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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61화 (261/385)

야안 261화

늦은 밤 산길에 피워놓은 모닥불의 연기가 흰 곡선을 남기며 하늘로 올라가다 자취를 감춘다.

무더운 여름에 피어진 모닥불에 두 개의 토끼 구이가 꼬챙이에 꽂혀 알맞게 구워져 가고 있었고, 밤하늘에 수놓은 별들은 마치 떨어질 것 같은 장관을 보였다.

어느새 노릇노릇 다 익어가 이제 육즙을 뚝뚝 흘리는 토끼 구이를 보던 리트담은 얼추 다 익어간 듯하자 이를 야안에게 건네었다.

“오랜만에 솜씨를 부린 것치고는 잘 되었습니다.”

소금으로 간을 쳐 주는 리트담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음~ 맛이 대단히 좋습니다.”

만족해하는 야안에 리트담은 기쁜 듯 입가에 긴 호선을 그어냈다. 갈색 피부에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야안에 대한 짙은 호감이 자리해 있었다.

열흘간의 여정 속에서 리트담은 야안을 알아갈수록 그의 인품에 더 매료되었다. 인격적으로 완성되었다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너무나 인간적이면서도 또한 한없이 거대한 그릇을 지닌 성인의 모습에서 리트담은 그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닮아가고 있었다.

마주 앉아 토끼 구이를 먹던 그들은 오늘 낮에 함께 한 대련에 대해 토론을 보였다.

현재 리트담의 경지는 놀라운 정도였다. 야안이 검과 마법만 쓸 경우 대등한 무위를 보일 정도의 위치에 올라선 것이다.

그는 이 열흘의 시간동안 총 다섯 번의 대련을 하였고, 그 이외의 시간은 그 대련에서 얻은 것을 참오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같은 맞수가 있다는 것은 리트담이나 야안에게 있어 좋은 일이었다.

이론적으로만 가상으로 머릿속에 그렸던 것을 실제 현실에서 상대하면서 어떤 변수가 생기면 자신이 생각한 바대로 되는지를 알 수 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리트담의 경우는 야안의 존재는 축복과도 같았다.

야안은 단순히 대적을 할 수 있는 상대로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야안의 놀라운 힘의 묘용인 건곤대나이의 존재로 인해 그는 거침없이 주술을 펼칠 수 있었다.

이미 마법에 건곤대나이의 묘용을 보이는 것을 넘어 검강에 자리한 념에도 그를 적용하기 시작한 야안이었다.

그 어떤 주술로도 야안에게 큰 피해를 주기란 어려움이 크다. 하니 그는 조금은 무리다 생각할 주술들도 대련의 성질을 넘어 거침없이 보여줄 수 있었다.

물론 그것은 야안 또한 마찬가지였다. 리트담의 주술은 그가 생각한 범위의 주술을 한참 넘어서고 있었다.

아니, 그것이 진정 주술이 맞는가 싶을 정도의 착각을 보이게 한다.

하늘에서 거대한 불이 유성처럼 떨어지는가 하면, 그가 자리한 대지가 그를 삼키기도 했다. 또한 야안이 자리한 곳에서의 공기의 성질이 바뀌며 공기는 독으로 바뀌었다. 또한 마나의 성질마저 바꾸어 놓아 마법을 펼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적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을 다 뚫고 다가갈 때면 어느새 그는 연기같은 존재로 변해 야안의 검의 궤적을 피하였다.

쉽사리 숨을 쉴 수도 없었고, 마나를 정리하여 배열을 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워졌으며, 피해를 주기도 어려웠다.

검강으로 이루어진 검의 구 안에서 마치 자신의 념마냥 동화되어 마음대로 움직이는 그의 모습을 보자면 허깨비를 상대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가 이루는 불길은 초고온이라 미스릴마저 녹아들 지경이었고, 이따금 대기에서 무겁게 치는 힘은 몇 십 톤에 달하는 쇳덩어리에 맞는 느낌이었다.

건곤대나이가 아니었다면 결코 그 주술을 맞아들여 큰 피해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야안이 주술과 정령술을 펼친다면 그 이야기는 단번에 달라졌을 것이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압도적으로 그를 잡아내기는 사실 어려움이 컸다.

