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안 290화
하지만, 그런 계산으로 그를 맞이한다기보다는 야안 또한 터크만 공작이 느꼈던 것처럼 같은 검의 길을 걷는 자로서 그를 존중하여 행하는 일이었다.
긴 시간이 지나 숙소로 돌아온 야안은 스승이신 하늘 산의 서신을 열어보았고, 그는 그 서신에서 자신이 행하는 바를 위해 스승께서 애쓰시고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하늘 산은 단순히 바 대륙의 통일에 대한 도움만이 아닌, 자신과 뜻을 함께한 세 종족과 카르샤가 끌어 모은 세력의 일에도 여러 가지로 힘을 써 주고 있었다.
하늘 산은 마르닌의 깃털부족의 하이 엘프인 쪽빛하늘과 교류를 시작으로, 푸른 바위족의 대족장인 푸른 불꽃, 라토스 종족의 하얀햇살부족인 카무 대족장, 마지막으로 최근 고위 비기너 현자에 오른 카르샤까지 제국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원은 부족한 물류, 인맥 등이 주였으며 지금은 대형 몬스터들이 자주 출몰하는 바하스 강 근처의 평원에 지원 병력을 파견해주었다.
이로써 임시적인 회맹을 할 거처가 마련되었다.
이곳 평원은 라 대륙의 동북쪽에 자리한 암흑의 숲과 가까운 곳으로 카시 종족들과 마찰이 적지 않았지만, 어차피 이들을 몰아내고 이 숲을 차지해야 하는지라 그 같은 마찰 속에서도 꿋꿋하게 준비를 해내고 있었다.
카시족의 왕인 샤콜은 정령을 마스터한 쪽빛 하늘 정도의 실력자가 셋은 되어야 해 볼 만한 자로 야안이라 해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
물론 미숙한 전설의 현자의 직업 변환으로 인해 시간이 지나면 샤콜과도 해 볼만 상대가 될 것이다.
암흑의 숲의 몬스터들은 그 명성답게 매우 거칠고, 사나웠으며 또한 그 힘은 다른 곳의 몬스터들과 급 자체가 달랐다.
그것뿐이라면 십만에 달하는 라토스 종족과 마르닌의 깃털부족의 엘프들로서도 어려움이 없을 테지만, 문제는 그런 몬스터들을 카시 종족이 군대처럼 다룬다는 점이다.
그들이 보이는 병력의 수만 백만이 넘었으니, 과연 얼마나 많은 몬스터 대군이 자리할지 감을 잡기 어렵다.
그 어려움을 알았던 하늘 산은 지원 병력을 파견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공하기 쉬운 말케 재료 또한 넉넉하게 지원해 주었다.
중급 현자 비기너에 달하는 자는 되어야 가공할 수 있기에 지원 병력에는 엘프 현자들의 숫자도 적지 않았다.
과연 말케로 인해 무서운 속도로 방어선을 만들 수 있게 되어 더 이상 카시 종족도 이들을 쉽사리 위협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라, 제국의 지원 병력이 없고는 큰 피해 없이 막을 수는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들을 큰 위협거리로 느끼지 않은 그들의 태도인데, 하기야 카시 종족의 왕인 샤콜이 마음먹고 대군을 일으키면 말케 성을 끼고 싸운다 할지라도 결국 대패할 것이 분명하니 그들의 태도는 당연한 것이다.
그들이 이처럼 몬스터 대군을 일으켜 위협을 하는 것은 경계선을 긋는 행동을 뜻하는 것으로 이를 알았던 이들 연합은 한동안 고착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야안은 이제 몇 년 남지 않은 시간을 자신을 위해 쓰고 있는 스승의 태도에 목이 매 잠시 말문을 잃다 고이 서신을 접어 인벤토리에 넣어두었다.
‘못난 제자 때문에 스승님께서 고생이시구나.’
야안 또한 많은 제자를 둔 스승이라 하늘 산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제자는 그야말로 하늘이 맺어준 자식과도 같은 것이라, 자신의 살점을 떼어 주는 한이 있어도 그 곤궁함을 벗어나게 해 주고 싶은 것이니.
