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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288화 (288/385)

야안 288화

거대한 세력으로 통합된 북부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북부의 주인을 잃은 수많은 영지에 새로운 이가 영주로 올라서게 되었고, 영지를 어지럽히던 간신들과 무뢰배들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무거운 노역을 지게 되었다.

모든 영지민이 이 새로운 바람에 크게 기뻐한다.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망가진 논과 밭으로 인해 물가가 치솟아 오르던 식량 또한 지난 라 대륙과 교류하며 비축한 식량이 풀어지면서 안정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지독한 난세를 겪어야 했던 그들은 셀리온 공작 가의 베풂에 칭송을 멈추지 않았으며 군에 들어서려는 지원자가 매우 늘어났다.

셀리온 공작 가의 등용문은 그 사람 됨됨이만을 볼 뿐, 배경 따위는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도 그 지원자가 늘어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북부를 주 배경으로 삼던 많은 용병 또한 이 떠오르는 새로운 신진세력이 전망이 밝음을 알고, 야망을 품고 군에 들어서는 자가 적지 않았다.

오직 실력과 지휘능력에 따라 기사가 되거나 지휘관으로서 자리를 잡자, 그 소문을 들은 많은 용병이 입대를 하기 시작했는데, 대용병단의 경우 그 특성의 이점을 살리기 위해 새로운 병과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렇게 북부에는 수많은 변혁이 시도되고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혁이 일어나는 곳은 다름 아닌 북동쪽에 자리한 지난 날 쿠락 영지로 불리던 바르 영지였다.

이 바르 영지는 본래 지난 날 전략적인 면에서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북부의 10%에 달하는 자금이 이곳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르 영지와 이웃한, 지난 곤도로 인해 버려졌던 드넓은 초원이 태양 종족을 중심으로 카사 족과 비족, 도론 종족과의 연합 세력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드넓은 초원의 크기는 작은 왕국을 상기할 정도였으며, 최근에는 일부의 드워프와 엘프들이 합류하게 더욱 견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들의 거래 주 물품은 에렌 산맥에서 터져 나오는 엄청난 양의 몬스터들의 부산물들과, 손재주가 뛰어난 정교한 예술품들, 비족에게서만 얻을 수 있는 샤린이라는 마법 재료. 마지막으로 도론 종족이 만드는 푸른 진주였다.

이 모든 물건이 인간들에게 있어 엄청난 값을 받을 수 있는 고가품들이었으니, 그 엄청난 재물이 오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 거래되고 있는 자금이 그렇다는 것이고, 이후 드워프들과 엘프들 그리고 그 이외의 종족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면 이 시장은 몇 배로 더 커지게 될지 짐작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해상 무역을 더욱 발전시켜 지금은 제국에서 가장 큰 해상 무역을 운영하게 된 셀리온 공작 가는 이 거래된 물자를 더욱 큰 이득으로 얻고 있는 실정이다.

늦은 시간.

해가 져 어둠이 잠긴 바르 영지는 마법등에 의해 불이 밝혀지며 활기를 더해가고 있었다. 골목에 모여 노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가 여기저기 자리했으며, 일과를 마치고 모인 선술집에서 왁자지껄하는 웃음소리가 거리 저 너머까지 들려온다.

야시장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상인들이 거래를 하기 바빴으며, 이종족들이 인간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시고 잡담을 나누었다.

대부분의 거래는 눈치가 빠르고 그나마 많은 물자거래를 했던 도론 종족이 나서 다음 물품의 양을 결정했는데, 예전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그 모습이 그토록 자연스러울 수가 없다.

늦은 밤에도 초원에서 오는 성문은 잠기지 않았다.

지난 곤도와 몬스터 대군들을 잡으면서 얻은 부산물이 엄청난 터라 아직도 다 정리되지 못했던 탓인데, 곧 이십 대에 달하는 거대 상행이 저 멀리서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많은 거래를 하고 있는 바르 영지에서도 좀처럼 볼 수 없는 대상행이라, 많은 이들이 웅성거린다.

간단한 절차를 통해 이들 대상단은 바르 영지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확실히 이번 대상행은 지난번과는 여러 가지 점에서 달랐다.

우선적으로 이들을 호위하던 이종족 전사들의 수준이 높다는 것인데, 그들 중에서 보기 힘든 태양 종족의 대전사가 자리를 하여 그 놀람을 크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다른 다섯 종족이 자리한다는 것인데, 카사, 도론, 비족 뿐만 아니라, 드워프와 엘프도 소수이지만 자리를 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자리한 물건들 모두가 보기 힘든 최상품이라는 점이 있다.

하지만 가장 다른 점은 이번 대상단의 물자는 거래를 위한 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상인이 아쉬움에 떨어야 했다.

네 번째에 자리한 화려한 형태의 마차에 자리를 한 야안과 리트담은 난세의 영지라고 믿어지지 않는 바르 영지의 그 활기찬 모습에 적지 않게 감탄했다.

셀리온 공작의 그 뛰어난 능력을 이미 알고 있던 야안은 그래도 지금의 이 활기찬 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으나, 바 대륙의 슬픈 상황에 처한 많은 영지를 보았던 리트담으로서는 그 감탄사가 쉽사리 떠나질 않았다.

그 또한 대귀족의 자제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은 만큼 이런 영지를 만들어 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기 때문이었다.

“놀랍습니다. 이것만을 보아도 왜 야안 님께서 셀리온 공작 가를 높이 평가하는지 알 것 같군요.”