그런 과정을 하나씩 하나씩 넘기며 야안과 리트담은 발전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대전을 한 날이면 야안의 신성 마법으로 회복을 한 뒤 전투에서 느꼈던 점들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데 하루를 다 보내곤 했다.

물론 그동안 그들의 주술의 교류 또한 적지 않았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술을 가르치는 단계였지만, 시간이 지나 자이한이 야안에게 알려준 주술의 전수가 끝이 난다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리트담으로부터 야안은 주술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리트담이 자신의 주술을 야안에게 가르치고는 있었으나 사실 부족함이 많았다. 아직 그는 스스로 지식과 지혜를 제 것으로 다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여전히 검은 지팡이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이는 이 검은 지팡이의 마지막 비밀을 벗겨 냈기 때문이다.

위대한 주술사의 벽을 넘어선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이 검은 지팡이는 위대한 주술을 펼칠 때 필요한 자아를 잃지 않는 데 큰 역할을 해 주었다.

체내와 체외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사실 양날의 검이라, 자칫 무리하였다가는 자아를 찾기 어려움이 크다.

한데 이 검은 지팡이가 그 자아를 붙들게 하게 만들었다.

검은 지팡이의 마지막 환영에서 본 리케하르산으로부터 그는 이 검은 지팡이의 유래를 들을 수 있었다.

본래 이 검은 지팡이의 유래는 전설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한 위대한 주술사가 하늘에서 떨어진 거대한 금속을 발견하였고, 그는 그 거대한 금속에 그런 효능이 있는 금속이 자리해 있음을 알았다고 한다.

하여, 오랜 시간의 공을 들여 그 금속을 정제하여 이 검은 지팡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고 하는데, 문제는 유랑민족의 특성 때문에 검은 지팡이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다 거대한 대부족으로부터 자신의 부족이 통합되는 와중 그 유래를 알게 되었고, 그는 이 보물을 지키기 위해 바 대륙으로 넘어왔다고 한다.

그런 놀라운 역사와 힘이 자리한 검은 지팡이가 자리했기에, 그는 자신에게 받은 힘을 완벽하게 수습하지 않았음에도 그런 놀라운 힘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타닥. 타닥-’

어느새 모닥불은 처음의 그 위세를 잃어가고 있었다. 야안은 리트담과 서로에 대해 궁리를 하다 뒤늦게 그것을 보고 장작을 모닥불에 집어넣으며 말을 이었다.

“전쟁이라, 시기가 너무 좋지 않습니다.”

드워프들이 인간의 전쟁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하여 거래가 일시적으로 중단 될 수도 있다. 그리된다면 계획보다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지 모른다.

그런 점을 알고 있었기에 리트담은 불쏘시개로 장작을 이리저리 다루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쩌면 드워프의 마을이 있는 곳을 아는 이가 있을 것입니다. 이미 수백 년을 거래하고 있는 이들이 아닙니까?”

야안은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보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이제 반나절 거리도 남지 않은 산속에서 마지막 야숙을 함께 하던 그들은 다시 끝나지 않은 궁리를 이어갔다.

이른 새벽. 부지런히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야안과 리트담은 막 성문이 열릴 때쯤 도착할 수 있었다.

전쟁 준비라는 말에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건만, 오히려 더 많은 상행이 이곳을 오가고 있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대부분 이들 상행은 전쟁 물자가 주였다. 지난 말콤 공작 가가 전쟁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전쟁을 일으킨다고 하자 눈치가 빠른 상인들이 이곳으로 전쟁 물자를 거래하기 위해 온 것이다.

말콤 공작 가에서도 물자가 부족한 탓에 그들의 전쟁 물자를 좋은 가격에 사들이고 있었기에 성안으로 끊임없이 물자 운송이 계속되었다.

야안과 리트담은 그런 광경을 보며 과연 오대세력 중 한 곳답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성안으로 들어섰다.

리트담은 현재 그 자신의 피부를 바꾸어 놓고 이목구비도 이 대륙의 사람들에 가깝게 만들어 놓았는데, 이는 그 자신보다는 야안에 대한 배려였다.