잠시 감상에 젖어들던 야안은 고개를 저으며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최근 들어 새로운 수련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네 개의 힘을 조합하여 가장 효율적인 파괴력을 보이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직업이 바뀐 이후 이제 유피테르의 도움이 없어도 정령과 마법을 함께 펼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 유피테르의 그 정교함에는 따라잡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만큼 유피테르가 다른 곳에 힘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얻는 이득은 상당하다.
마법과 정령, 주술과 마법은 궁합이 맞고 쓰기도 편했으나, 역시 가장 어려운 것은 주술과 검, 정령력과 주술, 마법과 검이었다.
이중 의외로 가장 힘든 것은 마법과 검으로 검기를 마법으로 푸는 것이나 마법을 검기로 푸는 것은 아무리 직업의 혜택을 받고 있어도 큰 어려움이 자리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러 가지 큰 혜택이 자리하는지라 야안은 이에 대해 고전하면서도 수련을 멈추지 않았다.
마법을 검기로 풀었을 때 그 위력은 엄청나다. 피스트 파이어나, 피스트 핑거 등도 대단한 위력을 지니지만, 이에는 미치지 못한다.
실상 검기를 펼치는 방식으로 마법을 손으로 펼치는 것은 그 집중적인 파괴력이나 효율이 높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마나의 손실이 있다.
모여든 마나의 50% 정도가 마법을 캐스팅 하는 사이 허공에 사라지는데, 이도 일반적인 방법으로 마법을 펼칠 때의 70~80% 정도의 마나 손실에 비한다면 획기적인 일이다.
이런 점에서 주술로 마법을 풀었을 때의 이득은 상당하다. 50~60% 정도의 마나 손실만을 보이니 두 배 가까이 이득을 보는 셈이다.
물론 마나 손실로만 따진다면 손으로 검기를 펼치는 방식인 피스트 파이어가 더 효율적일 수 있으나, 제한된 마법만을 쓴다는 점에서 볼 때 주술로 펼치는 것이 더 이득인 것이다.
여하튼, 앞서와 달리 마법을 검기로 풀었을 때의 그 손실은 고작 5~10% 정도로 확연하게 줄어든다.
이도 여타의 검으로 풀었을 때를 말하는 것으로 야안이 쓰는 전설의 검인 경우 그 손실은 2~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 말은 간단히 수치로만 계산해도 5배 가까이 강력한 마법을 펼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한데, 그것이 다가 아니다. 검의 이점이 무엇인가? 날카로움이다. 힘을 집중적으로 모을 수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파이어 핑거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수준의 힘의 밀집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으로 얻는 이점은 두 가지이다.
마법의 거리 제한이 매우 늘어난다는 것인데, 실제 마법의 사정거리는 길수록 그 위력이 줄어든다.
이 또한 앞서 말했던 것처럼 마나가 대기 중에 흩어지면서 생기는 현상인데, 마치 검기처럼 힘의 밀집도가 형성되면 이런 현상이 확연하게 줄어들게 된다.
또 다른 이점은 역시나 파괴력의 상승이다. 펼치는 마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단한 하급 마법이라 해도 상급 익스퍼트 수준의 검기를 보일 수 있으며, 대마법일 경우 검강 못지않은 힘을 엄청난 범위에 펼칠 수 있게 된다.
검강으로 그 같은 힘을 보이려면 엄청난 마나의 소비와 육체적으로 무리가 가게 되기에 이 이점은 생각보다 크다.
그 외에도 검을 매개로 직접적으로 펼치는 것으로, 허공에 어떤 형식의 대마법이 펼쳐질지 모르는 다양성이 자리하며 그것이 야안의 다변한 검과 함께한다면 이를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야안의 공격을 예측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이점들이 있으니 야안으로서는 이것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하여 좀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캐스팅이 가능한 방법들을 찾기 위해 수 천 번에 달하는 실험들이 시도되어 간다.
넓고 푸른 하늘 위에 한 사내가 턱을 괴며 앉아 있었다.
망토를 펄럭이며 무언가를 고심하던 그는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 이내 길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허리를 폈다.
“어젯밤의 그 요란한 태풍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는군.”
