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78화
‘파아아앙-’
상식적이라면 그 거대한 뱀의 불꽃에 손이 녹아 내려버리는 것이 정상이겠지만, 그 결과는 달랐다.
요란한 공기 파장과 함께 요사스럽게 대기를 어지럽히던 검은 지옥의 불꽃이 무중력 속에서 거짓말처럼 사그라진 것이다.
단 한 번 손짓으로 검은 지옥의 불꽃을 이루던 의지를 끊고, 마나의 흐름은 물론 공기를 차단한 것인데, 오직 함루어를 완성한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효율적이면서 간단히 마법을 타파하는 그의 주술은 괴기함으로 따지자면 리치들이 펼치는 어둠의 마법보다 더 괴기했고, 더 효율적인 파괴를 지양했다.
거기에 황가의 주술인 진체의 술로 그는 그 자신의 존재감을 지우며 다시 거대 스케렐톤들을 지우기 시작하니, 일순간 그의 근처에 있던 전장의 모든 존재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아니, 그 기척도 존재의 의의도 느껴지지 않건만. 믿어지지 않는 거대한 힘이 자신들을 휩쓸고 있으니 약간의 이성을 가진 불사 군단도 주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마지막 거대 스케렐톤을 지우던 그는 리치왕 케르몬이 펼치는 막강한 암흑 마법에 결국 모습을 드러냈지만, 역시나 주술로 그것을 되받아치듯이 그 마법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이는 리치왕 케르몬이 주술에 대한 힘을 파악하지 못하는 데 생겨난 이점인데, 만약 만 년 전 주술이 크게 성행하였고 그를 그가 상대해본 경험들이 있었다면 리트담이 이렇게 쉽게 벗어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리트담 또한 그 점을 잘 알았기에, 처음 보여준 몇몇의 주술을 제외하고는 마치 마법같은 형태로 펼치며 그의 눈을 속인 것이었다.
[붉은 노을이여. 그 분노를 저 자에게.]
리트담의 말에 붉은 노을 또한 그 위대한 용맹을 잠시 멈추고는 곧 리치왕 케르몬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 앞을 막는 모든 것을 깨부수면서.
[저와 붉은 노을이 길을 열겠습니다.]
야안 또한 단번에 리트담이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리트담의 그 깊은 심계에 감탄을 하며, 부족해진 신력에 스탯을 채워 올렸다.
단번에 3스탯이나 올라가면서 15스탯이 깎여졌지만, 이미 노리고 있는 바가 있던 야안은 거기에 멈추지 않고 다른 스탯 또한 15스탯을 찍어 올렸다.
다행히 그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던 리치왕 케르몬의 마법이 리트담에게로 나뉘어 흩어지면서 그는 조금이나마 틈을 잡아낼 수 있었고, 그것은 곧 그가 준비한 하나의 마법을 펼칠 틈을 만들어 주었다.
마법공식도 없었다. 그저 마음속으로 간절히 그 한 마법을 불렀을 뿐이다.
‘바란탄-’
지금의 그라도 열흘에 단 한 번 쓰는 것이 가능한 신성 마법이었다. 그가 아는 신성 마법 중 유일한 공격마법이기도 했다.
이 바란탄은 신성 마법의 물리적인 공격 마법의 한 형태로 정화의 불을 일으킨다. 한 번 붙은 정화의 불은 죄악이 사라지기 전까지 꺼지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다만 초인 앞에서는 그 힘이 미약하다는 것이 단점인데, 그에 하나의 의외가 자리한다. 바로, 사마의 존재에 한해서는 그 힘이 배가 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 존재가 사마에 가까울수록 그 위력이 강력해지는 마법이기도 했는데, 실상 이 바란탄 마법은 인간들이나 이종족들, 또한 몬스터라 해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존재의 부정에서 만들어진 악마에게 치명적인 힘을 발휘한다.
