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62화
“이곳 말콤 공작성과 거래한다는 드워프를 만나고 싶네만 혹시 그에 대한 소식을 아는가?”
그러면 금화 하나를 앞으로 내밀자 사내는 놀라 두 손으로 받아들이며 어디론가 쿵쾅거리며 움직이더니 얼마 되지 않아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작은 책자를 야안에게 내어 주며 말을 꺼내었다.
“현재 말콤 공작 영지에서 전쟁을 다시 시작한다는 소식에 이미 드워프들은 영지를 떠난 지 오래입니다. 다만, 방법이 없는 것이 아닌데 그 드워프들의 거처를 알만한 이가 이번에 노예 경매에 나왔습니다.
그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책자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잠시 실망하였다 이내 드워프들의 거처를 알만 한 이가 노예 경매에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야안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수고하게.”
그러며 다시 금화 한 닢을 내어주니 그는 입가가 찢어지며 공손히 인사를 하기 바빴다.
가까운 곳에 자리한 음식점에서 식사를 주문한 야안과 리트담은 조금 전 용병협회에서 산 책자를 펼쳐 보았고, 곧 그들은 그 용병이 한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하프 드워프라? 보기 힘든 존재로군.’
애초 성과 관련된 쪽에서 드워프와 인간은 그 미적인 부분이 완전히 다른 탓에 하프 드워프의 존재는 매우 보기 힘들다.
한데, 그런 이가 존재한다는 것으로 모자라 그가 노예 경매에 모습을 드러냈다니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책자에는 그가 왜 노예 경매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이야기가 적혀져 있는지라 곧 그 궁금증을 풀어낼 수 있었다.
하얀 불꽃이라고도 하고, 인간의 이름으로는 모던이라고도 부르는 그는 본래 드워프 마을에서 자라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향수를 느끼고 싶어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제법 대단한 대장장이 실력을 지녔던지 금세 터를 잡을 수 있었지만, 워낙 인간사회에 대해 모르는 바가 많았기에 협잡꾼들에게 속아 결국 상당한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이런저런 방해 끝에 노예로 전락했다는 내용이다.
아무래도 난세에 뛰어난 대장장이의 가치가 높다 보니 몇몇 관리들과 무뢰배들이 서로 짜, 그를 노예로 만든 모양인데 그 사정이 매우 딱했다.
“사정이 많이 딱하군요. 자금이 넉넉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야안의 그 말에 리트담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사정을 보니 악독한 이들이 저지른 짓으로 보이는데 그들의 배를 채워 주어 보았자 희생자들만 더 늘지 않겠습니까?”
리트담의 말에 야안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알고 이내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이 틀리지 않습니다. 멀지 않은 곳이니 오늘 일을 치르면 되겠군요.”
“시간이 빡빡하기는 하지만 그러면 될 것 같습니다.”
말없이 미소를 보이던 그들은 곧 음식이 나오자 급히 배를 채우고 식당을 나섰다.
하얀 불꽃은 생각보다 지독한 인간들에 절로 고개를 내저었다.
따스럽고 자애로운 어머니와 달리 어떻게 저런 인격을 소유한 인간들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드워프들로부터 인간 세상에서는 결코 대장장이 실력을 뽐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어 근처의 인간 대장장이 정도의 실력을 보이며 대장간을 열었건만, 그도 보이지 말았어야 했던 모양이었다.
뜨겁고 자존심 높은 드워프의 피를 지닌 자신이 노예 경매장에 들어선 것은 너무나 치욕스러운 일이라, 그는 살고자 하는 의욕조차 상실하고 말았다.
스스로 목을 매어 죽을까도 싶었지만, 그마저도 마법으로 몸이 봉쇄당해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시간이 갈수록 그는 수척해지며 그저 창살 너머에 자리한 달을 보며 과거를 회상할 뿐이다.
그때였다.
바닥이 흐물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두 인영이 모습을 보인 것은.