자신 혼자였다면 결코 바꾸지 않았을 것이지만, 그 자신이 모시고 있는 야안이 자신으로부터 불필요한 눈길을 받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배려를 야안 또한 알았기에 그 마음 씀씀이에 고마움을 느끼던 그들은 성문에서 멀지 않은 여관에 짐을 풀고 그들이 알아보고자 했던 드워프들의 거래에 대해 소식을 찾기 시작했다.

거리에는 외부에서 들어온 상인들로 시끌시끌했다. 특히 그것은 영지의 중심으로 갈수록 번화가의 모습을 띠며 상당한 물자유통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부자들은 이 난세에서도 여전히 잘 먹으며 그 이상의 권세를 보여주었지만, 이 난세로 인해 정작 가장 피해를 보는 이들은 평민들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많은 세금을 내게 되면서 저마다 얼굴에는 불안과 공포가 가득했고, 빌리지도 않은 세금의 빚에 허덕여 일자리를 구하려 거리를 떠도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부모가 징집이 되어 고아가 된 아이들은 저희끼리 모여 어른들의 보호 없이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고, 배고픔에 음식을 훔쳐 먹다 두들겨 맞는 아이들은 적지 않았다.

‘아~ 이곳은 정말이지.’

야안은 이곳에 들어오면서 난세라는 것을 조금씩이나마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두 세상이 한 곳에서 같이 공존하고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물자들이 오가고 엄청난 자금이 움직이며, 사치와 향락에 빠진 이들이 끝없이 존재하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앞서 이야기처럼 사는 것이 하루하루가 지독한 공포고 악몽인 자들도 있었다.

리트담은 미간을 찌푸리는 야안을 보며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을 했기에 그저 말없이 야안의 뒤에서 기다릴 뿐이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걷기 시작했고, 리트담도 말없이 야안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찾은 곳은 간판에 용병 협회 지부라 적힌 건물이었다.

제국에는 거대한 규모의 용병 협회가 자리하고 있었다. 본래는 이 용병 단체는 모두 7곳이었으나, 그들은 난세에 자신들이 얼마나 쉽게 이용되고 버려지는지를 알았기에 하나의 협회로 합쳤다.

용병 협회장인 유센은 초인에 올라선 검의 종주였기에, 귀족들도 더 이상 용병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만약 이들이 마음을 먹는다면 지금의 세력구도 완전히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세라 용병들은 더 많은 피를 흘리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이 협회의 등장으로 최악까지는 가지 않았다.

협회가 생기자 부수적으로 많은 정보가 모이기 시작했고, 용병들은 이 정보를 급으로 나누어 정보를 팔기 시작했다.

물론 정보의 질 자체는 좋지 못했지만, 그래도 적당한 가격에 정리된 정보들을 알 수 있었기에 많은 여행객과 상인들이 이용하기도 했다.

운이 좋다면 싼 값에 고급정보를 알 수 있었기에 상인들은 크게 필요하지 않음에도 적당한 돈을 주고 용병들로부터 정보를 사갔다.

야안과 리트담 또한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알았기에, 이 용병 지부에 들어온 것인데 건장한 사내 두 명이 용병 지부에 모습을 보이자 잠시 시끄러운 모습과 함께 웃음을 흘리던 용병들은 잠시 그들을 바라보다 이내 눈길을 돌렸다.

야안과 리트담의 경지가 기세를 갈무리하는 경지에 올라섰기에 별 볼 일 없는 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야안은 잠시 건물 안을 살피다, 중앙의 한곳에 자리 한 야안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거한에게로 움직였다.

껄껄거리며 동료들과 수다를 떨던 그는 야안과 리트담이 다가오자 용병 동료에게 손을 올리더니 예의를 차리며 다가왔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사내는 리트담과 야안의 용모나 분위기를 보아 귀족일 것으로 짐작하여 그처럼 태도를 낮추었는데 과연 그중 한 사내가 보기 힘든 금화를 아무렇지 않게 주머니에서 꺼내자 좀 더 태도를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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