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52화
한편으로 지난겨울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파래가 첫 수확을 하게 되었다. 이에 모두가 이것이 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믿어지지 않는 표정이 완연했다.
이 거칠고 사나운 추위에도 끄떡없이 자라나는 곡물이라니.
파래의 특성상 수확량 자체는 많지는 않았지만, 실제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지 들어 아는지라 모두가 그 어마어마한 식량의 등장에 기뻐하였다.
인간들과의 무역을 하지 않게 되면서 식량을 구할 길이 없어 아사한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이제 그런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아니, 겨우 그 정도가 아니라 이번 전쟁에 필요한 식량을 채우고도 남을 정도라 그들은 큰 안도를 보이기도 했다.
야안은 페로톤에게 낮에는 지도대련을 해주고 밤에는 마크 자작의 전술을 가르쳤는데, 이는 페로톤이 전술에 어느 정도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 자작의 전술은 워낙 신기 묘묘한 면이 있던지라 페로톤은 이를 접하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스스로 전술에 자신감이 있었지만, 그 전술의 진가를 알게 되면서 그 자신감이 박살이 나고 만 것이다.
그런 변화는 페로톤에게 상당히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기존의 자만을 버리고 처음 전술을 접할 때처럼 이를 배우니 그 습득률이 놀라울 정도로 상승되었다.
이제 야안이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도 없었다.
전체적인 전략을 짜는 데는 어느 정도 재능이 있지만, 전술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던 야안으로서는 이것이 한계였기 때문이다.
그저 앞으로 있을 전투를 통해 응용하는 방법을 페로톤 스스로 깨우쳐야 했다.
어느새 시일이 지나 결국 진격의 그날이 찾아왔고, 그 전열의 중심에는 칸이 아닌 야안이 자리했고 그에 뒤에는 페로톤이 이끄는 부대가 자리했다.
야안이라는 놀라운 강자가 전쟁에 합류하게 되었으니 전략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본래 선두에 자리할 칸은 중군의 후미에서 야안이 이끄는 부대가 나아가면 이후 파괴된 진열을 밀어붙이는 힘을 가속 시킬 예정이었다.
‘둥, 둥. 둥.’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사기는 한없이 끌어 올라갔고, 곧 그들의 모습에 허겁지겁 내려온 곤도의 수하들은 진격을 알리는 징의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몰살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크오오오-’
그것은 진정 장관이었다. 그 모든 일은 단 한 번의 부딪힘과 동시에 끝이 났다. 페로톤과 아우론이 야안의 옆에 자리를 잡았고, 삼백의 전사들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마지막으로 그 뒤에 자리한 전사들이 넓은 포위망을 펼치며 이들을 모두 쓸어 담기 시작했다.
나는 듯 앞으로 쏘아 나와 검기를 뿌리기 시작했고, 곧 개의 길고 긴 검기가 물결을 치듯이 대기를 어지럽히며 나아갔다.
초인인 야안이 일으킨 검기였기에 그 힘은 무시무시했다. 그 하나, 하나가 중급 익스퍼트가 모든 기력을 짜 일으킨 검기의 위력과 비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더구나 그처럼 긴 궤적이라니.
검기는 거대한 나무를 단숨에 가르고서도 여력이 남아 그 뒤에 자리한 몬스터들에 피륙에 피해를 주었고, 그처럼 수십 개의 검기는 일순간 어설프게나 군진을 잡으려던 몬스터들을 흩뜨려 놓았다.
이로써 혼란에 빠진 몬스터들은 다시금 야안과 그가 이끄는 부대에 완전히 그 위세를 잃어버렸다.
이후 연차적으로 일어난 후방의 부대가 몰아붙이기 시작하자 남은 생명의 불씨는 그렇게 조용히 사그라 들고 말았다.
‘우오오오!’
첫 전투의 승리에 함성을 흘리는 전사들을 보던 야안은 초감각의 기운을 한층 더 예민하게 다루어 그 기감의 범위를 넓혔다.
그리고, 그는 저 멀리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대이동을 하면서 자리를 잡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야안의 말에 뒤늦게 저 멀리서 일어난 흙먼지를 파악한 칸은 손을 올려 진형을 다시 짜기 시작했다.