마치 유령을 보는 듯한 모습이라 놀라 소리를 지르려는데 한 사내가 손을 휘젓자 그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라는 의문만이 자리하는 그에게 다시 조금 전 자신에게 손을 휘저은 그가 무어라 중얼거리자 자신을 옥죄던 마법이 그 자취를 감추었다.
도저히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아 어안이 벙벙하건만 더 놀라운 일이 생겨났다. 자신이 있던 바닥이 조금 전에 보았던 것처럼 흐물흐물거리며 자신을 삼킨 것이다.
그에 경악하던 그는 어느 순간 컴컴한 어둠만이 눈앞에 보였을 뿐이었고, 그 천지가 개벽할 일들에 가뜩이나 심약해진 그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창가에 가득 내린 햇빛을 받으며 천천히 정신을 차리던 하얀 불꽃은 맛있는 음식냄새가 코를 자극하자 그 허기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떴다.
하얀 불꽃이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지난밤에 본 두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중 인상이 부드러운 자가 아직 따뜻한 음식을 그에게 건네며 말했다.
“그간의 고생으로 인해 체력이 많이 약해져 정신을 잃은 듯해 일단 치료는 했지만, 영양부족은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드시고 나면 기운이 날 것입니다.”
그 말에 하얀 불꽃은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노예로 전락해질 상황보다 최악일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사내가 건네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워낙 체력이 좋은 드워프의 피를 받은 터라 길들이기 위해 오랫동안 음식을 주지 않았던 탓에 그는 대단히 배가 고픈 상태였다.
“하~ 이제야 좀 살겠군.”
어느새 음식을 비워버린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음식을 준 사내에게 말했다.
“그럼 저를 왜 데리고 왔는지 말해주시겠습니까?”
야안은 하얀 불꽃의 그 말에 그가 상당히 영리한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에 놀라 큰 걱정에 빠질 것이나 놀랬을 것인데 그는 그런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같이 영리한 자가 그런 암투에 빠진 것을 보면 아주 잘 짜인 사기를 당한 모양이었다. 야안은 이내 자신과 리트담을 소개한 뒤 주머니에서 기이한 금괴를 보여주었다.
“아! 이것은.”
야안이 보여준 금괴는 바로 로탐이었다. 이 금속의 성질이 기이해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인간 중에는 몇 되지 않아 드워프들이나 다루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금속이었다.
거인족과 친분이 있어야 구할 수 있는 로탐인데 이를 인간이 가지고 있자, 그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야안의 로탐은 그런 로탐 금속 중에서 최상위에 속한 금속이었다. 예전 그가 마을의 장로에게서나 보던 질이 뛰어난 물건인 것이다.
최상급 로탐은 거인족들 중에서도 그 수가 많지 않은 대전사들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대전사는 백만에 달하는 전사 중에서도 백 명도 채 되지 않는 숫자였고, 직위로 본다면 드워프들의 족장이나 그에 준하는 위치였다.
그들과 거래를 하는 자신이 속했던 대부족에서도 만지기 어려운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다.
한데 그것을 드워프가 아닌 인간이 버젓이 내놓으니 하얀 불꽃으로서는 놀라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야안이 말을 이었다.
“오래전 그들과 함께 싸웠으며 이는 그 대가로 받은 것입니다.”
하얀 불꽃은 그의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것 말고는 인간이 이 금속을 얻을 방법은 없었다.
그런지라 잠시 생각에 빠지던 그는 순간 야안의 손을 보고는 크게 놀라 눈을 반짝였다.
“야안 님이라 하셨습니까? 괜찮다면 그 손을 보아도 되겠는지요?”
야안은 그의 말이 하는 뜻을 알고는 선뜻 손을 내주었다. 그리고 이내 하얀 불꽃은 그 손을 살피더니 몸을 잘게 떨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두 번 치며 목례를 보였다.
