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63화
물론 전사 거인족에 비한다면 보잘것없었지만, 인간의 병과가 다양하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를 얼마나 적재적소에 보이느냐에 따라 그 위력은 몇 배는 강렬한 위력을 보일 터였다.
놀라는 야안의 모습에 리트담은 미소를 보이며 하늘을 가리켰다.
야안은 리트담의 손가락에 그제야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배 같은 형태의 수십에 달하는 무언가가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다.
설마 그 무거운 배를 하늘에 띄울 줄은 몰랐던 탓에 야안이 보인 놀라움은 적지 않았다. 타이탄의 모습 이상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야말로 오랜 세월 바대륙을 호령한 제국의 힘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생각보다 이들의 문명의 힘이 대단하다. 태양 종족이 왜 그토록 불안해했는지 이를 보니 이해가 되구나.’
잠시 군정비를 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야안은 이내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곧 그를 따라 리트담과 하얀 불꽃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 제국의 10%에 달하는 영지를 지닌 덕분에 말콤 공작의 영지를 벗어나는 데도 그들은 이틀의 시간이 필요로 했다.
하얀 불꽃의 예상대로 그를 찾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미 리트함에 의해 외모가 바뀐 그를 알아보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별다른 일 없이 말콤 공작 가를 넘어 무로딘 산맥에 들어서게 된 그들은 그로부터 나흘의 시간을 움직인 뒤에야 드워프들의 흔적들이 자리한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은 오래전에 폐광하여 떠난 드워프 마을이었다.
관리하지 않은데다 세월에 의해 대부분의 모습이 사라졌지만, 눈썰미가 뛰어난 자라면 이곳에 생활의 흔적들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예전 드워프들이 마을로 잡았던 만큼 이곳의 터가 나쁘지 않은 터라 여기서 야행을 하기로 하였다.
마을의 중앙에서 모닥불을 피운 그들은 오다가 잡은 오리 몇 마리의 껍데기를 벗겨 구이를 만들었다.
지글지글 기름기가 자리한 오리의 노린내가 코를 자극했는지, 하얀 불꽃은 침을 꼴딱 삼키며 이를 바라보다 야안의 물음에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돌렸다.
“원래 이곳은 이렇게 몬스터가 많은가? 이 정도면 에렌 산맥 못지않은 수준인 것 같아 하는 말이네.”
하얀 불꽃은 야안의 말에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아무래도 산맥이다 보니 몬스터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래도 인간들의 난세에 몬스터들이 이쪽으로 대이동으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야안은 과연이라는 중얼거림과 함께 작게 침음을 흘렸다.
그 말은 이곳에서 터를 잡은 이종족들이 큰 변란을 겪게 된다는 말이었다. 몇몇 이종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인간들과 같은 군대를 가지지 못할 것이니 그 피해가 예사롭지 않을 터였다.
‘다행히 이 산맥에 연합을 맺은 수십 만에 달하는 엘프들이 머물고 있다고 하니.’
엘프들 중 전사의 계급에 달하는 수호자들의 힘은 최소가 상급 유저였다. 기사에 달하는 힘을 부리는 자들도 적지 않다고 하니 그들이라면 이 많은 몬스터들의 저지선이 되어줄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몬스터의 숫자가 많네. 드워프들의 힘은 나도 익히 알고 있지만, 과연 이 같은 몬스터군단 사이에서도 무사할지가 의문일세.”
리트담의 그 말에 안 그래도 그것이 마음에 걸렸던 하얀 불꽃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안은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닌지라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그를 위로 했다.
“타 대륙의 드워프들이었지만 그들은 저마다 매우 용맹한 전사였네. 물러설 줄 모르는 황소를 보는 듯했고, 그 체력은 대단해 며칠을 밤을 새우며 싸워도 지치지 않는 듯했지. 그런 분들이니 이 위기도 무사히 넘길 것이네.”
