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69화
“왕이 그처럼 쉽게 모습을 보여주어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야안에게 농을 보이던 유피테르는 자애가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의 앞에서 예를 보이는 정령들을 바라보았다.
유피테르가 모습을 보이자, 이내 수많은 정령이 계약자인 엘프들로부터 벗어나 먼저 예를 차리고 있던 정령들의 뒤로 자리를 잡았다.
숫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졌고, 곧 몇만에 달하는 정령들이 스스로 빛을 보이며 유피테르의 눈앞에 자리하였다.
그 장관에 엘프들은 물론이고 드워프마저 절로 경건한 마음을 가질 정도였다.
유피테르는 이처럼 많은 자신의 백성들을 만나는 것이 오랜만인지라 그저 흐뭇하게 이들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왕의 부재에 고생이 많도다. 언젠가 이 모든 일을 끝내고 같이 할 수 있을 날이 올 것이니. 부디 그때 이 아쉬움을 함께 나누어 보리라.”
그러며 유피테르는 야안에게 고개를 돌렸고, 야안은 유피테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 나의 계약자 야안의 도움을 받아 그대들에게 치하하노니 그대들은 이로써 아쉬움을 달래기 바란다.”
하며 유피테르가 손을 내밀자, 푸른 번개가 거대한 구를 형성했고, 그곳에서 한줄기의 뇌전이 정령들을 꿰뚫었다.
뇌전에 꿰뚫린 정령들은 저마다 그간 지쳐 있던 힘을 회복하였을 뿐 아니라, 중급 정령 이하의 정령들의 경우는 새로운 각성의 계기를 얻기도 했다.
무려 수만에 달하는 정령들이었지만, 유피테르는 끝도 없이 왕의 권능인 축복이 담긴 뇌전을 방사하였다.
그에 소모되는 정령력은 무시무시할 정도였지만, 그간 상당한 스탯을 쌓아두었던 야안이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언제나 부족한 자신을 묵묵하게 뒷받침해 주는 친우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으로도 야안은 충분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소리도 없이 번쩍이며 수 만발의 뇌전을 뿜어대는 모습에 그 자리에 있던 엘프들은 저마다 경의를 보냈다.
정령의 왕이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대한 현실감이 그제야 생긴 것이다.
특히나 그 경의를 표하는 엘프 중 그 경지가 낮을수록 그 마음은 컸다.
그들 중 몇몇은 이 왕의 축복으로 인해 다음 경지에 들어서기도 했는데, 그만큼 엘프들이 정령과 궁합이 좋았기에 생긴 일이기도 했다.
야안의 뒤에서 이 기적 같은 일을 바라보던 리트담도 절로 고개를 숙였고, 드워프들 또한 위대한 왕의 모습에 잠시 목례를 보였다.
10타(10분)도 걸리지 않아 그 모든 정령에게 축복을 내렸던 유피테르는 고생한 야안에게 작게 목례를 보이다 이내 정령들에게 손을 저었다.
그러자, 왕의 뜻을 알았던 정령들은 저마다 몸을 조아리며 인사를 올리고는 곧 자신과 계약한 엘프들의 몸속으로 자취를 감춘다.
하이 엘프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세월을 지냈던 바람의 정령을 다스리는 푸른 풀은 옛 문헌에서 정령의 왕에 대한 것을 기억하고는 야안이 어떤 존재인지 인지하였다.
“전설의 현자. 그가 나의 대에서 모습을 보이다니.”
자신을 아는 푸른 풀의 모습에 야안은 다행이라 생각을 하였다. 그 자신을 증명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여 도움을 청하는 데 생기는 어려움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곧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야안은 이미 드워프들의 족장에게 증명을 하였던 것을 엘프들에게 보일 수 있었고, 그에 엘프들은 유피테르에게 보였던 경의에 못지않은 경의를 그에게 보냈다.
그 지닌 놀라운 경지는 둘째라 하더라도, 그같이 희생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들 중 절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 숙연함을 끝낸 것은 다름 아닌 저 멀리서 울리는 경종 소리였다. 잠시 주춤하던 몬스터들이 이 저지선을 뚫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쿠구구구궁-’
대지는 지진이 일어난 듯 크게 떨리기 시작했고, 조금 전 유피테르의 등장에 모였던 엘프들은 저마다 자신의 자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은 야안과 가장 가까이 있었던 하이 엘프들도 마찬가지였다. 드워프들은 저마다 마을에서 가져온 포신들을 꺼내어 성에 설치하기 시작했고, 그 외의 드워프들은 망치를 들어 성에 지지대를 세우기 시작했다.
급한 대로 성의 방어력을 올리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야안과 리트담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몸을 날렸다. 곧 지금까지 보지 못한 강철 괴물 일곱과 다섯 괴수가 모습을 보이며 몬스터 진형을 가르기 시작했다.
그 뒤를 이어 두 존재가 몬스터들을 크게 어지럽히는 모습을 보이었는데, 그 위용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전장을 책임지던 엘프 초인들조차 순간 넋을 잃을 정도였다.
리트담은 야안이 알려준 진체의 술에 대해 그동안 놀라울 정도의 진보가 있었다. 야안이 이틀 전 그가 배웠던 진체의 술의 전수가 끝이 나기 무섭게 그는 말 그대로 한 보 한 보 크게 진보해 나갔다.
그의 황가의 주술은 마치 틀니바퀴들이 정교하게 교정을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앞서 네 개의 주술은 진체의 술에 교묘하게 맞추어 들어가기 시작했고 그것이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미 정점에 자리한 산에서 내려다보는 리트담이었기에 이 복잡하게 꼬인 회로들을 어렵지 않게 조립할 수 있었다.
물론, 아직 함루어를 이용한 자신의 주술과 제국의 황가의 주술을 하나로 통합하지는 못했다.
