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53화
에렌 산맥에 가까워질수록 전투는 거칠어져 갔다.
이는 곤도라는 이 초대형 몬스터의 머리가 마치 인간처럼 전략을 짤 줄 알기 때문에 생긴 변화였다.
중간 중간 기습도 있었다. 다양한 몬스터의 특성을 이용한 전술이라 자칫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이 그에 자리했다.
하지만 번번이 그 기습을 알아차리는 야안 때문에 큰 곤란함 따위는 없었다.
오히려 먼저 파악하고 준비한 탓에 별다른 피해도 주지 못한 채 몰살이 되어 버렸다. 계속되는 패전에 곤도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적에게는 이런 꾀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의 휘하에 많은 몬스터가 있었지만 이대로 계속 간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초대형 몬스터들의 세력에 밀리고 말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곤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장 12미터에 20톤이 넘는 육중한 그의 몸이 요란한 기의 파동을 보이며 움직이자, 그와 가까이에 있던 수많은 몬스터들이 호흡을 멈추고 겁에 질렸다.
‘모인다. 간다. 싸운다.’
곤도의 명령에 그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여섯의 직속 몬스터가 자신의 영역에 자리한 몬스터들을 모아들였다.
그렇게 일어선 몬스터들의 숫자는 총 13만이나 되었다.
이렇게 많은 몬스터들을 다스리게 되면 정교한 전술은 더 이상 쓸 수 없지만 곤도는 상관이 없었다.
힘! 그것이면 되었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 얕은꾀 따위는 스스로 옥죄일 뿐이다.
‘에렌 산맥의 분위기가 이상하다.’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 대부분 전쟁터에서 살아왔던 칸은 본능적으로 에렌 산맥의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여 야안을 돌아보았고,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모든 작업을 멈춘다. 진열을 가다듬는다.”
아직 이곳과 괴물들의 위치는 멀리 있었지만 야안은 유피테르의 도움으로 그들을 보고 느낀 터라 곧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대군이 몰려올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간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듭하면서 그가 얻은 스탯의 숫자는 42이나 되었고, 본래 자리한 61개의 스탯을 합친다면 여유 스탯은 103개에 달했다.
그만큼 이곳 에렌 산맥의 몬스터의 힘은 대단했다. 겨우 며칠 사이에 그 같은 레벨업이 가능했을 정도로.
‘이번 전투가 끝이 난다면 생각보다 많은 스탯을 얻을 수 있겠구나.’
이 전쟁이 있기 전 야안은 퀘스트를 받았다. 바로 곤도와 곤도가 이끄는 세력들을 멸하라는 퀘스트로 보기 드물게 A+에 달하는 난이도가 자리했다.
한데 오랜만에 받게 된 이 퀘스트로 부가적으로 경험치를 얻는 것을 둘째라 치더라도, 이들 몬스터만으로도 큰 경험치를 얻을 수 있을 듯 보였다.
어느새 저 멀리서 초인에게서나 느끼는 강력한 기의 파동이 거대한 흙먼지를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카아아악. 쿠오오오.’
가지각색의 괴물의 함성이 울려 퍼지었고, 대지는 이대로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뒤흔들렸다.
13만에 달하는 몬스터가 산을 뒤덮었다. 마치 몬스터로 이루어진 산인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몬스터 특유의 거칠고 포악스러운 살기가 크게 어지럽혔다.
‘친다. 가라.’
곤도의 명령에 여섯의 직속 수하들이 각각 2만의 부하들을 이끌고 그들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야안은 산사태처럼 내려오는 몬스터 군단을 바라보며 모든 힘을 개방하기로 했다.
현재 전사들의 숫자는 2,800 정도였다.
숫자로만 따진다면 상대가 안 되는 압도적인 전력의 차였다. 물론 이들 전사 하나하나가 최소 초급 익스퍼트라 생각한다면 무서운 전력이지만, 상대는 인간이 아닌 저마다 강력한 힘을 지닌 몬스터들이었다.
전투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엄청난 사상자가 생길 터였다. 그런 희생을 줄일 방법은 단 하나였다.