야안의 그 말에 하얀 불꽃은 밀려오는 두려움을 애써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것입니다. 예전 붉은 나비 엘프 일족들과 함께 만든 마법 무기도 자리하니 무사하실 것입니다.”
스스로 그럴 것이라 되새기며 말하는 하얀 불꽃의 모습에 리트담은 이제 다 익은 오리 구이를 향신료와 소금을 뿌려 그에게 내주며 말했다.
“그래, 그럴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드시게. 만약 위기에 처하였다 할지라도 야안 님과 내가 한 몫 거들 테니 말이야.”
이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리트담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말을 건넸고, 하얀 불꽃은 그런 그의 모습에 미소로 답하며 내어 주는 오리 구이를 받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저 멀리서 본 몬스터들이 다가오다 나무 위에서 뛰어내린 어떤 괴수에 의해 몰살을 당했다.
모든 몬스터를 해치워 버린 괴수는 그르릉 거리며 다시금 조금 전 자신이 있었던 나무 위로 그 모습을 옮겼다.
야안과 리트담은 식사를 마치자 곧 주술에 대한 교류가 이루어졌다.
하얀 불꽃은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 야안이 그에게 호신용으로 빌려 준 작은 단검을 손으로 매만지고 바라보며 위대한 장인의 호흡을 눈에 익히는 연습을 하였다.
이 주술의 교류는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를 통해 그들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이다.
야안이야 본래 이방인의 재능을 지닌 데다 현자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이였다. 더구나 위대한 주술사의 경지를 다시금 넘어선 주술사가 성심을 다하여 가르치고 있었으니 당연히 빠르게 성장하지 않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리트담의 성장 속도 또한 야안에 못지않은 것은 놀라운 일인데, 사실 그것은 어떻게 본다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리트담은 이미 무의식과 의식의 소통을 할 수 있는 자이다. 무의식을 의식의 수준까지 올릴 수 있었으니, 그의 머리는 마음만 먹는다면 현재 진리의 길을 걷는 이들 중 가장 높은 경지에 오른 하늘 산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물론 그만큼 뇌에 무리가 있는 일이기에 오랫동안 지속할 수 없지만, 그가 하고자 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니 그는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들여 야안이 가르치는 주술 제국의 황가의 주술을 빠른 속도로 익히는 것은 당연하다.
아니, 이미 주술로 대단히 높은 경지에 올라온 그였으니만큼 그는 야안의 이야기를 듣는 즉시 그 주술의 핵심에 다가갈 수 있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는데, 리트담의 경우는 하나를 가르치면 백을 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야안도 리트담의 받아들이는 상태가 어떠한 것인지 잘 알았기에, 최대한 요점을 잡아 핵심적인 것으로 축약하여 알려주니 그 방대한 주술의 지식임에도 어느새 진체의 술을 가르칠 시간이 다가왔다.
리트담은 앞의 물, 불, 땅, 바람의 술에 대해서도 감탄을 하였지만, 진체의 술에 들어가자 그의 놀라움을 끝이 없었다.
‘이것이 이 주술의 핵심이구나.’
그는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앞의 네 가지의 술은 이 진체의 술을 받히는 역할에 불과했다. 아니, 이 진체의 술에 다가가기 위한 도구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진체의 술은 과연 전설의 현자 자이웅이 그 토대를 만들고 그의 후손들이 갈고 닦아던 만큼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주술이었다.
당시 더 이상의 발전을 하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의 주술이라면 이 주술을 다시 진화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의 경지에 올라선 그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직감하였고, 예전 야안에게서 이 주술에 대해 들은 자이한 또한 그러했기에 이를 합치려고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만큼 두 주술의 궁합은 매우 뛰어났다.
한데, 자이웅과 리트담의 그 합친다는 것 안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바로 리트담이 수백 년의 시간마저 뛰어넘는 희대의 천재라는 점에 있었다.
