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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안-304화 (304/385)

야안 304화

그를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였다.

비록 말을 꺼내는 이에게서 아무 기세도 느끼지 못했지만, 오랜 세월을 전장에서 굴렀던 그의 감이 이 사내가 자신은 감당하지 못할 자임을 느끼게 했다.

저 덩치 큰 자만으로도 어려움이 큰 데, 자신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강자라면 그들이 마음먹는 순간 이미 자신은 전멸이나 마찬가지였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배춘만은 모용 대장이 안심해도 된다는 모습을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흘리며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

어둠 속이라 잘 보이지 않았건만, 이렇게 다가가 보니 생각한 것보다 그 인상이 좋은 터라 그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사막 행으로 인해 그 옷차림이 험했지만, 그 본래 자리한 귀티가 자리해 그 신분이 놓을 것으로 짐작한 배춘만은 크게 예의를 보이었다.

“저는 이 상단의 상단주인 배춘만이라 합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의 예의에 사내 또한 적당히 예를 보이며 답했다.

“베론 야안이라 합니다. 이분은 볼란이라 하며 말을 하지 못하십니다. 양해 부탁합니다.”

야안이 생각 외로 공손히 말을 하자 배춘만은 당황스러워 손을 저어댔다.

“양해라니요. 아닙니다.”

그 모습에 야안은 작게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진실의 눈으로 살펴본 그는 상당히 신의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던 터라, 야안은 처음 생각과는 달리 호의를 보이기로 했다.

“사막에서 오지인 이곳으로 길을 잡은 것을 보니 길잡이를 잃으신 것 같군요. 다행히 볼란이 류 왕국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으니 동행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길을 안다는 말에 배춘만은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보다 더 기뻐하며 되물었다.

“그것이 정말이십니까? 길을 아신다니. 저희로서는 그렇게 해 주시면 더 없이 감사할 일입니다.”

“저에게 여유 식량 또한 자리하니 내어 드리지요. 대신 그간의 대륙 간의 정세를 이야기해주지 않겠습니까? 바 대륙의 일을 아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군요.”

배춘만은 야안의 그 말에 그가 바 대륙의 귀족임을 짐작했다. 다행히 지난 자신이 거래를 한 왕국은 다른 왕국에 비해 타 대륙 간의 해상 거래가 잦은 곳이라 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물론입니다. 그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이런 사막에서 식량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무거운 가치를 지녔건만, 그리 해주신다니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류 왕국에 도착하면, 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바 대륙과 관련된 정보들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야안은 그런 그의 말에 작게 웃음을 띠며 공간의 주머니에서 개량한 파래 전투식량을 꺼내 들었다.

그 양이 겨우 밀가루 반 포대도 채 되지 않았지만, 배춘만은 그 정도 양임을 짐작한 터라 아쉬움을 보이지 않았다.

반 포대면, 이 상단의 모두에게 이틀 치의 식량은 충분했으니 말이다. 아니, 아껴 먹는다면 삼일 치까지도 가능했다.

야안은 그런 배춘만의 생각을 알았던 터라,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것은 파래란 것으로, 바 대륙의 셀리온 제국에서 전투 식량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야안은 그리 말하며 나무 그릇을 꺼내어 어른 엄지손가락만한 양을 덜어 올리고는 물을 부었다.

곧 파래는 꿈틀 거리다 물을 흡수하며 부풀기 시작했고, 눈 몇 번 깜빡이는 시간에 훌륭한 식사대용으로 변모했다.

“이것이면 충분히 한 끼 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믿어지지 않는 모습에 어안이 벙벙한 모습을 보이던 배춘만은 야안이 내놓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어 보았다.

그리고, 곧 그 고기죽을 먹는 것 같은 질감과 담백한 맛이 혀를 감돌자 허기가 올라온 그는 순식간에 한 그릇을 비우며 감탄을 흘렸다.

“좋군요. 맛은 물론이고 이 같은 포만감이라니. 말로만 듣던 마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는 그제야 야안이 내놓은 식량의 양이 얼마나 많은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방법으로 섭취하는 식량이라면 밀가루로는 백 포대에 달하는 양이었다.

더구나 그 건조한 식량임을 생각한다면 이 같은 변덕스러운 사막에서도 식량이 손상될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배춘만은 그 양이 과하다 생각하여, 야안이 내 놓은 식량 중 반 정도를 받아들인 뒤 야안에게 돌려주었다.

“이것으로도 충분할 것 같습니다.”

야안은 그런 배춘만의 말에 두 말 없이 그 식량을 받아 챙겼고, 곧 배춘만은 식량을 풀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저마다 조금 전의 광경을 보았던 터라 사람들은 서둘러 그 식량을 물에 타 섭취하기 시작했고, 저마다 그 양과 맛에 감탄을 보였다.

배춘만은 야안과 볼란을 새로 정리한 모닥불과 가까운 자리에 데려온 뒤, 지난 1년 동안 격변의 모습을 보였던 바 대륙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배춘만이 말하길 바 대륙의 지난 1년은 격변(激變). 그 자체였다고 한다.

마르탄, 말콤, 셀리온 이 삼국의 절묘한 세력의 흐름을 깬 것은, 말콤 제국에서 시작되었다. 셀리온 제국의 성장력을 두려워 한, 말콤 황제는 이 셀리온 제국에 수많은 내정을 풀었고, 다행히 지금의 셀리온 제국을 만드는 데 큰 공헌을 한 두 초인이 부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은 그는 이를 마르탄 황제에게 그 자료를 내보여 동맹을 요구하였고, 삼국 중 가장 세력이 빈약한 마르탄 황제는 당연히 그 동맹을 수락했다.

