘은 넓어지고 강렬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앞서 말한 것들은 말 그대로 여파에서 일어난 일들에 불과했다. 정작 중요한 그의 성장은 바로 고차원적인 진리의 길에 들어선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성장했다기보다는 진화를 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육체가 마나에 대한 소통의 길이 넓혀진 것은 분명 그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지만 그 이상으로 야안의 의식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득해져 있었다.
이제 그는 고위 현자 익스퍼트가 다루는 대마법들을 어려움 없이 펼칠 수 있게 되었고, 유피테르와 함께라면 신마법 또한 마나의 손실은 반으로 줄이고 그 시전 속도도 배는 빨라졌다.
이전의 야안의 머리는 천재의 범주 안에 있었다면, 지금은 그런 범주를 넘어선 그야말로 초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삐비빅-’
스스로 변화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던 야안은 어느새 자신의 주위를 빙빙 돌며 어리광을 부리는 반 정령에 현실로 돌아왔다.
그간 정이 든 반 정령의 애교에 야안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 걱정해 주어 고맙구나.”
야안의 그 말에 반 정령은 들뜬 듯 ‘삐빅’ 거리며 이리저리 허공을 날다, 어느새 등장한 유피테르의 존재에 잔뜩 주눅이 들어 그 모습을 감추었다.
“고 녀석. 아무것도 모를 때가 나았군.”
유피테르는 처음과 달리 반 정령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크게 어려워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다 곧 고개를 돌려 야안의 축하해 주었다.
“생환을 축하하네. 더구나 이 같은 성장이라니.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루려면 아무리 그대라도 몇 년은 더 걸릴 것이련만. 하지만 다시는 이 같은 무리한 짓은 버리지 마시게. 그대는 그 존재만으로도 매우 중요하니.”
“알겠네. 걱정해 주어 고맙네.”
야안은 유피테르의 충고를 선선히 받아들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엉망이 된 옷을 벗고, 인벤토리에 넣어둔 여분의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쯤 그는 하늘 산을 만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