대전사들은 자신의 휘하에 자리한 상급 전사들에게 지시를 내렸고, 그들은 다시금 자신에게 속한 전사들에게 지시를 내려 본격적인 진형 준비를 짜기 시작했다.
한 차례 전투의 열기에 휩싸여 있던 전사들은 저마다 콧바람을 크게 흘리며 전투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정말 용맹한 자들이군.’
야안은 잠시 그런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땅에 두 손을 올리고 주술을 펼치기 시작했다.
‘크르릉-’
곧 호랑이 형태를 띈 괴수 다섯 마리가 그 모습을 보였는데, 뒤에 기립해 있던 주술사들은 이미 야안에게 지시받은 대로 그들 고유의 주술인 전사의 인장을 괴수에게 부여했다.
전사의 인장은 그 육체와 힘을 일시적으로 올리는 술법으로 그 육체가 워낙 강건한 이들 태양종족에게나 맞는 술법이었지만, 괴수들은 주술로 만든 존재들이라 이를 소화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 세 마리는 저마다 어슬렁거리며 초원의 주위를 돌아다니더니 이내, 그 진형의 세가 약한 곳의 앞에 가 그 자리를 잡았다.
전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괴수에 놀랐으나, 괴수에 자리한 전사의 인장과 이미 이에 대해 들은 바 있던 지휘자들이 동요 없이 자리를 지키자 우리 편임을 인식하고는 마음의 동요를 잡았다.
야안이 일으킨 이 괴수는 고위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서면서 깨달은 바를 주술에 적용하여 만든 괴수로 각각 두 마리분의 주술력이 자리해 있었다.
능히 중급 익스퍼트와 전투를 펼칠 수 있었으며 대인전에서는 그 전투력은 배가 되었다. 투박하고 거칠었던 움직임은 이제 부드럽게 변해 전장의 전투 범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크오오오! 카아아!’
몬스터들의 짙은 살기가 자리한 괴성이 멀리 떨어진 야안의 피부를 자극한다.
인간들이었다면 아무리 강군일지라도 그 살기에 사기가 떨어졌을 것이지만, 태양 종족의 전사들은 오히려 그런 살기에 크게 흥분을 떨며 사기를 끌어올렸다.
당장에라도 뛰어나가 이 몬스터들과 부딪히고 싶어 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곧 괴성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대략 2만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부딪히는 모든 것을 다 때려 부수며 흙먼지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들은 대략 6~7종류였고, 그들을 이끄는 몬스터들은 광석을 먹고 산다는 케케무 라는 몬스터였다.
몸이 강철 같은 데다 그 몸길이는 8미터에 십 톤의 무게를 지닌데다 영악하기까지 해 대형 몬스터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자리한 몬스터였다.
만약 이 몬스터가 인간의 군대에 자리했다면 엄청난 피해를 보았을 것이다. 강철 같은 피부는 화살은 물론 단창 등에도 큰 피해를 보지 않았으니 이를 잡으려면 상당한 전력이 소모될 것은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하지만 상대는 저마다 검기를 다룰 줄 아는 태양 종족의 전사들이었다.
오히려 이런 대형 몬스터는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 거대한 덩치는 투박하고 강한 공격을 주로 하는 전사들의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다.
야안은 짧은 수신호를 끝으로 단번에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갔다.
곧 그가 이끄는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밀려드는 물결처럼 칸이 이끄는 전력도 진형을 유지하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화살과도 같이 나아가는 야안의 부대는 야안이 일으킨 검강과 마법의 위세를 이어받으며 단숨에 몬스터들을 반으로 갈라놓았다.
이후 회군하여 후미에서부터 몬스터들을 향해 돌진하였고, 곧 그들로 인해 몬스터들의 진형은 그 위세가 크게 줄고 말았다.
‘크아아악-’
요란한 몬스터들의 비명을 듣던 야안은 이제 자신이 선두에 자리하지 않아도 되는 듯 보이자 곧 그 무리에서 벗어났다.
동시에 그 후미에 자리한 초대형 몬스터에 가까운 돌연변이 몬스터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덩치가 크고 입에서 터져 나오는 산화액은 매우 위협적이었지만, 야안은 가볍게 몸을 흔들며 나아가 붉은 실에 검강을 실어보였다.