단숨에 이들을 뚫고 곤도를 잡는다. 하기에 야안은 힘의 효율 따위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전력을 내보이기로 했다.
“유피테르.”
야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피테르는 그 모습을 보였다. 그간 잊힌 기억을 찾아내기 위해 유피테르는 관조를 하다, 야안의 결심을 이해하고는 이처럼 모습을 보인 것이다.
“원하는 것이 그것이라면 뜻대로 들어주겠네.”
오만한 왕의 모습을 한 유피테르의 윤곽이 흐트러지더니 이내 하나의 거대한 뇌전이 되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하늘의 구름 같은 형태였고 이내 그 뇌전은 야안의 몸을 크게 감쌌다.
그리고 동시에 야안의 몸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파아아앙-’
압도적인 움직임에 뒤늦게 공기의 파장이 대기를 울렸다.
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서는 뇌전은 부딪히는 모든 것을 지워냈다. 돌도 대지도, 나무도, 어떤 종류의 몬스터들 간에 부딪히는 즉시 소멸되었다.
그 파괴력을 따지고 본다면 강기에 비해서도 부족함이 없는 아니, 살아 있는 뇌전임을 상기한다면 일순간의 파괴력만큼은 확실히 위였다.
더구나 유피테르의 힘은 모든 삿된 것들과의 상극이 아니던가?
그 파생된 힘의 여파만으로도 몬스터들은 속이 진탕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거대한 강기와도 강력한 힘을 보이는 이 기술은 본래 전설의 현자들이 펼치던 기술로 야안은 본래는 열 배는 더 크고 더 강렬한 힘을 보일 수 있었다.
비록 계약한 정령이 유피테르인지라 중급 정령 마스터도 되지 못한 야안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위용이었으나, 역설적으로 또 유피테르였기에 가능한 기술이기도 했다.
물론 소모되는 정령력은 엄청난 수치라는 단점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단기간 돌파를 원할 때 어떤 마법도 따라갈 수 없는 힘이 자리했다.
하얀 뇌전이 땅에서 위로 거슬러오는 그 광경은 매우 놀라운 것이었지만, 곤도의 직속 수하들에게 그 이지를 제압당한 몬스터들은 여지없이 그 돌격을 멈추지 않았다.
칸은 야안이 하고자 하는 바를 알고는 그 또한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내어 첫 충격을 완화시키기로 했다.
물고 물리는. 하여 성공만 한다면 크게 이길 수 있는 야안의 전략을 따르기로 한 것이다.
‘콰가가가강-’
강력한 칸의 신도에 자리한 도강이 일순간에 최초에 부딪히는 일백의 몬스터들을 지워내고, 다시금 일백에 가까운 몬스터들을 지워냈다.
칸은 강기에 오로지 순수한 투지를 부여했고, 그것이 보인 위용이 바로 지금과 같았다. 전성기보다 그 힘은 부족할지 모르나 그것을 대신하고도 남을 노련한 경험이 그에게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일으킨 투지의 념이 자리한 강기를 적절하게 통제하며 최대한의 피해를 주기 시작했고, 그를 따르는 다섯의 대전사들과 전사들은 칸의 투지의 념에 영향을 받아 투지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라운 결과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쿠구구궁-’
그리고 엄청난 숫자의 자연재해라고 느껴질 정도의 몬스터들의 돌진이 고작 일곱 번의 충격을 끝으로 끝이 났다. 더 이상 몬스터 군단은 이 같은 돌진에서 오는 추가적인 이점을 가지지 못했다.
주술사들이 전사의 인장을 부여한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영혼까지 투지에 불타오르는 그들은 하나의 거대한 철벽과도 같았다.
지치지 않는 그들의 움직임에 이지가 제압당한 몬스터조차 움찔할 정도였다.
분위기가 자신들에게로 돌아온 것을 느낀 칸은 그들의 안으로 파고들어 몬스터들을 조종하는 수뇌 둘을 지워냈다.