실제로 만 년 전, 이 마법을 펼칠 경지에 오른 아홉 명의 신관들은 악마를 상대했을 때 초인들보다 더 큰 도움이 되었다.
바르고 옳은 것이 삿되고 틀린 것을 제압하는 것은 진리였으니.
서로의 극에 달한 것이 만나니 이 바란탄은 마치 드래곤의 대마법 이상으로 큰 힘을 보여준 것인데, 실제 이 마법에 곤욕을 치른 악마가 한둘이 아니었다.
악마 중에서도 상위의 위치한 리치왕 케르몬 또한 한 차례 물러설 정도였는데, 그는 야안이 신성 마법을 펼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바란탄을 쓸 수 있을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실제 바란탄은 신관들이 가장 많았을 때에도 이를 펼칠 수 있는 자가 열 명이 넘지 못했다.
아리스의 종으로서 그만큼의 신력을 받기도 어렵거니와, 이를 펼치려면 한 가지 조건이 더 충족되어야 했다. 바로 체내의 기운이 무형으로 발산되는 경지에 올라서야 하는데, 이 경지는 익스퍼트 급의 기사라는 말과도 같다.
하니 그 말은 아리스의 종이면서도 천에 하나 있을 검의 재능을 지닌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과도 같다.
그 두 확률이 겹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구나 그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육체의 전성기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그 시간을 투자하면서 아리스의 뜻을 이어받는 일을 행하기 위해 떠돈다는 것은 얼마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인가?
하니, 정확히 야안을 파악한 그는 겨우 서른 정도의 나이로 바란탄을 펼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했다.
검, 마법, 주술, 정령과는 달리 신성력은 끝없는 헌신과 신뢰를 보여야지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순히 홀로 노력한다고 하여 짧은 시간에 완성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한데, 그의 예상은 틀렸고 그는 그 한순간의 방심으로 처음으로 큰 피해를 보아야 했다.
‘화르륵!’
투명한 거대한 불꽃이 그의 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꿈틀거리는 그의 암흑 망토조차 이 투명한 거대한 불꽃은 차마 떨치기 어려운 듯 조금씩 조각조각 나기 시작했다.
리트담은 그 펼쳐진 거대한 불꽃이 야안의 숨겨진 한 수인가 했지만, 야안의 모습을 보니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신성력을 소모한 야안은 이미 무언가를 다시 준비 중이었고, 그에는 시간이 필요함을 알았다.
“그 시간은 제가 벌어드리지요!”
그는 크게 일갈하듯이 말하고는 이내 하늘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펼쳐지는 그의 힘은 상상 그 이상의 것이었다.
한 번에 거대한 주술 세 가지가 그의 손길에서 터져 나왔다. 조금 전 불사의 군단을 유린하던 존재의 의의를 지우던 주술과 중력의 술. 리치들을 스스로 폭사하게 했던 주술이 한꺼번에 펼쳐진 것이다.
당연 그 상대가 상대인 만큼 앞서 펼쳤던 주술과는 그 격이 달랐다.
그 존재의 의의를 지우는 반짝이던 그것은 더 현란 찬란한 빛을 발했고, 중력은 천배에 달해 리치왕 케르몬이 자리한 공간을 일그러뜨렸다. 마지막으로 펼쳐진 마나의 방해공작은 더욱 고차원적이라 설사 고위 현자 익스퍼트라해도 마법을 펼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리 리트담이라 해도 이 거대한 주술을 한 번에 세 가지나 풀어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에 풀어낸 것처럼 보이게는 할 수 있었다.
“우선 5배!”