‘후두두둑-’
무언가 대기를 붉게 물들고 지나친다고 생각한 순간 이 초대형몬스터는 마치 거짓말처럼 산산조각이 나며 대지에 너부러졌다.
강기에 타 버린 탓에 내장이나 피도 흘러나오지 않은 탓에 시체는 마치 나무토막이 난 듯 것 같은 거짓말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같은 야안의 위세에 몬스터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명령을 내리는 몬스터가 사라지자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것인데, 야안은 그 공황의 순간을 놓치지 않고 더욱 거세게 손을 쓰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한 손으로 파이어 팜은 지난 야안의 파이어 팜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화력의 범위는 20%가 상승했고, 온도는 30%가 더 올라간 상태였다.
단 한 번의 손짓에 수십에 달하는 몬스터가 죽음을 맞이했다. 일부는 팔이 녹아내려 고통에 비명을 지르기도 했는데, 비명을 지르는 몬스터들은 어느새 목이 몸에서 분리되면서 그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졌다.
잔인하기까지 한 거침없는 야안의 손속에 일순간 수백을 넘어 천이 넘는 몬스터가 죽음을 맞이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야안이었지만, 그는 숨결 하나 흐트러짐 없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마치 내면을 관조하는 이 마냥 그 표정에는 한 점의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치 생명이 없는 무언가를 베어내는 모습이었다.
예전 드래곤을 찾아가면서 수많은 몬스터를 베어내던 당시의 그는 이처럼 무덤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지난 리트담의 저서에서 오욕의 태초적인 그 이기적임을 깨달으면서 마음에 자리한 한 점의 거부감마저 지워내면서 이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였다.
그로 인해 야안은 생명을 거두는 데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도달하게 되었고, 그것은 지금의 파죽지세를 보이게 했다.
가히 홀로 일군을 넘어서는. 전장의 핵이 되어버린 야안에 몬스터들은 태초적 본능에 물러나기 시작했지만, 칸이 이끄는 대군에 이들은 덧없이 그 생명을 잃고 말았다.
‘사아아악-’
단 한 번에 수십 마리를 지워낸 부르케산은 저 멀리 무서운 속도로 몬스터의 숫자를 줄여나가기 시작하는 야안을 보며 감탄에 감탄을 표했다.
“무서운 자다. 적의 수장으로서는 정말이지 만나고 싶지 않은 존재로다. 저자 혼자만으로도 전장의 흐름이 뒤집힐 정도이니.”
부르케산은 야안의 전투를 보며 본능적으로 그가 이 같은 대인전에서 그의 전력이 몇 배는 증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러한 자가 난세를 종결시키기 위해 움직였으니 그의 말대로 이 어지러운 난세는 거짓말처럼 긴 시일이 지나지 않아 끝이 날지도 모르겠구나.’
숫자로는 큰 열세였지만 워낙 그 지닌 전력이 압도적이었기에 2타콤(4시간, 바대륙에서 재는 시간 단위.)도 지나기 전에 전투는 끝이 났다.
아니, 사실상 전투라고 하기에도 그랬다. 이쪽의 사상자는 겨우 스물 남짓할 정도였으니. 오히려 전장 정리에 더 힘이 들 지경이었다.
‘타닥. 타닥-’
시체 타는 냄새가 코를 내질렀다. 몬스터에 자리한 과다한 인에 불은 무서운 속도로 번져가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였다.
어차피 이곳 초원을 태워 화전을 할 생각이었던 탓에 주술사들은 불길을 크게 통제하지 않았다.
타오르는 인에 의해 연기 너머로 알록달록한 불빛이 보이고 사라지기를 계속되었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제법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이 불빛의 근원을 아는 태양종족과 야안을 이를 눈 여기지 않았다.
정리된 몬스터의 부산물을 모아 물자를 옮기고 나르는 일반 부족민들에게 맡기었다. 이번 전투로 큰 상처를 입은 12명 또한 그들과 함께 본거지로 돌아갔다.
칸은 인수가 끝이 나자 다시 군대를 움직였다.
‘이제 시작이다.’
그간 조사한 바로는 지금의 전력은 10%도 채 되지 않았으니 그의 그런 생각은 틀린 바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