리트담은 저 지평선 너머까지 푸름이 자리한 평원을 보며 그렇게 말을 하고는 허공에 마치 단단한 지반이라도 있듯이 앞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나아가는 그의 뒤로 지진이 나는 듯한 소리가 울리며 족히 백만이 넘는 대군들이 정렬을 마친 채 나아가고 있었다.
병과는 기묘했다.
지난 무로딘 산맥에서 만들어낸 마법 포신을 기가 막히게 다루는 드워프 부대들이 후미로 그에 앞서 엘프 정령사 부대가 자리했고, 물을 다스리는 도론 종족은 강을 타고 움직이는 배를 다루었으며, 태양종족과 모롤타 종족이 좌우의 날개가 되었고, 카사 종족과 지난달에 합류한 거인족이 돌격부대가 되었다.
그들의 숫자만 해도 삼십만이 넘었으며, 북부에서 일으킨 인간들의 정예 군사는 70만이며 그 뒤로 이들을 보조하는 병력의 숫자가 또 70만이다.
총 170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아무리 그간 힘을 비축한 북부 연합이라 해도 이번의 출정은 버거운 것은 틀림없다.
다행히 베론 제국과의 여러 조약 끝에 상당한 전쟁 물자를 지원받아, 일으키게 된 것인데 그 상대인 사황자 측에서도 이 같은 거대 규모의 병력이 일어설 줄은 예상 못 한지라 서둘러 다른 곳에 분산되었던 병력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병력의 수는 200만이 넘었다. 한계점까지 짜 모은 병력으로 이번 전쟁의 결과가 어떻게 흘러가던지 사 황자 측이 재기를 한다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사 황자 측이 포기하지 않은 것은 이번 전쟁에서 크게 승리를 한다면 최근 엄청난 물자가 돌고 있는 북부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에 있다.
사 황자 측은 이번 대전에서 50% 이상의 승산을 보고 있는데, 이는 그 병력 중 50만이 오랜 난세에서 살아남은 정예 중 정예이며, 이들을 지휘하는 페르난도 대장군이 명장 중의 명장이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개량한 타이탄 부대가 2만에 달했으며 그 외에도 마법 원거리 무기를 쓰는 병력이 10만이 되었다.
또한 초인 포픈 후작이 이끄는 300에 달하는 질풍 기사단과 그들이 이끄는 십만의 기마병이라면 아무리 돌격에 강력한 거인족이라 해도 페르난도 대장군이 자신있어하는 전술로 인해 큰 빛을 보기 어려울 터이다.
이번 대격돌에 다른 세력에서도 크게 귀와 눈을 열어 살펴보고 있었다. 8년 전을 마지막으로 소소한 전투만으로 상대 측의 기량을 재고 있던 참에 이 같은 정복 전쟁의 규모는 정체 된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난 해 말콤 공작과 밸론 공작이 크게 부딪히기는 했지만, 그도 전력의 30%도 채 되지 않는 규모의 전력에 불과했다.
총력전은 아닌 것이다. 그런 만큼 상대 측에서 얼마만큼의 전력이 숨겨졌을지 모른다.
그러하니 이번 전쟁을 기준으로 비슷한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받는 육대 세력은 그 순위가 나누어질 터였다.
야안은 중앙의 돌격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다.
지난 전쟁에 나서기 전 리트담에게서 인식의 술을 이용해 다시금 크게 성장한 그였다. 주술뿐만 아니라, 그가 고전하던 마법과 검을 함께 쓰는 방법도 상당한 전진이 있었다.
대마법 수준은 아직 어렵지만, 그 밑의 마법이라면 큰 어려움이 없었다.
리트담으로부터 주술을 전수받으면서 야안은 다시금 하나의 벽을 넘어섰고, 이로 인해 세 마리에 불과하지만, 상급 익스퍼트 검사급의 괴수를 일으킬 수 있게 되었다.
‘그르르릉-’
그 신장이 7미터에 달하는 강철로 이루어진 괴수로 바 대륙의 고양잇과 야수인 사자와 비슷한 몰골을 지녔다.
무게 20톤이 넘는 이 강철의 괴수의 겉 피부는 항마력이 뛰어난 로탐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어, 검기나 웬만한 마법에는 별다른 타격도 입지 않는다.
그 말은 이 괴수들이 최소 이 전쟁에서는 초인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