일갈하는 그의 말은 마치 하나로 축약되어 들리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랬다. 그는 단 시간에 자신을 이 경지에 올린 주술을 펼친 것이다. 인지를 속여 주위의 시간을 느리게 느끼도록 하는 주술을 펼친 것인데, 사실 앞서 말했듯이 이 주술은 그가 반년이 지나야 펼칠 수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지금처럼 하다가는 진정이 되었던 뇌가 큰 위험에 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 전쟁에서 이 위대한 분을 잃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그는 만약을 위해 주술로 자신의 머리를 보호하였지만, 과연 얼마나 버틸지 알 수가 없다. 본래의 주술대로라면 100배로 올렸겠지만, 그것 자체가 불가능한지라 이처럼 차근차근 올라설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 주술을 펼침으로써 그는 마치 세 개의 주술이 한 번에 펼쳐지는 것 같은 신기를 보여주었다.
현재 대륙에 자리한 어떤 초인이라 할지라도 리트담의 그 같은 세 개의 주술의 조합이라면 큰 고역을 치렀을 것 일만큼 그의 주술은 위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상대가 나빴다.
리치왕 케르몬은 바란탄의 불길에 뒤덮였음에도 어렵지 않게 대마법을 펼쳐 보였다. 아무리 상극에 달하는 신성 마법 바란탄이라 할지라도 리치왕 케르몬의 어둠의 망토는 쉽사리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과연 죽음의 현자라는 말이 걸맞게 그의 대마법은 모든 것을 파괴하던 존재의 의의를 지우던 반짝거리는 주술을 몇 개의 마법을 조합하여 간단히 지워버렸고, 중력의 역장을 일으키는 마법을 중첩해 펼쳐 그의 마법을 막았다. 마지막으로 마나를 어지럽히던 주술은 그저 간단히 그 뼈만 남은 손가락으로 휘젓자 본래의 마나의 흐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너무도 허무하게 지워진 그 위대한 주술이 허무할 만도 하건만, 리트담은 이런 것은 이미 예측했다는 듯 조금의 흔들림 없이 일갈을 흘린다.
“10배!”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가 싶더니 이내 여섯으로 나뉘어 주술이 펼쳐진다. 진체의 주술을 극에 달해 펼친 것인데, 그 여섯으로 나누어진 리트담이 동시에 주술을 연계하듯 펼쳐 보인다.
그것은 그 자신에게서 받은 주술 중 가장 위력적인 힘을 지닌 육망성의 주술이었다.
본래는 하나의 몸으로 펼쳐야 하는 것으로 그 발동의 시간이 크지만, 진체의 술로 여섯으로 나누어진 그는 빠르게 육망성의 주술을 펼쳐 보였다.
이 주술을 육망성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두 개의 정삼각형이 서로 엇갈려 형성된 별 모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육각형에서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 흐름이 나타나는 데, 리트담은 여러 가지 시험 끝에 그 사실을 깨닫고 이 주술을 만들었다.
과연 주술이 연계되면서 그 안에 자리한 리치왕 케르몬의 대마법들이 별다른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라졌다.
하지만, 그도 잠시 리치왕 케르몬은 그에 대응하여 역 오망성을 만들어 보였다. 목, 화, 토, 금, 수 순이 아닌 그 기운을 역으로 돌려 그 속에서 대마법을 펼쳐 보인 것이다.
“20배!…….23, 28.”
그 역 오망성에서 터져 나오는 대마법에 육망성이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자 리트담은 급하게 인지의 주술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말조차 하지 못했고, 코와 눈, 귀, 입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붉게 달아오른 그의 얼굴은 혈관이 팽창하며 마치 터질 것 같은 형상을 보인다.
악귀.
악마를 상대하기 위해 악귀가 된 리트담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한계라 생각한 50배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쾅쾅쾅. 콰가가강. 쿠구구궁-’
리트담과 리치왕 케르몬의 무시무시한 접전이 일어났다. 그 모습은 힘과 힘의 싸움 바로 그것이었다.
이도 그나마 야안이 펼친 바란탄에 의해 리치왕 케르몬의 마법 발현이 방해되어 가능한 싸움이었지, 아니었으면 인지의 주술을 펼치는 리트담이라 해도 이미 크게 밀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