그도 처음에는 그 과정에서 둘을 합치려 했으나, 아무리 궁합이 좋다고 해도 이미 상당한 완성을 보인 황가의 주술을 마음대로 들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자치 이 두 개의 주술의 장점을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하여 그는 황가의 주술에 정점에 올라선 뒤에야 이를 시도할 생각이었다. 현재 그의 황가의 주술 수준은 위대한 주술사 수준에 올라서 있었다.
하기에 그는 예전 겨우 4마리의 강철의 괴물을 일으키는 것이 한계였다면 지금은 그 두 배에 달하는 7마리의 강철의 괴물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일으킬 수 있었다.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다. 황가의 주술을 위대한 주술사 수준까지 끌어올리자, 황가의 주술의 원리를 상당 부분 파악하게 되면서 그는 함루어로 자신이 일으킨 강철의 괴물은 물론 야안의 괴수까지 강화시켰다.
아니, 강화라기보다는 아예 진화를 하였다는 말이 더 맞을 터였다.
지난 강철의 괴물이 상급 익스퍼트 검객의 수준을 넘어 초대형 몬스터의 수준에 달했다면, 한층 강화된 강철의 괴물은 초인에 가장 준하는 도칸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면 될 터였다.
도칸의 경지에 이른 오크 두 마리라면 웬만한 초인을 상대할 정도였으니 그것으로 이들의 수준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앞서 이야기하였듯 변화는 강철의 괴물만이 아니었다. 야안의 주술에 일어난 5마리의 괴수 또한 진화하였다.
야안이 ‘카라’와 ‘토네’를 걸고 고위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선 깨달음으로 한층 강화시켰던 괴수의 수준이 중급 익스퍼트 검사의 실력이었다면 이번 진화로 괴수는 상급 익스퍼트 검사와도 크게 밀리지 않을 힘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 말은 야안과 리트담이 따로 전장터에 모습을 보이지 않더라도 4.5명에 달하는 초인이 전장에 돌입했다는 말과도 같다.
상급 익스퍼트 다섯이면 초인 하나를 견제해볼 만했으니.
하지만, 정작 엘프 초인들이 놀라워하였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바로 리트담과 야안이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생긴 전장의 변화였다.
리트담의 주술은 하이 엘프 들의 정령만큼이나 자유로웠다. 대지가 흐물거리며 몬스터들을 잡아먹기도 했으며 초고온의 불꽃들이 대지를 가르며 몬스터들을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그 크기가 10미터에 무게 또한 20톤은 족히 넘을 투박한 손들이 대지에서 일어나 주위의 몬스터들을 터뜨려 버리기도 했으며, 그의 손짓에 수백 개의 바람 칼날이 전장을 어지럽히기도 했다.
너무도 괴기한 그의 주술에 백만이 훌쩍 넘는 몬스터 대군들조차 순간 주춤거릴 정도였다.
야안은 어떠한가? 그의 몸에서 나온 유피테르는 조금 전 정령에 스탯을 올리면서 한 층 강화된 뇌전을 촘촘하게 짜인 그물 형태를 보이며 전장에 뿌려댔다.
유피테르의 뇌전은 천적의 기운이라 닿기 무섭게 몬스터들은 오물을 지르며 죽거나 큰 중상에 빠졌으며, 그 와중에도 그는 야안이 펼치는 신마법들을 도와주었다.
이제 현자 익스퍼트에 올라서면서 야안 또한 새로운 대마법을 펼칠 수 있게 되었는데, 바로 마단테라는 마법이었다.
이 마법은 야안이 앞서 펼쳤던 대마법과는 그 차원이 달랐다. 극점의 불과 극점의 얼음을 융합시켜 펼치는 마법으로, 자칫 잘못하면 사용자의 신체에 부담이 가는 마법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야안에게 통용되지 않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검으로 이미 초인의 끝자락을 달리는 야안에게 그 정도의 신체적 부담은 충분히 감당할 만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힘이 내재되어 있건만, 야안은 거기서 유피테르의 도움을 받아 신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펼쳐진 마단테의 위용은 경악스러움 그 자체였다.
‘쿠구구구궁.’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진 듯 야안의 손길에서 떨어져 나간 마단테는 그에 부딪히는 모든 몬스터들을 지워내었고, 그것이 어느 한 기점에서 폭발하자 일순간 반경 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폭발이 그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일어난 변화는 그 자리에 존재하던 몬스터들의 완전 분해였다. 그 마법의 위용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위에 자리한 몬스터들 또한 팔다리가 없거나 기형적으로 몸이 녹아내리기도 했다.
거의 400~500미터 반경안의 몬스터들이 전투 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 마법은 야안에게도 상당한 마나 소모가 있었기에 몇 번 펼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지만, 충분히 그 대가를 치를 만 했다.
말도 되지 않는 거대한 힘이 모습을 등장하자 몬스터들의 그 굳건했던 진열이 그제야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야안은 그를 시점으로 검에서는 검강을 일으키고, 축지술을 걸음에 담으며 한 손으로는 신마법들을 펼쳐 보이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절대자의 행보를 감히 막는 존재는 없었다.
초대형 몬스터들이 중간에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여지없이 야안의 신마법에 몸이 꿰이고, 그 뒤에 밀려오는 검강에 몸이 날아갔고, 야안의 발이 크게 나아갔을 때야 그 육중한 몸이 무너져 내렸다.
순간적으로 그 놀라운 위용에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검강을 일으키며 몬스터들을 막아서던 붉은 나비는 할 말을 잃었다.
그의 검만을 떼어 놓고 본다고 해도 상대하기가 두려울 지경인데, 그 못지않은 힘들을 선보이니 그야말로 전장의 무법자라고 해도 무방할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