“저 또한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능력을 보일 줄은 상상치 못했습니다.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북부를 통합하고 이처럼 큰 시장을 만들어 내다니. 그만큼 지난 세월 셀리온 공작 가가 이곳 북부에 얼마나 신뢰를 높이 쌓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무로딘 산맥이 정리되자 야안과 리트담은 약속했던 바대로 초원에서 자리를 잡을 드워프 종족과 엘프 종족들과 함께 이곳에 내려왔다.

이후 연합을 맺는 것을 도왔으며, 이제 적지 않은 재물을 기반으로 이곳 셀리온 공작 가와 동맹을 맺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바르 영지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이 거대 규모의 사신단을 막는 존재는 없었다.

다섯 종족이 함께한 이 사신단을 호위하는 이만 해도 일천에 달하였으니 아무리 군기가 풀어진 경비병이라 해도 쉽게 통과시키지 못하는 게 정상이나, 야안이 보인 패에 모두가 군말 없이 성문을 열었다.

아니, 성문을 열었을 뿐만 아니라, 기다리고 있던 그 영지의 최고 책임자가 와 직접 그들을 모시었으며 별다른 소란을 없애기 위해 따로 군인들과 안내인을 붙이는 모습마저 보이었다.

그랬다.

야안이 보인 패는 지난 셀리온 공작이 그에게 준 셀리온 가문의 기호가 그려진 미스릴 패로 그 권한은 셀리온 가문의 직계에 못지않은 권한을 부여하는 귀물이다.

북부의 패자인 직계라 하면, 왕국의 왕자와도 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니, 미스릴 패가 세상에 모습을 보인 것은 그 긴 역사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이 같은 태도는 지나친 면이 자리하는데, 그 사정을 알면 그렇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난 북부를 제패한 셀리온 공작이 내린 특별한 지시가 있었다.

바로 미스릴 패를 가져온 자를 자신을 대하듯하라는 것인데, 그 명령이 떨어지기 얼마 되지 않아 그 패가 모습을 보였으니 이들의 태도가 각별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덕분에 야안이 자리한 사신단은 별다른 마찰 없이 셀리온 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셀리온 공작이 다스리는 것만큼 셀리온 영지의 군기는 어느 곳보다 엄격했다. 마치 날이 선 칼날 위에 올라선 듯 일말의 긴장감이 자리했고, 그들은 다른 영지와 달리 야안이 속한 사신단들과 그들이 가져온 물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았다.

남문을 담당하는 경비대장은 이상의 흔적이 없자 예를 갖추어 야안에게 사과를 보였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실례했다 하였으나, 그는 이 자리에서 당장 죽음을 맞이해도 똑같은 행동을 보일 것 같았다.

‘고지식한 인물이군.’

셀리온 영지 남문의 중요성을 잘 아는 자이다.

많은 문물이 이곳을 통해 오는 만큼,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하지 않다고는 하나 그는 과한 점이 있다.

하나 그에 앞서 고지식한 성정만큼이나 사내의 실력은 나쁘지 않다.

아니, 이런 곳에서 경비대장을 하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실력자이다. 상급 익스퍼트 초입에 달하는 실력자가 고작 성문을 지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셀리온 공작 가가 거친 북부를 통합하면서 현재 아홉 기사단을 거느리게 되었다지만, 이만한 실력자라면 그 어느 기사단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해낼 터이다.

야안은 이해하기 어려운 터라, 기세를 살짝 보이며 물었다.

“당신 같은 실력자라면 충분히 중추적인 역할을 해낼 수 있을 듯 보이는 데 어째서 이곳에서 경비대장을 하는지 여쭈어도 되겠소?”

살며시 비추는 야안의 기세는 초인의 그것과도 같은 것으로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것이련만, 그는 눈 하나 깜짝이지 않은 채 말했다.

“저는 지난 전쟁에서 주인을 잃고 복수를 하려 세력을 모으다 셀리온 공작님이 일어서면서 그 복수의 대상을 잃고 말았습니다. 주군을 잃은 자가 어찌 기사라 할 수 있겠습니까? 본래 야인으로 떠돌려 했으나, 셀리온 공작 가의 그 어짊을 보게 되었으니, 결국 그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렇게 욕심을 내고 말았습니다. 그저 부끄러울 뿐이지요.”

야안은 그의 담담한 말투에 자리한 충심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난세, 신하가 모시는 주군을 베고, 군대가 도적이 되며, 약한 자는 가축보다 못한 신세가 되는 지금 이 같은 충정을 지닌 자가 있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충정만을 지녔던가? 그의 마음은 약한 자를 보호하는 기사도 또한 따르고 있었다. 그의 성정을 보아 그 마음먹은 것은 목이 떨어져도 꺾기가 어려울 것인데, 그는 셀리온 공작 가의 어진 정책이 난세의 백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알고 이를 돕기 제 뜻마저 꺾은 것이다.

야안은 자세를 고치고 그에게 몸을 숙여 큰 예의를 보이며 말했다.

“나는 베론 야안이라 하오. 그대로 인해 기사란 것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게 해주어 감사할 뿐이오. 다만 부디 그 마음을 더 열어 큰 뜻에 힘을 보태주시지 않겠소. 난세에는 그대 같은 자의 힘이 필요하오.”

이제 셀리온 영지의 남문의 경비대장을 맡은 제크는, 공작 가의 귀중한 손님이자 초인이기도 한 존재가 자신을 필요하다 하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른 자들과는 다르다.

말과 행동에 가식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 자신의 진심을 알아봐 주었기 때문인가?

제크는 잠시 눈을 감아 스스로 묻고 또 물었으나 소리 없는 메아리만이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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