“위대한 장인을 알아보지 못해 실례했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야안은 이곳 대륙의 드워프들의 풍습이 조금은 다르다는 것을 그의 태도에서 깨달으며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그보다 부탁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괜찮다면 그대의 다른 혈통인 드워프들의 마을을 가고자 합니다. 안내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얀 불꽃은 야안의 그 말에 큰 고민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인간이였다면 드워프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 거부할 것이지만, 위대한 망치의 길에 올라선 자라면 오히려 그의 방문은 환영할 만했다.
그만한 길에 올라서기 위한 자라면 달리 장인 종족이라고 하는 드워프들이라 할지라도 크게 배울 점들이 많았으니 말이다.
“물론입니다. 하나 저로 인해 그 행동에 크게 지장이 있을 듯하니 괜찮으시겠습니까?”
하프 드워프인 그의 용모는 인간들과는 다른 이질감이 있었다. 팔다리가 비이상적으로 굵었고, 눈, 코, 입 또한 지나치게 윤곽이 뚜렷했다. 하니 하얀 불꽃으로는 걱정이 되어 한 말인데 정작 야안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동경을 그에게 건넸다.
하얀 불꽃은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동경을 들어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이내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 동경에는 자신의 얼굴이 아닌 낯선 인간 사내가 자리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떻게 된 것입니까?”
그의 말에 리트담이 나서 이야기하였다.
“주술로 인위적으로 모습을 바꾼 것입니다. 이 말콤 공작 영지를 벗어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 드리지요. 추적 마법 따위는 야안 님께서 이미 지워버리셨으니 그에 대한 우려도 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주술이라는 말을 오래전 족장님으로부터 들었던바 있었지만, 설마 이 같은 묘용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직접 자신이 겪고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어제의 그 일도 주술로 한 것이란 말인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이들은 더 놀라운 자들일지도 모르겠구나.’
하얀 불꽃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앞의 두 사내에게서 쉽게 눈이 떨어뜨릴 수 없었다.
‘쿠구궁, 쿠구궁.’
거대한 무게에 대지가 요동을 쳤다. 일천에 달하는 타이탄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인데, 저마다 1톤을 넘는 무게를 지닌 터라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크게 땅이 패여 졌다.
신장 3미터에 무게는 1톤하고도 80kg에 달하는 이 타이탄은 제국이 자랑하는 대인병기이다. 훈련된 인간이 탑승을 하고, 마정석으로 구동할 수 있으며 그 지닌 이는 200마력에 달한다. 거대한 공성병기를 다루어 성을 부수거나, 대인전에 큰 활약을 보일 수 있으나 그 가격이 비싸고 검기를 다루는 기사 앞에는 큰 힘을 쓰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검의 구를 펼치는 기사의 검기의 힘이라면 탑승한 자를 죽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둔중한 타이탄으로는 그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도 없었으니 기사들 앞에서는 쥐약과도 같았다.
그럼에도 각 세력에서 거대한 자금을 들여 타이탄을 만들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은 앞서 이야기하였듯이 대인전에 큰 효능을 보기 때문이다.
그 하나하나가 보이는 피해는 초급 익스퍼트 기사에 달할 정도였으니, 이 타이탄들을 기사들을 피해 일백이나 전장에 풀어내면 얻는 이득은 대단히 컸다.
기사는 얻고자 한다 해서 얻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지만, 타이탄은 자금과 인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생산할 수 있었다.
지금 같은 난세라면 거대한 자금을 군에 치중한다고 볼 때 타이탄 부대의 등장은 놀라울 것도 아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 타이탄만을 상대하기 위한 보병들의 무기도 만들어지고 있었다. 같은 타이탄으로 막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더 싸고 효율적인 무기로 잡을 수만 있다면 그런 무기의 등장은 환영한 바이니 말이다.
야안은 그 모습에 잠시 말문을 잃었다. 고대의 문명이 절정에 달했다는 문헌을 보았지만, 설마 이 같은 이기의 등장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지금 자신이 찾아가는 거인족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