리트담의 주술의 모든 것은 그가 리케하르산이 남긴 주술과 샤 대륙에서 얻게 된 위대한 주술사의 유물을 연구하면서 얻고 만든 함루어에서 시작된다.
야안을 만나기 전의 그의 함루어는 완전하지 않았다. 단순히 언어를 만든다는 개념을 넘어 마치 절대적인 의지를 가질 수 있는 언어를 만드는 것이 그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데, 야안에게서 리트담의 저서를 받게 되면서 그 자신이 말년에서야 완성한 리트담의 함루어를 그는 손에 얻게 되었다.
사실상 그가 그의 후손에게 내어 준 리트담의 함루어는 그 수준에 맞게 낮은 차원으로 개량한 것에 불과하다.
리트담의 저서의 이야기가 그처럼 다양하면서도 극적인 이유는 그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의지를 확고하게 잡아 이 본래의 리트담의 함루어를 받아들일 준비를 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만큼 주술은 자신의 의지가 확고할수록 그 효과가 뛰어나다.
예전에도 이야기한 바, 리트담이 생각한 절대 의지는 결코 보통 사람들의 상식에 있지 않다. 아니, 스스로 천재라 자부하는 자들이라 해도 그의 뜻을 알기 어려울 것이다. 그 격이 다르다는 말이었다.
마법에도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체내의 기운을 이용하여 질서의 진리를 수식으로 바꾸어 임의로 체외의 기운을 옮기기 위해서는 그 주가 되는 자신의 의지는 확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현자는 진리의 길을 탐하며 그 의지를 확고하게 세우는 것이다.
이를 하지 못하고 무리한 마법을 펼치다 실패할 경우 그의 의지는 대자연의 의지에 녹아버리고, 육체는 체내와 체외의 기운을 구분하지 못해 크게 쇠약해지거나 통제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린다.
하니 현자들은 진리의 길을 걷고 진리를 얻기 위해 수많은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다.
태초부터 내려오는 진실. 그 진리의 길만큼이나 의지를 확고하게 만드는 것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것은 체내의 기운을 완벽하게 다루는 검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야안의 뇌전검법을 그 예로 잡으면 알기가 쉽다.
야안의 뇌전검법은 검강에 7가지의 념을 임의로 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그로 인해 검강의 구의 안에 자리한 그 순간부터 마음이 가는 대로 그 기운을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트담의 함루어가 결정적으로 큰 계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신관의 신성 마법 또한 의지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판단하면서부터였다.
그 발상은 정말 놀랍다. 이는 그 생각을 연장한다면 인간이 신과도 같은 힘을 자유자재로 발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아니, 좀 더 나아간다면 인간이 신과 같은 불사의 존재가 되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다시 이야기하자면 신성 마법은 기이한 면이 있다. 주변의 마나를 활용하는 것도 아니다. 몸에 무리가 오는 것도 아니다. 리트담의 생각처럼 의지라 할 수 있는 순수한 바램만으로도 신성 마법을 펼칠 수 있다.
이 점은 현자들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점이었다. 무언가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가 있게 한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
한데 리트담은 그 힘이 인간의 뇌에서 흘러나오는 것으로 판단했다.
리트담이 말하고 추구하는 절대의지란 이런 것이었다.
그는 리트담의 저서에서 이 힘을 얻었을 때 그 자신이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그 절대의지를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신의 언어에 한없이 가까운 함루어를 만들 수 있었지만, 그것이 한계였고 더 이상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그렇게 그는 머릿속으로 인정하면서도 결국 마지막까지 그 가슴으로는 인정하지 못했다.
한데 그에게 자신의 주술을 다시 진화할 수 있을 주술이 모습을 보였다. 자신의 주술 못지않게 그 격이나 완성도가 높았으며, 마치 짠 듯이 궁합조차 뛰어났다.
그러니 그로서는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절대의지가 자리한 주술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르니 말이다.
아니, 그때가 되면 그것을 주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