이로 인해 남은 넷이 이들 몬스터들의 이지를 제압하기 위해 바빴지만, 그 거리도 멀뿐더러 본래 지니고 있는 몬스터들의 숫자도 상당한지라 뜻대로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이점을 손에 쥐게 되었지만, 칸은 이것이 양날의 검과 같음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만들기 위해 현재 칸은 몸에 무리가 갈 정도의 마나를 활용하고 있었으니 장기전으로 간다면 지금 자신의 결정은 자신의 목덜미를 노리는 비수가 되어 돌아올 터였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택에 조금의 근심도 자리하지 않았다.
가휘지의 그 놀라운 신기를 눈앞에 본 지금, 그는 이 전장에서 큰 승리를 할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야안은 유피테르의 그 놀라운 뇌전의 힘에 의해 단숨에 산 중턱에 자리한 곤도의 부대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 도착하기 위해 소모된 정령력은 삼 분의 이에 달했다. 야안의 정령력은 상위 정령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라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 기술에 들어간 정령력의 소모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 수 있을 터였다.
야안은 주술을 극한까지 끌어들여 다섯의 괴수들을 만들어 내고, 유피테르에게 이 괴수의 통제력을 내어주고는 그 자신은 곤도를 향해 나아갔다.
유피테르가 뇌전을 정교한 그물로 만들어내며 몬스터들에게 치명상을 익히고 그의 통제에 들어서 괴수들로 그 마무리를 하며 상대하기 시작하자 몬스터의 움직임이 그들에게로 향해졌다.
이로 인해 강기와 마법으로 몬스터들의 벽을 뚫어 나가던 야안은 일순간 그 포위망이 얇아지자, 이내 토네와 바람의 술을 스스로 펼쳤다.
이후 자신이 힘이 빠지기를 기다리는 곤도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힐 수 있었던 야안은 뇌전검법의 1초식인 기쁨의 념을 검강에 담아 그를 압박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력한 기운이 거대한 변화를 보이며 그 자신을 압박해나가자 곤도 또한 검강에 못지않은 탁한 마기의 념을 일으켜 온몸에 휘둘렀다.
특히 그의 여덟 개의 꼬리에 자리한 마기의 힘은 웬만한 검의 종주의 검강도 맞설 수 있었던 터라 대단히 위험했다.
파란토의 채찍에 비하면 그 정교함은 많이 떨어졌으나 그 지닌 힘은 그 못지않았다.
이러한 실정이었으니 초인들이라 할지라도 상대하기가 꺼릴 수밖에 없다. 초인 중에서도 상위에 자리한 이들이 아니면 버티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그랬다.
그만큼 곤도는 이 에렌 산맥에서 왕과 같은 지배력에 맞는 힘을 보이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상성이 나빴다.
다른 존재라면 무서운 위협이 될 마기였겠지만 야안의 기운은 그 천적이라 할 뇌전이었다.
더구나 그저 강력한 힘이 있을 뿐 그에 맞지 않는 변화에 상극적인 건곤대나이는 곤도가 자랑하는 이 여덟 개의 꼬리의 힘 따위는 우습게 제압하였다.
“크오오오!”
분노에 찬 곤도가 더 강한 마기를 끌어모을수록 그것은 스스로 찌르는 비수가 되어 그를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야안은 뇌전검법 1초식인 기쁨의 념만이 아닌 2초식, 3초식인 노여움의 념과 슬픔의 념 또한 펼쳤다. 또한, 중간 중간 파이어 피스트를 펼치거나 어스로 그의 지지기반을 노리는 등 수많은 마법을 쏟아내며 곤도를 압박해 나갔다.
결국 곤도는 야안이 일으킨 뇌전과 마법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처음에는 왼쪽 팔을 나중에는 심장을, 다음은 머리를 순으로 잃고 말았다.
‘쿠구구궁-’
곤도의 그 거대한 몸이 무너지면서 요란하게 흙먼지가 일러 퍼졌다.
곤도에 비해 20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그야말로 개미와 어린아이의 싸움과도 같은 이들의 전투는 이처럼 야안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전장이 시작된 지 겨우 15타(15분 바의 대륙 시계)도 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곤도의 죽음에서 파생된 여파는 실로 컸다. 그 변화는 가장 가까이에 있던 유피테르와 괴수들과 전투를 벌이던 몬스터에게서 먼저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