그도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두 초인이 없다면 현재 셀리온 제국의 초인은 아직 초인으로서 각성의 시기가 짧은 존 크리스 공작만이 자리했으니 해볼만 했다.

이종족 연합의 그 상대하기 어려운 군단의 문제가 자리했지만, 상대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거인족들의 그 무시무시한 돌파력은 타이탄 부대와 기병으로, 드워프의 그 정교하고 강력한 포신은 중갑장병으로 정령사 군단이라 불리는 엘프들은 마법 부대가 나서는 등 병력을 새롭게 재배치함으로써 막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장에서 가장 문제 되는 것은 초인의 존재이다. 초인은 그 홀로도 일인 군단이라 할 만큼 강력한 전투 능력을 지니지만, 그가 병력을 이끌고 운영하게 되었을 때의 파급력은 기하급수적이라 할 만큼 전장에서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한다.

돌격에 있어 선봉장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부족하지 않다. 한데 이 선봉장을 초인이 자리를 한다면 그 돌격 부대는 그 자체로 열 배의 전력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초인이 이끄는 부대는 전략이라고 할 것은 없었다. 그저 오직 돌격이라는 전술만이 있을 뿐이다.

그 앞에는 신기 묘묘한 전략도 모조리 깨어져 버리게 마련이었다. 초인을 막기 위해서는 또 다른 초인이 나서야 하는 것이 정석이었고, 그것이 아니라면 상급 익스퍼트 급의 무력을 지닌 자가 최소 다섯은 나서야 그 행보를 멈출 수 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행보를 멈춘다는 것이지 제압을 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초인이 마음만 먹는다면 상급 익스퍼트 급의 무력을 지닌 이의 숫자가 열이 넘어도 빠져나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몸을 빼고 다시 부대를 재정립해 다른 곳으로 부대를 이동하면 될 일이었고, 그 와중에 자신을 상대하는 자 중 하나를 끊어버린다면 결국 상대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초인에 비해서는 그 존재감이 낮다지만, 상급 익스퍼트에 달하는 이들은 제국이라 해도 그 숫자가 스물이 넘지 않을 만큼 귀한 인재들이다.

적절하게만 그 자리를 배치해 준다면 놀라운 파급력을 보여주는 강자들이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하나씩 끊기기 시작하면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한 명의 초인이라도 더 있는 쪽이 우세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만큼 초인의 부재는 큰 것이었기에, 현재 두 명의 초인이 자리한 말콤 제국과 한 명의 초인이 자리한 마르탄 제국이 연합한다면, 아무리 그 세력이 강세한 셀리온 제국이라 해도 겨우 한 명의 초인으로는 전장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한 차례 동맹을 맺었던 경험이 있던 이 두 세력은 지난 계약을 재계약하여 인질들을 교환하였다.

난세에 있어 이런 모습들은 형식적이다. 그 인질들이 자신의 핏줄을 이었다고 해도 제국 통일이라는 큰 이득을 앞둔 그들이 겨우 그런 핏줄에 연연하기에 너무 먼 길은 달려왔다.

그저 병사들에게 아군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쇼에 불과했다.

어차피 이번 전쟁은 다른 때보다 전장을 크게 만들 계획이었기에, 배신을 하려고 해도 어려움이 많다.

아니, 저번처럼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다가는 이 전쟁 이후의 일이 문제가 될 것이다.

이번 전쟁이 끝이 난다면 두 제국만이 바 대륙에 자리할 것인데, 이 전쟁에서 큰 이득을 취하지 못한다면 이후 재정비가 끝이 나기 무섭게 잡아먹히고 말 것이다.

모습을 감춘 두 초인이 다시 나타나기 전에 재빠르게 몰아붙여야 했고, 그렇게 셀리온 제국은 불시의 기습과도 같은 그들의 군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아니, 그들도 밀정을 풀어 두어 이들의 침략을 알고 있었지만, 그처럼 발 빠르게 움직일 줄 몰랐기에 1차적으로 세워진 방어가 무너져 내린 것이다.

첫 접전에서 큰 피해를 입은 셀리온 제국은 서둘러 반동 세력들을 치기 위해 흩어진 병력들을 불러들이고, 전비를 푸는 등 바쁘게 2차 방어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방향에서 넓게 포진하는 형태로 몰아치는 터라 그들을 온전히 막기에는 어려움이 컸다. 우선적으로 가장 문제 되는 말콤 세력에 현재 자리한 초인인 존 크리스가 나서기로 했으며, 마르탄 제국은 셀리온 제국의 상급 익스퍼트 급의 강자들이 나서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나 초인의 부재로 인해 결국 2차 방어진은 마지막 선까지 크게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그 같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셀리온 제국이 무너질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다.

부재중이던 두 초인이 등장한다고 할지라도, 과연 이 상황을 뒤집을 수 있을 것인가? 그때는 모두가 그렇게 판단하였다.

하지만, 그 판단이 오산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반전은 로케하르산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이자 셀리온 제국이 자랑하는 초인인 리트담이 그 모습을 보이면서 시작되었다.

지난 전쟁에서 보여주었던 주술은 마치 장난에 불과한 것이라도 되는 듯, 거대한 강철 괴물들을 이끌고 나타난 그는 단숨에 압박하는 말콤 제국의 병력을 어지럽히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휘저으면, 모든 것을 태우는 불꽃들이 땅속에서 터져 나왔으며 다시 손을 내려치면 큰 불화구가 대지를 강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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